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볕이가 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근무하느라 아들 세놈과 점심 한 끼 먹고 자주 보지 못했다.
지난 주 금요일 조퇴를 하고 광주에 가 볕이를 태우고 고흥에 갔다.
우연히 경동이 생일과 겹쳐 첫자리에서 경동이가 술값을 계산해 미안했다.
전주 보민이한테 버스를 타고 온 민수가 김선경에게 나 온다고 전화했는데
용태까지 왔다.
경동이 가족까지 만나 맥주를 더하고 둘이 걸어 여관에 가 잠잤다.
저녁에 외가 식구들과 약속이 있다하여 점심을 벌교에서 먹기로 한다.
읍에서 콩나물국 백반을 먹고 과역에 들러 복숭아를 사고 여호 병어를 2만 5천원 어치 사 덕촌에 가니
어머니가 안 계신다. 박서방 농사를 지으며 논둑을 베고 계신 정우 아재한테 물으니
회관에 내려가셨댄다.
한볕이한테 차를 끌고 가 모셔오라고 한다.
집은 더운데 물도 나오지 않는다. 볕이도 너무 덥다고 한다.
벌교에 가서 선아네에 잠깐 있다가 원두막 닭요리집으로 간다.
광주에 계셔 못 온다던 누님이 영희 부부와 함께 왔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닭을 맛있게 먹는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조성에 들러 묵은 김치 한통을 싣고 광주로 온다.
아이를 내려주고 풍암동에 와 뒹굴다가 볕이가 준 시계의 줄을 수리하고
광주극장에 가 아이 엠 러브를 보자고 6시가 넘어 버스를 탄다.
기훈이가 전화했다.
영화는 포기하고 시계줄만 4만원을 주고 바꾸고 다시 45번을 타고 온다.
기훈이는 나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준다.
마을이나 지역에서의 나에 대한 평가나 바보와의 생활 등에 대해 말해준다.
마음이 무겁다. 난 지극히 큰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글을 읽는 건 무엇때문인가? 왜 읽는가? 난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일까? 사람 사이에서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인가?
둘은 다른 것인가? 난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힘들다.
뒤척이며 잠을 자고 4시가 조금 지나 일어나 도시락을 챙긴다.
또 잠자다가 늦어 차를 끌고 월드컵 주차장에 간다.
곡성휴게소에 한번 들르고 9시가 못되어 옥룡 선동마을 앞에 내려준다.
하얀 시멘트 길을 따라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올라간다.
새로 공사중인 길을 벗어나 산길을 찾아 헤맨다.
다시 내려오길 반복하다가 민박집에 들러 길을 물으니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가란다.
시멘트 지그재그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금방 지친다.
레이서와 걸어서 철리 두 산행대장을 따라가기는 힘들다.
그래도 1주일만에 걸어서인지 다리는 잘 버텨준다.
더위에 앞서간 몇이 길에 앉아 길을 원망한다.
한 시간 이상 시멘트 길을 걸었을까, 지친다.
길 가에 주황의 원추리도 보지 못하고 둘을 따르자니 힘들다.
내 자리 옆의 짝궁 하키님등 몇이 길 끝에서 쉬며 복숭아아ㅘ 커피를 주신다.
레이서가 막걸리를 따뤄준다.
몇은 먼저 일어나고 동양회장 등은 힘들게 오는 일행을 기다린다.
숲길 능선으로 잠깐 오르니 삼거리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백운사가 보인다.
난 이길로 몇번 백운산에 올랐을 것이다.
혼자도 오르고 창욱이나 현석이랑 올랐을 것인데 길은 전혀 감잡히지 않는다.
백운사를 보고 산허리 좁은 길을 걷는 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다.
백운사 앞에는 시멘트 주차장 위에 차들이 몇 대 서 있고 화려한 대웅전에서는
스님의 강론이 마이크를 통해 나온다.
사진만 길에 서서 찍고 상백운암뽁으로 또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른다.
난 중들이 도는 안 닦고 길 닦는 능력만 발휘한다고 흉을 본다.
길을 닦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시멘트 길 끝에도 차가 몇 대 서 있다.
또 숲사이 돌길로 들어간다. 원추형 돌탑이 있는 중백운암테에서 잠깐 쉬면서
동자꽃을 본다.
길 가의 풀이 베어진 등로가 나타나니 상백운암에 다 온 듯하다.
거의 30년 전의 상백운암은 기억에 없다. 스레트 지붕은 아스라히 기억에 있다.
옛집은 법당 팻말을 걸어두고 안에서는 역시 스님이 강론인지 설교인지를 하고 있다.
등산화 몇 켤레가 있고 젊은 여성이 마루에 앉아 있다.
새로 지은 스님의 거주처 새 집은 목재 기와집이다.
마당에는 작은 포크레인이 보인다. 이불 등을 널어놓은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법당의 부억을 들여다 본다. 아궁이는 검게 무너지고 있다.
스님의 도력은 어떻게 깊어지는 것일까?
동화사의 진제 종정은 설정 총무원장과 물러나라고 하는 설조스님의 단식에 대해
어떤 (지)도력을 발휘할까? 일선이나 관일 스님은 어떤 입장일까?
남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해라!
레이서는 저만큼 나무 아래서 맥주를 마시고 하키님은 배고프다고 빵으로 이른 점심을 드신다.
걸어서 철리님과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더 가자고 한다.
분홍 상사화를 보고 배낭을 맨다.
잠깐 바위 전망터를 지나 조금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능선이다.
그래도 정상까지는 1,2km 이상이 남았다.
능선 길은 그나마 걸을만하다.
정상쪽엔 사람들이 많더니 가까이 가니 모두 내려와 점심 자리를 찾고 있다.
셋이서 점심을 펴고 이미 드신 하키님도 오시라해 좁은 나무 사이에서 점심을 먹는다.
맥주 하날 아쉽게 나워 마신다.
술꾼이 술을 챙기지 않았으니 마실 자격이 없는데도 나보다 연상인 하키님이 드시지 않으니
내가 더 마신다.
지난 밤 기훈이랑 맥주 안주로 남은 칠면조 훈제가 있어 다행이 반찬이 구색을 갖춘다.
일행들이 땀에 절어 숨가뿌게 올라온다. 동양 회장은 정상 쪽에서 다시 내려온다.
여성 회원들이 맛있는 반찬을 펴고 술도 나오는데 난 끼지 못한다.
처음처럼님인가가 병소주 한병을 주시어 배낭에 챙긴다.
정상에 오르니 더 시원하다. 지리산 능선은 보이는데 천왕봉은 구름에 흐리다.
광양읍 지나 남해 바다도 흐릿하다. 건너편 따리봉인가 능선이 길고 그 뒤로 몇개가 겹쳐 있다.
억불봉 가는 능선도 지그재그이고 섬진강의 강물도 흐리게 보인다.
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나한테도 정상석에 서라는 걸 사양한다.
매봉 내회가는 나무 이정표를 보고 먼저 간 일행을 잡으려 바삐 걷는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등로인 듯 꽃도 많고 풀도 우거지고 미역줄 등이 길도 가린다.
원추리 꽃밭도 지난다.
몇 사람을 앞질러 레이서와 걸천님 뒤에 붙는다.
푸른솔님도 잘 따라 오신다.
내회마을로 내려가는 능선은 가파르고 길다.
30여분 다리에 힘을 주고 내려와 알탕할 만한 곳을 찾는다.
몇 군데 지나치고 물로 내려가니 통통한 독사가 바위에서 놀고 있다가 서서히 비켜준다.
푸른솔님은 위에서 씻고 우리 셋은 아래 소에서 속옷만 입고 논다. 시원하다.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는데 내가 더 마신다.
챙기고 내려오니 이 무더위 가뭄 속에도 암반 사이 폭포엔 물이 많다.
한 사나이가 올라오는데 보니 여수님이다. 뒤쳐진 일행이 힘들어 물이라도 줄까하고 올라온댄다.
천리님이 주신 얼음 물병을 전해준다.
이름 모르는 폭포를 지나 넓은 길로 들어선다. 깊은 계곡엔 사람이 많다.
음식점이 나타나는 주변에는 승용차들이 가득하다.
버스를 찾아도 없다. 어디 B팀이 물놀이를 한다던데 보이지 않는다.
계곡엔 사람들이 가득하고 길 가엔 차들이 가득한 사이로 아스팔트 뜨거운 길을 따라
걷는다. 다리가 아프다. 유원지 길을 따라 거의 한시간을 걸은 것 같다.
도리포가 반쯤 취해 사진을 찍어주고 맥주를 권한다.
버스 뒤 그늘에서 맥주 몇 잔을 마신다.
차 안에는 먼저 오거나 산을 오르지 않은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기다림에 지쳤다.
5시가 다 되었을까, 예정보다 두시간 이상이 늦어 목욕탕으로 출발한다.
다압소재지의 공중 목욕탕은 문이 닫혀 구례읍으로 간다.
곡성 태안사 앞의 매운탕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술 안마시는 사람 사이를 찾는데
두 산행대장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술을 줘 마시고 만다.
술자리가 길어질 수도 있는데 많이 기다린 사람 더 화내지 말게 하자고 일어난다.
곡성휴게소에 들르는데 조총무가 적자라 아이스크림을 못 산다 해
화장실에서 동양회장에게 카드를 주며 사라고 한다. 난 익명성의 뒤에 숨어 산에 따라 다니는데
술마시고 그들에게 아부?까지 하니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야구를 보며 광주에 와 무각사 앞에서 45번을 타고 풍암동으로 온다.
월드컵 주차장의 차는 다음날 아침 바보 차를 타고 가 거기서 출근하기로 한다.
그래도 술에 가득 취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