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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156편 ※
단계(檀溪)를 뛰어 넘어 만난
수경 선생
유비는 적로마를 달려 급히 도망하였
다. 그리하여 한참을 달려가 보니,
<아뿔사 !> ...
앞은 깊은 강으로 가로 막히고,
그 건너는 깎아지른 절벽이 아닌가?
유비는 급한 중에도 전방의 상황을 보고 황당했다.
눈 앞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에 가로
막히고, 뒤에서는 채모가 군사를 새카맣게 이끌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잠시 망설이던 유비는 그대로 적로마를 강으로 몰아갔다.
허우적 거리며 강속으로 들어간 말은 강 한 복판에 이르러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며 머뭇거린다.
"적로야, 오늘 네가 기어코 나를 해치려는구나 !" 유비는 순간,
양양 저자 거리에서 불현듯 만난 사내의 말이 생각되었다.
"하 !..."
유비가 한탄을 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채모의 군사들이 쏜 화살이 유비의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히히힝 !..."
그 순간, 적로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더니 그대로 강물을 박차고 몸을 솟구친다.
그리고 번개같이 앞으로 내달아 강 건너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순간, 유비가 떠난 자리에는 수백 발의 화살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아니 ? 저럴 수가 !"
유비의 뒤를 쫒던 채모를 비롯한 그의 군사들이 단계를 뛰어 넘은 유비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뒤에 채모는 강 건너편에서 서서히 자리를 떠나는 유비를 바라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잠시후,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조운은 채모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 보며,
"채장군, 우리 주공은 어디 계시오."
하고, 물었다. 채모가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한다.
"자네 주공 ? 이미 저 맞은편으로 건너가셨네."
조운이 주변을 돌아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럴 리가 ? 골짜기가 이렇게 깊은데... 과연 어느 말이 저길 뛰어
넘을 수 있겠소 ?"
그러자 채모도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장군 말이 맞소, 헌데 유비는 저길 뛰어 넘었단 말이오."
조운은 채모와 무장한 그의 군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병마는 끌고오셨소 ?"
"9군 42현 관원이 모두 양양에 있는데 형주의 상장군으로서 호위를 해야할 게 아니오 ?"
채모는 궁색하게 둘러 대었다. 그러자 조운은 창끝을 채모에게 향하며 외치듯이 말했다.
"그건그렇고, 우리 주공을 어찌했나 ? 왜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인가 ?"
하고, 추궁하였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소. 못 믿겠거든 직접 유비에게 가서 물어보시오."
채모는 이렇게 퉁명한 어조로 대꾸하고, 이어서...
"치워라 ! 조운, 자네 주공은 지금 생사를 알 수 없는데, 지금 여기서 싸움이라도 벌일 셈인가 ?"
하고, 말하며 칼을 뽑아 대적할 자세를 보인다.
그러자 조운이 천천히 창을 거두며 뒤로 물러선다.
그 즉시 채모는 몰고온 군사들을 돌려 양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채모가 돌아간 뒤, 조운은 다시 한번, 단계 강 기슭에서 강폭과 수심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사람이 말을 타고는 도저히 건널수 없는 깊은 강물이 흐르는 강이었다.
그러나 채모의 말로는, 저 앞의 단계를 자신의 주공이 건너갔다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유비는 기적적으로 강을 무사히 건너자 신야를 향하여 말을 달렸다.
그리하여 얼마를 달리다 보니, 대나무 숲 사이에 유아하고 깔끔한 초당이 보인다.
유비는 말에서 내려 초당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초당안에서는 거문고 소리가 그윽하게 울려나왔다.
유비가 주인장을 부르려고 하는데, 문득 거문고 소리가 뚝 그치더니 백발 노인이 흰 옷을 걸친 채로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며 나오는데, 머리는 백발이고 몸이 수척한 것이 백학(白鶴) 같이 청아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나오자 마자 유비의 앞으로 걸어 오며,
"금(錦:거문고 줄) 소리가 우렁찬 것을 보니, 틀림없이 어느 영웅이 훔쳐 듣고 있을 터...노부(老夫)의 별호는 수경(水鏡 : 본명 = 사마휘(司馬徽)이라 하오. "
하고, 자신을 소개하며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유비는 노인을 향하여 예를 표하며,
"저는 유비 유현덕입니다. 수경선생을 뵙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유비를 꿰뚫고 진작부터 아는 듯이,
"유황숙이셨군. 반갑소이다."
하고, 말하고나서, 유비의 행색을 훝어 보며, 이어서 말한다.
"장군의 말(馬)은 훌륭한데 지금 차림새는 말이 아니구려, 옷도 젖은 것을 보니 방금 곤경에서 빠져 나오셨구먼..."
유비는 수경 선생의 말에 흠칫 놀랐다.
"선생, 대단하십니다. 사실 제가 조금 전 병사들에게 쫒기느라 10여 리쯤 떨어진 골짜기에 빠졌었습니다.
병사들이 화살을 쏘길래 이번엔 죽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저 적로마가 깊은 강물을 뛰어 넘어,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수경 선생은 유비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그렇다면 전례없는 대단한 일이오."
"전례가 없다니오 ?"
"그 골짜기는 단계라 하는데, 그 옛날 초패왕 항우가 그곳에서 진나라 투항병 30만을 몰살 했던 곳이오.
말 그대로 피가 내를 이루고 수급이 산을 이뤘다고 하며, 그 후 수 년이나 걸려 단계는 그것들을 양강으로 흘려 보냈다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그 물 속에 얼마나 많은 영웅들의 고혼이 잠들어 있고, 얼마나 많은 망령들이 쌓여 있겠소. 그런데도 유장군 당신만은 단계에 빠져서도 말이 박차올라 죽음을 피하지 않았소 ? "
유비는 방금 전에 적로마와 함께 뛰어 넘은 깊은 강과 깍아지른 골짜기가 단계라는 것과 그 유래를 수경 선생으로 부터 듣게 되자, 하늘을 우러러 감탄한다.
"하 ! ~...세상에 ! "
유비의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수경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오. 집 안에 술 몇 동이가 있으니, 들어가서 몇 잔 하시지요."
유비는 신선처럼 고고하고 예지력이 있는 수경 선생의 말을 듣자 마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 선생."
하고, 순순히 응하였다.
그리하여 방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수경 선생이 유비에게 묻는다.
"장군, 형주 유표의 앞날이 어떨 것 같소 ? "
"유경승은 제 황형(皇兄)이고 덕과 인의가 있고 문무를 겸비했으니 한나라를 부흥시킬 임무를 맡을 만 합니다."
유비가 이렇게 형주의 유표를 평가하자, 수경 선생은 느닷없이 조소(嘲笑)를 금치 못한다."
"하하하핫 !.. 장군 ! 지금 본인의 입으로 한 말은 사실, 본인도 믿지 않잖소 ? 체면을 생각해서 말을 아낀 건 아니오 ?"
유비는 수경 선생의 대꾸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조신하게 물었다.
"그럼, 선생께서는 유경승을 어찌 보십니까 ?"
수경 선생은 거침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묻는다.
"밖엔 강적을 두고 안에서는 가족끼리 다투니, 보다 못한 형양 각지(荊養 各地)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는 데 들어 본 일이 있으시오 ?"
"무슨 노래입니까 ?"
"그 노래는 이러하오."
八九年間始欲衰(팔구년간시욕쇠 )
至十三年無孑遺(지십삼년무혈유 )
到頭天命有所歸(도두천명유소귀)
泥中蟠龍向天飛(이중반용향천비)
팔구년째부터 쇠락하기 시작해서
십삼년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
마침내 천명이 돌아와 진흙 속에
뭍혔던 용이 하늘로 오르리라.
"이 노래는 건안(建安)초에 시작되었는데, 건안 팔년에 유표가 전처를 잃고, 집안이 매우 어지럽게 되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시욕쇠
(始欲衰:쇠퇴하기 시작함)요,
그래서 십삼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라 했으니, 그것은 유표(劉表)의 사후(死後)를 말한 것이 아니겠소 ? 그래서 하늘이 돌아 나갈 길이 없어, 마침내 때가 이르니 진흙 속에 용(龍)이 하늘을 향해 난다는 것은, 후일 현덕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수경 선생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
었다.
유비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일을 감당하겠
습니까 ?"
"천만의 말씀. 천하의 기재(奇才)들이 모두 이 지방에 모여 있고, 또한 시운(時運)이 장군에게 뻗쳤소.
오늘 단계에서 겪은 일은 우연을 가장(假裝)한 필연(必然)인게요."
"황송한 말씀입니다. 천하의 기재는 누구이오며, 그 분은 어디 계신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병력도 얼마 되지 아니하고 장수도 적어, 수많은 세월동안 싸우기만 하면 계속 패했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대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 "
"이 세상에는 영웅이 적지 않소.
허나 아무리 큰 뜻을 품었다 하여도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적소.
어째서겠소 ? 용의 기상을 가졌더라
도 승천하려면 날개 두쪽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오 ?
바로 문(文), 무(武)라는 날개말이오.
장군은 무는 강하나 문이 약하오.
관우, 장비, 조운은 혼자 만명을 상대할 장수이나, 손건, 간옹, 미방 등은 절대 군심과 민심을 다스릴 만한 인물은 못 되오.
그러니 장군에게는 날개가 한 쪽 뿐인 것이지요. 장군에게 부족한 것은 천하를 통찰하고 가슴에 지략을 품은
군사(軍師)요.."
"선생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 군사를 어디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
"세상에는 와룡과 봉추가 있는데,
둘 중에 한 사람만 얻어도 세상을 평정할 수 있소."
"와룡(臥龍), 봉추(鳳雛) ...
그 두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
선생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유비는 수경 선생을 향해, 두 손을 읍하고 애원하 듯 부탁하였다. 그러나 수경 선생은 미소만을 띠며,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는 낙담한 가운데 다시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선생, 이 유비가 와룡과 봉추를 얻지 못하면 선생께서 직접 도와 주실 수
는 없겠습니까 ? 그러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저의 홍복입니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노부는 이제 남은 날이 많지 않소. 이제는 자연과 벗하며 사는 길 만이 남았을 뿐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장군, 서두르지 마시오. 조만간 이 노부보다 열 배는 나은 사람이 장군을 도울 것이오.
때를 기다리시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때가 따르지 않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 법이니, 때가 오면 장군은 그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되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더 이상 수경 선생을 조르지 않았다. 이미 그로부터 천하제패를 향한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통찰한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수경 선생에게 고마운 예를 해보인다.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자, 이제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하고, 술을 듭시다."
유비는 이렇게 그날 밤을 수경 선생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삼국지(三國志)제157편
현인 서서(徐庶)와의 만남
수경 선생과의 자리를 물리고 잠자리에 든 유비는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수경 선생으로 부터 조언 받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생각이 산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밤이 한층 깊어가는 중에, 수경 선생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 원직이구먼, 유표를 만난다고 형주에 가지 않았나 ?"
느닷없는 수경 선생의 소소한 말소리에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경 선생의 질문이 이어진다.
"어쩌다가 한밤중에 여기까지 왔는고 ?"
그러자 늦은 밤중에 찾아온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주부에 다녀오긴 했으나, 유경승 그 사람은 선량하기는 하나,
큰 뜻을 품지 않고 허명이나 구할 뿐이더군요.
이틀 만에 단점이 눈에 뵈더이다. 유표는 선(善)은 좋아하나 제대로 쓰진 못하고, 악(惡)은 미워하나,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밖으론 장수(將帥)들을 부리지 못하고, 안으로는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더군요. 그러니 그쪽에 투신했다
간 조만간 화를 입겠습니다. 그래, 저를 붙잡을까 봐 서둘러 밤중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경 선생은 밤중에 찾아온 사내를 집 안으로 들이면서,
"쉿... 조용히 하게, 다른 손님이 계시다네."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밤중에 찾아온 사내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며, "아, 그렇습니까 ? 누가 오셨는데요 ?" 하고, 물었는데, 이미 유비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사내가 들어 오고 있는 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예를 표하며 인사하였다.
"좌장군 유비가 인사드립니다."
"이제보니 유황숙이셨군요.
인연이 있었습니다."
"응 ? 선생이셨군요."
유비는 비로서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들고 보니, 이 사내는 아침에 양양 거리에서 자신이 타고온 적로마
를 평가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 유비는 반가운 얼굴로 묻는다.
"혹시 선생이 와룡이나 봉추 선생이
십니까 ?"
"저는 와룡도 봉추도 아닙니다.
제 이름은 서서(徐庶)이고 자는 원직(元直)이라 합니다."
"방금 안에서 선생 말씀을 들었는데, 한번에 유경승의 폐단을 꿰뚫어 보시더군요.
또 아침에는 적로마 조차 알아 봐 주시고...선생은 와룡과 봉추를 능가하시는 분이 틀림 없습니다."
하고, 유비가 말하자, 서서는, "저를 와룡과 봉추에 비교하면, 별빛을 달빛에 비교하는 꼴이지요." 하고, 대답한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허리를 굽히며,
"선생, 너무 겸손하십니다." 하고, 말을 하니, 서서에 뒤에 서있던 수경 선생이 입을 연다.
"이보게, 원직, 현덕 말이 맞네. 재능이 뛰어나고 학문이 깊은 자는 종종 겸손을 가장하지..."
서서는 수경 선생의 말을 듣자,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러면서, "황숙, 앉으시지요." 하고, 유비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앉게 되었다.
서서가 유비에게 입을 연다.
"유황숙께서 인의로우시다는 말을 듣고, 그때 적로마로 시험해 보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더군요."
유비가 대답한다.
"적로마가 주인을 해친다는 선생의 말씀이 적중했지요. 그때 말이 단계에 빠져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요."
"네, 적로마가 해치는 것은 평범한 주인이고, 현명한 주인은 해치지 못합니다. 제가 형주에 가기 전에 신야에 들렸는데, 백성들이 민요를 부르더군요. 한번 들어 보시렵니까 ?"
서서는 이렇게 말하며 신야의 백성들이 즐겨 부른다는 민요의 가사를 읽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新野牧 (신야목)
劉皇叔 (유황숙)
自到此 (자도차)
民農足 (민농족)
신야목
유황숙
이곳에 온 뒤로
우리 살림이 좋아졌네.
서서의 말이 이어진다.
"이런 민요를 듣고 나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유현덕이란 사람이 신야에 온 지 고작 1년밖에 안 되었는데, 백성들의 이런 칭송을 받다니.. 과연 유현덕은 인의 군자로다 ! 하고 말이죠.
앞으로 황숙이 영광을 누리든 몰락하든 , 이기든 지든 간에, 항상 민심은 따를 것이다 생각했지요. 또 민심을 얻는 사람이 천하를 얻게 될 것은 자명
(自明)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서서가 말을 마치자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가서 무릅을 꿇어 앉는다.
"현덕 ! 왜 이러시오 ?"
서서는 놀라며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그러자 자세를 바로 한 유비가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입을 열어,
"방금 원직 선생의 말씀이 제 평생 가장 감동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가슴이 에이는 듯 하군요. 통쾌합니다. 선생 ! 유비가 재주가 없으니 선생께서 군사(軍師)
가 되어 조석으로 가르침을 주십시오."
하고, 경건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서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비의 앞으로 다가와 예를 표하며,
"저는 재주와 학문이 모자라,
그런 큰 일을 맡을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유비의 부탁이 이어진다.
"저는 20여 년을 선생 같은 현인이 도와주시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매불망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선생과의 만남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습니다. 부디 선생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유비는 말을 마치고 스승에 대한 예로써 서서에게 절을 해 보였다.
서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황숙의 마음은 감격스러우나 , 군사같은 큰 책임은 정말 맡을 수 없습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낙담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던 수경 선생이, "이보게 서서, 유황숙이 이렇게 몸을 낮춰 부탁하잖나, 무릎을 꿇은 것 만으로도 이미 성의는 보였네. 승낙하게나." 하고, 안타까운 얼굴로 서서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서서는 얼굴을 들어 수경 성생을 바라보았다. 수경 선생은 서서를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네의 학문은 쓸모없는 것이 되지 않겠나 ? 자고로 현명한 주인은 얻기 어려운 법이네, 유황숙께서 지금까진 시운이 따르지 않았으나, 현명한 주인임은 틀림 없지. 조만간에 대업을 이룰 분이야. 오늘 두 사람이 여기서 만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지..."
수경 선생이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 서서는 수경 선생과 유비를 번갈아 쳐다보며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보던 유비는 수경 선생의 말씀이 끝나자, 서서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올려 보이며,
"선생을 평생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또 다시 절을 해 보였다. 그러자 서서가 유비의 앞으로 다가가, 두 무릎을 꿇고 몸믈 세우며,
"서서,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유비에게 답례의 절을 해보인다. 유비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하오 !(好) 선생, 일어나시지요."
하고, 서서의 몸을 손수 일으켜 주었다.
두 사람 사이로 수경 선생이 다가오며 기쁜 어조로 말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극히 경사스런 일이오. 축하하오. "
그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공, 주공 !"
"오 ! 자룡이군 !"
목소리를 알아 본 유비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제 부장 조운이 찾으러 왔군요."
수경 선생이 그 소리를 듣고,
"상산 조자룡, 그 이름은 천하가 다 알지 않소 ? 어서 들어오라고 하시오."
유비가 방문을 열고 밖을 향하여 소리친다.
"자룡 ?"
"주공 ?"
어둠 속에서 조자룡이 부하 군사들과 함께 초당 앞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무릅을 꿇으며,
"주공 !"
"자룡, 여긴 어떻게 찾아 왔는가 ?"
"밤새 주공을 찾아 다니다가 말발굽 흔적을 발견하고 뒤따라 왔습니다."
"충성스럽구나."
유비는 이렇게 말하고 난 뒤, 조운의 손을 잡고 수경과 서서를 향해,
"이쪽은 수경 선생과 서서 선생일쎄, 이쪽은 조운, 조자룡입니다."
하고, 양쪽을 번갈아 소개하였다.
이튼 날, 유비와 서서는 조운의 호위를 받으며 신야성으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유비는 수하 장수를 모아놓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다할 전략없이 싸움에 임한 관계로 번번히 패하기만 하였소.
그러나 이제는 지략과 권모가 뛰어난 현인을 모시게 되었으니 한없이 기쁜 일이오. 허니, 여러분들께서는 서서 선생의 말씀을 쫒아 모든 일을 행하도록 하시오.
선생의 말씀은 곧 군령이니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해 주오. 그러면 작금의 정세에 대해 선생께서 말씀하시겠소. 자 선생 !..."
서서는 유비의 말이 끝나자 입을 열었다.
"조조가 원소를 제압한 뒤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며 군량을 비축하고 군사를 정비했으니, 다시 천하를 노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당연히 형주 9군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표에게 의지하여 신야에 주둔하고 있으니, 당연히 조조로 부터 가장 먼저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조조는 분명 내년 봄에 대군을 일으킬 겁니다. 조조의 평소 용병술 대로라면 대군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정예병으로 형양을 공격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가 원하는 것은 승리나 전리품이 아닙니다. 조조는 선봉군을 이용해 형주군의 방비의 허실과 약점, 심지어는 유표군의 장단점을 캐내려 할 겁니다."
유비가 그 말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전에 조조와 싸울 적에 이해 안되던 부분이 많았소. 오늘 군사의 말을 들으니 다 이해가 되는구려."
서서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운장과 자룡은 각각 부대를 이끌고 신야성 30리 밖에 군영을 구축하고 주둔하시오. 운장의 군영은 허이고 자룡의 군영은 실입니다.
두 군영이 신야성과 협력하며 기각지세를 형성하면 허와 실이 상응하면서 조조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손건과 미방은 계속 군마를 모아 군세를 확충하시오. 내년의 대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
실전 경험을 둘째로 치면 서운해 할 정도로 온갖 전쟁터를 바람처럼 누빈 관우가 조금은 불만을 가진 어조로 입을 연다.
"군사께선 조조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보신 듯이 일사천리로 말씀하셨는데, 실전에서는 이론과 다른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군사께선 우리의 준비만 말씀하셨지 조조가 언제 쯤 공격해올 지에 대해선 말씀하지 않으셨소. 우리의 준비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니오 ?"
서서가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이고 입을 연다. "앞으로 한 달 이후가 될 것이오. 하루 이틀 이상의 오차는 안 날 겁니다."
그러자 장비가 투덜거리 듯이 반문한다.
"왜 꼭 한 달 이후요 ? 내가 조조라면 내일 당장 올 거요 !"
사실, 장비도 서서가 군사로 추대되어 주군 유비와 단상에 마주 앉고, 관우와 장비, 조운은 단하에 쪼르라니 마주 보고 앉은 것에 불만이 있었다.
한 마디로 굴러 들어온 돌이 (서서), 박힌 돌(관우,장비,조운, 손건,미방 등등...)을 빼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울러 새로 추대된 군사의 실력도 검증 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 그러려니 장비의 투덜거린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장비의 말 끝에 관우조차 한 마디 덧 붙이는데,
"셋째 말이 맞소. 내가 선생처럼 점을 칠 줄은 모르나 약간의 병법은 알고 있소. 신속한 용병이 가능해야 좋은 장수가 아니겠소 ? "
하고, 말하며, 군사 서서의 말을 근거없는 점술(占術)로 치부하듯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이들의 대화를 유비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그렇다고 애써 모신, 군사 서서의 의견을 묵살할 수도 없고, 도원 결의한 이후로 수많은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의형제의 의견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난처한 유비의 입장을 아는 서서가, "관장군께선 겸손하시군요. 병법을 잘 알고 계시는 관장군은 좋은 장수십니다.
하지만 병사를 부리려면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지, 의욕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며칠 뒤면 형양 일대는 가을장마 계절입니다. 길게는 20일 까지 가지요. 게다가 땅이 마르려면 닷새는 걸립니다. 조조군이 허도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닷새는 걸리겠지요.
조조의 정예병은 대부분 북방의 철기병이니 진흙탕 속에서 싸우려 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조조군은 한 달 뒤에 온다고 했습니다."
서서가 자신있게 조조군의 공격개시 시점을 이렇게 설명하자, 좌중의 모두는 <앗 !, 응 ?> 하고, 속으로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것은 유비도 마찬가지로, 그는 이전의 분위기에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서서의 말이 끝나자 눈을 번쩍 떠 보이며 입을 연다.
"여러분 ! 어서 군사의 명령에 따라 맡은 임무를 수행하시오."
순간, 군사의 명을 따르겠다는 의사의 표시로 좌중에 자리한 장수와 모사가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비의 명이 이어진다.
"명심하시오. 군사의 말은 모두 군령이오."
"존명 !"
유비의 명령에는 모두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삼국지(三國志)제158편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
한편, 허도의 조조는 문무 백관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말한다.
"형주의 유표가 고질병이 도져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형주의 군사는 채모가 모두 장악했다는군,
그 자는 수전에는 능하나 육지전에선 무능하지, 그와 동시에 유비는 신야에서 군마를 모으며, 나날이 군세를 확충하고 있다는군, 이제 나는 형주를 공격해 유비를 정벌할 생각이네."
그러자 조조의 아들 조비가 읍하며,
"아버님, 지금 형양은 가을 장마철이라, 기병전에는 불리할 것입니다. 하오니 장마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하고, 아뢴다.
조조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음, 너도 많이 발전했구나 천문지리의 중요성도 알다니.."
그러자 입시해 있던 문무 백관 모두가 조조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를 머금은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허나, 형양의 가을장마는 곧 끝난다. 허도에서 형양까지는 닷새가 걸릴 테지, 우리 군사가 형양에 도착할 즈음이면 장마도 끝나고 땅도 다 마를 것이야. 그러니 기병전을 펼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그렇지 ?"
그러자 조비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네,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진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조비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서,
"조인은 명을 받으라 !"
하고, 조인을 호명하였다. 조인은 그 즉시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대답한다.
"예 !"
"조인을 주장으로 이전을 부장으로 삼아, 정예병 5만을 이끌고 번성에 주둔하며, 형양 각 군을 감시하라.
내 명령을 기다렸다가 신야를 공격
한다."
이전도 자신이 호명되자 한 발 앞으로 나와 명을 접수한다.
그리고 조조의 명이 끝나자,
두 장수는 동시에 두 손을 올려 복명한다.
"명을 받드옵니다 !"
조조가 이어서 명한다.
"지금부터 정예군으로 선별하여 군사를 정비하라, 내일 출발한다."
"네 !"
"네 !"
명을 받은 두 사람이 밖으로 향하는데 조조가,
"이전"
하고, 혼자만을 부른다.
"네 !"
"자네는 일처리가 신중한 사람이지, 그래서 조인에게 부장으로 붙였네.
조인은 용맹하긴 하나 성격이 너무 급해, 공을 세우는 데 급급할 거야. 해서 이번 출정에서 조인이 성급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자네가 말려야 하네."
"네 !"
"유비의 병력은 적지만 만만치 않아, 번성에 주둔하면서 유비군의 허실을 잘 파악한 뒤에 병사를 움직여야 하네. "
"알겠습니다 !"
"그럼 가봐."
"네 !"
조인과 이전이 이끄는 5만 군사는 닷새만에 신야성을 지척에 둔 번성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성문이 열리고 대군이 입성하려고 할 때에 선두의 조인이 부장 이전에게,
"성문이 열렸으니 자네는 들어가 쉬고있게. 나는 병사를 이끌고 신야를 탐색하러 가겠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전은,
"척후대를 보내실 일 이지 직접 가시려고 하십니까 ?"
하고, 성급한 결정을 하는 조인을 말렸다. 그러자 조인은,
"신야는 여기서 팔십 리밖에 안되잖나, 대전이 코앞에 닥쳤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겠나 ? "
하고, 대꾸한다. 이전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말한다.
"승상께서 번성에서 형양 9군의 상태를 살피면서 공격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당장 출전할 기세 같습니다."
하고, 출전 전에 조조에게 하달받은 명령을 되새겨 만류하였다.
그러나 자신감에 넘쳐있던 조인은,
"그렇네, 각 부에 명령을 내리게,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오경(새벽 3~5시)에 출발하여 신야를 함락시키고 유비를 사로잡아 돌아 온다고..."
"장군, 적을 얕봐선 안됩니다. 승상의 군령을 기다렸다가 공격해야 합니다."
이전은 그의 성격대로 조심성 있는 결정을 내리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인은 이전의 말을 가소롭게 게 여기며,
"자네는 유비,관우, 장비가 무서운 모양이군,"
하고, 말하며, 이전에게 손가락질까지 해보였다. 그러자 이전이 고개를 흔들며,
"무서운 게 아니라 얕보지 않는 겁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인은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내일 5천병마를 남겨 두고 갈테니 자네는 번성을 잘 지키고 있게.
내가 직접 신야를 공격할 것이야."
하고, 말한다.
그러자 이전은 크게 놀라며,
"장군 ! 절대 안 됩니다."
하고, 말렸다. 그러자 조인이 눈을 샐쭉 뜨며 말한다.
"왜 ? 내가 공을 독차지할까봐 질투하나 ?"
하고, 이전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자네는 왜 내명령을 거역하나 ?"
조인은 힐난하 듯이 말한다.
그러자 이전은 고개를 흔들면서
어쩔 수 없는 어조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등 떠 밀린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다음날 정오경, 유비와 그의 일행이 주둔해 있는 신야성에서는 비상
사태가 발령되었다.
성문을 굳게 잠그고 병사들은 분주히 오가며 각자가 맡은 구역을 방어하는 진영이 펼쳐졌다.
"주공, 조조군이 왔습니다."
척후병의 보고를 받은 유비와 서서, 관우는 성루로 급히 올라 간다.
"상장군 조인이 성문 밖 개활지에 진(陳)을 펼치고 있습니다."
척후병은 이어서 보고하였다.
유비가 군사 서서에게 말한다.
"조조군이 정말 빨리도 왔군요."
아직도 군사 서서에게 적극 의지하는 것이 못 마땅한 장비가 유비가 들으란 듯이 투덜거린다.
"이틀 이상 차이가 안 난다더니, 사흘이나 차이가 나질 않소 ?"
"하루 정도만 해도 이미 대단한 게 아니냐 ? 셋째, 그만 하게."
유비가 장비의 입막음의 말을 했다.
그러자 장비가 또 한 번 투덜댄다.
"장마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야로 쳐들어 오다니..."
서서가 투덜대는 장비를 달랜다.
"조조군이 진군하는 사이에 장마가 끝나고 땅이 마른게요. 그러니 조조의 치밀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있는 일이 아닙니까 ?"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세 사람은 조조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루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관우와 조자룡도 올라와 있었고, 조인이 펼치는 진지(陳地)를 뚫어져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군사 서서가 조인이 펼치는 진법을 보고, 놀라며 말한다.
"조인도 이런 진법을 쓸 줄이야 !
그도 상장군 재목이군요."
서서는 비록 적(敵)이지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조인의 진법을 경애하는 어조로 평가하였다.
진법이 펼쳐지는 와중에 조조군의 한 장수가 달려나와 성루를 향해 소리친다.
"산돼지나 잡아 먹던 백정놈과 돗자리나 짜 먹던 놈들이 조인 장군의 진법을 알아보겠는가 ?
어서 성을 나와 , 한 판 붙어보자 ! 성이 함락되면 한 놈도 남김없이 죽을 줄 알아라 !"
"뭐라고? 저 못된 망나니 같은놈이 !"
장비가 콧 김을 <씩씩> 내뿜으며 화를 냈다.
"주공, 싸움을 받아주지 마십시오."
군사 서서가 유비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적이 공격해 온다면 활로써 진영의 양쪽 날개를 공격하면 됩니다.
정오가 지나 기세가 누그러지면 다시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적이 당장 공격할 모양인데, 기다려야 합니까 ?"
장비는 군사의 작전 지시에 의문을 갖고 물었다. 그러나 유비 자신도 군사 서서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바 없었기에 그의 주장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잘잘못을 따질 계재는 아니지 않은가 ?
그리하여 군사 서서가 시키는 대로 조운을 부른다.
"자룡, 군사의 말씀대로 적의 진영 양쪽을 공격할 궁수를 배치하라!"
"옛 !"
조자룡이 군사들을 배치하기 위해 달려갔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 보던 관우의 입에서는 한탄의 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망했군 ! 군사는 조인의 진법을
아예 모르고 있어..."
"그러게 말이오 ! 왜 우리까지 싸우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 게야 !"
장비도 맞장구 치면서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겁쟁이!"
하고, 투덜거렸다.
서서는 조조의 진영을 말없이 한동안 바라 보다가, "주공, 날이 더우니 들어가 차나 드시지요."
하고, 눈 앞의 적들의 공격 준비를 보면서도 한가한 소리를 한다.
유비는 어쨌거나 서서에게 군사
(軍師)의 대임을 맡기고, 믿기로
한 이상, "좋소 !" 하고, 대답하며,
먼저 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밖에선 계속해 성을 향한 악다구리가 터져 나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아 어서 나와라 !"
"겁쟁이들, 얼른 기어나와라 !"
"으이구 저걸 그냥 !"
열혈 대장부 장비는 그 소리를 듣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한편, 내실로 자리를 옮긴 서서는,
"조조군이 주둔한 번성은 500년이나 된 고성입니다. 제가 예전에 그 성에 올랐을 적에, 성루 서쪽 귀퉁이에 부채만큼 큰 영지가 자란 걸 봤습니다. 붉은 빛을 띤 검은색 영지는 매우 진귀한 것이지요. "
하고, 지금 목전에 화급하게 진행되는 적의 공격 준비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유비도 그에 걸 맞게 화답해 보는데,
"해마다 전쟁인지라, 그 영지가 아직 남아 있을 지 모르겠구려."
"그렇군요, 아직 있다면 조만간에 따서 드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하고, 군사 서서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의 세 사람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쑥 내실로 들어왔다. 거두 절미하고, 관우가 예의 퉁명스런 어조로 묻는다.
"군사, 차는 다 드셨소 ?"
"정오가 넘었소, 적을 깨뜨릴 방책은 다 생각하셨소 ?"
장비가 이어서 불만어린 어조를 내뱉었다. 그러자 문득, 군사 서서가 바둑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탁자에 하나씩 올려 놓으며,
"적장 조인이 펼친 진은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이란 것입니다. 팔문이란 것은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의 여덟 문을 말하는 것인데, 생문(生門), 경문(景門), 개문(開門)으로 들어가면 길(吉)하고, 상문(傷門), 경문(驚門), 휴문(休門)으로 들어가면 다치고, 두문(杜門), 사문(死門)으로 들어가면 백전 백패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진은 본래 손빈이 창안한 것이나, 여러 병법가들을 거치며 발전해 변화가 있었습니다. 진 가운데 있는 누대를 용안(龍眼) 이라 하는데, 이건 훗날 덧붙여진 것입니다."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조운도, 군사 서서가 흰색 바둑돌 여덟개를 차례로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적이 펼치고 있는 그들이 처음보는 진법을 설명하며, 마지막 검은돌을 한가운데 올려 놓자, 입을 다물고 군사 서서의 말 한마디와 손짓 하나 하나에 눈길이 쏠렸다.
군사 서서가 좌중을 돌아 보며
계속 말한다.
"하지만 조인은 이 진의 형세와 진법만 배웠을 뿐, 자세히 살펴보니 핵심은 익히지 못했더군요. 이 진을 깨는 데는 용감한 장수 한 사람과 오백명의 군사만 있으면 됩니다. "
서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바둑돌 하나를 옮기면서 계속해 말을 한다.
"동남에 있는 생문(生門)으로 쳐들어
가서, 서쪽 방향의 경문(景門)으로 나온다면 적을 크게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때 까지 두렁두렁한 눈을 뜨고 군사 서서의 바둑돌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던 장비가, "내가 가겠소 !"
하고, 자신감에 넘친 자원의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관우도 의심의 얼굴을 거두고, "내가 가겠소 !"
하고, 자원하면서 군사 서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서서는 "자룡 ! 자네는 담이 크고 7척 장창을 잘 써서 적군 사이를 태평하게 휘젓고 다닌다는 소릴 들었네.
어떤가 ? 자네의 실력을 오늘 내게 보여 주겠나 ?"
"존명 ! (명을 받듭니다 )"
조자룡은 관우, 장비, 형님들을 제치고 자신이 선택된 것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받들어 명을 접수하곤, 공격 준비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버린다.
장비가 자리를 떠나는 조운의 뒷 모습을 보고, 돌아서며,
"군사 ! 일부러 날 약올리는거요 ?"
하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서서는 두 손을 올려 보이며,
"어찌 감히 그러겠소. 두 장군은 성루에서 지켜 보다가 조장군이 진을 깨뜨리거든 그때 주공을 따라, 군대를 좌우와 중앙으로 나누어 총공격을 하면 쉬운 싸움이 되오."
"좋아 !"
유비가 여기까지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리고 수하를 부른다.
"여봐라 !"
"넷 !"
"내 갑옷을 가져와라."
이윽고, 육중한 신야성 성문이 활짝 열리며, 조자룡을 필두로 오백명의 철기군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군사 서서의 명대로 적군 진지의 동남방(東南方) 방향으로 전력 질주 하였다.
그와 동시에 유비의 본진에서도 적군의 시선을 신야성 정면을 응시하도록, 진고를 높이 울리며 금방이라도 엄습해 갈 듯한 기세를 보였다.
삼국지(三國志)제159편
유비의 대승
팔문금쇄진 용안(八門金鎖陳 龍眼)
의 높다란 망루에 자리한 조인은 전군을 내려다 보면서 깃발을 들고 명령을 내린다.
"형제들아 ! 적군이 드디어 몰려 나왔다 ! 모두 용감하게 싸워라 ! 진을변형하라 !"
조인이 수기를 좌우로 휘두르자, 진형 변경의 진고가 울린다.
그 순간, 조인의 방패 부대는 철벽같이 틈을 메우고 <착착> 방향을 바꾼다.
조자룡이 이끄는 오백 철기의 앞은 순식간에 가로막혀 버렸다.
"돌격하라 !"
조자룡의 명령에 의해 철기군은 장창을 들어 적의 방패를 향해 내리 꼿았다. 그리하여 조인군의 최전방 방패 부대가 무너지자, 2선의 궁수들이 돌진하는 자룡의 군사에게 활을 쏘아 갈긴다.
돌진하던 병사들과 말들이 화살에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조인의 2차 방패 부대가 진을 펼쳐 조자룡의 길을 막았다.
그러나 용감한 조자룡과 그의 병사들은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방패를 뛰어 넘어 적의 한 가운데로 돌진하였다.
조자룡의 장창은 바람개비 처럼 사방 팔방, 상하 좌우, 전후 좌우로 적군을 휘저으며 풀을 베 듯이 적들을 쓰러뜨렸다. 이렇듯 조자룡이 지나간 길에는 새로운 길이 생겨 버렸다.
그 길을 따라 자룡의 군사들이 물밀듯이 적군 한 가운데로 파고 들었다.
다급해진 조인이 용안 주변에 새로운 방어막을 쳤다. 그러자 몇몇 자룡의 군사들이 적군의 장창에 걸려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조자룡이 적군의 방어막 위를 말발굽으로 타고 오르면서, 진영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뽀얀 먼지, 양 군에서 울리는 진고 소리, 병사들의 아우성 소리, 신야성 앞 벌판은 함성과 비명으로 천지가 진동할 듯이 요란하였다.
용감무쌍한 자룡의 군사들은 조자룡의 뒤를 따라 팔문금쇄진의 동남방으로 들어가, 드디어 진영의 한 복판 용안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군사들은 서쪽 경문(景門)쪽 방향으로 틀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용안 누대에 올라선 조인은 군사를 독려하며 소리쳤다.
"형제들아 ! 물러서지 마라 ! 버텨라 ! 버텨 ! "
그러나 그는 독려하던 중에 어디선가 날아든 칼에 왼쪽 팔 위에 상처를 입었다.
"장군 !"
조인의 수행 군사들이 그를 에워쌓았다.
그때, 성루에서 상황을 지켜 보던 군사 서서는, 자룡의 군사들이 팔문금쇄진을 깨고 용안에 접근하자, 관우, 장비를 각각 좌측과 중앙, 그리고 유비는 우측 방면의 적을 공격하도록 주청하였다.
"알겠소 !"
관우와, 장비, 유비는 성문을 열고 각각 군사를 삼대로 나누어 조인군을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주장 조인의 한 가운데가 뚫리자, 신야성을 바라보고 대치하던 조인군은 조자룡의 공격으로 뒤가 불안하니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점점 수세에 몰리다가 조인의 군사들은 유비, 관우, 장비가 휘두르는 쌍고검과 청룡 언월도,장팔 사모에 추풍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특히 오랫만에 전쟁터에 나서는 관우와 장비는 그동안의 휴식기가 무색할 정도로 일취월장, 동벽치고 서벽치고, 좌충우돌, 전후 좌우, 도대체 거침이 없었다.
관우의 청룡 언월도는 한번 휘두를 때 마다, 적군의 방패 십 여 개가 한번에 잘려나갔다.
장비가 휘두르는 장팔 사모는 바람개비 처럼 돌아가며, 하늘로 그대로 날아 오를 듯이 <붕붕> 소리를 내며, 잔잔한 호수에 파장이 일 듯이 적군의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안 되겠다, 후퇴하라 ! 후퇴 !"
조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진형이 완전히 무너지자 후퇴를 명하였다.
그러나 그를 따라 공격에 참여했던 4만 5천에 이르는 군사는 거의 다 잃은 상태였다.
조인은 불과 수백 기의 군사만을 수습하여 번성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왼쪽 팔에 상처를 치료하는 중에 부장 이전이 들어왔다.
"장군, 상처는 좀 어떠시오 ?"
"별거 아니네. 이전, 자네 말이 맞았네. 내가 적을 너무 얕봤어."
조인은 자신을 치료하던 군의병을 내보내 버리고 다시 말한다.
"유비 수하에 그런 능력자가 있다니.. 감히 내 팔문금쇄진을 깨뜨려 ?"
조인은 자기 옆에 있던 집기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흥분했다.
이전이 건의조로 말한다.
"장군, 군을 번성에 계속 주둔케 하고, 적의 동태를 승상께 보고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승상의 대군이 도착한 뒤에 다시 신야성을 공격합시다."
"신야 같은 촌구석에 승상께서 직접 나서시게 한단 말인가 ? 오늘의 패전보는 승상께 보고하지 말게,
내가 오늘밤 신야를 공격한 뒤에 다시 보고하도록 하지 !"
"옛 ? 신야를 야습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이전은 조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연한 어조로 말한다.
"그렇다네 ! 유비는 방금 이겼으니, 지금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 우리 군은 패배한 데다 나도 부상을 입혔으니 경고망동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
허나 나는 그 허점을 파고 들어 신야를 야습하겠네. 오늘 밤은 승리에 도취해 자만에 빠져있을 유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야 !"
"장군, 적을 얕봐선안 됩니다. 유비 옆에는 현인이 있으니 분명 방비가 있을 겁니다."
이전은 조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였다. 그러자 조인은,
"이전 ! 그렇게 간이 작아서 무슨 싸움을 한단 말인가 ? 그렇게 걱정 된다면 남아서 수비나 하게 !"
하고, 거칠게 말하였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혼자 가겠네 !"
하고, 말하며 출동준비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
"장군 ! 꼭 가시겠다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이전은 할 수없이 조인의 뒤를 따르기로 하였다.
"좋아, 그렇다면 남은 군사 5천 중 일천 군사로 나와 20리 거리를 두고 따라오며 방비하게." 하고, 자신은 애초에 허도를 출발할 때 몰고온 군사 5만 중에 번성에 남겨두고 갔던 5천 군사 중에 4천을 데리고, 신야를 야습하기 위해 먼저 출발하였다.
한편, 그 시간 신야성에서는 한바탕 승리의 환호성이 일었다.
"팔문금쇄진이라더니, 자룡이 한번 쓸고 지나가니 완전 곤죽이 되더구만 !"
장비가 신이나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관장군 공격에 조인은 누대에서 떨어졌잖소 ? 목숨이나 건졌는지 모르겠소"
손건도 신이나서 한마디 했다.
"조조의 정예군이 고작 이 정도일 줄이야..."
장비가 걸걸한 웃음을 머금은 소리를 이어서 하였다.
유비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뒤로 돌아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군사 서서를 부른다.
"선생 !"
그러자 서서는 유비쪽으로 돌아서서 좌우로 도열한 장수들 틈사이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자 서서를 대하는 모든 장수와 참모들의 얼굴과 눈빛은 이전에 없었던 믿음과 따듯함이 철철 넘쳐 흘렀다.
유비가 말한다.
"조인의 기세가 누그러지긴 했으나 완패한 것은 아니오. 앞으로 우리는 어찌해야하겠소 ?"
유비의 이런 질문에 좌중은 군사 서서가 다음에는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촉각을 기울였다.
서서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연다.
"조인은 오늘 밤 반드시 야습을 감행할 겁니다. 조조가 자주 쓰는 수법이지요. <싸우되 퇴각하지않는다, 오히려 불시에 적의 헛점을 노려 다시 공격한다>, 조인은 조조를 모방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지만 조조를 따라하더라도, 팔진법처럼 겉핥기로 배웠을 뿐입니다. 조인이 노리는 것은 우리 성 밖의 구축한 진지입니다. 그곳을 점령하고 조조의 대군이 올 때까지 우리 성 코앞에서 위협하려 들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번성에서 신야에 이르는 도중에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하면 됩니다. 마침 번성과 신야 사이에 사구라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
서서는 유비에게 여기까지 말을 하고 뒤로 돌아서며,
"장비, 조운 장군 ! 두 장군은 1만 군사를 두 대로 나누어 사구 골짜기 좌우에 매복하시오. 조인의 군사들이 골짜기 절반쯤 지날 때에 양쪽에서 공격해 적군의 머리와 꼬리를 끊어야 하오. 그러면 크게 이길 것이오."
"존명 !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장비와 자룡은 군사 서서의 명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기쁜 얼굴로 받든다.
그러자 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서에게 한 발 나서며 물었다.
"군사 ! 그럼 나는 뭘 하면 되오 ?"
그러자 서서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관장군은 좀 더 수고스런 임무를 하나 하셔야겠소. 장군은 번성에 가서 영지를 좀 캐다 주시지요."
유비가 그 말을 듣고,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 길 없는 관우는,
"무슨 뜻이오 ?"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서서는,
"조인이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하면 번성은 텅 빌 것이니, 장군은 군사 8천을 끌고 가서 번성을 점령하시오. 가는길에 성루 서쪽에 있는 영지도 캐오시오. 주공께 차로 대접하게요. 물론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오."
"존명 ! (그리합지요.)"
관우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자세로 군사 서서의 명을 접수하였다.
이윽고, 조인은 야음을 틈타, 4천 군사를 이끌고 번성을 출발해 사구 계곡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군사 이끌고 골짜기를 서서히 통과하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협곡안은 음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두리번 거리며 협곡의 끝을 지나는 조인이 명한다.
"형제들 ! 속도를 높여 골짜기를 빠져 나가자 !"
그 순간, 골짜기 위에 포진하고 있던 조운이 명한다.
"불화살을 날려라 !"
공격 명령을 내리는 불화살이 조인군 머리위로 쏟아졌다. 그것을 신호로 건너편에 매복한 장비의 군사들도 활을 쏘아 협공한다.
"으악 ! ~ 매복이다, 매복 !"
계곡안의 조인군은 비명을 지르며 허둥대었다. 곧 이어 바위가 구르고 통나무가 굴러 떨어졌다.
그야말로 조인의 군사들은 독안에 든 쥐의 신세였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
조인은 화급한 퇴각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병력의 대부분은 조운과 장비의 군사들에 의해 공격당해 몰살하다시피 하였고, 도망을 치다가 서로 밟히거나 부딫쳐 다치거나 죽은 군사도 부지기수에 이르렀다.
간신히 사구 계곡을 벗어난 조인이 이십 여리 뒤를 따르던 이전의 군사 천 명과 만나, 새벽이 으스름 해서야 패잔병을 거느리고 번성으로 돌아왔다.
"상장군이 오셨으니 어서 문을 열라 !"
조인의 휘하 병졸이 성루를 행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성루에서는 관우가 뚜렸이 내려다 보며,
"조인 ! 널 죽이진 말라는 군사의 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성 밑이 네 묏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조인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 관우 !... 저 자가 어찌 여기에 ?..."
그러자 관우의 여유만만한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
"조인 ! 너는 내 적수가 아니니 허도로 돌아가서 조조더러 직접 오라 해라 !"
조인의 얼굴은 순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가자."
조인은 힘없이 돌아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 길로 나머지 병사와 함께 허도로 귀환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신야성에서는 유비와 군사 서서가 함께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병사 하나가 뛰어들며,
"주공, 보고합니다."
하고, 외치었다. 그는 무릅을 꿇으며 승전보를 전한다.
"주공, 군사 ! 장비,조운 장군이 사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조인의 군사를 대부분 몰살시키고 전마와 병기도 대량으로 노획했다는 연락입니다."
"알겠네 !"
유비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보고병이 나가자 곧바로 또 다른 보고병이 뛰어든다.
"보고 드립니다. 주공, 군사 ! 조인이 허창으로 도망쳤습니다. 남은 병사는 후방을 경계하던 이전이 데리고 있던 천 여명이 간신히 넘는다고 합니다."
"알겠네 !"
유비가 대답하자, 보고병이 나가고 또 다른 병사가 붉은 보자기에 싸인 소반을 들고 들어온다.
"주공, 군사 ! 관장군이 번성을 얻었습니다. 성 안에 남은 적군의 군량 20만석과 은전 10만 량을 노획했다고 합니다."
"알았네 !"
유비는 눈에 띄게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병사가 들고있는 붉은 보자기에 싸인 소반을 보며,
"그런데, 자네가 들고 있는 것은 뭔가 ?"
하고, 물었다. 그러자 병사는 보자기를 걷을 듯이 보이며,
"번성을 얻은 뒤 관장군께서 직접 성루에 올라가서 따 온 영지 입니다. 주공과 군사께 차를 끓여 드시라고 올렸습니다."
하고, 말하며 유비의 탁자위로 가져다 올려 놓는 것이었다.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자기를 거두고 보니, 솥뚜껑 크기의 영지버섯 하나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유비는 감격에 겨운 듯이 영지 버섯을 한참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선생."
하고, 서서를 불렀다. 서서가 일어나 유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유비가,
"이 영지는 백초중에 성인이라는데, 선생이야 말로 사람들 중의 성인이시오. "
하고, 서서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서서가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주공 ! 그 말씀은 합당치 않습니다."
하고, 아뢰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유비가 서서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리고 감격에 겨운 소리를 하는데,
"선생, 이 유비가 몸을 일으킨 20여 년 동안 싸우기만 하면 계속 패하기만 하였소.
한번도 오늘같은 큰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소. 게다가 조조군의 주장 조인에게 거둔 승리라니, 도저히 믿어지질 않소.
선생은 내게 승리 뿐만 아니라 , 조조를 제거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소."
이렇게 말하는 유비의 두 뺨에는 감격의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공 !"
군사 서서는 다만 이렇게만 말하고, 유비의 두 손을 맞잡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삼국지(三國志)제160편
아쉬운 작별
한편, 조조의 5만 정예군을 이끌고 신야로 출전했던 조인은 무참한 참패를 당하고 허도로 귀환하였다.
그리하여 조인과 이전은 스스로 결박을 짓고 조조를 배알하였다.
두 장군이 단하에 무릅을 꿇고 죄를 청하자 조비가 아버지 조조에게 고한다.
"조인이 대패하여 번성도 잃고 돌아왔습니다. 지금 스스로 결박하고 단하에 꿇어 앉아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조가 차분하지만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연다.
"이전을 들라 해라."
"예."
단하로 내려간 조비가 명한다.
"이전을 풀어 줘라."
"옛 !"
이전은 결박이 끌린 뒤, 만조 백관이 좌우로 도열해 있는 조조의 앞으로 들어와 무릅을 꿇고,
"죄인 이전이 승상을 뵙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조조가 냉철한 어조로 입을 연다.
"이전, 내가 자네의 일처리가 늘 신중해서 이번 전투에 조인을 보좌하라고 부장으로 보내 주었는데, 왜 조인을 막지 못했나 ?"
이전이 두 손을 올려 죄를 인정하는 어조로 입을 연다.
"제가 여러 번 말렸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승상,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이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조인의 제지가 어려웠다는 표현을 해보였다.
조조가 자세를 고치지 않은 자세로 말한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몇 만 병사를 잃거나 성을 잃은 것은 상관 없다. 그러나 유비가 내 금쇄진을 깰 정도로 병법에 능한 줄은 정말 몰랐군."
그러자 이전이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승상, 팔문금쇄진을 깬 것은 유비가 아닙니다. 서서라고 하는 새로 들인 군사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조조가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었다.
"서서 ? 그는 누구더냐 ?"
그러자 이전은 물론, 좌중에 서서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모사 순욱이 나서며 아뢴다.
"승상,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서원직이란 사람인데, 형양의 명사로 병법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서서의 재능이 순욱, 자네와 비하면 어떤가 ?"
"저보다 몇 배는 뛰어납니다."
"그럴리가 ?"
조조는 순욱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유비에게 고작해야 관우, 장비,조운 같은 무장들 뿐이었는데, 순욱을 능가하는 군사를 들이다니 용 에게 날개가 돋은 격이 아닌가 ?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나 ?"
조조는 순욱을 능가하는 책사가 유비에게 생겼다는 사실을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았다.
순욱이 이어서 말한다.
"서서가 지금 유비에게 있기는 하지만 승상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불러오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조의 얼굴이 별안간 희색이 돈다.
"그를 어떤 방법으로 불러올 수 있단 말인가 ?"
그러자 순욱이 조용히 말한다.
"서서는 본시 효성이 지극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동생 서강(徐康)이 모시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승상께서 그의 모친을 이곳에 데려다 놓고, 서서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렵지 않게 서서를 유비에게 떼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 참 좋은 방법이군 !"
조조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보내어 서서의 모친을 데려오게 하였다.
서서의 모친은 단아한 시골 할머니였다.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를 극진히 대접하다가, 하루는 직접 찾아가 말하였다.
"아드님 서원직은 천하의 재사이나, 역신(逆臣) 유비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를 그냥 내버려두면 나라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니 모친께서는 편지를 보내어 아들을 허도로 불러오게 하시면 내가 천자께 품하여 벼슬과 상을 내리도록 하겠소."
늙은 서서의 어머니는 조조를 마주보며 조용히 묻는다.
"내 자식이 지금 섬기고 있다는 유비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유비는 조그만 고을에 태수였는데, 성이 유가란 것을 빌미로 외람되게 황숙으로 자칭하는 역적입니다."
서서의 모친은 조조의 말을 듣고나서 별안간 노기를 띠며 조조를 큰소리로 꾸짖는다.
"네가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 ! 내 듣건댄, 유황숙이란 어른은 중산정왕의 후예요, 효경 황제의 현손으로 마음이 어질고 덕이 높아서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어른이다 들었다. 내 자식이 지금 그런 어른을 섬기고 있다면 주인을 바로 만난 셈이 아닌가 ? 그런데 너로 말하면 이름은 비록 한나라의 승상이라도 역신과 다름없지 않은가 ? 나는 죽으면 죽었지, 내 아들에게 그런 편지는 못 쓴다, 못 써 !"
시골 노파로서는 놀라운 호통이었다.
조조는 순간 크게 화가 치밀었다.
"여봐라 ! 저 늙은이를 당장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
조조의 벼락 같은 명이 내리자, 수행하는 병사들이 와락 몰려들어 노파를 개처럼 끌어내렸다.
그러자 순욱이 급히 조조에게 간한다.
"승상 ! 이 노파를 참살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 노파를 죽이게 되면 일파만파로 민심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아들 서서가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에게 더욱 충성을 할 게 아닙니까 ?"
"음 ... 그렇다면 저 늙은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
"그대로 살려서 봉양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서가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우리에 대한 적개심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 늙은이는 당신이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시오."
"예, 저 노파는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제게 또 다른 계책이 있으나, 그것은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순욱은 서서의 모친을 자기 집으로 정중히 모셔왔다.
"서서와 저는 어려서부터 친한 교분을 나누고 있는 터입니다. 저는 옛날을 생각해서 어머니를 친어머니 처럼 모시겠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오. 이런것을 안다면 내 아들이 얼마나 고마워 하겠소."
서서의 어머니는 죽을 뻔 한 자신을 구해주고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주는 순욱에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의 어머니는 순욱의 집에서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중에 조그만 집을 따로 한 채 잡아 주기를 원하였다.
순욱은 노파의 소원대로 조용하고 깨끗한 초당을 따로 마련해서 무슨 일에나 불편이 없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런 뒤에는 때때로 좋은 음식과 훌륭한 옷감을 정중한 편지와 함께 보내주었다.
서서의 모친은 그것이 무서운 계획인 줄도 모르고, 물건과 편지를 받고 나면 자기도 감사의 답장을 친필로 써 보내곤 하였다.
순욱은 그 필적을 본받아, 서서의 모친이 아들에게 보내는 가짜 편지를 쓰게하여, 믿는 사람을 시켜, 은밀히 서서에게 보냈다.(옛부터 중국 사람들은 위조하는 데 천재성을 가졌다.)
그 편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서야... 그간 별고 없느냐 ? 나는 네 아우 강이 죽은 뒤로 무척 외롭게 지내며 이웃에게 밥을 빌어 먹던 중에, 뜻밖에도 조승상이 나를 허도로 데려다가, 네가 조정을 배반한 유비를 돕는다 하며 옥에 가둔 것을, 천만 다행으로 순욱의 도움으로 옥살이를 면하게 되었다.
만약 지금이라도 네가 나를 찾아 온다면 내 목숨이 보존되겠으니, 너는 이 글을 보는 대로 이 어미를 곧 찾아와 주기 바란다.>
어느 날, 유비가 서서의 거처를 찾았다.
그리하여 문을 들어서는데, 서서의 대성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
"아이고, 어머니 ! 으흐흐흑 !... 이 불효자식 때문에 어쩐 고생이십니까 !..."
유비가 깜짝 놀라며 서서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방안에 들어가니 서서는 한 통의 편지를 부여잡고,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대성 통곡을 하고 있었다.
"선생 ! 무슨 일이오 ?"
유비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서서가 유비에게로 달려오며,
"주공 ! 제 아우 서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환갑을 넘은 어머님을 봉양할 사람이 없어, 구걸을 하고 계셨답니다.
이 일을 조조가 알고 어머님을 허도로 데려가 옥에 가뒀다고 합니다. 주공, 이게 어머님이 제게 쓰신 편지입니다."
서서는 울면서 유비에게 편지를 내밀어 보인다. 그러면서,
"어머님의 목숨이 보존케 되려면 제가 반드시 허도로 어머님을 찾아 뵈어야만 한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지금 허도로 가서 어머님을 구해야 합니다."
서서는 유비에게 절을 해보이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한다.
"선생, 잠깐 ! "
유비가 황급히 서서를 만류한다.
"선생, 잠깐 기다리시오. 조조가 아무리 간악해도 죄 없는 육순 노인을 계속 옥에 가둬두진 않을 것같소. 우선 진정하시고 어머님을 구해낼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아니오. 당장 허도로 가겠습니다. 이 편지도 자세히 보니 어머님이 친히 쓰신, 친필 편지가 틀림 없습니다. 주공,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말을 끝낸 서서는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유비가 얼른 그의 손을 잡으며, "이건, 조조의 간계인지도 모르오."하고, 말하자, 서서는 고개를 흔들며,"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야 합니다. 주공, 절 보내주십시오."
서서는 유비를 향해 절을 해보이며 사정했다.
그 순간, 유비가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아 !,..."
유비의 한탄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서서가 그 앞에 무릅을 꿇어 앉는다.
"주공, 자식된 도리로 어머님이 고생하시는 걸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 또 이런 상황에서는 제 마음이 어지러워 주공을 제대로 보좌할 수가 없습니다. 주공,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주공, 보내주십시오."
서서는 다시 유비에게 애원의 절을 한다.
참담한 표정의 유비가 서서의 팔을 잡고 일으킨다. 그리고 밖을 향하여,
"여봐라, 말을 준비하라 !"
하고, 명하였다.
"예."
유비는 신야성 밖 멀리까지 서서의 전송을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작별을 아쉬워하였다.
"주공, 천 리를 배웅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하지요.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유비가 서서의 그 말을 듣고 아쉬운 말을 털어놓았다.
"선생,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소 ?"
"주공과의 만남은 제 평생중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군요."
서서가 작별의 아쉬움을 눈물로 달랜다. 그리고 이어서,
"안심하십시오. 제가 허도로 가더라도 조조를 위해선 평생 어떤 계책도 내지 않겠습니다. 그저 어머님께서 천수를 누리시도록 곁에서 봉양하려 합니다."
유비도 더 이상 서서를 붙잡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두 손을 모아 경건히 인사한다.
"선생, 부디 보중하시오."
"주공, 그럼..."
서서가 유비를 향해 절을 하자 그가 타고 떠날 말이 대령한다.
서서가 말에 오르자 유비가 어서 떠나라는 아쉬운 손짓을 해보인다.
서서는 뒤를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말을 달려나갔다. 유비는 그의 떠나는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수행하는 군사들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여봐라 !"
"네."
"내일 저 앞에 나무를 전부 베어버려라."
"예엣 ? 주공, 어째서 나무를 모두 베라 하십니까 ?"
유비가 쓸쓸히 돌아서며 말한다.
"떠나가는 서원직의 뒷모습을 가리지 않느냐 ..."
너무도 애타는 유비의 대답이었다. 유비는 서서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공 !"
그 소리는 서서의 목소리였다. 유비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그리고 보니 조금전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아니하던 서서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반가움에 한달음 서서의 앞으로 내달았다.
"선생, 안 가시는 거요 ?"
유비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서서는,
"아닙니다. 주공, 제가 경황중에 중요한 것을 잊었습니다."
"무슨 일이오 ?"
"형양성 밖 30 리쯤 되는 곳에 융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당대의 기재가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얻으시면 주 문왕이 태공망을 얻거나, 한 왕이 장량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의 재주가 선생과 비해 어떻소 ?"
"저와 비교하자면 노새와 기린, 까마귀와 봉황을 비교하는 꼴이지요.
그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인재이니, 천하 제일인이라 할 만 합니다."
"정말이오 ?"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은 성은 제갈이고 자를 공명이라 합니다. 와룡강에 살기 때문에 와룡선생이라고도 하지요."
"와룡 ? "
"요 몇년 동안 그의 친구들은 각각 조조나 원소, 공손찬 같은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공명을 얻고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죠. 유일하게 공명만은 초야에 묻혀 지내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왜 그렇소 ?"
" 저도 공명에게 왜 그러는지 물었습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길, 조조,원소, 공손찬 같은 무리는 자신의 주공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천하에서 자네의 주군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 물었더니, 아마 없을 거라며 탄식을 했습니다. 주군을 찾느니, 자신을 위해 주군을 만드는 게 낫겠다고 했지요."
"주군을 찾느니, 자신을 위해 주군을 만드는 게 낫다... 그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소. 이 세상에 그런 대 현인이 있었다니..."
유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서서는,
"이제까지 그 사람을 천거하지 못한 것은 그의 뜻이 너무 커서 주공께서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 입니다. "
유비가 예를 표하며 말한다.
"고맙소 선생. 유비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공명 선생을 청하리다."
서서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흔든다.
"어려울 겁니다."
하고, 말을 하고 나서, 곧 이어서 말한다.
"주공께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가 보겠습니다."
"고맙소 선생."
서서는 유비와 다시 한번 아쉬운 작별의 예를 나누고 말을 타고 떠나갔다.
그러자 유비는 떠나가는 서서의 뒷 모습에 큰 절을 해보였다.
🔊다음 제161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