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30]챠오, 이탈리아!(2)
피렌체를 가보셨겠지요. 꽃(flower)에서 유래한 ‘플로렌스’라는 옛 이름처럼 ‘꽃의 도시’로 불린답니다. 피렌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운 ‘르네상스’ 발상지이자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도시라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는 유럽 역사에서 중세가 끝나고 근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난 문화 예술운동으로,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문주의(humanism), 즉 인간의 가치와 능력, 현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피렌체 등 북부 도시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예술과 학문을 후원하는 명문가 메디치의 공헌도 컸답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아테네학당>의 라파엘로 등이 대표주자였습니다. <신곡>을 쓴 단테의 고향이자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유명한 우피치박물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작품 등, 헬 수 없이 버거운 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도시. 다른 큰 도시는 몰라도, 로마와 피렌체는 한번쯤 가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최근 김민종과 예지원 등이 열연한 <피렌체>라는 영화가 곧 상영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페키오다리’나 미켈란젤로광장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였을까요? 우피치박물관에서 <비너스의 탄생>(보티첼리 작)을 감상하며, 중앙시장에서 바베큐파티를 즐겼을까요? 피렌체두오모 쿠풀라를 오르는 460여 계단과 조오또가 건축했다는 종탑의 계단도 힘들게 올랐겠지요? 개봉박두라니, 이 영화만큼은 아내와 다정하게 손잡고 볼 생각입니다. 불과 두 달 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 딱 맞춤인 영화인 셈이죠. 파도바의 맛집에서 파스타와 더불어 와인 한 잔을 우아하게 마신 후 조오또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한 것도 좋았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비중있게 언급했지만, 아카데미아 갤러리에서 본 <다비드>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보고 있어도 자꾸 보고 싶은 명작 중의 명작. 대자연과 천하의 명작 앞에 선 인간은 또 얼마나 작아 보이던지요. 피티궁전이나 보볼리공원은 다른 곳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곳으로, 괜히 발품만 판 느낌이었습니다.
다음날(10월 10일), 그 유명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같은 피사사탑을 갔습니다. 역시 인산인해. 재밌는 것은 미국에 사는 친구부부가 지중해 크루즈여행을 하다 그날 피사사탑에 들렀답니다. 시간이 맞아 사탑 앞에서 해후를 했다면 기막히게 좋았을 것을 카톡만 주고받았습니다. 피사의 사탑은 쓰러지기는커녕 기울기가 조금씩 줄어들어 언젠가 똑바로 설 수도 있다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사탑을 발로 차거나 사탑에 기대기도 하고 손바닥에 올려놓는 등 인증샷을 찍기에 바빴습니다. 이제 ‘친퀘테레’(다섯 개 마을이라는 뜻)를 기차로 둘러보는 시간입니다. 해안을 따라 제법 짱짱한 산길 트레킹이 힘들었어도 마을마다 특색이 있더군요. 신혼부부의 키스하는 사진을 몰래 촬칵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대중교통 버스노선이 헷갈려 4번이나 잘못 타는 바람에 피렌체 인상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란 말이 있지만,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B&B 우리집'에 힘들게 돌아와 숙면을 취하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다음날은 1시간도 넘게 고속버스로 달려 ‘몰(Mall)'에 쇼핑을 갔습니다. 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몽땅 집합해 있더군요. 그 자체가 아이쇼핑하는데 유감이 없었습니다. 대체 ‘구찌백’은 왜 그렇게 비싼 걸까요? 비싼 것들을 선물받기 좋아한, 지금은 감옥에 있는 어느 무지막지한 악녀(惡女)가 생각나 웃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찾는 모델이 없다고 투덜대며 ‘보스’코너에서 맞춤한 허리띠와 티셔츠 몇 장을 샀을 뿐입니다.
이제 피렌체를 떠나 남부의 ‘바리’라는 도시를 유레일 열차로 6시간이나 타고 달려갑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도시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데, 그 바다를 건너면 바로 크로아티아라고 하더군요. 귀국 후 <인간극장>을 보는데, 바리 출신의 여인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내용이 나와 신기했습니다. 그 바리에는 산타클로스의 실제 주인공인 성 니콜라스 신부를 기리는 대성당이 있어 지친 발을 끌며 또 구경을 할 수 밖예요. 시내 전체 관광을 순환 꼬마버스로 대신했습니다. 다음날(13일) ‘스머프 마을’로 알려진 알베르벨로와 중세도시 마테라 1일 관광버스에 올랐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잘 알겠지만 ‘트롤리(Trulli)’라는 독특한 전통가옥으로 유명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트롤리는 하얀 석회암 벽과 회색 돌을 쌓아 만든 원뿔형 지붕이 특징, 멀리서 보니 진안 마이산 탑사의 천지탑인 듯 했습니다.
가옥세를 피하기 위해 단속을 나오면 쉽게 부서지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다고 합니다. 내부를 개조하여 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으며, 대부분 상점과 식당으로 이용되더군요. 이곳도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대체 이탈리아에 세계유산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게 널려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사시(돌) 동굴마을’로 유명한 마테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의 하나랍니다. 수 천 년 동안 바위를 깎아 만든 주거지와 교회는, 실제 보지 않고 사진으로만 봐서는 짐작도 가지 않은,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희한 뻑적지근한 세계유산입니다. 자갈골목과 가파른 계단으로 이뤄진 이곳 역시 트래킹하기에 최고일 듯, 1주일을 머무른대도 다 걷지 못할 것같더군요.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그나저나 숙소를 모두 10곳을 옮겨다니며 머물렀는데, 이 모두의 예약을 6개월 전 대한민국 서울에서 했다는 게 저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세상은 이미 AI가 아니면 돌아가거나 움직이지 않듯,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으면 올스톱이 될 게 뻔하게 돼버렸습니다. 유레일패스나 유럽내 비행기표 예약, 박물관과 도슨트(고급 문화해설사) 안내 예약 역시 국내에서 스마트폰으로 한다는 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또한 B&B 10곳을 찾아가는 구글링도, 보물찾기처럼 숨겨놓은 숙소 키를 찾는 것도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제 아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재주’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세계는 하나(World is one)'가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더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 나폴리로 향합니다.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