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어."
"........그래. 잘 들어가라."
하민호는 날 데려다주고, 자신도 남자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 올라오자, 같은 방 룸메이트 한세연이 뜬금없이 나에게 묻는다.
"너 하민호랑 친해?"
"응? 아니.."
"금방 하민호가 데려다준거 아냐?"
너 눈도 좋다, 얘..
여기 9층인데...어떻게 봤대...
난 당황을 금치 못한채 한세연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하민호 쟤 귀엽지 않니."
"으응...."
"키도 큰데 어쩜 저리 귀엽다는 느낌이 들까."
"그, 그렇지...."
"너랑 친하면 언제 한 번 소개시켜주라."
소개시켜 달란 말에는
왠지 혜신이 얼버무리고 대충 넘어가버린다.
그만큼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일주일에도 몇 번 남자를 바꿔대는 서연에게
하민호를 소개시켜주고 싶진 않아서..
혜신은 씻고 나와서,
다시 책상에 앉아 스탠드만 켜둔 채로
전공책을 폈다.
룸메이트 서연은 벌써 침대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고,
혜신은 그 날 새벽까지
잠오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한 과목을 끝냈다.
다음 날 아침,
또 이교수의 호출이 있었다.
[바쁘지 않으면 지금 교수실로 와주겠나.]
그런 문자 하나로,
이교수는 혜신을 5분 안에
교수실로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교수님, 헥헥. 부르셨어요."
"아, 자네 왔나."
"네. 무슨일로..."
"이것 좀 도와주게."
이교수가 혜신을 부른 이유는,
단지 자신이 키가 작아서 높은 곳에 책을 꽂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의자를 이용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순 없었다.
"민호군을 부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자네를 불렀네."
저는 이 이른시간에 불러내기 미안하지 않으시단 소리신가요....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라, 피곤할 것 같아서 말이네."
저 역시 새벽까지 밤을 새서 피곤하거든요.....
이교수는 몇 가지의 책을 책장에 꽂은 뒤,
다른 잔심부름들을 혜신에게 쏟아내듯이 시켜댔다.
이 작은 교수실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혜신이었다.
"그만 가봐도 좋네."
"네.."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교수실에서 잔심부름만 하다가,
다시 기숙사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혜신은,
카페에 잠깐 들러 커피라도 마시고 잠을 깨기로 했다.
이제 아침 8시지만 카페안은 아침을 해결하기 위한 학생들로 북적였다.
"카페라떼....."
"시럽은?"
"넣어줘. 완전 달달하게."
하민호는 이른 시간부터 카페알바를 하고 있었다.
저 자식....인간아닌 것 같아. 인간이라면 어제 그 시간에 기숙사에 들어가서
지금 이 시간에 알바를 하고 있을 수 없다고.
하민호는 어제 기숙사에 들어가서
분명 중간고사 공부를 했을 게 뻔하다.
근데 또 알바라니...
"카페라떼 한 잔 더 시킬께."
"......"
곧이어, 딱 보기에서 엄청 달아서
막 싫증날 것 같은 비주얼의 카페라떼 두 잔이 나왔다.
휘핑크림의 자태를 보니, 혜신은 그것만 먹어도 하루종일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혜신은 카페라떼 한 잔은 자신이 마시고,
한 잔은 하민호의 앞에 그대로 놔두고 나왔다.
"한 잔은 니꺼다."
"........?"
하민호는 멀뚱하게, 카페를 나오는
혜신을 쳐다 볼 뿐이었다.
민호에게 작업을 거는 수많은(?) 여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커피를 사주며
접근을 했었는데..
혜신은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이 달디단 커피는 제 취향이 아닌데....라고 생각한
하민호가,
카페라떼를 다 비워냈다.
점심시간.
혜신은 도서실에서 여느때와 같이
공부중이었다.
드르륵.
핸드폰의 진동이 문자가 왔음을 알렸다.
서영이었다.
- 혜신. 뭐해?
-"공부중."-
- 밥은?
-"이따가."-
-나와. 사줄께.
-"어디로?"-
-학생식당.
혜신은 서영이 왠일로 밥을 사주냐는
의문을 가졌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학생식당에 도착하자,
서영은 왠 덩치 큰 남자와 함께 있었다.
요즘 썸 탄다던 남자가 저 남자였나?
그러기엔 너무 서영의 취향은 아닌 듯 했다.
서영은 꽃미남 아니면 쳐다도 안보는데...
아니나다를까,
"왔어? 인사해. 체육교육과 김한선선배야."
"안녕하세요.."
"안녕?!"
누가 체육과 아니랄까봐,
우렁찬 목소리에 근육으로 덕지덕지 붙은 어깨와 상체..
여튼 그렇게 셋이서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계산은 역시나 김한선이란 선배가 했다.
밥을 먹는 내내
서영은 김한선이란 선배의 장점에 대해 줄줄 읊는듯 했지만
혜신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침 국을 떠 먹고 있는 혜신에게
서영이 말했다.
"그러니 둘이 한번 만나보는게 어때?"
"푸웁-....."
혜신은 국을 떠먹다 말고
뿜었고,
한선선배는 덩치에 안맞게 볼이 빨개져서 부끄럼을 탔다.
"돌려서 말하진 않을께."
"..네, 네??"
"나와 만나보면 어때? 난 너가 신입생때부터 내 눈에 띄더라."
"..........저, 저기...."
한선선배는 혜신의 손을 꼭 부여잡고
진지하게 말했는데
혜신은 그가 콧김이라도 뿜어대는 듯 보였다.
여튼 어찌어찌 밥을 다 먹었고
셋은 학생식당을 나왔다.
"그럼 난 이제 눈치껏 빠질께."
".......뭐?"
"선배, 다음에 또 연락해요!"
"그래, 잘가. 서영아. 다음에 또 연락하자."
"혜신아, 잘해봐~!!"
"....야, 정서영...."
서영은 노란 스카프를 휘날리며
사라졌고,
그 자리엔 덩그러니
혜신과 김한선선배란 사람만 남았다.
여전히 김한선선배는
부끄럼을 타며,
혜신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저기...제가 중간고사 준비때문에 바빠서..."
"아, 그렇구나. 그래, 시간 많이 뺏지 않을께."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심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김한선 선배였다.
그리곤 자신의 폰을 내밀며 번호교환을 해달라고 하는 한선을 보며,
혜신은 난감했다.
자신은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김한선 선배와 연락하고 지내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그 때 교정안의 큰 나무 밑에서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하민호를 발견했다.
마침 김한선선배도 하민호를 봤는지
갑자기 하민호를 씹어댔다.
"솔직히 저렇게 기생오라비같은 녀석이 뭐가 좋다고,
여자들은 난리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
"혜신아, 네 생각은 어때? 네가 봐도 그렇지 않아?
여러모로 봐도 남자답게 듬직한 나 같은 남자가......"
어느새 혜신과 김한선 선배앞에는
하민호녀석이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채
혜신을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너."
"......나?"
"따라와."
".......뭐, 뭐야"
난데없이 나타난 하민호가
혜신의 손을 잡고
김한선선배에게서 벗어났다.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
19금방에서 이사왔어요.
잘부탁드립니다~
첫댓글 4편은 언제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