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김종필 이 얼마전 YS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에 휠체어를 타고 문상을 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한국 정치사에서 JP(김종필 자민련총재)에 대한 재조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김종필을 빼놓고는 1950년 이후의 한국정치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종필은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이라고 합니다
정확한거는 모르겠지만 중령시절 8기생끼리 구테타를 모의해서 강제 예편되었다고 합니다
김종필은 예편되었지만 8기생들은 그당시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군사구테타를 모의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청년군인들이 구테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아 정치를 하였음
터키의 케말파샤 이집트의 000 베트남의 고딘디엠 필리핀의 0000
아르헨티나 의 0000 등 유행처럼 청년군인 구테타가 있었음)
어쨋든 육사8기 끼리 의견이 모아지고 예편민간인인 김종필은 자연스럽게 연락책이 되었다고 함
육사 8기와 그 아래기수들까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힌다음에 좀더 높은 군인들
즉 장성급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져서 그냥 간판으로 누구로 하느냐 하다가
(구테타 성공후 실권은 육사8기들이 다 갖는 것으로 내정하고) 김종필의 처(박영옥)의 삼촌인
육군소장 박정희 (부하군인이 거의 없는 실권없는 허수아비 장군)을 끌어들이게 되었고
김종필이 연락을 맡았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만주군 출신과 일본육사 출신들을 끌여들여서
육사8기들의 구테타을 하는 것을 후원하는 것으로 내정되었고
5.16 구테타가 거사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2.12군사구테타와 5.16군사구테타의 차이점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즉 12.12는 전두환 노태우 장세동 허화평 등 실세가 먼저 기획을 한것이고
5.16은 육사8기가 기획 주도하여 실시하였고 후원그룹의 대표로 있던
박정희소장이 구테타 성공후에 어느 순간 실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5.16 구테타의 주역핵심은 박정희 소장이 아니라 육사8기였고 그중 김종필 중령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소장은 한마디로 들러리로 뒷편에 서 있다가 구테타가 성공한 이후 어느 순간 김종필을 활용해서
실권을 잡은 셈이지요 육사8기 9기 10기 11기 들의 입장에서는 죽쒀서 누구 먹여준 형국이 된 셈이죠)
어쨋든 5.16구테타 이후 행정부를 만들고 선거를 하고
일본과의 한일청구권협상(요즘 위안부 재협상관련)을 하고 이 모든 진행과정에는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핵심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JP 오히라 메모 는 유명한 일화죠 그당시 일본총리와 아베 수상이 친인척일겝니다)
그후 김종필은 3선개헌에 반대하고
김영삼 국회의원의 제명에 반대합니다
군사구테타는 주동했지만 민주화를 주장하고 독재를 반대하여
이후락 등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외로 유랑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김종필과 한국정치사 의 1부 격입니다
(즉 좌익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이응준 장군의 배려로 목숨만 건진후 무늬만 장군인 박정희
소장을 김종필이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고 독재를 반대하다가 김종필이 쫒겨납니다)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가 정권을 잡고
체육관 선거로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을 합니다
김종필은 정치활동금지로 묶였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6.29선언으로 1987년 12월쯤 직선제 선거가 이루어집니다
민정당의 노태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자민련의 김종필이 출마했고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이때 대선 몇일전 김종필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부릅니다 후보단일화를 해서 노태우를 꺽자고요
이때 김영삼은 장소에 나타나지만 김대중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냥 무산됐다고 합니다
그후 김영삼 김종필은 노태우 와 같이 민자당을 만듭니다
민자당의 후보로 출마한 김영삼 후보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지원하여 김영삼 을 대통령을 만들어 줍니다
(김종필과 충청도의 힘이 발휘되어 김영삼후보를 대통령을 만들어 줍니다)
다시 5년뒤 김대중은 김종필을 만나 연립정부 즉 DJP 연합정권을 제의해서 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다시 김종필은 김대중후보를 지원하여 또 대통령을 만들어 줍니다
(김종필과 충청도의 힘이 김대중후보를 대통령을 만들어 줍니다 )
결국 김종필의 도움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람은
첫번째로 박정희 대통령 (경제성장발전 이 추진되기 시작함: 한국이 잘살게된 시발점이 됨)
두번째로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 출현: 군인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이 된 최초 사례 : 민주화가 이루어짐)
세번째로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정부 출현: 호남정권을 탄생시켜 우리나라에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게 함)
입니다
이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충청도의 자민련의 도움도 같이 받은 것이므로 충청도의 힘을 받은 것이죠
JP 김종필의 대통령 만들기는 여기까지 이지만
충청도의 힘은 계속 대통령 만들기를 합니다
노무현 후보는 세종시를 들고 나와서 충청도의 힘을 받아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박근혜 후보도 세종시 유지를 주장해서 충청도의 힘을 받아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충청도의 힘을 받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아마 서울의 힘으로 된 것 같습니다
.
첫댓글 거울 보며 화장하는 여우와 아홉개의 꼬리에 달라붙은 개들의 끈질긴 식욕 한 덩어리 그리고 바람 ^^
위 김종필과 관련된 서술 중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도 꽤 있습니다.
① 우선 한일회담 당시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이지 국무총리가 아닙니다.
② 3선 개헌에 반대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민주화에 대한 신념때문이 아니라
당시 공공연하게 1971년에는 김종필이 박정희 후계자로 대통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박정희가 <다음 번엔 님자(김종필) 차례야>라는
박정희,김종필 간 밀약을 배신해서 김종필이 정권을 차지할 기회가 사라진데
대한 반발때문입니다.
③ 김종필은 정치인으로서 한번도 민주화를 주장하거나 독재를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안철수에 문재인에 요새 열심이구만... 옛다 관심
만약 사실이라면, 김종필의 도움이라는것이 한계였다는 점이 작용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