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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사의(顧名思義)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대할 때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더불어 의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顧 : 돌아볼 고(頁/12)
名 : 이름 명(口/3)
思 : 생각 사(心/5)
義 : 옳을 의(羊/7)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더러운 이름이나 명예스런 이름이나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遺臭萬年 流芳百世.
유취만년 유방백세.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과 똑같은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도 있다.
豹死留皮 人死留名.
표사유피 인사유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해놓아 후세에 명예를 떨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당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아닌지 돌이켜 보고(顧名), 또한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지 생각(思義) 한다는 것이 이 성어다.
견위수명(見危授命)과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연상시키는 말이지만 공자(孔子)의 말씀은 아니고 왕창(王昶)이란 학자가 한 말이다.
그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의 치세 때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다. 왕창은 명예와 절조를 중시하여 아들이나 조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늘 그 의미를 생각했다.
하루는 아들과 조카를 불러 말했다. “너희들의 이름을 현묵충허(玄默沖虛)란 네 글자를 이름으로 삼은 것은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故以玄默沖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不敢違越也.
고이현묵충허위명 욕사여조고명사의 불감위월야.
무릇 모든 사물은 속히 성공하면 속히 망하고, 늦게 진출해야 좋게 끝나기 마련이다. 아침에 피는 꽃은 저녁이면 시들고 무성한 송백은 혹한에도 쇠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군자는 속성을 꾀하는 무리를 경계로 삼는 것이다. 무릇 굽힘으로서 오히려 신장하고, 양보함으로서 오히려 얻으며, 약함으로서 오히려 강해지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
비난과 칭송은 좋아하고 혐오하는 근원이 되는 동시에 화복의 계기가 된다. 공자가 말하길 ‘내가 사람을 대하면서 누구를 칭송하고 누구를 비난했나’라고 했다.
성인의 도덕으로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야 어찌 경솔히 다른 사람을 비방함과 칭찬을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방하면 뒤로 물러나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만일 비난 받을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말이 맞는 것이다. 만일 자신에게 그런 일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얘기를 함부로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얘기가 맞으면 다른 사람을 원망할 필요가 없고 틀리면 자신에게 손해 될 것이 없다. 하필 그로 인해 보복을 꾀할 이유가 있겠는가. 속담에 추위를 피하는 것으로는 옷을 입는 것 보다 나은 것이 없고 비난을 막는 것으로는 자신을 수양하는 것 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믿을 만한 것이다.”
이름에 대한 단상
누구나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름에도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때문에 이름은 한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름을 들으면 그와 연관된 감성이나 가치관 등을 상상해 보게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한자식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무렵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고유한 토속어 이름을 사용하다가 한자 유입과 성(姓)의 보급에 따라 일부 지배층과 지식층에서 중국과 같은 한자식 성명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고려 때는 귀족과 관료 계급으로 확대되고, 조선에 이르러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지배층과 지식층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하층민들은 여전히 성이 없이 고유한 우리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1910년 민적부를 작성할 당시까지도 전체 인구 가운데 성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층민 이외에 양반가의 여성들도 대부분 아명(兒名) 이외에 정식 이름을 갖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이름 문화가 보편화된 것은 100년이 조금 넘었다는 얘기이다.
예기(禮記)에 “어려서는 이름을 부르고, 관례(冠禮)를 하면 자(字)를 부르고, 50세 이상이 되면 형제간의 서열로 부르고, 사후(死後)에는 시호(諡號)를 부른다.”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정식 이름 말고도 아명(兒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 봉호(封號) 등 다양한 호칭이 있었고, 왕의 경우에는 여기에 묘호(廟號), 존호(尊號), 능호(陵號) 등이 더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호칭이 생겨난 것은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즉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관습에서 나온 것이다. 부모나 조부모, 가문의 존장, 국왕의 이름 등은 함부로 부르지 못했는데, 이를 피휘(避諱)라고 하였다. 이런 의식이 점차 확대되어 성인(成人)에 대해서도 이름을 부르기를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대신하여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자(字)가 생겨났다. 자(字)는 이름자에 담긴 뜻과 연관되게 지었으며, 이름자에 담긴 덕(德)을 드러낸다 하여 표자(表字)라고도 하였다.
예컨대 조선 초기의 인물인 김시습(金時習)의 이름은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는 불역열호(不亦悅乎)의 ‘열’자가 들어간 열경(悅卿)이다.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제현(李齊賢)의 이름을 보면 논어의 견현사제(見賢思齊)가 떠오르는데, 그의 자는 ‘사’자가 들어간 중사(仲思)이다.
한편 이름이나 자를 지은 뒤에는 그에 담긴 뜻을 설명하는 설(說)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고명사의(顧名思義)이다. 이름을 돌아보며 그 뜻을 생각하라, 즉 이름에 담긴 의미를 늘 생각하며 그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라는 당부였다.
후대로 오면서 자도 차츰 존장이나 연장자,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쓰기를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예인(藝人)이나 은자(隱者) 등에게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호(號)의 사용이 확대되고,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호칭이 되기에 이르렀다. 부모나 존장 등을 제외한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나 동년배 사이에는 자를 사용하고,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이나 스승, 존경하는 사람 등을 지칭할 때는 호(號)를 사용하였다.
호(號)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후대에 정착된 것이다. 중국을 보더라도 송대(宋代)에 와서야 호(號)의 사용이 보편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300년 무렵부터 호(號)의 사용이 확대되고 1600년을 넘어서면 문인들의 대부분이 호(號)를 사용하였다는 연구가 있다.
호(號)는 벗이나 지인들이 붙여 주기도 하고 스스로 짓기도 하였으며, 짓는 데도 특별한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나 가치 등을 담기도 하고, 출신지나 거주지의 지명 및 산수, 당(堂), 정자(亭子), 서재(書齋) 등의 이름이 그대로 쓰이기도 하였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호(號)를 갖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평생 수백 개의 호(號)를 사용했다고 알려진 추사 김정희(金正喜)이다. 또 정조(正祖)는 말년에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고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독특한 자호(字號)를 쓰기도 하였다.
한편 고관이나 학덕 높은 학자, 국가에 큰 공훈을 세운 인사 등에게는 사후(死後)에 조정에서 시호(諡號)를 내려주었다. 시호(諡號)는 당사자의 삶의 행적을 살펴 두 글자로 정하는데, 본래는 훌륭한 사람에게는 좋은 시호를, 못된 사람에게는 나쁜 시호[惡諡]를 정해주는 포폄의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포악한 군주였던 주나라 여왕(厲王)과 유왕(幽王)의 시호는 대표적인 악시이다. 후대로 오면서 악시는 거의 없어졌지만, 한 인물에게 시호가 내려지는가와 또 어떤 시호가 내려지는가는 그 가문이나 학파, 정파 등 관련 인물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성종(成宗) 때 김종직(金宗直)이 사망하자 그의 시호를 문충(文忠)으로 정하였는데, 반대파에서 합당하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문(文)을 숭상하는 유학적 사고에서는 ‘문’자 시호를 선호하였고, 그중에서도 도덕을 갖추고 학문이 넓다[道德博聞]는 뜻의 ‘문’을 최상의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김종직의 시호에 이 도덕박문(道德博聞)의 문을 적용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결국, 시호 담당 관원이 처벌되고 김종직의 시호는 문간(文簡)으로 개정되었다. 개정된 시호의 문(文)은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다[博聞多見]는 의미로 위상이 앞엣것과 달랐다.
그러나 김종직의 시호는 숙종 34년에 이르러서 처음에 정했던 문충으로 다시 개정되었다. 김종직이 사망한 지 220여 년이나 지난 때였다. 이렇게 한 인물의 시호를 정하는 일로 조정 내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후손이 선대의 시호를 개정하고자 청원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이렇듯 이름은 불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졌고, 상호 간의 관계, 신분, 명망, 학덕 등에 맞추어 다양한 호칭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이름도 고쳐야 할 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항렬자가 잘못 적용된 경우가 그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사적(士籍)에 이름이 오른 자는 국가에 청원하여 허가받도록 법전(法典)에 규정되어 있었다. 또한, 역대 왕들의 어휘(御諱)와 음이 같은 경우에는 이름을 고쳐야 했다. 그래서 선조(宣祖) 때는 역대 왕들의 어휘 글자를 대신할 글자를 정하기도 하였다.
조금 다른 사례지만 세종 23년 훗날 단종이 되는 원손(元孫)이 태어났을 때는 ‘원손’이라는 이름을 모두 고치도록 명한 일도 있었다. 이는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밖에 반역 등을 저지른 대역죄인과 이름이 같은 경우, 공천(公賤)이 공훈을 세워 면천된 경우 등은 제한적으로 개명을 허가하였다.
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법 조항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려는 폐단이 발생하였다. 역적 이름과 글자가 다른데도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심지어 역적과 항렬자가 같다는 이유로 개명을 청원하여 이를 금지하는 조처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동시에 조정에서 벼슬살이하게 되었을 때 후진(後進)의 이름을 고치도록 한 사례도 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어언적(李彦迪)은 본명이 적(迪)인데, 1년 먼저 과거에 합격한 동명이인이 있었으므로 중종이 ‘언적’으로 개명하게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언적과 함께 그의 동생도 이괄(李适)에서 이언괄(李彦适)로 개명한 듯하다는 점이다. 여주 이씨 11세인 이들의 항렬자는 辶이고 한 글자 이름이다. 이언적도 처음에 이 원칙에 맞게 이름을 지었으므로 그 동생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종형제들과 달리 이언괄도 형처럼 두 글자 이름을 쓰고 있다. 형이 두 글자 이름을 쓰게 되자 동생도 형을 따라 언(彦)자를 넣어 두 글자 이름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과거의 개명은 왕실과 국가의 권위, 가문의 질서, 개인의 명예 등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 새삼 개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1999년 연간 3만여 명이었던 개명 신청자가 2010년에는 16만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개명 허가율도 94%에 달했다는 것이다. 2000년에서 2009년까지 10년간 개명한 사람이 73만여 명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인구 5천만에서 70명 중 1명이 이 기간에 개명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정도면 개명이 특별한 사람들의 일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혈연과 가문이 중시된 과거와 달리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이름에 대한 권한을 본인의 것으로 인식한다. 2005년 우리 법원도 범죄 기도나 법을 악용하려는 의도가 없는 한 개명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자유롭게,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개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개명하는 사례 중 많은 경우가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이 갖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름 또한 물건처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개인의 생각과 취향이 존중되는 오늘날, 과거에 매여 불편을 감수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오죽 불편하면 개명을 할까 싶기도 하다. 능력, 재력, 학력, 가문,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니, 이름도 품격 있고 아름답다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 조상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며 머리카락조차도 목숨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얼굴이나 몸매를 고치고 보정하는 수술과 시술이 보편화 되었다. 후천적으로 붙여진 이름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개명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굳이 부정적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치관이나 기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이다. 선호도가 높은 이름 또한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선호도가 높았던 이름을 성인이 되어 고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팔구십 세에 달하는 지금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평생 동일한 만족도를 느끼기도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럴 바엔 정말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이름 그대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나 조부모가 처음 이름을 지어줄 때의 그 마음을 그분들의 존재처럼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비록 자신의 마음에 꼭 들거나 멋스러운 이름은 아닐지라도 그분들의 마음과 사랑을 항상 생각하는 값진 고명사의(顧名思義)가 되지 않을까.
이름 짓기
한문서당에 다닌다고 하면 대뜸 이름 잘 짓겠네 하면서 작명을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작명, 사주, 관상 등에 관한 자료나 책들이 모두 한문으로 된 탓이리라. 그러나 한문공부 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름 짓고, 사주보는 게 아니라 하면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다그친다.
하긴 작명 사주 등의 공부를 위해 서당에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과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문해독력을 길러 관계 서적을 제대로 읽으려는 것이다.
가끔 이들과 얘길 나눠 보면 사주, 작명에 관한 소신이나 주장은 거의 절대적이고 종교적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장난기 섞인 말이 나오면 존엄을 건드렸다며 폭발하는 북한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서당 선생님들은 다르다. 어느 선생님은 작명에서 획수를 중요시하던데 이룰 성(成)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따진다. 가운데 획이 丁이면 成자가 7획이 되고, ㄱ이면 6획이 된다. 자전에서는 둘 다 인정한다. 이처럼 같은 글자이면서 획수가 다른 예가 더러 있다. 이런 경우 어느 것을 택할 것이며, 그에 따라 운명이 달라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한자 하나하나가 오늘날 모습으로 정착한 역사적 과정과 유래가 있다. 문자학은 이를 추적해 한자의 구조를 파악한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획수만 따지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 주역 선생님들은 대개 강의 초기에 선을 긋는다. 주역에 점치는 기능도 있지만, 자기 강의는 철학적, 역사적으로 접근할 테니 점술을 기대하는 이들은 감안해서 들으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예로 들며 작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도 예전 사람들은 한문책 뒤적이며 잘 지어 주더라며 쉽게 물러서질 않는다.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경명사상(敬名思想)이 뿌리 깊어 이름을 매우 중시했다. 이름 뜻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며 살라는 고명사의(顧名思義)가 이 사상의 핵심이다.
송(宋)나라 소동파(蘇東坡)의 아버지 소순(蘇洵)은 큰 아들 동파 이름을 軾(식; 수레 앞 가로대), 둘째 아들은 轍(철; 수레바퀴자국)로 짓고 둘 다 수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나, 없으면 수레운행을 안전하게 할 수 없기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겉모양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가로대(식) 속성에 따라 동파는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늘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철(轍)은 앞 수레 바퀴자국만 따라가면 되므로 무리 없이 살아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결과적으로 소식(蘇軾)은 왕안석(王安石) 신법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과 대립,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소철(蘇轍)은 순탄한 일생을 살았다. 이름을 통해 두 아들의 운명을 너무 정확히 예언해서 천기를 누설했다는 후세의 평가가 따를 정도였다. 고려 때 김부식(金富軾)의 아버지 김근은 이를 본 따 셋째 아들은 부식, 넷째는 부철이라 짓기도 했다.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하륜(河崙)도 아들 이름을 구(久)로 짓고 나무가 오래 자라면 우뚝 솟고, 물이 오래 흐르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한다며 늘 이름을 돌아보고 의롭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이순신(李舜臣; 순임금을 잘 받드는 신하처럼)과 그의 큰형 희신(羲臣; 복희씨 신하) 작은형 요신(李堯臣; 요임금 신하), 동생 우신(禹臣; 우임금 신하)에도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소원이 들어있다.
이외에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이름 짓고 그 의도를 설명한 명설(名說), 자를 짓고 지은 자설(字說), 호에 대한 설명인 호설(號說)이 과거 문집에 수 백편 나온다. 우리 글방에서는 이를 한 학기 강좌로 개설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름을 소중히 여겼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 이름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 석자 가운데 성과 항렬자를 빼면 단 한자가 남는데 여기에 부모의 희망과 염원을 압축해 넣으려면 얼마나 고심해야 할 것인가. 작품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각자 자신의 이름을 잠깐 돌아보라. 자기에 대한 부모 및 주변의 기대와 소원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값에 맞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 과정 자체가 훌륭한 처세술이요, 고명사의의 본뜻을 실행하는 요체인 것이다.
그런데 남의 이름을 선뜻 지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예전과 달리 뜻도 좋지만, 한자 한글 이름을 막론하고 부르기도 좋아야 한다. 또 국제화 시대에 맞춰 영어 등 로마자 표기에도 적합해야 한다. 그만큼 이름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가고, 작명에 고려할 사항도 많아져 가고 있다. 물론 작명가들이 신경 쓸 일이지만...
좋은 이름은 운명을 바꾼다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물에게 사랑, 감사와 같은 좋은 말과, 악마, 나쁜 놈과 같이 좋지 않은 말을 들려준 뒤 그 물의 결정체를 비교한 결과, 확연히 구별되는 답을 얻었다.
좋은 말을 했을 때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육각형의 결정체가 탄생했지만, 좋지 않은 말을 했을 때는 찌그러지고 깨어진 형상의 결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모토 박사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인간의 몸은 70%가 물인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좋은 기운(氣運)을 생성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소리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가 곧 기운이며 운명(運命)도 이 에너지가 결정한다. 몸과 마음이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 운명 또한 좋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타고난 팔자는 바꿀 수가 없다. 자기가 태어난 연월일시를 어떻게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개운(改運)의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직업의 선택이나 의지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그중에서 좋은 이름을 가지는 것도 후천개운의 방법 중 하나다.
공자(孔子)는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아니하고, 말이 순하지 아니하면 일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했다.
名不正則 言不順, 言不順則 事不成.
명불정즉 언불순, 언불순즉 사불성.
선현(先賢)들은 좋은 뜻이 담겨있는 이름을 짓고 고명사의(顧名思義)라 하여 자신의 이름에 담겨 있는 뜻을 돌이켜 보며 그에 합당한 사고와 행동으로 자기수양을 했던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보존하고자 노력했으니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오명(汚名)이라 하고 이름을 칭찬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명예(名譽)라 했다.
요즘은 이름에 담겨있는 자의(字意)보다 이름을 부를 때 발생하는 소리의 파동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둔다. 소리란 말(진동)을 해서 상대방에게 보낸 밀도변화가 있는 파동(流密波)이며, 이 파동이 전달됨에 따라 물의 변화에서와 같이 듣는 사람은 인체 변화를 겪게 된다.
요즘 언론에서는 연쇄 살인사건을 저지른 강호순으로 시끄럽다. 몇 십년 전에도 20여 명의 생명을 빼앗은 유영철(1970년 4월 18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괴강살이라는 강한 기운을 가진 경술년(庚戌年)생이며 거기다가 이름까지 음양의 배합에 적합하지 않으니 좋은 기운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나쁜 것이 겹쳐지게 되면 더욱 흉(凶)하게 나타난다. 피의자는 언론에 얼굴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되고 이름이 나오는 것에는 반응이 없다. 하지만 그 얼굴은 곧 잊혀지겠지만 이름은 영원히 오명(汚名)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명예롭게 살다 가지는 못할망정 오명을 남겨서야 되겠는가.
고명사의(顧名思義)
오늘날은 문명의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를 담을 새로운 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에서는 1년에 3천 내지 4천 개의 단어가 새로 생겨나고, 또 그만큼의 단어가 사어(死語)가 되어 도태된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전혀 없었던 단어가 방송이나 신문에 매일 등장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새로 생기는 말에 대해서 중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국가에서 엄격하게 심의하여 내놓는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국가어언문자위원회(國家語言文字委員會)가 있어 이 일을 심의하고 또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생긴 단어가 통일되어 있고 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국가에서 손을 대지 못하고 방치하기 때문에 영어 등 외래어가 그대로 쓰이거나 아니면 속어(俗語) 등이 쓰이고 있어 우리말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염시키고 있다. 젊은 학생들이 만들어 쓰는 인터넷 용어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서 새로 지어져 쓰여지는 말 가운데서 한자어로 된 것은. 한자의 문법이나 속성을 모르고 조어했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공사장에서 필요한 흙을 파 가는 곳을 토취장(土取場)이라 하는데 취토장(取土場)이라 하는 것이 옳고,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였을 때 만차(滿車)라고 하는데 차만(車滿)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가장 말 안 되는 것은 병원(病院)이란 말인데,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병원을 의원(醫院)이라고 부르지 병원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의원이라 하면 병을 고치는 집이 되지만 병원이라 하면 병든 사람들의 집, 병든 집 등의 뜻이 되어 병을 치료한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요즈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각종 모양의 돌을 박아 그 위를 걷게되면 발에 압박을 가하여 건강을 좋게 하도록 만든 시설을 곳곳에 많이 설치했는데. 이를 두고 지압보도(指壓步道)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정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지압은 손가락으로 누른다는 뜻인데 어찌 발바닥에 압박을 가하는 이런 시설에 해당될 수 있겠는가?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말 가운데도 맞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 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을 기숙사(寄宿舍)라고 하는데, 기숙사의 뜻은 붙어 자는 집이란 뜻이다. 기숙사는 학생들이 붙어서 자기만 하는 곳인가? 기숙사를 일성재(日省齋)라고 한다면 그 기숙사에서 기거(起居)하는 학생들은 날마다 자신의 일을 반성하며 생활하게 될 것이다.
강의실이나 건물의 이름도 익명성(匿名性)의 숫자로 하지 말고, 이상(理想)을 담거나 좋은 의미를 가진 이름을 짓는다면,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자연히 자신을 수양하거나 성찰하는 등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LG그룹에서 연수원을 인화원(人和院)이라고 명명했던데 이는 이름의 효과를 잘 살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선비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나 서재(書齋) 정자(亭子) 등에 다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이상(理想)으로 삼는 것, 자기가 추구하는 것, 자신의 특징, 결정 등을 부각시켜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경재(敬齋)라고 서재 이름을 붙인 분은 평생 모든 일을 하면서 경건(敬虔)함을 위주로 하였고, 신당(新堂)이라고 이름 붙인 분은 매일 새롭게 발전할 것을 생각하며 살아갔다. 이것이 이른바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좋은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각자가 생활하는 곳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 보람있게 살도록 하자.
▶ 顧(돌아볼 고)는 형성문자로 顾(고)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雇(고)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顧(고)는 ①돌아보다 ②지난날을 생각하다 ③돌보다 ④당기다 ⑤돌아가다 ⑥품을 사다(雇) ⑦다만 ⑧생각컨대 ⑨도리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곁눈질할 면(眄), 돌볼 권(眷)이다. 용례로는 물건을 항상 사러 오는 손님을 고객(顧客), 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직책 또는 그 사람을 고문(顧問), 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을 고명(顧命), 부모가 자식들을 양육함을 고복(顧復), 생각하여 주고 도와 줌을 고조(顧助), 뒷일을 염려하고 꺼림을 고기(顧忌), 다시 돌이켜 헤아림을 고려(顧慮), 돌보아 보호함을 고호(顧護), 돌아다 봄이나 돌이켜 봄을 고면(顧眄), 두루 돌아 봄을 고첨(顧瞻), 돌이켜 뒤를 봄을 고견(顧見), 보살펴 줌이나 남의 허물을 덮음 또는 되돌아보아 생각함을 고념(顧念), 둘러보거나 되돌아 봄이나 이것저것 생각하고 망설임을 고망(顧望), 이미 지난 일을 못 잊어서 그 뒤를 돌아보거나 살핌을 고후(顧後), 마음에 맺히어 잊지 못함을 고련(顧戀), 명예를 돌아보고 의를 생각함을 고명사의(顧名思義), 고명을 받은 신하를 고명지신(顧命之臣), 편지의 회답도 자세히 살펴 써야 함을 고답심상(顧答審詳), 음악을 잘못 연주하면 주랑이 곧 알아 차리고 돌아본다는 뜻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고곡주랑(顧曲周郞) 등에 쓰인다.
▶ 名(이름 명)은 회의문자로 夕(석; 초승달, 어두움)과 口(구; 입, 소리를 내다)의 합자(合字)이다. 저녁이 되어 어두우면 자기 이름을 말해서 알려야 했다. 그래서 名(명)은 (1)이름 (2)숫자 다음에 쓰이어 사람의 수효를 나타내는 말 (3)사람을 이르는 명사의 앞에 붙어서 뛰어난, 이름난, 훌륭한, 우수한 또는 무엇을 썩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이름 ②평판(評判), 소문(所聞) ③외관(外觀), 외형(外形) ④명분(名分) ⑤공적(功績) ⑥글자, 문자(文字) ⑦이름나다, 훌륭하다 ⑦이름하다, 지칭(指稱)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일컬을 칭(稱), 이름 호(號)이다. 용례로는 세상에서 인정 받는 좋은 이름이나 자랑을 명예(名譽), 명목이 구별된 대로 그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분수를 명분(名分), 사물이나 현상을 서로 다른 것 끼리 구별하여 부르는 이름을 명칭(名稱), 세상에 떨친 이름을 명성(名聲), 이름이나 주소나 직업 따위를 죽 적어 놓은 장부를 명부(名簿), 형식 상 표면에 내세우는 이름이나 구실을 명목(名目), 성명과 해당 사항을 간단히 적은 문건을 명단(名單),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승(名勝), 명분과 의리 또는 문서 상의 이름을 명의(名義), 이름난 의원이나 의사를 명의(名醫), 일년 동안의 명절날과 국경일의 통칭을 명일(名日), 뛰어나거나 이름이 난 물건 또는 작품을 명품(名品), 이름이나 직위 등을 적어 책상 따위의 위에 올려놓는 길고 세모진 나무의 패나 문패 또는 명찰을 명패(名牌), 잘 다스려서 이름이 난 관리를 명관(名官),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소(名所),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음을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난 큰 산과 큰 내로 경개 좋고 이름난 산천을 명산대천(名山大川), 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깎는 일을 명예훼손(名譽毁損),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이나 명예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명불허전(名不虛傳), 명성이나 명예란 헛되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명불허득(名不虛得) 등에 쓰인다.
▶ 思(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는 회의문자로 田(전; 뇌)와 心(심; 마음)의 합자(合字)이다. 생각하다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思(사, 새)는 ①생각, 심정(心情), 정서(情緖) ②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 ③뜻 ④마음 ⑤시호(諡號) ⑥성(姓)의 하나 ⑦어조사(語助辭) ⑧생각하다, 사색(思索)하다 ⑨그리워하다 ⑩슬퍼하다, 시름 겨워하다 ⓐ수염이 많다(새) ⓑ수염이 많은 모양(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생각할 륜/윤(侖)이다. 용례로는 돌이키어 생각함을 사고(思顧), 생각하고 궁리함을 사고(思考), 사유를 통하여 생겨나는 생각을 사상(思想), 정을 들이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함을 사모(思慕), 마음으로 생각함을 사유(思惟),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깊은 생각과 근심을 사려(思慮), 생각하여 헤아림을 사료(思料), 생각하여 그리워함을 사련(思戀),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간직함을 사복(思服), 생각하고 바람을 사망(思望), 사물의 이치를 파고들어 깊이 생각함을 사색(思索), 서로 엉킨 많은 생각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사서(思緖), 정의의 길을 그려 생각함을 사의(思義), 한 시대의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사조(思潮),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을 사무사(思無邪), 어떠한 문제를 생각하여 해석이나 구명하는 방식을 사고방식(思考方式), 사모해 잊지 않음을 사모불망(思慕不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과 사물을 제 분수대로 각각 나누어서 가름을 사려분별(思慮分別) 등에 쓰인다.
▶ 義(옳을 의)는 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奸邪; 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合當)한 행동(行動),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關係), 의리(義理)의 관계(關係)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이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 의리당연(義理當然), 義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의불배친(義不背親), 義로써 利의 근본을 삼음을 의이건리(義以建利), 義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의해은산(義海恩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