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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아니 내 머리 속 한켠에 지우개가 들어있어 어느 일정부분을 지워버렸던 처럼
아주 오래도록 기억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아니라도 일상이 바쁘고 앞만 보고 달려가도 모자랄 날들이 날마다 가득 가득이었으므로.
그러다 인터넷이 일상의 기본처럼 보급되기 시작하고 한동안 인터넷 문화에 중독되어 많은 이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문득 잊혀진 기억 한 조각이 되살아나 어느 날 "아이러브 스쿨" 이라는 웹 사이트에 가입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몇몇 친구들을 찾게 되었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나질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게 되어
잊혀졌던 기억들을 다시 되살리며 한껏 즐거워 하다가 안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차츰 발길과 친구들과의 옅었던 흔적을 끊었다가 어제 드디어 다시 과거의 기억을 기사회생시켜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간의 사연이야 어찌 됐던지 간에 이번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구제불능이 될 것 같아 개인적인 일들을 접어두고
약속 장소로 휘리릭 날아갈까 했으나 불타는 금요일 도로 사정은 기가 막히다 못해 한심하여 날아가기는 커녕 기어갔다는 표현이 맞다.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 버스에 앉아 있자니 그야말로 환장하고 미칠 일이나 그래도 약속 시간에 늦기는 싫어
일찌감치 집을 나선 덕분에 시간에 늦지는 않겠으나 참으로 답답할 일 인지고 만 연발하면서 속을 태웠다.
어찌나 밀리던지 의왕에서는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그래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내니 드디어 안양에 입성.
나홀로 봄바람 맞으며 씩씩하게 버스 터미널에서 안양역 근처로 걸어가면서 친구들이 모인다는 안양역 앞 "낙지마을"에 가기 위해 쥔장에게 전화를 하였더니만
쥔장 또한 미리 도착을 하여 서성이던 친구들과 함께 길 건너편에서 다가오며 반갑게 웃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얼굴이 익숙하다,
어? 장소도 전에 왔던 곳이네 싶어 어느새 곁자리에 동행인이 된 동창 친구 희장에게 물었다.
"야아, 전에 우리가 모였던 장소 아니야? 그때도 여기에서 모였던 것 같은데"
"맞아, 한 십여년 전에도 여기서 모였었어...기억나는구나"
에고 정말이지 이 난감할 기억력이라니...장소 이름만 들었을 때는 감이란 것이 발동하지 않다가 장소를 보는 순간
온갖 촉이 동원되어 하다 못해 화장실까지 새록새록 기억되질 않는가 말이다.
좌우지간,
약속이 생기면 먼 곳에 사는 장거리 손님들이 가장 먼저 오는 법이니 천안에 사는 오랜 지기 희장이와
안산 거처지 용자와 안성댁인 쥔장이 자리를 선점하고 뒤이어 찾아드는 친구들을 기다리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동안 어찌들 변했을지가 궁금하고 그 친구들이 스마트폰에 올려 준 소싯적 졸업 사진들과 비교해가면서 얼굴을 그려보아도
에고 상상은 상상일 뿐....그냥 현장에서 얼굴을 익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메모지를 마련하여
인적사항 적을 준비를 하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도 한탄 할, 직업은 못 속인다 가 정답.
어쨋거나 하나 둘 나타나는 코흘리개 친구들을 보자니 면면이 새롭다.
'그땐 그랬지' 와는 완전 별개이거나 그래도 기본만큼은 변하지 않은 채 유지하거나 혹은 세월값을 덧 입혀 더욱 근사해지거나 하였어도
다들 현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음은 물론 그 여세를 몰아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일상을 살고 있더라는 말씀.
암튼
그동안 그들끼리 리그를 감행하며 즐거웠을지라도 음양의 조화를 맞춰 이제 뒤 늦게 합류한 이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저절로 함성 "우신, 우신" 을 외치며 일발 장전된 알콜 흡입 수순을 밟는다.
참내...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같은 하늘 아래 한 울타리 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전혀 알지 못했던 타인이,
지나가면 도대체 알아보지 못할 얼굴일지라도 그저 소싯적 동창이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 무장해제 되고 대동단결이라니
정말이지 우리네 한국인 정서라는 것은 그 어느 나라 민족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4월 하고도 17일 저녁.
어찌하여 이리도 반갑고 즐겁고 행복한가 말이다.
그저 사회적인 관념과 통념 속의 " ...입니다" 에서" ...야" 로 바뀌는 순간 철부지 어린 시절로 바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
본능적으로 두 팔 벌린 친구의 품안으로 들어가 마구잡이로 웃을 수 있다는 것, 민망해 하지 않으며 옛날 꽃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거리감이나 격세지감을 느낄 새도 없이 밀려오는 친구들과의 낡고 오래된 혹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거나 꼭 생각해내야 했을 추억들.
물론 아직 다 꺼내어지지도, 여전히 들춰보지도 못한 추억의 앨범이 수두룩 하지만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도 족할 이 친구들과의 조화로움이 어찌나 좋던지 한참 만에 다시 찾았어도 여전히 그냥 좋기만 하더라는 말씀.
와중에 20015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는 "우신초등학교" 발전을 위해 앞서
그 학교를 지켜온 선배들의 할 일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우리의 회장 "박근수" 친구.
기꺼이 기수 동창회비도 쾌척해 주고 총동창회비도 분담할 모양이니 알아서 납부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희희낙락 흥겹고도 난리굿이어도 좋을 물이, 흥이 또 오르고 오른다.
그리하여 쉴 새 없이 안주와 술을 부르는 친구들 덕분에 "낙지마을" 쥔장 남미순 친구의 손길은 숨돌릴 틈 없어
함께 앉아 짧은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분주하고도 바빴다는 말씀.
이제 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자...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첫 느낌 만으로.
일단 자의반 타의반 50회 얼굴마담이라는 우리의 친구 김희장은 천안의 명물 밴드와 연주실을 운영하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과거를 뒤로 하고 지금은 유유자적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음악으로 봉사할동을 한다는데
본인은 색소폰 연주자 이지만 함께 하는 음악인들이 30명 정도 된다고 보면 그가 아우르는 삶이 어떨지 눈에 보인다.
한때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다 어느 날 공조직의 일원이 된 이후로
줄곧 경기도 언저리에서 공직을 감당하는 중이라는 나명진 친구는 경기 관광공사에 재직 중.
첫눈에 까탈스럽지 않게 먼저 다가와 아는 척을 해주니 왜 그리 마음이 가볍던지.
마주 앉은 김에 친밀감 증폭 시키며 "한때 중국발 " 운운하다 다른 친구들로 부터 지청구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고
동창들과의 모임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낸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예뻐 보이고 친구라는 이름 앞에 하루를 바치는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그야말로 헐,
말레이지아에서 곧바로 동창 모임으로 날아와 무박 3일의 체력을 자랑하는 에너자이저 최창학 친구.
그에게서 넘쳐나는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은근히 세심한 면모는 그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야물딱지다' 는 말이 참으로 어울릴 것 같다.
아니라도 일년에 반 이상을 남의 나라 그것도 말레이지아에서 승승장구 사업을 해내는 중이니 기타 등등은 안봐도 비디오 일 터.
특히나 자동차 프레임 자동용접기술 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니
개인은 둘째 치고 나라에서도 대우받는 존재이지 않을까 싶고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뿌듯하다.
게다가 그가 여친들을 위해 준비해 온 초컬릿 만큼이나 또 러블리 하고도 달달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더불어 해보면서
검증되긴 핵지만 일회성인지, 확인하지 못한 실제는 어떨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반면에 모든 일에 적극적인 관계로 일 뿐만 아니라 친구 찾기에 달인이 되어가고 있으며
암암리에 많은 노력을 들인 창학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임이 가능하였다는 설, 설, 설.
그곁에 막걸리만을 좋아한다는 아주 점잖아 보이는 우리의 친구 최진식.
사람좋아 보이는 면모는 일단 따고 백점 되시겠다만 긴 이야기는 나눌 새가 없어 거기까지.
송내에서 " 성진목재소" 를 크게 경영하고 있다는 친구의 전언이고 보면 기본적으로 나무 좋아하는 무설재 쥔장 "신선"이 엄청 좋아할 것 같다는.
김순용 친구, 원래 말이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 섞을 일이 없었다.
어쩌면 진중할 수도 있고 나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 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러나 대우를 거쳐 하이마트를 정점으로 개인 사업까지 현직은 물론 죄다 CEO를 거쳤다고 하니
그의 능력은 보지 않아도 다 보일 만큼 탁월하다 할 수 있겠다.
반면
한 눈에 보아도 나 빠릿빠릿함 이라고 쓰여있는 금영철 친구는 지혜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 참으로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친구라는 느낌이 먼저다.
데면데면하고 아직은 익숙치 않을 그 자리, 여친들에게는 불편 할 수도 있었을 자리 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려움을 갖지 않도록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설명해가며 남친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음식을 권하는 센스가 10점 만점에 10점을 지나 보너스 점수까지 획득할 정도.
물론 화성에서 엔지니어링, 기계를 다루는 대표님 되시겠다.
멀리 앉았다. 쑥스러운지 여친들과 눈길도 마주치지 않는다. 악수도 여친들이 자청했다.
이게 뭔 시추에이션? 인가 싶어도 성향이 그런지 알 수는 없으나 암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한상범 친구와는 그렇게 첫 대면을 끝냈다.
하지만 이미 나명진 친구를 통해 면면을 들었으므로 그저 쓰윽... 대림동에서 '파리바케트' 와 카페를 운영중이라는 것을 보면
나름 분위기 맨 일 듯 싶지만 별명은 '헛소리' 라고.
잊고 있었지만 늘 기억 한켠에 있었던 '용자' 라는 이름,
기억 조각 퍼즐 맞추기를 하였으나 일정 부분은 맞고 어느 한 부분이 다르다. 왜 일까?
그러나 지금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내가 찾는 친구 이용자 와 동일 인물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윤용자 친구,
현재는 쥔장이 전에 기거하였던 안산에서 딸내미 산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웃음 많고 분위기 장악력 뛰어난 센스쟁이 전문 주부.
어차피 기억이란 믿지 못할 것이므로 이씨인지 윤씨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동창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의 기수이자 깃발인 박근수 회장 친구.
그의 숨은 노력으로 이 우신 초등학교 50회가 유지된다 고 보면 된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시간을 헌납해가면서 친구들을 관리하며 친구들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유한킴벌리를 거쳐 근면 성실로 이룩한 부를 통해 빌딩을 두채나 소유하고 현역으로 모모 회장직을 겸하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헐레벌떡 뛰어왔다는 것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친구 제연호.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촬영하다 보니 저절로 친구의 바쁨이 한 컷에 담겨 흔들린다.
그러면 어떠랴...실제적으로도 마음 씀씀이 좋은 그 친구는 어릴적 사진도 예쁘더구만 여전히 한 미모 한다.
헌데 알고보니 안산 반월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한다네?
역시....그런데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도 예쁘고 천상 여자다운 면모를 지녔다,
더불어 사람도 아름답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업.업.업...돌발 사태를 자청하며 걷어올린 다리를 남발하는 저 자세는 뭐여?
역시 얼굴마담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친구는 김희장이었다는.
등장하는 순간 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면모를 보이던 이기수 친구.
사진 또한 자유롭게 찍혔다....역시 카메라도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단 한 컷이었지만 친구의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고 의외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친구였으므로 이야기를 나눠 보지 못했다.
단 지난 날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일정 부분 자리를 확고히 하고 가족을 캐나다에 남겨 두고 온 기러기 아빠로서
현재는 강남에서 '스튜디어스 교육원'을 운영중인 원장님이시란다.
뭔가 알게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자. 유. 롭고 싶다 와 자.유. 롭다 를 넘나드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친구들의 면면을 슬쩍 컨닝 했다.
중요한 일은 아니나 모르는 것 보다는 알고 있으면 친구들 알기가 수월하다.
아니라도 그냥 좋은 것이 친구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가 그렇다.
막말로 해서 아주 잘 나가는 친구는 동창회 참석을 우습게 안다.
아주 형편 없는 친구는 밥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고 하며 외면한다.
그러다 보니 어중간한 친구들이 동창회를 찾는다고 한다.
일정 부분이 사실 일 수도 있다 고 인정하고 보자면 실제로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정신적인 한가로움도 함께 오는 법.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인간관계는 경제적 지표로 가늠하게 되어 있다.
잘 나가면 그럴싸 해보이고 어렵고 난감한 처지이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라고 부인해도 소용 없다.
그저 인정을 하고 우리는 좀 더 나은 친구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서로를 살피며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면 그 뿐.
그러다 보면 소외당하고 외면하던 친구들 조차 찾아들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도
여전히 동창 모임이란 밑에서 올라가기는 어려운 법 일 것 일라는 생각도 해본다.
왜? 웬만해서는 누구든 괜히 친구 모임애 가서 주눅 들기 싫으니까.
사설이 길었다.
예전에 무설재 쥔장 신선이 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문경 동성초등학교 친구들을 챙길 때는 왜 저래? 라면서도 어찌 그리도 부럽던지.
서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먼저 기웃거리지 못하고 그냥 무시로 보내지던 세월 뒤로 새삼스럽게 어릴적 친구들이 그립다는 것은
아무래도 현역에서 물러나 인생 전반부를 정리하고 후반부 인생을 잘 살아내기위한 전초석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또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보여지는 것 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암튼 긴 시간을 공들여 찾아들어 짧은 시간동안 동창들과 함께 하고
안성으로 돌아오기 위해 저녁 8시 56분 천안행 급행 전철을 타려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미안하기는 했다.
이후에 그들만의 리그는 어찌 되었을지, 후발주자들과의 조우는 재미있었을지 궁금해 하며 희장 친구와 나머지 밀린 수다를 떨면서도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날아드는 카톡에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어쩔 수는 없. 었. 다.
오늘,
하늘이 중국발 황사 없이 간만에 참으로 파랗다.
무설재 벚꽃은 이제 피는 중이고 3일 천하 목련은 이미 화려한 일생을 뒤로 하고 너저분으로 전락했다.
개인적으로 소싯적 동무,
어릴 적 친구들과 앞으로의 날은 여전히 푸르름 그 자체 이기를 희망하면서 섣부른 글 한자락 올려 본다.
혹시 어줍잖은 표현과 글이 있었다면 바로 연락 콜...
첫댓글 늘 소중한 만남, 향기로운 인연 지속되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벌써? 즐거웠던 기억은 사진으로 남는 듯.
여주의 사진솜씨.글솜씨.또한 전광석화같은 쎈스는 누구라도 따라가지못하지
사진잘봤구 올린글도 너무 잘읽었어
언제나 소녀같은 모습으로 만날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자
여주야 고마워~^^
ㅎㅎㅎㅎ 그러자 우리.
늘 건강하고 색소폰 들을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나도 슬슬 샘이 나려하니 덮어 두었던 용산 국민학교 동창들을
함 찾아봐~? ㅋㅋ
ㅎㅎㅎㅎ 그리하시길.
서울에서 초딩 동창 찾기는 의외로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