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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열차를 탄 뒤로
발작이 시작됐어요''-- 소아 간질 발작
간질은 오랜 옛날부터
모든 시대와 문명 속에서
널리 발견되고 관찰되어 온
뇌신경계 질환이다.
온몸에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간질 환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큰 충격과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두렵고 혐오스런
불치의 병으로 인식되어왔으며,
천벌이나 악마의 저주가
원인이라고 생각되어왔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대뇌생리학의 발달과
뇌파 검사의 개발로
이 병이 신경계의 질환이며
대뇌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전기 자극이 발작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함께
간질 발작에 대한
병리학적 이해가 깊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새롭고 효과적인 치료제들이
끊임없이 개발됨으로써
치료에 큰 발전을
이루고는 있지만,
아직도 환자와 가족들은
이 병을 부끄럽게 여겨
숨기거나 인정하지 않아
적절한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간질은
증상의 형태도 다양하고
원인도 복잡해
현대의학이 이를 완전히
극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환자 수를 최소한으로 잡아도
전체 인구의 0.5%를 넘는다는 것이
믿을 만한 통계이고,
이는 인구 200명당 1명 이상이
간질 환자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한 번 시작되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지속되고,
전체 환자의 70% 정도가
다섯 살에서 스무살 사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학령기와
사회 진출 시기에 발병해
환자와 가족의 삶 전체에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질병이기 때문에
조기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간질의
종류와 발생 연령에 따라
원인에도 큰 차이가 있고
여러 가지 원인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아
쉽게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크게는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원인을 나눈다.
선천성은 약 30% 정도의
환자가 해당되며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이고,
70%의 환자는
후천적 뇌 손상, 뇌혈관 기형,
뇌 감염, 뇌종양,
내과적 질환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영진 군은
간질 증상 때문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왔다.
영진이가 여덟 살 때
갑자기 시작된 간질 증상이,
계속 약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심해져
최면치료가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찾아왔다면서
아버지는
그간의 치료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간질 진단을 받고
지금 만 4년째 약을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요즘 들어
약이 잘 듣지 않습니다.
이 약 저 약 바꿔가면서
처방을 해주시는데
모두 별 도움이 안 돼서
담당 과장님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약만 먹으면 잘 지냈는데
아이가 크면서 더 심해지는 게
아닌가 고민이 됩니다.
약을 써도 안 되면
최면 치료를
한번 받아보라고 하면서
잘 아는 분이
여길 소개해주셨어요.
무슨 방법이든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해봐야죠.
처음 발병했을 때
뇌파 검사와 뇌 컴퓨터촬영
결과가 모두 정상이었고
최근의 뇌파 검사
역시 정상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잘 모르겠지만
크면서 좋아질 수도 있다' 며
약물 치료를 권유해 거르지 않고
꾸준히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 증상은
뇌 자체의 이상 기능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최면치료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 열심히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도움이 안 된다니,
최면 치료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어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앞으로
두고 보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 후
치료 예약을 받아주었고,
환자가 어리고 정서적으로도
민감한 나이였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첫 치료 시간을 정해주었다.
약속한 첫 치료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온 어린 환자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처음 병원을 다녀간 이후에도
발작 증상이 계속된 탓인지
얼굴에 병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최면 치료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아이와 아버지에게 간략히 설명한 후
치료실로 자리를 옮겨
긴장을 풀어주고
바로 치료 작업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소아 환자는
어른보다 심리적 저항이나
잡념이 적기 때문에
최면치료를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고
상상력과 이미지를 이해하는
치료작업을 하기에도 쉬운 편이다.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환자의 머릿속을 검사한 결과
뇌의 오른쪽 한 부분에
검고 단단한 이물질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해
그 부분에 환자의 의식을
집중시켜 치료를 진행해나갔다.
김: 그 부분이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아?
한: [작은 소리뢰]
그것 때문에 아픈 거예요.
김: 언제부터
그것이 머릿속에 있었지?
한: 어릴 때 청룡열차를 탔는데,
많이 무섭고 놀랐어요
그 때 머리에 들어왔대요.
김: 그 때 들어왔다고
그 덩어리가 얘기하니?
한: 네.
김: 왜 너한테 들어왔는지 물어봐.
한: .... [잠시 침묵 후 수줍은 듯]
제가 좋아서 들어왔대요.
김 : 그 덩어리가 너한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
한: ... [두려운 듯] 저를 자꾸
아프게 하고 무섭게 해요.
김: 그게 없어지면 나아질까?
한: 네, 그럴 것 같아요.
이런 대화가 어린 환자의
터무니없는 공상을 따라가는
무책임한 시도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떠올리고
말하는 그 어떤 내용이든
그의 현재 상태를 암시하는
정보와 상징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미리
/ '최면 상태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끼더라도
그것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상징이나 비유일 수도 있고
때로는 단순한 공상일 수도
있기 때문'/ 이라는
설명을 해줌으로써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치고
부담 없이 내면의 느낌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 종교와 무속.
다양한 대체의학의 치료 기법들과
자기 수련 등을
모두 사용해도
소용없던 난치의 환자들이
최면치료를 통해
낫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열쇠들은
모두 환자의 내면에 감춰져 있고
그것을
제대로 찾아내 이용하는것이
치료의 성패를 가장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이 어린 환자도
의식의 저항과 잡념이 줄어든
최면 상태에서는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자신의 병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있었기 때문에
환자의
상상력과 직감을 이용해
그 정보를 찾아내는
시도를 한 것이다.
김: 그 덩어리가 너한테
들어오기 전에는 어디 있었대?
한: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대요
청룡열차를 탔을 때 너무 놀라서
제가 약해졌을 때 들어왔대요.
김: 오래 있었으니 이제
나갈 마음이 있는가 물어봐.
한:... [얼굴을 찌푸리며]
나가기 싫대요.
김: 왜?
한: ... 그냥 여기서 살겠대요.
나가는 건 무섭대요.
김: /'너 때문에 내가 아프니까
더 있어서는 안 된다'/ 고 해봐.
한: ....대답이 없어요.... [놀란듯]
그 덩어리가 머리에서 없어졌어요.
김: 어딘가 있을 거야,
몸 전체를 잘 찾아봐.
한: [잠시 집중한 후] 배에 있어요.
환자의 몸에서
나가기를 거부하며
숨거나 저항하는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다루는 방법은
앞서 기술한 다른 치료
사례들에서 여러 번 설명했다.
같은 방법으로 무력화시키며
제거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한 : ... [긴장한 목소리뢰]
검은 덩어리가
머리로 다시 돌아왔는데.
점점 색이 없어지면서
작아지고 있어요. .
이제 나가겠대요...
아, 연기처럼 빠져나가요.
하늘로 빨려 올라가요. ...
[한참 침묵한 후]
이제 전부 나갔어요.
머릿속이 깨끗해요
마무리 작업으로
어둡고 탁한 기운이 퍼져 있던
머릿속을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채우도록 한 후 환자를 깨웠다.
기분이 어떠냐는 내 물음에
환자는 밝게 웃으며
최면에서 깨어난 느낌이 신기한 듯
"머리가 맑아졌어요.
아프지도 않고요" 라고 대답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를 불러
첫 치료의 진행 과정을 얘기하고
평소에 환자와 가족이 주의하고
노력해야 할 점들을 설명한 후
환자가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켰다던
여덟 살 때의
자세한 정황을 물었다.
''그 날 우리 가족과 친척들이
놀이공원에 갔었어요.
청룡열차를
다같이 타려고 했는데
영진이는
무섭다고 안 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는 애를 겁쟁이라고
놀리고 떠밀어서 억지로 태웠죠.
그게 잘못한 것 같아요.
타는 동안에도 계속
소리를 지르고 울었는데,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었어요.
모두 놀라서
물을 떠다 입에 넣어주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한참 법석을 떨었어요.
그 날 이후로 이 병이 생긴 거죠.
그 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어요.
최면 상태에서
환자가 했던 얘기가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심하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은 후
없던 병이나 증상이
갑자기 생겼다는 이야기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약해진 사람에게
병을 일으킬 수 있는
파괴적 에너지가 외부에서
쉽게 뚫고 들어오거나,.
내면에
잠복하고 있던 문제들이
갑자기 표면으로 올라와
병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과 과거의 충격 사이에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다
치료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갑작스런 충격과 발병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학은 아직
정신적 충격과
부정적 정서 상태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최근 개발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검사(fMRI) 결과들은
생각과
대화, 강한 감정만으로도
뇌의 구조와
기능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고있다.
2주일 후에 다시 만난 환자는
지난번과 달리
밝고 건강한 얼굴이있다.
''그날 돌아간 후로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잠도 잘 자고 잘 놀고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믿기 어렵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애기하는
환자의 아버지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진이, 너는
기분이 어때?" 하고 묻자
"아주 좋아요.
머리도 안 아프고요" 하며
환자도 밝게 웃었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새로운 치료가
아픈 주사를 맞거나 힘든 과정을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병원에 오는 것을
겁내지 않게 되었다고 옆에서
아버지가 거들었다.
치료실로 자리를 옮겨
최면 상태에서
다시 몸속을 살펴보자
지난 번
깨끗하게 변했던 머릿속이
다시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김: 전에 검게 보이던 부분이
지금은 어떤 상태야?
한 : 다시 어두워졌어요.
전보다는 덜 검고 크기는
작아졌어요.
이런 경우는 훈히 볼 수 있다.
한두 번의 치료 작업으로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변했던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어두워지고
오염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생활 속에서
환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 시간에 했던 것처럼
그 부분의 어두운
에너지를 모두 제거하고
밝고 건강한
기운으로 채우도록 한 후
몸 전체와 주변까지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두 번째 작업을 마쳤다.
그 후로 발작 증상은
재발하지 않았는데,
한 달쯤 지난 어느 토요일에
늦은 시간까지 축구를 하고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와 잠을 자다가
한 번 재발을 했다고 한다.
간질 발작은
몹시 지치거나. 술을 먹거나,
끼니를 걸렸을 때 잘 나타난다.
그 날 증상이 재발했던 것은
점심도 제대로 안 먹고
저녁까지 지치도록
축구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증상이 없어진 후에도
최면치료를 통해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약한 뇌 신경조직을 찾아내
치료하고 보강하는 작업을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 더했다.
그 기간 동안
경련 발작은 한 번도 없었고,
몹시 피곤하거나 지쳤을 때
가벼운 두통을 잠시 느끼는 일은
가끔 있었다.
발작 증상이 쉽게 없어진 데다
환자의 나이가 어리고
가정 내의 갈등이나 다른 뚜렷한
스트레스 요인이 없었기 때문에
원인이 될 만한 과거의
숨은 상처나 기억을 찾아 들어가는
연령퇴행 기법이나
내면의식 차원에서의
복잡한 치료 작업은 하지 않았다.
6개월 이상 발작 중상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을
확인한 후 치료를 종결하면서
아들의 병의 원인이
머릿속에 들어 간
귀신이나 악령 때문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던 아이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그간의 치료를 정리해주었다
"최면치료는 마술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정보와 힘을이용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합리적인 치료도구로 볼 수 있어요
야드님이 나은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지 않던 증상이 좋아진 겁니다.
머릿속에 있던 검은 덩어리가
아이가 놀랐을 때
뚫고 들어간 귀신이나
악마 같은 이상한 에너지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 증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인지
지금은 아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치료 과정에서
배웠던 방법들을 이용해
자기를 보호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훈련은
어떤 상황에서건 큰 도움이 되니
아이가 늘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다른 아이들보다 원래
뇌신경조직이 민감하거나
약점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증상이 다시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하세요.''
환자와 아버지는 밝은 얼굴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오겠다'' 고 약속하고 돌아갔고.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