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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품 판명 청동호우 1946년 국립박물관이 조사한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호우 중 '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木 于>十'이란 명문을 돋을새김한 몸체 바닥의 X-선 투시 모습. 중앙을 가로지른 부분을 따라 흰색 윤곽선이 확인되는데 이는 적어도 2개 이상 주물틀을 이용해 주조한 증거가 된다./김태식/문화/ 2006.5.24 (서울=연합뉴스) | |
X-선 촬영 결과 3개 주물틀 이용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해방 이후 우리 손에 의한 첫 발굴로 기록된 1946년 경주 호우총 조사에서 출토된 뚜껑-몸통 조립식 청동호우(靑銅壺우<木+于>) 중에서도 몸통은 3개 주물틀을 이용한 주조품(鑄造品)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호우총-은령총 발굴 60주년 소규모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동호우를 X-선으로 투시한 결과 드러났다.
투시 결과 '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木+于>十'(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는 글자를 바닥에 돋을새김한 청동호우 몸통은 두 부분으로 분리된 흔적이 완연하게 나타났다.
박물관 보존과학실 유혜선 박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명문을 새기고 형태를 미리 마련해 둔 두 개의 외범(外范. 바깥 주조틀)과 한 개의 내범(內范.안쪽 주조틀)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호우는 높이 10.3, 아가리 지름 22.9, 밑지름 15, 몸체 최대 지름 23.8㎝, 두께 3-4㎜인 호우 몸체와 높이 9.1, 지름 22.8㎝, 두께 3㎜ 안팎, 꼭지 높이 3㎝인 뚜껑으로 구성된다.
몸체 바닥에서 확인된 명문 '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木+于>十'은 을묘년에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즉, 고구려 광개토왕을 위해 제작한 호우라는 뜻으로 해석되나, 을묘년이 정확히 언제이며, 또 이런 고구려 유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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