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들을 축복하는 이스라엘
본문 : 창49:1~49:33
이스라엘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 후 이어서 딸들을 제외한 12아들을 향하여 믿음으로 축복하여 주었으며(히11:21)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들들은 이스라엘이 축복한대로 땅을 유업으로 분배 받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46:7)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창46:15)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창46:17)
디나, 세라가 누구와 결혼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후손들도 출애굽시에 함께 나왔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은 이같이 딸 디나를 제외하고 12아들에게만 그들의 분량에 따라 장래의 일을 예언하여 주십니다.
이 예언을 따라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 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순수하게 받은 기업이 없어 남의 기업에 빌붙어 (시므온 : 유다의 기업 중에서 분배받음 수19:1, 9) 기업을 나눠 받기도 하였으며, 제사장 되었기에 그나마 다행인 레위지파는 12지파의 6곳에 나뉘어 사는 찢어진 지파가 되었으며, 단 지파와 같이 말굽을 무는 뱀이 되어 자신의 기업이 아닌 것까지 빼앗는(수19:40~48)자 됩니다.
1. 이스라엘 아들들을 향한 예언
이스라엘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 한 후 이어서 12아들을 불러놓고 분량에 따라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줍니다.
1). 말씀에 자의적으로 사는 자
장자 루우벤은 요셉이 팔려가기 전에 계모 빌하를 강간합니다.(창35;22)
때로는 아버지를 염려하여 요셉을 죽이는 것을 반대합니다.(창37:21~22)
즉 루우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제멋대로(aujqavdh" - 거만한, 제멋대로, 짖밟다) 해석하는 거만한 자며, 자신이 바로 법인 잔인한(sklhro;" - 거칠은, 잔인한, 엄한)자입니다.
이런 자는 말씀을 더럽히는 자입니다. 명령을 더럽히는 자입니다.
①. 루우벤은 이런 죄로 인하여 장자가 받을 축복을 빼앗김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대상5:1~2)
②. 루우벤은 인도자의 자질을 상실한 자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장자의 권위로 말합니다.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42:37~38)
그러나 이스라엘은 르우벤의 이런 제의를 거절합니다.
이유는 장자의 명분은 있으나 12형제를 인도해 갈 자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루우벤은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정욕을 따라 행동합니다. 형제의 대표로 말할 때에도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어버립니다.
유다는 자신이 책임진다고 말하는데(창43:8~8), 루우벤은 자신의 자식의 생명을 담보합니다. 즉 자신의 생명은 귀하고 타인의 생명은 천히 여기는 생각을 소유한 자임을 말합니다.
2). 잘못된 목적달성을 선택하는 자
시므온과 레위는 목적을 정하면 과감하게 실천하는 부류입니다.
세겜의 가족을 진멸하려는 목적(sunetevlesan - 완전한, 장성한, 성숙한 이며 이는 sune + tevleio" “함께 목적을 달성하는 자”를 의미합니다)을 세우자 할례의 규례 즉 하나님의 명령을 살육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요셉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시므온은 살의가 가득한 상태에서 요셉을 물 없는 웅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①. 이들의 모의는 사람을 속이는 모의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한 모의를 선하게 바꾸셨으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대로 절제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이 계획하는 일마다 가족사에 풍파를 일으켰습니다.
신앙인 가운데도 시므온이나 레위 같이 악한 계획을 세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하여 착취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②. 잘못된 목적을 세우고 실행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아들을 향해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고 형제를 잘못된 길(ajdikivan - 잘못한다, 불의, 부정)로 인도하는, 형제를 속이려는 모의를 세우며 사는 사람은 그 계획이 실행되면 반드시 두 아들과 같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가인이 죄가 문턱에 있어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죄에 순을 했을 때 저주를 받았습니다.
③. 기업을 빼앗깁니다.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7)
흩어버린다(diasperw' - 깨트린다, 찢어버린다, 산산조각 낸다) 함은 그들이 받을 기업이 없도록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언함과 같이 레위는 가나안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였으며 시므온은 유다가 얻은 기업 중에서 일부분을 기업으로 얻습니다.(수19:1, 9)
3).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대상5:1~2)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시78:67~6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2)
이스라엘은 자신의 열두 아들 중 요셉에게 장자권을 주려고 한 모습들이 성경 구석마다 역력하게 나타납니다.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 자체가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겠다는 의지라 보이며, 이스라엘의 임종시에 요셉의 아들 둘을 야곱의 아들처럼 기업을 받게 함으로 요셉에게 두 몫을 준 사실들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12아들을 의해 축복하며 장래사를 예언하는 중에 장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요셉처럼 두 배의 축복을 받을 자리에 있지도 않은 유다를 향하여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이 되고, 절을 받으며, 아무도 유다를 해롭게 할 수 없으며, 치리자가 영원하며, 포도주와 포도송이 피(ai{mati stafulh'")로 옷을 씻으며, 그의 후손에서 실로가 오신다.”고 축복합니다.
다른 축복은 유다의 행실을 보면 가능하다고 보여 집니다만 치리자가 영원함과 “실로(그것을 가진 자, 그것이 속한 자)”오신다는 예언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유다의 왕계는 영구적인 왕권 상속자인 “실로”가 오면 끝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입을 빌어 유다의 법적 권리를 가진 자에게 통치권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겔 21:26, 27)
시드기야 이후로 다윗의 후손 중에서 왕권을 약속받은 분은 예수뿐입니다.
①. 이런 축복을 받는 유다의 성품
이스라엘의 12 아들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다가 그들 중에 선봉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냐민에 대한 보증인이 되겠다고 제안했을 때, 야곱은 르우벤의 제안을 거절해 버렸지만(창42:37-38),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했습니다(창 43:8-13).
이스라엘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그는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도록"(창 46:28) 하였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볼모로 베냐민을 요구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심한 곤경에 빠졌을 때, 간곡히 호소하여 마침내 요셉이 더 이상 자기의 정체를 감출 수 없도록 한 사람도 유다였습니다(창 44:14-34; 45:1-3).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된 요셉에게 절했습니다. 형제들에게 절을 받는 요셉의 부와 지위는 타국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의 탁월성 때문에 얻은 것이지만 반면 유다는 매일마다 접촉하는 가정생활에서 날마다 그의 성실함을 통하여 그 형제들의 존경을 얻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환경의 강요에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은 그를 찬양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입니다.
②. 유다지파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입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9). 이 말씀 속에서 야곱은, 유다의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사자를 정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완전함을 굳게 지키는 사람과 겨루는 것은 늙은 사자를 성나게 하는 것만큼이나 불안전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유다의 성품은 우리가 탐낼 만한 성품이다. 그 성품이란 우리의 신앙적 정절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사단과 그의 모든 군대들의 공격을 받을 때에,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실히 아는 확고부동함이다(마 7:24-25).
출애굽 시 제일 앞장서서 진군합니다(민10:14), 가나안 정탐 시 긍정의 발언을 합니다(민13:~14:)
③. 실로가 오십니다.
유다에게서 실로(그것을 가진 자, 그것이 속한 자)가 오시며 모든 백성이 실로에게 복종(prosdokiva ejqnw'n - 나라가 기다린다, 나라가 기대한다, 나라가 찾는다)한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모든 나라들이 메시야(그리스도)를 찾음을 의미합니다.
④. 실로는 옷을 포도주에, 포도즙에 빱니다.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창49:11) 실로는 옷을 포도주에 씻으며(plunei'), 포도송이 피안에(ejn ai{mati stafulh'")옷을 던지게(빨게 - peribolh;n :옷을 입는다, 주위에 던진다) 됩니다.
이 말씀은 실로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 받는 예표입니다.
4). 해변에 거하는 스블론
이스라엘은 스블론의 거주지가 시돈의 바닷가 배를 정박하는 부두까지라고 말합니다.
가나안땅을 점령한 12지파의 지형도를 보면 스블론이 바닷가에 거주한 것이 아님을 볼 때 이스라엘이 스블론을 향한 예언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위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십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4:13)
예수님은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바다를 중심한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고 하는데 이 지역은 수산업의 중심지 중에 한곳입니다.
①. 시돈이라 함은 수산업을 하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시돈 지방은 시돈(Sidon) 또는 사이다(Saïda, 아랍어: صيدا, Ṣaydā, 페니키아어: צדן, Ṣydwn, 그리스어: Σιδών, 라틴어: Sidon, 히브리어: צידון, Ṣīḏōn, 터키어: Sayda)는 레바논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레바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시돈은 아랍어로 "수산업(어업)"을 뜻한다고 합니다.
시돈은 티레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구는 약 20만 명이며 수니파 무슬림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시아파 무슬림과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 마론파 신자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이 예언한 시돈에 거한다 함은 레바논 남부의 시리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바다를 중심한 수산업에 종사함을 의미함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5).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잇사갈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창49:14)는 말씀은 양의 우리사이를 추첨하여(klhvrwn) 얻은 곧은 아름다워(kalo;n - 아름다운, 흠잡을 것이 없는, 좋은)서 형제들이 욕심낼만한 곳(ejpequvmhsen - 욕심내는 사람, 동경한다)으로서 이곳은 안식(회복 ajnapauovmeno")을 얻는 장소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갈릴리 바다의 남쪽 끝에서 다볼산 까지의 지역으로 비옥한 평야지대로 농업이 발달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스블론이 이 땅에서 농부가 되어 포도원을 경작 할 것을 예언합니다.
①. 이 땅은 기름진 토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잇사갈이 기름진(pivwn)땅에서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gewrgov")로일(노동)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②. 여기서 생산된 포도는 예루살렘성전의 포도주로 드려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성경에서는 잇사갈이 제비뽑아 거주하는 땅이 “양 우리 사이에 있는 건장한 나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6). 독사 같은 단
이스라엘은 단을 향하여 “독사와 같고, 뱀과 같으며 말굽을 물어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는 자”라 한 후 자신은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첩경의 독사(ejgkaqhvmeno" ejpi; trivbou)란(ejgkaqhvmeno" - 고용되어 숨어서 기다리는 정탐꾼, trivbou -밟아 다져진 길) “밟아서 다져진 길에 고용되어 숨어 기다리는 정탐꾼”이라함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본 단의 성품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단은 좋은 일, 선한 일에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해하는 일에 동역하는 성격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은 이스라엘에게서 아들로서의 인정을 받는 행위를 하지 않고 늘 형제를 판단하며, 구별하며, 정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krinei' - 판단한다, 구별한다, 언도한다, 인정한다)”하였으며 이스라엘은 이런 단을 지파(아들)로서 인정하지 않음을 보아 그는 형제들 사이에서 항상 악의 편에 서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이간질 하는 성품의 소유자로 보여집니다.
①.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에게 분배된 땅이 좁다고 여겨 다른 지파의 땅을 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로부터 상속된 땅 이외의 땅을 요구함으로 이스라엘의 공동체로서 구비조건을, 협동심을, 동역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단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만 이천 칠백 명이라”(민1:39)고 기록되었으며 가나안땅에 들어가 분배 받은 단 지파는 분배받은 땅이 부족하다 여겨 정복사업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습니다(수19:47)
이 성읍은 원래 라이스 또는 레셉이라고 불렀으며,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왕상 12:28~30)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환란을 승리의 기회로 만드는 갓
갓의 이름은 “복된”이라는 뜻이며 갓의 성품은 목적을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박격이란 “마구 몰아 침”이라고 하니 이는 갓의 성품이 환란을 당할 때 주저앉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일어나 환란을 이기고 목적한 것을 쟁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대상12:8)
8). 통치자의 떡과 사치품을 진상하는 아셀
아셀이 거주 할 땅은 농업을 주로하는 기름진 땅으로 이땅은 “방종하고, 호화찬란한 생활을 할 정도로 기름진 땅”이며 이런 땅을 아셀지파가 소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후에 솔로몬 왕은 왕궁과 성전건축에 협력한 두로왕 히람에게 이당에서 나는 산물을 줍니다.
9). 음악하는 납달리
암사슴이란 민첩함을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자란 음악에 능통한자를 말합니다.
10). 요셉을 향한 예언
①. 요셉은 젊고 열심을 내는 자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22)에서 무성한 가지(zhlwtov" - 열심있는 자)로 말하는데 이는 요셉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하여 열심을 내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요셉을 지칭할 때 내 젊은 아들(uiJov" mou newvtato" - 젊은, 새) 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셉은 당시 나이가 63세의 고령입니다만 이스라엘이 보는 나이는 새파란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의 늙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모세도 80세의 고령의 나이에서 부름받아 40년 동안 충성되게 일하였습니다.
②. 매사에 요셉은 전능자를 의지하였습니다.
창49:23~24은 형제들은 육신의 세력을 의지하였고 요셉은 전능자 하나님을 의지하였다고 말씀하며 이스라엘은 이를 활을 의지한 것에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활이란 의지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을 알게 되며 요셉의 활은 전능자를 의지함을 알게 합니다.
요셉을 중상 모략하는 자, 특히 시므온이 죽이려고까지 하였으나 하나님이 변호해 주심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③. 요셉이 의지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승리의 권세자가 나옵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4하) 라고 말함으로 메시야가 요셉의 지파를 통하여 태어 날것처럼 말하는 듯이 보이나 “그로부터(ejkei'qen)”란 “그리로 부터 곧 전능자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의미이며 요셉이 의지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목자가 탄생함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 본문이 지지하는 말씀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 권력을 얻은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를 얻도록 만드심이라는 말씀입니다.
④. 전능자를 의지하는 자가 받을 복
요셉은 전능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과 하나님이 만사에 도우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은 창49:24하 반절에서 말하듯이 “그리로부터” 곧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됨을 말씀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의 이 예언은 전능자를 의지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만약 예언이 요셉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면 그로부터(ejkei'qen)가 아닌 너(sou)라고 기록해야 하나 그로부터라고 기록함으로 알게 합니다.
⑤. 반석인 목자의 축복은 형제들 중에 지도자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49:26하)하였는데 “뛰어난 자(hJghvsato - 지도한다, 인도한다)에게 돌아간다.” 함은 유다와 같은 성품을 가진자에게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⑥. 영원한 산 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영원한 산(ojrevwn monivmwn - 유일한 산, 홀로인 산)으로 말씀하고 있으며 산(ojrevwn)이라고 함은 경계라는 의미와 산이라는 의미를 함유합니다.
일곱 머리 짐승에게는 일곱 산이 있으며(계17:9), “파괴하는 자들이 광야의 모든 벗은 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렘12:12),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왕하23:13)
예수님에게는 시온산(계14:1)만 있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유일한 산은 시온 산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6)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2:2)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겔34:26)
11). 노력 없이 이득을 얻는 베냐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10.6; 눅10.3; 요10.12; 행20.29)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물어뜯는 이리”라고 함은 “ 빼았는 이리(luvko" a{rpax - 늑탈하는 이리, 도적질하는 이리, 빼앗은 이리, 탈취하는 이리)”라는 의미로서 이리의 습성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베냐민은 이처럼 본인 스스로 노력하여 산업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다른 지파가 노력하여 빼앗은 것을 소유로 삼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큰 환란을 당하지 않고 자랍니다.
밧단아람에서 형들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며 세겜에서 위협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벧엘의 하나님의 집에 도착해서 태어납니다.
이같이 유약한 베냐민이나 하나님은 형제들을 통하여 기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