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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에 ‘조용한 사직’… 물가 불안에 ‘영구적 위기’ 걱정
[위클리 리포트]글로벌 신조어로 되돌아본 2022년
《2022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평화롭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 세계 에너지 대란과 물가 급등,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의 후폭풍이 크다. 영국 콜린스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를 뜻하는 신조어 ‘퍼마크라이시스(permacrisis)’를 선정했다. 미국 CNN 방송은 “삶이 때때로 너무 이상해져서 그걸 설명할 새로운 단어를 발명해야 했다”라고 돌아봤다. 올해 등장한 신조어 중 한 해를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을 소개한다.》
2022 세상을 달군 단어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위기,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부른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신(新)냉전 심화에 따른 군비 경쟁과 기후위기로 점철된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
“필요 이상 일 않겠다” 핫이슈
해야 할 일만 한다. 필요 이상으로는 일하지 않는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많은 외신과 트렌드 분석 매체들은 ‘조용한 사직’을 올해 최고의 유행어로 꼽았다. 올해 3월 소셜미디어 ‘틱톡’에 올라온 한 영상으로 크게 확산된 이 표현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대신 최소한의 일만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조용한 사직’을 불 지핀 것은 코로나19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원격근무가 일반화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미 경영 컨설턴트 크리스틴 스파다포는 CNBC에 “기업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구적 위기(permacrisis)
에너지 대란 등 끝나지 않을 위기감
영국 콜린스사전은 ‘영원하다(permanent)’와 ‘위기(crisis)’를 합친 ‘영구적 위기’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전 세계 에너지 대란과 물가 상승, 이상 기후, 군비 경쟁등이 쉴 틈 없이 이어졌던 올해가 많은 이에게 괴로운 한 해였음을 보여준다.
영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샤리아트마다리는 “모퉁이를 돌면 어떤 새로운 공포가 있을지 지친 마음으로 궁금해하는 느낌, 전례 없는 사건에서 또 다른 사건으로 쉬지 않고 넘어가는 어지러운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
‘교묘한 심리 조종’ 일상 곳곳에 뿌리
1938년 영국에서 초연된 연극 ‘가스등’에는 교묘한 심리 조종으로 아내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파국으로 몰고 가는 남편이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된 표현 ‘가스라이팅’은 80여 년 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오도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미 미리엄웹스터 사전은 가스라이팅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며“올해 온라인검색량이 1740% 급증했다. 1년 내내 자주 검색되는 단어였다”고 했다. 거짓 정보와 속임수 등에 의한 가스라이팅은 일시적 현상을 넘어 이제 인간 삶의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고 외신들은 우려했다.
여성,생명,자유
이란 反히잡 시위 상징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란의 쿠르드족 여성 마사아미니의 죽음 후 반정부 시위대는 “진, 지얀, 아자디”를 외치고 있다. 쿠르드어로 ‘여성, 생명, 자유’를 뜻한다. 이 말은 40여년 전 터키 거주 쿠르드족의 독립 운동 때 처음 등장했다. 아미니의 장례식에 쓰이면서 순식간에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당국은 체포한 일부 시위대에 공개 처형까지 자행하며 거세게 탄압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시위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세 단어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현대사가 걷고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상징한다”고 평했다.
전(戰)과 안(安)
우크라 전쟁-엔저 불안 日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한자는 ‘戰(싸울 전)’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5년 만에 일본 열도를 통과한 북한 미사일 등 안보 불안의 여파가 컸다. 코로나19와 고물가 대응,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일본 축구대표팀의 선전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戰’이 선정된 것은 9·11 테러가 터진 2001년 이후 21년 만이다.
2위에 오른 한자는 ‘편안하다’, ‘싸다’는 뜻을 지닌 ‘安(편안할 안)’이었다. 올해 엔화 가치가 20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지고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엔저(円安)’와 ‘불안’이란 단어가 여기저기서 쓰였다. 상위 5개 중 긍정적인 한자는 3위 ‘樂(즐거울락)’ 하나뿐이었다.
기후위기 스티커(klimaatklever)
고흐 ‘해바라기’에 토마토소스 시위
네덜란드의 사전 출판사 ‘판달러’는 “기후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상징적 가치가 있는 대상에 손 등 신체 일부를 접착제로 붙이는 활동가”를 뜻하는 신조어 ‘기후위기 스티커(klimaatklever)’를 올해의 단어로 골랐다.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스톱오일’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에 토마토소스를 부었다. 기후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데도 각국의 대책이 미흡하다며 “예술보다 삶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이런 거친 행동에 대한 논란이 상당했지만 미뉴욕타임스(NYT)는 “적어도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들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홍정수 기자
‘영끌’로 투자한 청년들 ‘영털’에 눈물… 상사 눈치보며 ‘억텐’ 리액션
2022년 달군 MZ세대 신조어
‘중꺾마’로 강한 의지 다지고, ‘알빠임?’ 외치며 용기 얻어
취업준비생 심모 씨(26)는 올 초까지만 해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활용한 재테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자산 상승장을 보면서 카페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2000만 원을 벌었다. 하지만 올해 자산 시장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2000만 원은 증발했고 빚만 500만 원 남았다.
국민적 신조어였던 ‘영끌’의 자리를 2022년에는 ‘영털’(영혼까지 털렸다)이 대신했다. MZ세대들의 올 한 해를 신조어를 통해 돌아봤다.
○ 경제생활, ‘영털족’의 ‘갚으자’
각종 경제 악재에 각국은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의 자산 가치는 급락했다. 대출 이자가 불어나면서 ‘영털족’이 된 청년들은 이전 유행어인 ‘가즈아’ 대신 올해 ‘갚으자’를 외쳤다.
직장인 이모 씨(33)는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약 2억5000만 원의 신용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샀다. 당시 2.33%이던 이자율은 올 초 3.23%나 됐고, 내년에는 6%대로 예상된다. 이 씨는 “현재 매달 이자만 65만 원을 내고 있는데 그 두 배가 될 걸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공격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던 20, 30대도 올해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주택 매매량(44만9967건) 중 30대 이하의 주택 매매량은 10만8638건으로 전체의 24.1%를 차지했다. 2019년 24.3%, 2020년 25.3%, 2021년 27.1%까지 매년 증가했지만 올해는 전년 대비 3.0%포인트 하락했다.
○ 직장생활, 속으론 ‘고진감래’여도 ‘억텐’
수년간 간절히 취업을 바랐던 양모 씨(32)는 올해 직장인 2년 차가 되면서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훨씬 즐거워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런 직장인들의 마음을 담아 ‘고용해주셔서 진짜 감사한데 집에 갈래’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일이나 연봉, 복지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싶거나,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퇴근은 빨리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으로 영혼 없이 일하는 사람을 ‘소울리스(soul+less)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갚으자’ 상황에 처한 청년들은 월급을 위해 원만한 직장 생활을 중시하며 ‘억텐(억지 텐션)’을 외친다. 상사의 말이나 행동에 억지로 재미있는 척하거나 신나는 리액션을 한다는 신조어다.
○ 내년도 쉽진 않겠지만… ‘알빠임?’ ‘오히려 좋아!’
4년간 준비했던 공무원시험을 포기한 수험생 우현우 씨(26)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알빠임(알 바임)?’이란 신조어에 용기를 얻었다. ‘내가 알 바 아니다’의 축약어로, 상대 팀이 누구며 얼마나 전력이 강한지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경기를 치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올해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탄생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가나와의 경기에 진 후 모두가 16강 진출을 체념했을 때 누군가 소셜미디어에 ‘포르투갈 이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썼다. ‘포르투갈 우승 후보임’이라는 댓글에 글쓴이는 다시 ‘알빠임(알 바임)?’이라고 달았다. 이후 대한민국은 포르투갈을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우 씨는 “내 기량만 잘 보여주자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도 같은 맥락이다. 11월 열린 게임대회인 2022 월드 챔피언십 당시 DRX의 데프트(본명 김혁규) 선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대 최고 팀을 이기고 10년 만에 우승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강조한 것.
예상치 못한 난관에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위기의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외치는 ‘오히려 좋아!’도 올해 인기를 끈 말이다. 전남 장성군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김재원 씨(27)는 올해 고유가로 해외 판로가 막혀 수입이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커피 로스팅을 배웠고, 농장을 문화 체험장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농사로만 바빴다면 커피 배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새해를 맞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윤 기자, 이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