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고무신 한 짝을 벗어 들고 오솔길로 올라오고 있다. 빨래 널던 손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 얼굴이 홍당무가 된 순이다. 연전에 부모를 참혹하게 여의고 조모님과 사 남매가 살고 있는 국민학교 2학년짜리다.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외딴 터에 어린 것이 타박타박 걸어온 것이 측은하여 말동무가 되어준 사이 이제는 친구가 되고 말았다.
"아줌마, 이거." 순이가 내어 민 검정 고무신에는 미지근한 논물에 잠긴 밤톨만 한 우렁이가 들어 있었다.
"웬 거니, 이거?" "저기 배대미 논에서 잡았어요" 반갑고 신기했다. 과학 영농이다 다수확 영농이다 해서 보름이 멀다 하고 농약을 쳐 대는 통에 메뚜기는 고사하고 개구리조차 살기 힘든 논에 우렁이가 있었다니, 나는 반가운 마음에 순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주었다.
내가 순이만 했을 때 이른 봄이면 꽃샘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우리는 또래들과 어울려 평촌 뚝방을 내달아 능무렁이 뒷산으로 우우 몰려갔다. 마른 검불 사이사이 불덩이처럼 피어 있는 참꽃을 따 먹기 위해서였다. 암술이 파랗게 물들 때까지 온 산을 누비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또 우우 산을 내려와 들판으로 달렸다.
갈아엎은 논에서 우렁이를 잡고 붓도랑에서 얼음채로 새뱅이(새우)도 잡았다. 그 알 수 없는 힘은 봄바람 같은 설렘이었고 숫된 충동이었다. 지칠 줄 모르고 달리고만 싶은 욕망은 자연의 정기였다. 슬금슬금 논바닥을 기는 것, 어둑신한 구멍 속에 손을 넣으면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잡히기도 했다.
고무신 두 짝에 우렁이가 가득 차면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씩씩하게 맨발로 행진을 했다. 이렇게 잡아온 우렁이를 사기 물 대접에 담아 흙을 우려낼 양이면 장독대 위에서 우렁이는 해산을 했다. 어느 새벽 엄마 우렁이는 빈 껍데기가 되어 물 위에 둥실 떠 있고 하얀 사기대접에는 수십 마리의 새끼 우렁이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나는 조반 짓는 부엌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엄마, 엄마, 우렁이가 죽었다." 어머니는 행주치마에 물손을 씻으면서 한참을 들여다보시고는, "쯧쯧 엄마는 모두 저렇게 되는 거란다." 하셨다. 말 뜻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무서워했다.
요즘 시골마을에는 전에 없이 생신 차리기가 성황이다.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음식을 정성껏 차려 이웃들과 나누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함께 뫼시지 못하는 죄송함을 그렇게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일진대 어찌 그것을 탓할까마는 나는 잔치에 초대받을 때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위로는 층층시하, 아래로는 자식들에게 공경하고 바치는 것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그분들, 생신날 단 하루 북적북적 흥겹다가 모두 돌아가고 나면 큰집에 두 노인만 댕그마니 남는다. 전답 팔아서 자녀들 공부 시키고 출가시키고 전세방 얻어 주고 그리고 남은 것은 집 한 칸, 지고 갈 목숨이 전 재산이다.
"임자, 아들헌테 가서 편하게 살어." 할머니는 도리도리 도리질이다.
"예가 좋구먼유, 영감이나 가서 호강 하슈."
"나두 싫구먼, 조상님 발치에 묻힐 날이 가까운데 가긴 어딜가."
그러나 마루 끝에 걸터 앉은 노부부의 눈동자에게는 선산 마루 노을 빛보다 더 진한 외로움이 활활 타오른다.
(반숙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