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임랑 보호소나무(수령 500년)와 당산
정훈희 김태화 라이브 토일 오후 3시
창고였을까 집이었을까 집이라면 너무 작고, 아니면
층층나무
회동호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공사시작하여 1946년에 완공되었다. 당시 5개 마을이 수몰되었다고,
둘레길 둘러 나오면 춘차국이 한창이다. 회동은 회룡포와 같은 의미로 근처 동대는 부산 8경 중 하나
동기모임을 가진 곳에서 시민공원 한바퀴 돌면 세상 뭐가 부러워랴?
울주 남부 청소년 수련관
남창들
서서 중서 하서라? 다른말로는 서리 중리 하리겠네
삼평초등학교
치자꽃
빗살무늬미주메뚜기?
명선교 위에서 남창천
명선교 위에서 명선도
그 오른쪽에 진하해수욕장
또 오른쪽에는 서생왜성이
오래된 향나무와 비각, 비석의 주인공은?
명지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 을숙도 광장
장관장 앞 회나무(수령 189년) , 괴목, 홰나무, 회화목, 괴목이라고도 하며, 장관장을 지을 때(1835년) 심은 것
옹성터, 언양읍성 영화루처럼 복원될 날 오겠지
다시 찾은 남창, 이번에는 진하쪽 아닌 반대쪽 귀지마을
떡갈수국
멀구슬
석류
남창장날 뮤지컬(옛날에는 창극이라 했다)
태종사 수국이 기찬데 아직은 조금 이르네
봄 유채가 한창이던 대저 메밀밭 꽃은 7월초 절정을 이룰 듯
합천 영암사지 석등(모형)
정과정곡, 암행어사 박문수
과정교
400년 된 팽나무와 4억 년은 됐을 바위에서 세월을 보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 정과정곡
▢ 정과정곡(鄭瓜亭曲)
『고려사』악지에 제작동기와 이제현(李齊賢)의 해시(解詩)가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말 노래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한다. 또 『대악후보(大樂後譜)』에는 노래와 함께 곡조도 아울러 표시되어 있다.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작자가 확실한 유일한 노래이다. 『고려사』악지에 따르면 작자는 인종과 동서간으로 오랫동안 왕의 총애를 받은 의종이 즉위한 뒤, 참소를 받아 고향인 동래로 유배되었다. 이때 의종은 머지않아 다시 소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오래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이에 거문고를 잡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정과정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무신란이 일어나 명종이 즉위한 해로 작자의 호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이 노래를 ‘정과정’이라 하였다.
유배지에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절실하고 애달프게 노래하였다하여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널리 알려졌으며 때문에 궁중의 속악 악장으로 채택되어 기녀(妓女)는 물론 사대부간에도 학습의 대상이 되었다.
후대에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 같은 연주지사의 원류가 되었다. 노래의 제작 연대에 대하여서는 ① 1151년(의종 5)∼1170년(의종 24), ② 1151년(의종 5)∼1157년(의종 11), ③ 1166년(의종 20) 이후, ④ 1170년(의종 24) 9∼10월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여기서 의종 5년이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은 이 해가 의종의 아우를 추대하려는 음모에 작자가 가담했다는 참소를 입어 동래로 귀양갔기 때문이며, 『고려사』악지의 해설을 존중하여 귀양간 이후 상당 기간이 흐른 이후의 어느 시기에 임금의 소환을 기다리며 지은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종 24년으로 보는 근거로는 이 해에 무신의 난이 발생하여 의종이 폐위되고 작자는 소환되기는커녕 다시 거제도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이때 의종이 축출됨을 슬퍼하는 동시에 자기의 곧은 절개는 변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 내용과 『고려사』의 해설이 일치하므로 앞의 견해가 타당성하다고 본다.
시의 형식은 문학상 10구체 단련(單聯)으로 되어 있으며, 악곡상으로는 속악에서 가장 빠른 템포인 ‘삼진작(三眞勺)’으로 모두 11개의 악절로 나뉘어 불렸다.
그래서 악곡상의 변화에 따라 행(行)을 구분하면 모두 11행이지만, 악곡상의 제8행인 삼엽(三葉) 부분과 제9행인 사엽(四葉) 부분을 통합하여 전체를 10행으로 다루면서 문학적 형식으로는 10구체 사뇌격(詞腦格)향가의 계승으로 간주한다.
이 작품은 사뇌가의 양식을 수용하면서도 ‘아소 님하’라는 낙구(落句)의 위치가 정통 사뇌가와 다르다는 점에서 사뇌가의 해체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장르를 향가에 귀속시키고 쇠퇴기의 향가 혹은 향가의 잔존형태로 처리하기도 한다.
아니면 별곡(別曲)의 양식이 나타나기 이전의 특수 형태라 하여 전별곡적(前別曲的)형태라고 보기도 한다. 한편, 이 노래의 제5행과 제6행의 사설이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의 제3연과 의미론적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부분은 당대에 유행하던 민요사설을 수용한 것으로 보아, 이 노래를 10구체 사뇌격 향가라는 기존 장르의 양식적 변용에다 당대에 유행하던 민요를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창출한 독특한 형태로 이해하기도 한다.
『악학궤범』에 수록된 노래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前腔) 내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中腔) 山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後腔)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附葉) 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
(大葉)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
(附葉)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二葉) 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이다
(三葉) 힛 마러신뎌
(四葉) 읏브뎌 아으
(附葉)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
(五葉)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② 현대어 풀이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더니/
접동새와 나와는(그 울고 지내는 모양이) 비슷합니다그려/
(그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며(모든 것이) 거짓인 줄을/
(오직) 지새는 새벽달과 새벽별만이(저의 충정을) 아실 것입니다/
(살아서 임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면) 죽은 혼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아―/
(임의 뜻을) 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저 자신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간신배였읍니까)/
(참으로) 過失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임께서 죄 없는 몸이라고 용서하시고 召命하실 줄 알았더니) 말짱한 말씀이었구나(거짓말이었구나)/
(정말) 죽고만 싶은 것이여. 아―/
임께서 벌써 저를 잊으셨습니까/
맙소서 임이시어, 돌려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박병채 역)
사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 두 줄에서는 임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모습이 산에 사는 접동새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다음 두 줄은 자기 죄가 임금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며, 참소당한 바가 허망하다는 것을 새벽달과 새벽별이 알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넋이라도 한데(같이) 가고 싶다고 하였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따지며, 임금이 자기를 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잘 못도 허물도 전혀 없다 하고, 그 모두가 참소하는 무리들의 말일 따름이니 죽고 싶다고 하였다. 마지막 두 줄에서는 임이 자기를 벌써 잊었는가 묻고, 마음을 돌려 총애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제현은 이 노래를 「소악부(小樂府)」라 하여 칠언절구의 한시로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님을 생각하여 옷을 적시지 않을 때 없으니/봄철 산속의 접동새와 같도다/옳고 그름을 사람들이여 묻지 말라/지는 달과 새벽별 만은 알아 주겠지[憶君無日不霑衣 政似春山蜀子規 爲是爲非人莫問 只應殘月曉星知]”사설내용의 맥락을 살피면 이 노래는 신충(信忠)의 「원가(怨歌)」와 연결된다.
자기를 돌보아 주겠다고 한 임금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을 모티프로 하여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원가」와 달리 원망보다는 하소연의 농도가 짙다. 자신의 위치를 아주 낮추고 버림받았더라도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어떤 이는 이 노래가 옛날부터 내려오던 민요인 속가(俗歌)에서 6구체 형식을 이어받아 무가적(巫歌的)인 성격을 지닌 형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세종실록』세종 1년(1419) 정월조에 의하면 진작(眞勺)에는 만조(慢調)·평조(平調)·삭조(數調)가 있다 하였고, 후전진작(後殿眞勺)의 이름으로도 쓰이며, 속악 조명(調名)이라고도 하였다. 진작은 ‘進酌(진작)’이나 ‘進爵(진작)’은 잔치인 주연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대동운부군옥』에 의하면 “진작에는 일(一)·이(二)·삼(三)·사(四)가 있는데, 일진작이 가장 느리고, 이·삼·사는 이에 버금한다.”고 되어 있어 일진작은 가장 느리고, 이진작·삼진작·사진작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빨라지는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진작사체(眞勺四體) 또는 진작사체사성(眞勺四體四聲)이라고도 한다.
『대악후보』에 전하는 악보를 해독하여 보면 진작 일·이·삼에는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부르지만, 사는 장단과 가락이 반으로 축소된 까닭에 가사를 붙일 수 없고, 따라서 음악만 연주하게 되어 있다. 전통음악의 형식에 있어서 일·이·삼·사는 만조·평조·삭조 또는 만기(慢機)·중기(中機)·삭기(數機)로 쓰기도 한다.
현재의 곡조 가운데 옛 형식을 갖춘 것에도 「영산회상(靈山會相)」중 상영산(上靈山:긴영산)·중영산(中靈山)·세영산(細靈山:잔영산)·가락덜이의 형식과 산조의 진양조(긴조)·중몰이·잦은몰이·휘몰이 형식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옛 형식을 복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이·삼, 만(慢)·평(平)·삭(數), 만(慢)·중(中)·삭(數)은 다음 곡으로 내려가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복잡한 가락에서 점점 성긴 가락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〇 정과정곡과 관련한 것들은 수영구 망미동에 ‘과정로’라는 도로가 있고, 근처 코스트코 위에는 정과정 시비와 정자가 있으며, 건너편 수영강에는 과정교도 있다. 또 부산박물관에 정과정곡에 대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24.6.23 확인) 과정교 밑에 갈맷길 인증대가 있어 여러번 지나기도 한 곳이다. 시비는 1985년 건립된 것이라는데 언제 다시 가봐야겠다.
내년 말쯤에는 차 아닌 사람만 다니는 다리가 수영강에 생기겠네
수영강가 현대 아파트 앞에 있는 선상탄, 여기에 선소가 있었다고
▢ 船上嘆 - 朴仁老(1561~1642) 현대어 풀이
「선상탄」
늙고 병든 몸을 통주사로 보내셔서
을사년 여름에 진동영으로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만 있겠는가.
긴 칼을 빗겨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에 쫒긴 황운은 원근에 쌓여 있고
아득한 창파는 하늘과 한 빛이로구나.
선상에 배회하며 고금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든 헌원씨가 원망스럽구나.
바다가 아득히 넗게 천지에 둘러 있으니
진실로 배 아니면 풍파가 심한 만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가 엿볼 수 있겠는가.
무슨 일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했는고
만세 천추에 끝없는 큰 폐단이 되어
온 천하에 만백성의 원한을 길렀는가.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 비록 있다 하더라도 왜족이 아니 생겼더라면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뉘 말을 곧이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데려다가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였는가.
장생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 년을 살려고 하였던가.
남들처럼 죽어가니 유익한 줄 모르겠구나.
아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가 너무 심하구나.
신하의 몸으로 망명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빨리나 돌아왔으면
나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니겠는가.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 하랴.
속절없는 시비를 팽개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이 그릇된 줄을 모르는구나.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편주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다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과도 아니 바꿀
경치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애를
일엽주가 아니면 어디에 의지해 다니겠는가.
이런 일을 보건데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 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나는 듯한 판옥선을 밤낮으로 빗겨 타고
바람을 맞아 달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의 배 가운데는 술잔과 술상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는데
오늘의 배 가운데는 대검과 창뿐이로다.
똑같은 배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사이의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때때로 머리 들어 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 눈물을 변방의 하늘 아래 떨구노라.
우리나라의 문물이 한당송에 뒤지랴마는
국운이 불행하여 왜적의 흉모에 만고에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백 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보잘 것 없지만 남의 신하 되어 있다가
궁달이 길이 달라 못 뫼시고 늙었다 한들
우국 단심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을런고
결기에 겨운 장한 기상은 늙을수록 장하다마는
조그만 이 몸이 병 가운데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망을 풀기가 어려울 듯 하건마는
그러나 사제갈도 생중달을 멀리 쫓고
발 없는 손빈도 방연을 잡았거든
아물며 이 몸은 수족이 갖추어 있고 목숨까지 이어 있으니
쥐 개의 도둑질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랴.
나는 듯한 배에 달려들어 선봉을 무찌르면
구시월 서리 바람에 낙엽같이 무찌르리라.
칠종칠금 고사를 우린들 못할 것인가.
꾸물거리는 왜적들아 빨리 항복을 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으니 너를 구태여 섬멸하겠느냐.
우리 임금 성덕이 함께 살고자 하시니라.
태평천하에 요순같은 군민이 되어서
일월 빛의 빛남은 더욱 밝았거든
전선 타던 우리 몸도 고깃배에서 늦도록 노래하고
가을 달 봄바람에 높이 베고 누워 있어
성군의 치하에 바다의 잠잠한 파도를 다시 보려 하노라.
― 핵심정리
‘선상탄’은 ‘배 위에서의 탄식’이다. 변방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작가가 병선(兵船)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갈래 _ 가사(양반 가사, 전쟁 가사)
· 성격 - 우국적
· 주제 - 우국충정과 태평성대의 염원
· 화자의 상황 -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아직 전쟁의 기운이 끝나지 않은 부산진에 통주사로 내려와 이 노래를 지음.
· 해제
이 작품은 선조 38년(1605년)에 지어졌으며, 목판본 《노계집蘆溪集》에 국한문 혼용표기로 실려 있다. 박인로가 그의 나이 45세 때 통주사統舟師로 뽑혀 부산에 와서 수군 생활을 하며 지은 전쟁 가사다. 모두 144구로 서사序詞에서 배의 유래를 중국의 고사와 관련지어 노래하고, 본사本詞에서는 선유船遊의 즐거움을 노래하였고, 결사結詞에서는 왜적들의 항복을 받아 태평시대가 되면 뱃놀이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세상국어사전:티스토리]
17,18을 같이 올렸지만 완보일은 다르다. 인증서가 늦게 왔기 때문으로 이제 정말 하산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세월은 결코 잡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20번은 채우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