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41112.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민구시기
한강의 책 14권 전권을 사놓고 먼저 손에 든 것이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사 둔 것이다. 다른 책들은 최근에 주문했다.
1993년에 소설보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 후 2013년에 발행한 첫 작품을 3주만에 다 읽었다.
나는 책을 한권 읽는데 참 오래 걸린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이 지저분 해진다. 밑줄 치고 빈 곳에 적고, 찾아보고 그냥 편하게 읽으면 될 텐데, 느껴지는 대로 읽으면 될 텐데, 진도가 안 나간다.
‘고통’이라는 숨어있던 공통분모를 생각하게 되었다.
행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채우기가 힘들었다. 나의 짧은 언어의 주파수가 문제였겠지만 그 사이를 ‘영혼’ 이라는 것을 부수어 채워 넣고 보니 영혼이 떠돌이였고, 침묵 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있어도 아무나 퍼 올릴 수 없음은 두레박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 마르려면 오랫동안 그 한가지만 생각하며 먼 사막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는 참 긴 갈증을 고통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 고통이 언어의 한계라고 하는 것처럼 그 안에 끓음이 언어로 떠오르는 일이 한계이기에 고통스런 작업임을 알았다.
언어의 마술사는 웃기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감동시키기위한 존재도 아니다. 행동하게 하는 깃발이어야 한다. 남이 아닌 자신이 먼저 잠수함의 토끼가 되어야 하고, 오랜 침묵 속에서 꺼낸 숙성된 발효물이 깃발처럼 나부껴야 한다.
시를 잘 쓴다는 소리를 듣기보다
시처럼 사는 사람 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겠다고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