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는 추억일까?
이제 방학시즌이다. 지금은 농어촌에 연고를 두는 가정이 매우 적다. 하지만 50~60여년전에는 농어촌에 연고를 둔 가정들이 많다보니 방학이 되면 시골 친척집들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그 지역의 아이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몰려다니게 된다. 낮에만 몰려다니면 그래도 괜찮은데, 문제는 밤에도 몰려다닌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낮에 봐 두었던 오이 참외 수박 등등 간식거리가 될만한 열매들을 손대게 된다. 이것을 서리라고 말한다.
행위 자체를 평한다면 도둑질이다. 법률용어로 절도. 그럼에도 도둑질이라 말하지 않고 서리라는 다소 생소한 우리말로 표현하는 이유는 "철부지들의 장난"으로 봐준다는 포용의 의미이다. 하지만 간이 큰 애들은 남의 집 과수원 울타리를 넘어들어가 복숭아나 살구 사과등을 손대게 된다.
분명히 울타리가 쳐있는 남의 농장을 침입해 농작물에 손을 대면 더이상 서리라고 말하지 못한다. 바로 절도가 된다. 그냥 간식거리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업으로 하는 작물에 손을 댓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 운동삼아 텃밭을 다녀오는 길에 농장 입구를 배회하며 이밭 저밭 기웃거리는 두 여인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이들은 강한 연변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었다. 순간 촉이 작동을 한다. "바로 저런 여자들이 우리밭에 들어와 마늘을 가져갔겠구나!"
조선족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언어교정이라고 말한다. 중국동포라고 모두 연변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절대 다수가 함경도 출신이다보니 연변사투리를 사용할 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조전족도 20%는 된다. 그래서 가장 배우기 쉬운 동해안 언어계통인 경상도 사투리를 배워 연변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게 된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아파트가 서민아파트 지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편이다. 하천의 미나리 채취는 90%가 조선족이다. 아주 드물지만 극소수의 사람은 정식으로 절차를 거쳐 도시텃밭에 농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만족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잘 안다.
직접 농사를 해보니 이게 할일이 못된다.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고 힘도 든다. 하지만 미리 이밭 저밭 눈여겨 뒀다가 사람들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손을 뻗으면 아주 쉽게 원하는 작물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기왕이면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서리인 샘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해보니 "할게 못된다"고 판단내린 농사를 직접 수고하여 기쁨을 누리기 원하는 자들이 재배한 농작물은 그들에게는 기쁨인데, 그것을 탈취하는 행동이니 엄연한 범죄이다. 결코 서리라고 봐줄 사안이 아니다.
나도 1천여개의 마늘을 심어 수확을 앞두고 겪은 도난의 추억이 아직도 여운에 남는다. 도둑은 아무것이나 가져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판단에 가장 좋고 우수해 보이는 것들만 선택을 한다. 그래서 농부는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두번다시 그런 아픔을 경험하고 싶지않아 울타리를 2중으로 설치를 하였다. 하지만 시에서 5평씩 쪼개 분양하는 도시텃밭은 그저 고라니망 정도 밖에는 설치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