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누가복음 10 : 25 – 37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25) ‘영생’은 사람이 죽음 후에 내세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사의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사람이 영생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신을 찾고, 수많은 종교가 생겼고 미신을 믿습니다.
무슬림은 일생에 꼭 한 번은 교주 마호메트의 탄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순례(하지)합니다. 이슬람역으로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매년 300여만 명이 섭씨 50도가 넘는 찌는 더위와 온열 질환으로 매년 3000여 명이 죽어도 메카를 순례하는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인 율법사도 영생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몰라서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25-29)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강도 만난 자와 그를 구원해 준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로 영생을 얻게 되는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강도 만난 자와 그를 살려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율법사에게 말씀하셨지만, 영생 얻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가르쳐 말씀하십니다.
율법사(서기관;막12:28)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를 살린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구냐’(29)고 물었고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고 물었습니다.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 사랑’은 ‘영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30절에서 37까지의 몇 절의 짧은 말씀이지만 죄인(나) 한 사람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주시려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이 비유는 기독교의 조직신학으로 죄인론, 구원론, 교회론, 재림론, 종말론, 그리고 내세론과 영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축한 말씀입니다.
첫째로 죄인론(인간론)입니다.
‘강도 만나 거의 죽은 것을 버려진 사람’(30)은 죄로 인하여 버려진 ‘죄인(나, My)’입니다. 죄인은 스스로 영생할 수 없는 버려진 자들입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버려진 죄인들입니다.
두 번 째로 구원론입니다.
‘거의 죽어 버려진 자’는 스스로 살아서 영생을 할 수 없으나 누군가가 도와주면 살아나서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침 그를 살려줄 사람이 왔습니다. 한 제사장이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31,32) 제사장과 레위인은 유대 종교를 상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율법은 피를 흘리고 죽은 자를 부정한 자로 정죄합니다. 강도에게 맞아 피를 흘리고 거의 죽은 사람에게 손을 대면 그들도 부정하여 성전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도 만난 자에게 바르고 고쳐줄 기름과 포도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고 도와줄 수 없어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율법은 죄인을 구원할 피가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나 거의 죽은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33-35)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에게 맞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기름과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죽음으로 죄인이 구원받고 영생도 얻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교회론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막’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酒幕’을 ‘술집’으로 이해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酒幕’이란 단어의 원문은 ‘모든’(판도케이온)과 ‘영접하다’(파스)의 합성어로 나그네들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영접하는 집을 의미합니다.
영어 성경은 ‘inn’(여관, 여인숙)으로, 중국 성경은 ‘酒店’(호텔, 여관)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교회와 같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도 개역판과 개정판을 제외한 다른 성경에는 ‘여인숙, 여관’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정판 성경에 ‘酒幕’은 신학적으로 지상교회를 상징하는 매우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풍습으로 ‘酒幕’은 술집이나 여관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술집이나 여관은 사람이 많은 마을이나 도시에 있지만, 마을과 멀리 떨어진 시골 길가에 나그네가 쉴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는 작은 오두막 외딴집을 주막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주막도 예루살렘과 여리고 중간에 사람이 살지 않고 강도와 짐승들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작은 오두막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사이에 성도들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의 酒幕입니다. 주막은 나그네를 위한 음식과 술도 있지만 술집이 아닙니다. 교회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포도주도 있습니다. 나그네들이 쉴 수 있고 자고 갈 수 있지만 여관이 아닙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지만 병원도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주막에 데리고 와서 돌보아 주어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 주인에게 그를 돌보아 주라고 맡기고 떠났습니다.
주막 주인은 강도 만난 자를 맡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에게 강도를 만나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맞아 죽어 버려진 것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막에 데리고 와서 돌보아 살려주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올 때까지 돌보아 주라고 맡기고 갔다는 말도 해 주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해 주심을 가르쳐야 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과 영생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재림론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을 떠나면서 다시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고 하시고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릐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2,3)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 서서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했습니다.(행1:11)
교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구원하시고 맡겨주신 자를 돌보아 주며 데리러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곳입니다.
다섯 번째로 종말론(최후의 심판)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 주인에게 ‘내가 올 때에 갚으리라’(35)고 말했습니다. ‘갚으리라’는 말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가 왔을 때 주막 주인이 강도 만난 자를 잘 돌보아 주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 보상은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영생입니다.
그러나 그가 강도 만난 자를 돌보지 않고 가르치지도 했을 때는 그에 대한 징벌을 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 징벌은 영원한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영벌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은 최후의 심판의 날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보상은 영생과 형벌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은 모든 민족이 심판주 되신 주님 앞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나누듯이 심판하여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실 것입니다.
먼저 의인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실 것입니다.(마25:34) 그러면 그들은 기뻐 뛰며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천국 혼인 찬치에 들어가서 영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를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들의 사자들이 그들을 지옥 불 속으로 던져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최후의 심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 주인에게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는 말을 떠났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만약 그가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잘 살았다고 말씀하셨다면 영생 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가 자신을 고쳐준 사마리아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주막은 죄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데리러 오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오늘의 교회입니다.
술집이나 여관은 약속이 없습니다. 기다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酒幕은 약속이 있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곳이 오늘의 우리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로 내세와 영생입니다.
심판주가 되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영생과 영벌로 나누실 것입니다.(마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교회가 가르친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의인들은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돌봄과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하여 죽어 버려진 자였습니다. 영벌 받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영생할 수 없는 버려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교회의 돌봄을 받으며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우리 모두 주님의 영접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