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워 캔디 외 1편
신원경
우리 친해지자며 네가 건넨 삼월의 사탕
혀끝에서 녹아 사라지는 미소
단맛을 느끼며 네가 깊숙이 도래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낯선 손가락과 약속하고 싶어
졸업하게 되더라도 우리 잘 지내자고
서로를 미워하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말자고
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면 점점 그렇게 되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혼자 남으면 다시 재생되는 혼잣말
갑자기 나이를 먹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서로를 동시에 떠올릴 정도로 절망스러운 날이면 여기에 모여 무엇이든 시작하자
그러나 내 앞은 낭떠러지인데
어째서 네게는 가지런한 이 차선 도로가 놓여있는 걸까
네가 준 사탕에서 신맛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배신감을 느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흘러나오는 교실에서 살인이 이뤄지는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던 우리
분명 서로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는데
나는 내 몸에서 잠시 빠져나와 너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준비 자세를 취하던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볼 때면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누구에게도 내 몸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 동안 너는 가장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기다리던 아이들 사이에 처음 보는 얼굴이 끼어 있다
그 사람 어쩐지 나인 것 같은데 혼자 남은 교실에서 거울을 응시하며
네가 건넨 사탕과 똑같은 것을 편의점에서 사서 입 안에 넣으면 잠시 이곳을 잊게 된다 삼월에는 학교에서 고양이들이 유독 많이 보이고 삼색 털을 가진 고양이는 반드시 암컷이라던데 그 사실은 누가 처음 발견한 걸까 공통 분모를 찾으러 헤매는 사람을 상상하며
너는 식판을 들고 먼 곳을 바라본다 잠시 사라진 것처럼
아이들이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먼 곳을
어디에 간다 매일
신원경
너는 네가 처음 시작된 도시로 돌아갈 거야.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든. 관광객들이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도시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 그러는 동안에도 네게는 가야 하는 곳이 자꾸만 늘어났다. 너는 서점에 가서 잘못 꽂힌 책을 바로 잡아야 하고 더러워진 바닷가에 발을 담가야 하지.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가끔 걸으며.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해야 해. 친구가 건네준 빵 봉투를 안고서 집으로 간다. 너는 고장 난 버스 전광판을 응시한다. 타야 하는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알지 못해 한참을 앉아 기다린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잠든 사이에 버스가 여러 대 다녀가고. 꿈속에서 나는 천장에서 소금을 찾다가 잠시 멈춘다. 멈춰야만 닫힌 시야를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찬장에서 소년이 갑자기 얼굴을 내민다. 소년은 수영하다 온 차림이다. 너 어디서 오는 길이야? 소년은 내가 모르는 언어로 대답한다. 바다 혹은 계곡, 인공 호수나 동네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공용 수영장처럼 들리기도 하는 단어. 어쩌면 늪이라고 대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년은 계속 말하고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소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여기까지 헤엄쳐 왔더니 배고파요. 나는 소년에게 아침으로 먹던 옥수수를 내어준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함께 나눠 먹고. 배부른 그를 배웅한다. 현관을 향해 걷던 우리는 아차, 읊조리며 다시 찬장이 있는 부엌으로 돌아간다. 찬장 안에 들어간 소년은 헤엄치듯 허공을 가르고. 그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수영을 배우면 찬장에 머리를 넣어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눈을 뜨니 다시 서울이었다. 캄캄한 서울이었다.
나는 다시 네가 되고. 너는 일인칭과 이인칭으로 자주 불리는데 종종 호칭을 혼동해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나인 것을 동시에 네가 너인 것을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을 헷갈리고 있다. 그동안에도 네게는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우리는 어째서 항상 어디에 가는 중일까? 궁금해하는 동안에도 어디에 간다 매일 새롭고 조금 달라진 곳으로.
---애지 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