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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카페 게시글
부사모게시판법당 선가귀감- 26. 안목이 바른 것이 귀할 뿐
보문 추천 0 조회 68 23.03.14 20:44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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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3.14 20:52

    첫댓글 只貴子眼正(지귀자안정)

    보통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평가하는데, 여기서는 왜 행실보다 안목이 바른 것을 더 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말 뜻은 선림(禪林)에서 자주 언급하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라는 표현과도 연관이 있다. 무명과 탐욕이 깃든 '부처란 경계'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이런 근기야말로 참된 부처님이 될 수 있고, 이 경지에 들어가야 바른 안목이 열린다. 이 안목이 열리면 모든 경계가 부처님의 모습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이 안목이 열리고 나서 하는 행동이야말로 중생의 시비 분별을 뛰어넘는 것이니, 멋 모르고 행동하는 중생들의 거친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 푸른 남자'는 무심하게 어떤 인연을 따르더라도 그 곳에서 조화롭게 아름다운 성자의 삶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안목이 터지지 않고서는 어떤 행실도 중생의 행실 그것에 그칠 것이니, 중생의 행실을 따져본들 부처님 공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두를 챙겨 근본 마음자리를 바로 알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의 세상을 바로 보는 ' 바른 안목이 우선이요 공부의 핵심이다.

  • 작성자 23.03.14 20:56

    行履(행리)

    행실로 번역한 행리는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살아온 과정을 말하니, 오가며 앉고 눕는 일상적 삶 전체를 가리킨다. 우리는 보통이 일상적인 생활을 통하여 그 사람의 공부를 가늠할 수 있다. 옛날 총림에서는 해마다 봄,가을 두 번, 2월 9일, 8월 9일이면 안거에 동참한 스님들의 숫자와 해제 뒤에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였는데, 이것을 '행리조사'라고 하였고,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을 '행리장'이라고 하였다. 스님들의 행실이 올바른지 잘못 살고 있는지를 평상시 점검하여 수행 생활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경책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 작성자 23.03.14 21:00

    앙산

    앙산 혜적(仰山 慧寂 803~887)은 위산 스님의 법을 이어받아 중국 선종의 거대 산맥인 오가칠종의 하나에 해당되는 위앙종의 창시자가 된 분이다. 위산은 영우 스님이 머물던 산 이름이고, 앙산은 해적스님이 머물던 산 이름이다.

  • 작성자 23.03.14 21:05

    위산

    중국 당나라 시대 위산 영우(771~853) 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스물셋 되던 해에 백장(720~814) 선사 밑에 가서 공부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방장실에서 밤늦도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백장 스님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 라고 묻기에, 대강 화로 속을 뒤지다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백장 스님이 손수 화로 속을 깊이 뒤져서 작은 불씨 하나를 꺼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하고 물으니, 그 순간에 위산 스님이 크게 깨쳤다고 한다. 뒷날 위산 스님과 그의 법을 이은 앙산 스님의 첫 머리 글자를 따와 위앙종이 만들어졌으니, 위산 스님은 중국 선종의 거대 산맥인 오가칠종의 하나에 해당되는 위앙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 작성자 23.03.14 21:16

    https://www.youtube.com/watch?v=G6Uw-HsNQUw&t=1662s

    26강은 27분 15초~ 33분 58초 동안 들으시면 됩니다.

  • 23.03.14 22:27

    *바른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
    바른 안목은 비법 인 듯 합니다. 돈가스 서민갑부 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온갖 실패의 경험을 통해 수십년에 걸려 비법을 알게 되고 시장에서 갑부가 됩니다. 재기가 절실한 사람들에게 성심껏 자신의 아낌없이 비법을 알려주고, 연습시켜 빨리 자신처럼 되게 도와주는 분이 있더군요. 바른 안목을 가지게 되면 빨리, 더 많이 , 더 넓게 습득할( 행, 수행)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지름길 같은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3.15 04:59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라면 당연히 자비의 행이 나올 것이니 당연히 중생을 향한 마음 일 것이고, 설사 우리들이 보기에 아닌 것 같이 보이는 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방편이 되지 않을까요?
    바른 안목으로 행하는 일이니 우리들의 말로 믿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23.03.15 12:09

    若慾修行(약욕수행)이면 先修頓悟(선수돈오)니라.
    - 올바른 수행을 하려면 먼저 단숨에 깨쳐야 한다 는 해석인데.... 좀 이상하지요? 우리는 보통 깨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 말을 좀 바꾸어 보면...수행을 함에 있어서는 먼저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 ; 쉽게 이해가 되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 해석에는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깨치면 끝이 아니고 또다른 수행이 있나? 는 부분이지요.
    기존의 깨달음 지상주의라면 이 가르침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돈오로 공부 끝났다고 보는 견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정안을 가진다는 것이 돈오를 지칭한다고 본다면, 정안을 가진 후에 행실을 논한다는 것은 정안만 귀하고, 행실은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실이 귀하려면 정안이 있어야 한다, 즉 반야안이 떠 져야 바른 행, 무위행이 나온다는 뜻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다른 말로, 일체가 부처라는 지혜를 얻으면 바른 행이 나온다는 결론이 아닐까....합니다.

  • 23.03.15 12:16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견해는 조건이 구족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갖는 것이니 (정안이 있어야 바른행이 나온다는) 유위의 가르침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돈오를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갖춰져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정도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합니다. 보현행원도 결국 그런 자각과 믿음(반야) 위에서 이루어지는 반야행이니까요.
    그런데 선승이신 서산대사께서는 깨달음을 강조하셨을텐데 이런 견해 또한 맞지 않을 것 같고....
    이래 저래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으니 자꾸 엉뚱한 말씀만 늘어놓게 되는군요. ^^

    보현선생님께서 질문주신 내용 중 <선오후수가 아니라 선수후오를 강조>하신 부분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수후오가 아니라 선오후수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_()()()_

  • 23.03.15 12:48

    @법혜 수행, 행을

    중생제도를 위한 모든 행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금강경에서
    보살행을 하려는 선남자 선녀인은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중생제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에서 수행을 행으로 해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석을 하면
    바른 안목, 견처가 있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중생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 뒤 논리 구조도 맞고요~

    _()_

  • 23.03.16 12:03

    우와~ 다들 멋지십니다.
    연무심님의 수행을 모두를 위한 행 으로 보는 부분이 특히요.
    ^^

    언니, 오빠 비법 공책 보는 것 같아 두근두근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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