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성급한 판단을 경계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미 예수가 왔다는 소식을 퍼뜨리며 그들의 권위를 높이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바울은 자기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공동체가 분열될 조짐을 보이자, 그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그와 일치하지 않는 사상을 퍼뜨리는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종말에 대한 그의 견해를 편지로 썼다. 그것은 종말이 오기 전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이 배교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바울의 종말 사상은 예언이라기보다 당연히 일어나게 되어 있는 흐름이다. 어떤 종교 단체나 그 외의 조직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 조직의 이념을 비판하는 자나 세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조직의 이념 또는 이상을 실현데는 데에 문제점이 발생할 때 그러하다. 바울이 여기서 공중 휴거 같은, 자신이 독특하게 지어낸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기독교 광신자들은 공중 휴거를 문자적으로 믿고 있다. 공중 휴거 사건은 바울이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을 비판하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공중 휴거 교리를 전달함으로써 당시 공동체 성원들의 이목을 그에게만 집중시키고 귀를 번쩍 뜨이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기성 기독교 측면에서 볼 때, 워치타워 같은 이단 세력이 나타나 1914년에 이미 예수가 재림하였고 아마겟돈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종말론 사상을 퍼뜨리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또 워치타워의 입장에서는 구 소련에 존재했던 워치타워 성원들에게 미국의 본부와 다른 독자적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는 편지를 써서 미국 본부에서 구 소련의 증인들에게 전달된 것처럼 꾸미는 것에 적용시키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존재하지 않고 기록만 남은 문자라는 것은, 편리한 대로 해석하여 적용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성서를 '영감'받았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의 진짜 목적은 성서의 내용으로 자기들을 신격화 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종말 사상의 원조인 바울이 정확한 정보의 출처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분열되어 자기의 세력이 잠식되는 데서 느낀 불안의 발로인 것이다. 종말이 있다면 그것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전환기를 의미하며 그 시기에 있게 될 여러가지 급격한 변화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일 현재 아무런 불만이 없고 행복하다면 종말을 기다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종말 사상은 현재 상태의 불만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재 만족하는 상태라 하더라도 좀더 나은 상태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이 영원한 생명과 '유토피아'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론의 목적은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그 소식을 퍼뜨리는 자들의 신격화에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