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줄 외 1편
김길중
묶여있던 시간에서 풀린 것처럼
세월의 외곽을 뚫고 나온 것처럼 고집스러워 보이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 뿌리는
어릴 적 본 아버지 팔뚝의 힘줄 같고
시장 통 노파의 손등에 불거진 검붉은 핏줄 같다
생의 언저리에서 생긴 질김으로
구불구불해진 저 뿌리에 걸려 넘어졌으니
탓할 일은 아니다
땅을 박차고 나와
무뚝뚝하게 뻗어나간 것이
문득 한 나무를 끌고 가는 고집스런 줏대 같아
내게도 삶이 몸살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나를 끌고 가는 고래심줄 같은 게 있었으면 싶어진다
심줄은 질겨야 제맛이라고
아주 질기고 질긴
간이역
김길중
저녁 빛이 무너지면
이 간이역에는 기다림이 멈추게 돼
나무의자에 앉아있던 기다림은
어스름 속을 서성이다 철로 아래로 뛰어내리고
어떤 눈빛은 키 작은 소나무에 걸려있기도 하고
소소한 말들은 간이역 외등 불빛에 기대고 있어
나는 한 사람을 추스르느라 철길 옆을 서성였다
석양에 물린 추억이 채 아물기 전
인화되지 않은 날들은 스스로 어두워지고
기척 없는 기적소리가
되돌아서려는 나를 자꾸 잡아당겨
뫼비우스 띠 같은 만남과 헤어짐을 걸으며
느닷없는 겨울 산처럼 가볍게 야위어 갈 것이다
마지막 기차가
한 사람의 모퉁이를 오래 돌아가고 있다
(김길중 자료)
성 명 : 김길중
약 력
- 2023년 「애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