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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문 Ⅱ-29]챠오, 이탈리아!(1)
이탈리아어 ‘차오’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랍니다. 아내의 뜻하지 않은 ‘특별한 호의’ 덕분(1999년 유럽을 15일간인가 홀로 자유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는 차치해도 이탈리아만큼은 남편과 꼬옥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실천한 것입니다. 누구나 맛집이나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그런 각오들을 하곤 하지만, 실제로 이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에. 이탈리아에서 25박을 하는 ‘대박의 행운’이 있었습니다(9월 19일 - 10월 23일). 한 나라로는 서운할 것같다해 영국 런던 6박, 스위스 쮜리히 2박을 합치면 한 달을 훌쩍 넘긴 무려 5주간의 여정(旅情)이었습니다. 고교 같은 반 친구부부와 두 쌍이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경험은 “덤”이었습니다. “챠오”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드립니다.
누군가 삶은 긴 여정(long long journey)이라고 하더니, 그 기분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1주일여 짧은 여행은 트립(trip), 1주일이 넘는 여행은 트래블(travel)이라 한다더군요. 중고교시절 세계사로 배운 얄팍한 지식 말고는 솔직히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잘 몰랐습니다. 밀라노 3박, 돌로미치 6박, 베네치아 3박, 피렌체 5박, 바리 2박, 나폴리 3박, 로마 5박을 통해 이탈리아를 섭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전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여행 내내 답답했지요. 귀국하여 알라딘중고서점에서 부리나케 산 책이 『이탈리아는 미술관이다』(최상운 지음, 생각을담는집 2018년 펴냄, 328쪽) 『황홀한 여행』(박종호 글·사진,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펴냄, 415쪽)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7년 펴냄, 262쪽)였습니다. 3권을 이제야 통독하고, 여행 후기를 쓰려 컴퓨터책상에 앉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여행 중에 못느낀 이탈리아(특히 문화의 꽃을 피운 르네상스시대 중심)를 새로이 알아가는 재미에 며칠간 푹 빠졌습니다. 미리 읽었다해도 정보가 워낙 방대해 아무 도움이 못됐을 것이고, 다녀온 후 읽으니 거억이 더 새록새록 되살아나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라 했듯이, 책 제목처럼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미술관인 듯했습니다. 이름이야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조오또, 보티첼리 등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은 숫제 감동과 희열이었지요. 백 번을 들어도 한 번 본 것만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은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최근 핫플 관광지로 뜬 이탈리아의 돌로미치(세계자연유산)는 미국의 그랜드캐년 등을 압도, 사진 찍을 엄두도 못낼 정도의 천혜의 경관이었습니다. 돌로미치 사체다를 곤돌라로 오르는데 ‘Take your time to admire the wonders of nature(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찬미하라)’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한 사쏘롱고(해발 3181m)라는 바위산은 영락없이 관짝같은 직사각형 곤돌라에 2명이 대롱대롱 매달려 오르는데 스릴을 넘어 오금이 저렸습니다. 그야말로 ‘The majesty of Dolomite’였습니다. 사진을 아무리 잘 찍은다한들 나오지도 않을 만큼 광대했고, 직접 두 눈으로 본 감격을 생각하면, 그 비싼 경비를 들여 오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무신론자인 저도 이런 광경에는 조물주(造物主)가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로마에만 200여개가 있다는 성당 순례는 ‘그것이 그것같아’ 심정적으로 불교도를 자처하는 저로선 지겨웠습니다. 2천년이 넘는 서양문명에 ‘예수’만한 문제적인 인간이 있을까요?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는 미술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걸쳐 거의 100%를 차지한 것더군요.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곳은 여럿 있었습니다. 교황청의 시스티나예배당 천장화(미켈란젤로 작)와 <최후의 만찬>(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레오나르도의 프레스코화)이 그것이지요.
압권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의 <다비드>(1504년 미켈란젤로 작) 작품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린 <다비드>를 보고는 기가 질려버렸습니다. 29살의 미켈란젤로(1475-1564)가 대리석을 깎아 빚어놓은 높이 5.17m의 조각작품은 숨을 막히게(breathtaking) 했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더군요(overwhelming). 물론 그전에 사진으로도 봤고 다른 나라 박물관 등에서 모품(模品)도 봤지만, 진품(眞品)과는 천지차이였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명언을 이처럼 피부로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피렌체를 상징하는 것을 넘어 이탈리아의 국보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며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예술(藝術)이란 게 그런 것이더군요. 다비드(다윗)는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렸다지요. 완벽한 인체 속에 깃든 불굴의 용기와 고귀한 정신의 승리에 ‘한 감동’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본 최고의 백미(白眉)였습니다. 그는 또 교황 율리우스2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예배당의 천장화(일명 ‘천지창조’. 1508-1512년 제작. 구약성경의 창세기 이야기 중심)를 그렸다지요. 하루 20여시간씩 4년 동안 거꾸로 매달려 프레스코화(석회반죽이 마른 직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림)를 그렸답니다. 그만의 고통과 열정으로 완성한 대장정, 위대한 걸작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불세출의 조각가이지만 뛰어난 화가이자 건축가(성 베드로대성당 돔 건축)이기도 했답니다. 하늘은 어찌 그 시대에 이런 천재를 낳았을까요. 귀국하여 10살 손자에게 ‘Art is long, Life is short’의 뜻을 물었더니 즉석에서 “미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여 웃었습니다. Art를 미술이라 한들 무슨 상관이나요. 예술은 문학, 음악, 그림, 조각, 사진, 건축 등을 망라할 것입니다. 가난할 것이 염려되지만, 저는 우리 손자가 그런 예술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성당에서 본 그의 또다른 대작 <피에타>(1499년 24세때 제작, 174×195cm)는 유리벽에 갇혀 있어 아쉬웠지만, 그 앞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무릎 위에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여러 ‘피에타’가 있지만 단연 최고입니다. 여정은 고단해도 이런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명작들을 실제로 보는 재미는, 예술에 문외한이어도 너무 쏠쏠했습니다. 피렌체 우피치박물관에서 본 <비너스의 탄생>도 그러합니다. 6년 전 루브르박물관에서 감상한 <모나리자>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고흐의 <해바라기>는 또 어떻구요? 대작이나 명품은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재삼 느꼈습니다. <논어>같은 고전(古典)의 가치도 생각하면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데 ‘무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은 그런 것이겠지요.
공부를 해야 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순례는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폴리 남부의 해안마을 아말티, 포지티노 그리고 카프리섬과 쏘렌토 등을 둘러보는 것은 힐링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열차로 아름다운 해안마을 친퀘테레(5개 마을) 뒷길 트래킹은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마을에선가, 다비드를 패러디한 외설스런 앞치마를 팔고 있어 찰칵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귀국한 지 한 달여만에 여행후기를 쓰려 하니, 메모조차 거의 없어 막막하기만 합니다. 일정만 써도 일종의 정보가 될까요? 3권의 책을 읽어 정리하면 되겠다했는데 더 헷갈립니다. 이원복 님의 <먼나라 이웃나라>는 만화이지만 진도가 안나갈 정도로, 이탈리아의 역사가 만만찮더군요. <황홀한 여행>은 뼈 속까지 ‘이탈리아 사람’이 된 음악(예술)애호가가 쓴 ‘짝사랑 비망록(편지)’였습니다. 15년 동안 스무 번이 넘게, 한 해라도 이탈리아를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정신과의사는 한 마디로 “이탈리아의 찬란한 햇빛이 내 삶의 모든 걸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런 진정한 매혹에 빠지기에는 저는 너무 속물인가 봅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쓰레기더미라도 되는 듯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고, 영어로는 소통이 안되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화산재가 덮여 순식간에 당시 ‘최첨단 문화도시’ 폼페이시 전체가 묻혀버렸다는 그곳을 반 나절 동안 '뚜벅이 답사'를 하면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일가족 미라’를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천재지변 앞에서는 만물의 영장도 한갓 먼지인 듯 했습니다.
이탈리아 15박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쮜리히에서 기차로 밀라노에 도착, 3박하며 밀라노도우모(도우모DOUMO는 대성당을 뜻함)의 위용에 반하고(14세기에 시작해 500년이 걸렸다는 첨탑 135개의 도우모는 처음인지라 규모면에서도 그저 감탄을 할 밖에), 쪼오또의 <최후의 만찬>을 신중하게 감상했습니다.
프레스코와 템페라화 기법이 어떻게 다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날 꼬모호수 둘레를 트래킹했지요. 밀라노에 오기 전 쮜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소설 ‘알프스소녀 하이디’ 무대인 마이언펠트에 간 것을 얘기해야겠군요.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이제야 그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골짝마을에 한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온 것입니다. 우리야 제 아내가 동화연구가여서 따라온 것이지만, 그들(대부분 아줌마)이 볼 곳도 없는 이곳을 왜 오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난데없이 들리는 우리말이 반갑기는 했지만요. 돌아오는 길, 기차를 잘못 내린 덕분에 쮜리히호수를 가로지르는 크루즈를 타기도 했습니다. 바디 랭귀지야말로 영어 못지 않은 세계 최고의 언어입니다. 다음날 밀라노도우모 옆 엠마누엘레2세 갤러리(미술관이 아니고 세계의 명품이 진열된 쇼핑거리를 지칭합니다)에서 아이쇼핑을 즐겼습니다.
돌로미티는 서부와 북부로 나뉩니다. 오르티세이(3박)의 '에어B&B‘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예쁜 집. 다음날 사체다와 알프 디 시우스를 곤돌라로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광활한 산기슭에 수 만 갈래로 뻗쳐 있는 트래킹코스는 뚜벅이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환상이었습니다. 가장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여행을 온 한국인가족도 만났지요. 10살 아이는 구경이고 뭐고 호텔에 가 라면 먹고 싶은 생각뿐이라 해 모두 웃었습니다. 트래킹을 하자면 한 달인들 길겠습니까. 맛보기에 그치는 게 아쉬었습니다. 달이 바뀌어 10월 1일, 우리는 관짝 곤돌라를 타고 사쏘롱고에 올랐습니다. 정말 별종(別種)의 별미(別味)였습니다. 그 길을 개척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그 험한 길을 걸어오르고 암벽을 타는 인간들은 또 누구일까요? 세상은 온통 ‘모를 일’투성이이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행내내 아침 저녁 두 끼니는 두 여성동지가 가져온 밑반찬으로 해결하니 음식 탓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김치찌개, 미역국, 누룽지, 카레, 실가리국, 멸치볶음, 깻잎, 김, 샐러드 등). 점심은 햄버거, 샌드위치, 빵 등으로 대부분 때웠지만, 어쩌다 베트남쌀국수를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이탈리아 하면 누구나 아이스크림 젤라또와 파스타, 피자를 떠올리지요. 생각보다 맛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입에 맞는 치즈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과도 지역마다 맛이 달라 ‘선수’들도 실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어서 코르티나 담페초(3박)라는 돌로미티 북부의 소읍, 호텔로 처음 진입했습니다. '트레 치매'(세 봉우리) 등반은 정말 걸작이고 장관이었습니다. 서부와 같이 ‘트래킹의 천국’이었습니다. 이곳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역시 백문불여일견입니다. 산중턱 미주리아호수 산책은 좋았지만, 날씨 관계로 운행하지 않은 곤돌라코스가 많아 유감이었습니다. 한국인 신혼여행의 핫플인 듯,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스위스 국경이 인접해서인지 명품 시계점이 많더군요.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여서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역이름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입니다.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산타 루치아/산타 루치아>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탈리아의 민요. ‘칸초네’라고 하나요.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요. 물 위에 떠있는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베니스영화제(인근 리도섬 개최)처럼 '베니스'는 옛이름인 듯합니다. 피렌체의 옛이름이 '플로렌스'이듯. 중앙역 바로 앞이 운하여서 출렁출렁 멀미가 날 것같더군요. 물 위의 주택, 비좁은 골목을 돌고돌아 구글링을 하며 우리의 가이드가 앞장을 서 산 마르코광장을 찾았습니다. 광장에는 두칼레궁전과 도우모가 있는데, 진짜 인산인해였습니다. 그 인파를 바라보다, 문득 지금 구경하고 있는 저 사람들도 세월따라 다 죽는다는 생각에 미치자 왠지 슬퍼졌습니다. 피사의 사탑에서도,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트레비분수, 스페인계단 앞의 인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요? 지금이야 생명, 살아 있으므로 좋은 것을 보거나 먹으면서 즐거워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음’을 예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거대한 성당안에 들어가 무언가 빌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도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는 장면을 처음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로병사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고행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막 40일 기도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다음날 두칼레궁전 관람을 마친 후 유리공예로 유명한 부라노섬과 알록달록 주택과 직물공예로 유명한 부라노섬을 섭렵했습니다. 유리공장에서 공예품이 나오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 마냥 신기했습니다. 성 마르코광장의 야경은 봐야 한다해 밤배(곤돌라)를 탔습니다. 깜깜한 가운데 출렁출렁 물소리에 겁이 바짝 났지만, 아내와 친구부부가 옆에 있으니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고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한 날 한 시에 같이 갈 수만 있다면 ‘죽음복’을 타고 난 것일까요? 얼마 전 대학동기인 여자친구가 남편과 함께 무안비행기사고때 천국을 간 것도 생각났습니다. 하하.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