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보게 된 어느 글에서 그 글의 작성자가 이런 말을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박정희의 후계자는 전두환이 아니라 최규하였다.
그런데 좌파 민주당이 전두환이 박정희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다..."
먼저 일면식(一面識)이라는 말의 뜻부터 살펴보자.
국립국어원의 트윗을 보니, 일면식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서로 한 번 만나 인사나 나눈 정도로 조금 앎'
그러니까 저 문장을 쓴 작성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서로 한 번 만났거나 인사를 나눈 적도 없었던, (그러니까) 서로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과연 저 문장이 사실일까?
구글에서 '전두환 박정희 관계'로 검색을 하니, 나무위키에 바로 이런 사진이 뜬다.
왼쪽이 전두환, 오른쪽이 박정희다.
서로 일면식도 없다던 둘이 어떻게 저렇게 만나서 사진을 찍었을까?
혹시 민주당에서 둘한테 같이 사진을 안 찍으면 죽인다고 협박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 정치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저렇게 다들 만나서 사진 찍기가 일상이라고?
그럼 '박정희 전두환 총애'라는 검색어로 구글링을 해볼까?
바로 이게 뜬다.
news.joins.com/article/12088814
2013년 7월 16일자 중앙일보 기사(수정 날짜는 2013년 7월 17일)다.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연이 시작된 건 1976년. 전 전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되면서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그는 가족 식사 자리에도 종종 초대받곤 했던걸로 전해집니다.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전 전 대통령은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한 6억원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생활비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이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박정희와 박근혜의 가족 식사 자리에도 초대를 받았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가족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서로 같이 식사도 했을 만큼 총애를 받았던 사이를 두고 일면식도 없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좌파 민주당이 퍼뜨린 거짓말?
그러면 저 기사를 올린 중앙일보가 민주당 소유 언론 매체란 말인가?
아래 링크는 2020년 1월 10일자(수정 2021년 2월 25일) 영남신문의 기사다.
www.ynam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18#0DG0
5.16 아침 당일 전두환 대위는 누구보다 바빴고 상황 판단이 빨랐다. 5월 17일 박정희 소장은 육사 교장 강영훈에게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요구했다. 강영훈은 머뭇거렸다.
이러한 정보를 듣고 여러 채널을 통해 상황을 재빨리 눈치챈 전두환은 혁명 본부에 나타나 “강영훈 육사 교장이 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막아 혁명을 망쳐놓고 있다”고 보고했다.
박정희 소장은 전두환 대위를 불러 상황 설명을 들었으며 이어 강영훈 교장은 혁명 주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마침내 5월 18일 오전 10시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 시가행진이 펼쳐지게 되었다.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 시가행진은 혁명이 성공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를 막후에서 주도하게 된 공로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민원비서관에 발탁됐다.
또한 전두환의 빠릿빠릿한 모습과 빠른 상황판단을 눈여겨 본 박정희 소장은 전두환 대위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고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전두환은 그 자리에서 박정희에게 “군(軍)에서 각하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며 정중히 사양했으며, 이러한 것이 박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을 거쳐 수경사 30대대장, 제 1공수여단장,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육군 보병 제 1사단장을 거쳐 마침내 운명의 보안사령관에 임명되게 된다.
5.16 이후 전두환은 박정희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그는 군(軍)시절 내내 권력 핵심부와 근접권에 있을 수 있었으며, 특히 통수권자와 각별한 관계를 맺는 ‘행운’이 따르게 된다.
박정희의 5.16 혁명이 없었더라면 돈도 집안도 형편없는 그야말로 아무런 빽도 없는 전두환은 아마도 전방부대를 돌며 고생하다 육군 대령으로 군(軍)생활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박정희에 우호적인 언론인데, 전두환이 5.16이 일어나자 곧바로 육사생도들을 이끌고 박정희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벌이고 박정희와 직접 만났으며, 박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아 군시절 내내 권력 핵심부와 근접권에 있었던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서술했다.
설마하니 저 영남신문도 민주당이 소유한 언론 매체라고 말할텐가?
아래는 월간중앙 2017년 5월호에 실린 기사인데, 전 수방사령관인 안병호 장군과의 인터뷰다.
여기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볼까?
seoults.com/m/view.php?idx=502&mcode=m88kdxu
인터뷰-안병호 장군(월간중앙 2017년 5월호)
편집국 2020-04-23 17:12:21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980년 가을부터 약 3개월간 30차례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대화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만남의 동기와 목적이 더 충격적이다. 안 전 사령관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박근혜가 보유하고 있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 비자금 회수를 성사시켰다고 증언했다.
안 장군은 박근혜와 전두환·노태우 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이들 두 사람은 젊은 장교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박근혜를 잘 알았다. 특히 전두환은 박 대통령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양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특별한 관계였다.
안 장군은 (중략) 하나회는 196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권유와 지시에 의해 태동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하루는 박정희 대통령이 차 안에서 전두환에게 “지금 군에는 알래스카(함경도 출신)가 대부분이다. 그 다음에는 너희 경상도 출신들이 군을 맡아야 할 텐데, 육사에 친한 친구들끼리 모임 같은 거 뭐 없나?”라고 묻기에 “없다”고 했더니 “한번 생각해 봐!” 하더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알래스카’란 6·25 이후 군 지휘부를 형성하고 있던 이북, 특히 함경도 출신 장군들을 말한다. 정일권 육참총장, 한신 합참의장, 김동하 해병 중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무렵 군의 상층부는 확실히 이북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는 일찍부터 경상도 중심의 군내 대체세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안병호 장군은 현역 시절 전두환 장군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출신 육사 11기생들로 하나회를 구성했다. 하나회는 그 후 1979년 10·26과 12·12를 거치면서 군 사조직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십분 발휘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건을 성공시킴으로써 그들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이래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서로 일면식도 없었다는 소리를 할거면, 박정희는 자기가 만난 사람의 이름과 얼굴도 전혀 기억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앓는 상태에서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10년 넘게 대통령을 죽을 때까지 역임했단 말인가?
전두환이 박정희 집권 기간 내내 어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근무하면서 국내로 전혀 들어오지 못했던 신세가 아닌 다음에야, 박정희와 서로 일면식도 없었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