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에 다닐 때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사흘 만의 부활에 대한 모형이라고 배웠고, 이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여기서는 마태복음 12장의 그 사흘에 대한 언급은 모형 관계가 아니고 문학작품에 나오는 복선(伏線)이라는 점을 밝히려고 한다.
나는 당당뉴스에 올린 <요나서는 예언서인가?>(2017년 3월 30일)라는 칼럼에서 요나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욥기와 같은 부류의 지혜서라고 말했다. 성경에서는 요나서를 예언서로 분류하지만, 실상 그것은 유대인의 이방인에 대한 배타주의를 풍자하는 문학작품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살았다는 것은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우화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하려는 요나를 회개시키기 위한 에피소드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지낸 사흘을 우화라고 말하면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이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살려내실 수 없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없다. 이것은 요나서가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이 요나에 대해서 언급한 정황을 살펴보면, 유대교 지도자들이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마 12:14).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기도 했다(마 12:24).
이런 정황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39-40)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어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한 것을 언급하시고 나서 당신은 “요나보다 더 큰 이”(마 12:41)라고 말씀하셨다. 결론에 해당하는 이 마지막 말씀이 중요하다. 당신을 박해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시려는 요점은 그들이 박해하는 예수님이 요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고 훨씬 더 큰 일을 하신다는 점이다.
그런데 모형론자들은 요나와 예수님이 겪은 사흘의 고난에서 사흘이라는 숫자와 살아났다는 공통점에 주목해서 요나는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구약의 사건이나 인물이 신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행적과 유사한 것을 찾아내서 구약의 그런 기록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모형론의 전제는 유사성이다.
그런데 요나의 사흘과 예수님의 사흘은 아주 다르다. 요나는 하나님의 지시를 거스르고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을 뿐 아니라 고래 뱃속에서 사흘 동안 죽지 않았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고 실제로 사흘 동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
따라서 요나의 행위와 살아난 것을 예수님의 순종과 부활하신 일을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요나와 예수님 사이의 공통점은 사흘이라는 숫자뿐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흘과 다른 요나를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형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유사성에 착안하지만, 복선(foreshadowing)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앞으로 전개될 것을 독자에게 미리 언급함으로써 나중에 그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개연성을 높이는 기법이다. 복선은 그것이 언급되는 문맥에서는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시다가 살아나신다고 언급하셨을 때 그 말씀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게 되었다. 이렇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 복선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표적’(sign)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던지신 화두는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살아난 ‘기적’(miracle)이 아니라, 요나가 니느웨를 회개시켜서 그들을 구원한 행위이다.
요나의 사명은 한 도시 니느웨의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일이다.
모형론자들은 여기서 예수님과 요나의 구원 사역이 유사하다고 보고 요나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표적을 말씀하시는 글에서 그 사역의 유사점만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역의 차이를 읽어야 한다. 글을 읽을 때 어느 한 부분만을 빼내서 그것이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인 양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전체 문맥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예수님은 요나의 사명과 당신의 사명의 내용이 유사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명의 크기가 얼마나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박해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마 12:41; 눅 11:32) 선언하셨다. 그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당신이라고(마 12:42; 눅 11:31 )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반복은 강조이다.
예수님은 왜 당신이 “요나보다 더 큰 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강조하셨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죽었다가 부활하실 메시아라는 점을 의중에 두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중에 두셨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을 박해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당신이 요나나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당신이 인간인 요나나 솔로몬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더 큰 이”라는 언급에 함축된 이 엄청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요나가 예수님과 비슷하다고, 달리 말해서 요나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요나보다 더 큰 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파악했다. 따라서 마태복음 12장에만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마태복음 12장과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된 “요나보다 더 큰 이”라는 기록도 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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