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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161편 ※
서서의 어머니
서서를 떠나 보낸 유비는 성으로 돌아왔으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홀로, 망연히 주저앉아 장시간 앞으로의 일을 고심하였다.
그리고 서서가 떠나며 남기고 간,
<주공을 찾느니 자신을 위해 주공을 만드는 게 낫다>는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보낸 유비는 어느 순간 결심을 굳혔다.
(그래, 내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공명을 청해야 한다)
유비는 만사를 폐하고 양양(養陽)
성에서 서쪽으로 이십 리 밖의 융중(隆中)의 와룔강(臥龍江)가에 초당에서 지내고 있다는 제갈양(諸葛亮)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한편, 서서는 유비와 작별을 하고, 허도를 향하여 쉼없이 말을 달렸다.
그리하여 사흘만에 허창성 문앞에 이르자 장수 하나가 병사 하나만을 데리고 있다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서원직 선생이십니까 ?"
하고, 묻는다.
"그렇소이다. 내가 서서요.
헌데 댁은 누구시오 ?"
서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미심쩍어하면서 대꾸하였다.
그러자 장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내가 바로 선생에게 패한 상장군 조인이외다."
그러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 순간, 서서는 <섬짓>하였다.
조인이 계속 말한다.
"제가 선생으로 부터 크게 군사를 잃은 죄 때문에 승상께서 여기서 선생을 기다리다 모셔오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미 사흘 밤낮을 서 있었습니다. 선생이 조금만 더 지체하셨다면 제가 이곳에서 쓰러질 뻔 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데 노여움은 커녕, 반갑고도 반가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서서는 그 말을 듣자, 말에서 퍼뜩 내려 조인의 앞으로 바짝 다가간다.
"조 장군, 승상을 뵙게 해 주시오."
"가시지요 !"
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서를 안내한다.
잠시 후, 서서가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은 조조가 친히 마중을 나왔다.
조조는 오랜 벗을 만나는 듯이,
"원직 !" 하고, 서서의 자(字)를 부르며 다가왔다. 서서가 조조의 앞에 이르러,
"죄인 서서가 승상을 뵈옵니다."
하고, 말하며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다정한 어조로,
"원직, 당신을 오매불망 기다렸다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서는,
"승상, 제 모친은 어디에 계십니까 ?"
하고, 오로지 자신의 관심은 어머니께만 있음을 내비쳤다.
"자당께선 객관에서 편히 쉬고 계시네." 조조는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러자 서서는 놀라며,
"옥에 계신 게 아니었습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헛웃음을 켜며 말한다.
"엉 ? 허허허헛 !...대체,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렸단 말인가 ? 선생의 어머니는 내 어머님과도 같은데,
어찌 자식이 자기 어머니를 옥에 가두겠는가 ? 걱정마시게, 어머님은 객관에 편히 계시네."
그 말을 듣고, 서서는 반신반의 하면서,
"그럼 어머님을 뵌 뒤에 다시 승상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즉석에서,
"그래, 가보게 !" 하고, 쾌락하였다.
그리고 서서가 조인의 안내를 받으며 황급히 객관으로 향하자, 조조가 그의 등 뒤애 대고 소리쳤다.
"얼른 돌아오게 기다리고 있겠네."
객관에 도착한 서서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연거푸 부르며 달려들어갔다.
"어머님, 어머님 ! 소자가 왔습니다 !"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서서의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자 한걸음에 아들에게 달려왔다.
"어머님 !"
서서는 모친 앞에 엎드렸다.
서서의 어머니는 아들을 내려다 보며 울음을 머금은 소리를 했다.
"아들아, 너냐 ? 정말 너냐 ?"
"어머님,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서서는 모친을 올려다 보며 용서를 빌었다.
"그래, 네가 왔으면 됐다,
왔으면 됐다 !"
어머니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서야, 왔으면 됐다, 왔으면 됐어."
하고, 다시 한번 말하며,
"네가 너무도 보고싶었다. 꿈속에서도 널 보았단다."
하면서 아들을 부여잡고 눈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런데 애야, 너는 유황숙 밑에 있다고 들었는 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 하고, 묻는다.
그러자 서서가,
"어머님, 소자에게 보내신 편지에 조조가 어머님을 옥에 가두어 고초를 겪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런 연유로 어머님을 구해 드리려고 바삐 달려왔습니다." 하고, 말을 하니, 서서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 한 번도 그런 편지를 쓴 적이 없다. 그건 너를 이곳에 불러오기 위한 술책인게로다, 술책 !...
그런데 너는 그걸 알아보지 못했단 말이냐 ? 응 ?" 하고, 말하며 아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이에 서서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어째서냐 ?"
"어머님이 옥에 갇혀 계시다는데
어찌 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
아들의 대답에 서서의 어머니는 지팡이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안타까운 한탄을 한다.
"애야, 서야, 너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글을 많이 읽었는데, 충(忠)과 효(孝)
를 같이 하긴 어렵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
유황숙은 인의로운 분으로 현명하고 덕이 있는 분이라고 천하가 다 알고 있지 않느냐 ?
게다가 황실 종친으로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어떤 인간이더냐,
군주를 기만하고 핍박하는 간적이 아니더냐 ! 서서야, 서서 ! 어미는 네가 그릇된 판단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몰랐어 ! 어쩌다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더란 말이냐 !"
어머님의 힐난은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구구절절 옳은 말에 서서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햇다.
그리하여 어머니 앞에 부복하고 잘못을 빌수 밖에 없었다.
"어머님 !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 어흐흐흑 !..."
서서의 어머니는 엎드려 울고 있는 아들을 두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서서는 그렇게 꿇어 앉아 어머니의 용서를 빌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엎드려 있는 동안 별안간 객관 밖에서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큰일났어요 ! 할머니가 대들보에 목을 매셨어요 !"
"어 엇 ?..."
놀란 서서가 달려갔지만, 그렇게도 서서가 오매불망 곁에서 모시고자 하였던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
※ 인물평, 서서(徐庶) ※
유비의 막료를 지냈으며, 자는 원직
(元直)이며, 영천(潁川) 출신으로 원래의 이름은 복(福)이었다.
가난하게 자라면서 검술과 학문을 익혔고, 의협심이 강해 친구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고 붙잡혔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그후 느끼는 바가 있어 이름을 서(庶)로 바꾸고 무예 대신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리하여 비상한 머리때문에 짧은 시간에 학문의 경지가 크게 비상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당대의 제갈양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당대의 영웅을 찾아 나서는 중에,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유비를 만나, 그의 막료가 되었다.
조조가 신야(新野)에서 쫒겨간 뒤, 그의 모친이 조조에게 인질로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자, 효심이 남달리 지극했던 그는 눈물을 머금고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조조는 그에게 과분한 벼슬을 주어 우대하였으나, 그는 조조에게 치세
안민(治世安民)에 대한 의견만 내었을 뿐, 중원(中原)의 세력 다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천고의 미담이 되고 있다.
※ 삼국지(三國志)제162편 ※
일고초려(一顧草廬)
서서가 떠난지 며칠 후, 유비는 융중의 제갈양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도골선풍(道骨仙風)의 노인이 찾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높은 관(冠)을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고고한 노인께서 주공 뵙기를 청합니다."
유비는 혹시 제갈공명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나와 보니, 천만 뜻밖에도 수경선생 사마휘가 찾아왔다.
"아, 선생께서 웬일이십니까 ?"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후당으로 모셔들이고,"제가 군무에 바빠, 미처 찾아 뵙지 못하였는데, 이처럼 몸소 찾아주시니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원직(서서)이 지난번 조조의 군사를 잘 물리치는데 일조했다고 들었소. 그래 지나는 길에 한번 만나 보러
온 것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근심어린 얼굴로,
"선생께서는 며칠 전 조조가 그 모친을 옥에 가두어 놓고 부르기에 할 수없이 이곳을 떠나 허창으로 가셨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수경 선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엣 ? 원직이 모친의 편지를 받고 조조에게 떠났다구요 ? 그렇다면 원직은 조조의 술책에 속았구려 !"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내가 원직의 모친을 좀 아는데, 그 어른은 천하에 둘도 없는 현모요. 아들에게 그런 편지를 보낼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오."
"그렇다면 그 편지는 조조의 위서
(僞書)란 말씀입니까 ?"
"물론 그럴 것이오. 원직이 위서에 속아서 모친을 찾아갔다면, 그분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분이오."
"선생이 떠나면서 일전에 선생께서도 말씀하셨던 융중에 계신 제갈선생을 찾아보라고 하던데,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
수경 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원직, 그 사람은 떠나고 싶거든
저나 떠날 일이지, 공연한 사람을 끌어들이는군."
"선생, 그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
"공명을 위해서 하는 말이오. 공명은 나의 도우(道友)중에 한 사람이오."
"선생의 도우는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
"융중의 제갈공명, 박릉(博陵)의 최주평(崔州平), 영천(潁川)의 석광원(石廣元), 여남(汝南)의 맹공위(孟公威) 그리고 며칠 전에 이곳을 떠난 서원직 등이 모두 출중한 인물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대략(大略)이 통하는 사람은 오직 공명이라오."
"공명 선생이 그렇게도 대단하신 분입니까 ?"
"주(周)나라의 태공망(太公望)과 한(漢)나라의 장자방(張子房)과 비겨도 결코 손색이 없는 분이오."
수경 선생은 이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쳐들며 <허허 !>하고 웃더니,
"와룡(臥龍)이 비록 주인을 얻겠으나 때는 얻지 못할 터이니 아깝도다, 아까워 !"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더
니 표연히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유비는 이런 일이 있고 나자, 더욱 제갈양에 대한 마음이 앙모하여,
다음 날은 관우, 장비 두 아우와 함께 융중으로 그를 찾아갔다.
맑게 개인 날이었다.
유비가 두 아우와 함께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는데, 멀리서 나뭇꾼 하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간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이러했다.
"하늘은 둥근 뚜껑같고, 땅은 바둑판
과도 같네, 승자는 유유자적하고, 패자는 전전긍긍하네"
유비가 듣건데, 노랫말이 신선하고
그 뜻이 세상 이치와 틀림없었다.
유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꾼의 노래를 모두 듣고 나자,
"여보시오 나뭇꾼, 잠깐 나를 보고 가시려오 ?" 하고,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뭇꾼이 다가오자 유비가 물었다.
"좀 전에 부른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이오 ?"
유비는 백성들이 부르는 민요는 시대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는 서서가 남겼던 말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뭇꾼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었다.
그러자 나뭇꾼은,
"아, 네 ! 와룡강에 와룡선생이 지은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묻는다.
"와룡선생 ? 와룡강이 여기서 얼마나 가면 되오 ?"
"북쪽으로 십 여리 가면 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아, 고맙소." 하고, 예를 표해 보였다.
세 사람은 대나무가 울창하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숲을 지나, 한참을 더가서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흐르는 제갈양이 살고 있다는 초당앞에 이르렀다.
과연 현인이 사는 집은 예사롭지 않았다.
초당은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 바위 위에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지었는데, 무릉도원에 떠 있는 배와 같았다.
유비가 집 앞에 이르러 홀로 예를 표하며 큰 소리로 주인을 청하였다.
"이곳이 와룡선생의 댁이옵니까 ? 선생을 뵈러 왔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미소년 하나가 달려나오며, 허리를 굽혀 손님을 맞으며 묻는다.
"손님은 뉘신지요 ?"
"나는 한나라의 좌장군 의성정후 예주목 황숙 유현덕이라는 사람이오.
와룡선생을 뵈러 왔다고 전해주시오."
"이름이 너무 길어 모두 기억을 못합니다."
"그럼 신야의 유비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씀해 주시오."
"아, 유비 선생, 선생은 손님께서 오실 줄 알고 유람을 떠나셨습니다."
유비가 미소년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리하여,
"예 ? 다시 한번 말해주겠소 ?"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미소년은 태연하게,"선생께서는 손님께서 오실 줄을 알고 유람을 떠나셨습니다."
하고, 다시 한번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유비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리고 이내 눈을 깜빡이며 생각한다.
(공명 선생은 내가 찾아올 줄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 헛참 !)
"그러면 어디를 얼마만큼 다니러 가셨소 ?"
"언제든지 다녀오실 곳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가시기 때문에 언제 돌아오실 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자 장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껏 찾아왔는데, 없다니 그만 돌아갑시다."
하고, 퉁명스런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관우도,
"형님께서 오실 것을 알고도 자리를 비운 것을 보니, 만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사람을 보내 계신 것을 알고 나서 다시 찾아 옵시다." 하고, 말한다.
유비는 공명 선생이 없다는 것에 섭섭함을 금치 못하며 미소년에게 부탁조로 말한다.
"그러면 말 좀 전해 주시오. 유비라는 사람이 공명 선생을 뵈러 찾아왔다고 말이오."
"알았습니다."
미소년은 배웅 인사로 절을 해 보였다.
그러자 유비가 잊었다는 듯이,
"아, 그리고 이 말도 전해주시오.
며칠 뒤 유비가 다시 찾아 뵙겠다고 말이오."
"알았습니다."
돌아오며 보니 부근 일대는 절경이었다. 산은 높지 않으나 매우 아름다웠고, 물은 깊지 않으나 매우 맑으며, 땅은 넓지 않으나 평탄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숲은 우거진 나무로 무성한 것이 과연, <무릉도원이 이럴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연한 별천지(別天地)였다.
그렇게 유비 일행은 울창한 숲안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고요한 숲의 적막을 깨뜨리는 고고한 피리 소리가 들려 왔다.
세 사람은 귀를 세우고 소리가 들려 오는 곳으로 함께 눈길을 보냈다.
잠시 후, 종자 하나를 거느린 도도한 중년 사내 하나가 불던 피리를 멈추고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도 이런 울창한 숲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새로웠던지 세 사람의 앞에 이르러서는 발길을 잠깐 멈추었다.
그러자 유비는 그를 향하여 두 손을 들어 예를 표하며,
"실례하지만 혹시 와룡 선생이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러자 다가온 사내는 마주 예를 표해 보이며 말한다.
"헌데 누구신지요 ?"
"신야의 유비입니다."
"압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명이 아닙니다.
저는 공명의 도우(道友), 박릉의 최주평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 선생의 이름은 익히 들어, 전부터 뵙고싶었습니다. 최선생, 조금 전에 와룡 선생댁을 다녀 왔는데, 공명 선생께서는 유람을 떠나셨다는군요. 시간이 되시면 잠시 애기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지요. 저도 사람을 좋아하는
지라 어디를 가든지 이 피리 하나와 다기(茶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이런 자리에 대비를 한답니다.
괜찮으시다면 요 앞에 냇가로 가셔서 차 한 잔 하실까요 ?"
하고, 최주평은 유비의 청을 순순히 받아준다. 유비는 기쁜 얼굴로 대답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장비는 물론 관우는 제갈량을 만나 보러 먼 곳까지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못마땅 하였다. 그러나 큰 형님 유비가 앞장서 나서고 있으니 불평을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유비는 두 아우를 가리키며 말한다.
"둘째, 셋째, 나는 최선생과 냇가에 가서 차 한잔 하고 있을 테니 자네들은 이곳 풀밭에서 쉬고있게나."
"예, 그러지요. 말씀들 나누시오.
나도 와룡처럼 잠이나 자야겠소"
그러잖아도 장비는 공명도 만나지 못 하고 돌아오는 길이 답답하던 차에, 불만이 잔뜩 담긴 소리로 대답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차를 끓이고 마시면서 최주평이 입을 열어 묻는다.
"공 께서는 무슨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사방에 풍운이 급하기로 공명 선생을 찾아 뵙고 국태민안지책(國泰民安之策)
을 구하러 찾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주평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한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치란
(治亂)에는 도리(道理)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치란의 도리를 선생께 듣고자 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자고로 치(治)와 난(亂)은 항상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평화가 오래 계속되면 반드시 난이 오는 법이고, 난이 오래 계속되면 그 뒤에는 반드시 평화가 오기 마련이지요.
광무(光武) 이래로 태평세월이 계속되기를 이백여 년..이제 세상이 어지러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어지러움이 시작된 지가 벌서 이십여 년째가 되었군요."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이십 년이란 세월은 길다고 하겠으나 무궁무진한 대자연으로 보면 이십여 년이란 일순간이 아니겠습니까 ? 그러므로 변화를 알리는 바람은 이제 시작했다
고 보는 것도 무방하겠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참된 현인을 모시어, 만민의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는 동시에 그 재앙을 최소한도로 막아내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지신 생각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 하였으니, 부디 애쓰셔서 원하는 바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높으신 가르침을 받게되어 고맙습니다. 선생은 공명 선생께서 어디로 가신지는 모르십니까 ?"
"저도 공명을 찾아 보려하였는데 출타하였다면 저도 발길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유비는 최주평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을 저의 곁에 모시고 싶은데, 선생의 의향은 어떠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러나 최주평은 대번에 고개를 흔든다.
"산중의 유생(儒生)이 어찌 번잡한 세상, 공명(功名)에 뜻이 있겠습니까. 인연이 있으면 훗날 다시 만나지요."
이렇게 유비는 최주평과 작별을 하고 관우, 장비와 함게 신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헹 ! 오늘은 만나러 온 사람은 못 만나고 쥐새끼 한 마리 때려잡지 못할 썩어빠진 졸장부 선비의 잔소리만 듣는 것으로 하루 해를 허비했구려 !"
장비가 못마땅한 어투로 투덜거린다. 이에 유비는,
"셋째, 그게 무슨소린가 ? 사람이 제구실을 하려면 지혜로운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하는 법이네."
유비는 장비를 넌즈시 나무랐다.
이렇게 유비 삼형제는 융중의 공명을 찾아갔으나 그를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 삼국지(三國志)제163편 ※
이고초려(二顧草廬)
그로부터 수일 후,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융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마침 공명이 집에 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유비가 곧 두 아우를 데리고 다시 공명을 찾아가려고 하자,
"그까짓 산골 유생을 무얼 형님이
두번씩이나 몸소 찾아간단 말이오. 아닌말로 신야 성주가 다녀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제발로 찾아올 것이지, 건방지게시리..그럴게 아니라 군사를 보내서 잡아옵시다."
장비가 볼멘소리를 한다.
"공명 선생은 당대의 현인인데, 그런 분을 어떻게 그렇게 모셔온단 말인가 ? 그런 대현인을 모셔오려면 우리 형제의 지극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네.
셋째가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삼가하게, 이심(二心)은 전심(傳心)되는 법이니... 정 불편하면 여기 남아 있게, 둘째와 다녀올 것이니."
유비가 장비를 꾸짖으며 말하자, 장비가 계면쩍은 웃음을 웃으며,
"헤헤헤... 형님이 공연히 먼 길 다녀오느라고 고생하시니 그러지요."
하고, 계면쩍어 한다.
그러자 유비는,
"고생이랄게 없네, 나는 다녀올 테니 여기있으라니까."
하고, 장비를 떼어 놓고 다녀올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술과 고기를 가져간다면 군소리 없이 따라갑지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가 다소간 샐쭉한 어조로 말한다.
"에구, 가져가게 가져가 !"
"헤헤헤 !..."
때는 깊어가는 겨울이었다.
세 사람이 융중에 도착하니, 때마침 천지에는 눈이 하얗게 뒤덮였는데 바람조차 세차다.
말을 끌고 산길로 한참을 걷던 유비가 문득 발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천하의 절경일세,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같네."
하고, 감탄하였다.
이렇게 삼 형제는 눈에 파묻힌 산속을 헤치고 공명의 초당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마침 안으로 들어가는 미소년을 발견한 유비가 그를 불러 세워,
"이보게, 오늘은 제갈 선생께서 계신가 ?"
하고, 물으니, 미소년은,
"아, 유장군 오셨습니까 ? 제갈 선생께서는 어제 밤에 오셔서 지금은 책을 읽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가십시오."
하고, 안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응, 고맙네."
유비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기쁜 걸음으로 소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이르니 안에서는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 온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고, 선비는 참 주인이 아니고서는 섬기지 않는도다.
초야에 묻혀 몸소 밭을 갈아 생활을 가꾸니, 비록 오두막이라도 부족함이 없구나. 오로지 글과 책을 벗삼아 천시를 기다리노라."
유비는 저 사람이 공명이구나 싶어, 글 읽기를 기다려 예를 갖추어 말을 걸었다.
"선생이 와룡 선생이십니까 ?"
그러자 글을 읽던 사람은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아 ? 누구십니까 ?"
하고, 돌아서는데, 그는 이십 세 초반의 젊은 공자였다.
유비는 정중한 예를 표하며,
"오랫동안 흠모에 왔는데, 오늘에서야 선생을 뵈옵니다. 저는 신야의 유비 현덕입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러자 상대방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예를 표해 보이며 묻는다.
"장군께서 신야의 유현덕이십니까 ? "
"그렇습니다."
유비는 공손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그러자 상대방은,
"오늘 장군께서는 저희 형님을 뵈러 오신 것 같은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유비는 반쯤 놀란 얼굴로,
"그럼, 선생은 ...와룡 선생이 아니신가요 ?"
"정말 송구합니다. 저는 공명의 아우인 제갈균(諸葛均)입니다. 저희는 삼형제로 장형 제갈근(諸葛瑾)은 지금 강동 손중모(孫仲謀)에게 가서 막빈(幕賓)이 되어 있고, 공명은 저의 중형(仲兄)이 되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 그러면 와룡 선생은 지금 안 계십니까 ?"
"아, 헛걸음을 하셨습니다. 형님께서는 유람을 떠나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로 떠나셨는지 아십니까 ?"
"글쎄올시다. 형님이 다니시는 일정은 저도 잘 모르고 언제 돌아오실 줄은 더욱 모르지요. 저도 어제 밤 늦어서야 융중에 도착했습니다."
유비는 그 대답을 듣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허, 두 번씩이나 와서도 선생을 못 뵙게 되니 나의 연분이 이렇게나 박하단 말인가."
그러자 제갈균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한다.
"가형이 안 계시니 송구스럽습니다. 돌아오시거든 찾아서 만나 뵙도록 말씀드려 두겠습니다."
"아니올시다. 어찌 선생께서 찾아 주시기를 바라겠습니까 ? 바라건대 제게 붓과 종이를 좀 빌려주십시오. 선생께 글을 한 자 남겨 두고 가겠습니다."
"이리오시죠."
유비는 제갈균의 안내로 탁자에 앉아, 제갈양에게 보일 글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저, 예주목 유비는 선생을 앙모한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한 번 만나뵙고자 두 번을 찾아왔
다가 번번히 못 뵙고 돌아가니 섭섭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돌아보건데 군웅(群雄)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악인이 인군을 업신여겨, 저, 현덕이 이를 바로잡고자 하오나 경륜의 방책이 없으니, 선생께서는 여망(呂望)의 재주로써 자방(子房)의 방략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후일 다시 목욕재계하고 찾아 뵈옵고자 하오니, 선생께서는 부디 만나 뵈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라옵니다.
建安 十二年 十二月 劉玄德 >
유비는 편지를 쓴 뒤 제갈균에게 주면서 부탁한다.
"선생이 돌아오시거든 이 서찰을
꼭 전해 주십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유비가 문밖에서 소년의 배웅을 받고 돌아서자 관우가 묻는다.
"형님, 공명을 또 못 만나셨습니까 ?"
"공명 선생은 못 만났지만, 선생의 아우는 만났네. 헛 걸음은 아닌 셈이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관우가,"형님, 공명이 여덞 형제라면 여덞번 오실겁니까 ? "
하고, 불만어린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비가 콧방귀를 뀌었다.
"헹 !"
그 순간, 안으로 들어갔던 미소년이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온다.
"오셨습니다. 선생이 오셨습니다."
유비 일행은 그 소리에 말을 멈추고 소년이 달려가는 곳을 일제히 응시하
였다.
소년이 달려간 곳에서는 호호백발의 노인이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면서 큰소리로 시를 읊조린다.
一夜北風寒 萬里丹雲厚 (일야북풍한 만리단운호)
長空雲亂飄 改蓋江山舊 (장공설난표 개개강산구)
白髮老衰翁 盛感皇天祐 (백발노쇠옹 성감황천우)
騎驢過小橋 獨嘆梅花瘦 (기려과소교 독탄매화수)
하루밤 북풍이 매섭더니 만리의 붉은 구름이 두텁구나.
장공에 눈발이 흩어져 날리니 강산의 옛 모습이 새롭기만 하구나.
백발의 노쇠한 늙은 몸이 황천의 도움으로 왕성함을 느끼니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며 매화 여의였음을 혼자 탄식하노라.
유비는 그 시 소리를 듣자, 그가 와룡인 줄 알고, 분주히 달려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와룡 선생, 이 추운 때 어디를 다녀 오십니까 ?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어안이 벙벙하며,
유비 일행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그러자 노인을 마중나온 미소년이 말한다.
"아닙니다. 이 어른은 공명 선생의 장인 어르신인 황승언(黃承彦) 어른이십니다."
"아, 그러십니까. 제가 사람을 잘못 알아뵈어 실례했습니다."
유비는 황승언 노인을 향해 사과의 말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유비는 사람을 잘 못 알아
보는 또 한번의 실수를 하고 무안스럽게 신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런, 형님이 또 사람을 잘못 보셨수다 ! 아니, 세상에 ?.. 공명의 아버지가 무슨 재주로 저런 노인과 애송이를 터울로 두었겠수 !" 하는, 장비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삼국지(三國志)제164편 ※
삼고초려(三顧草廬)와
공명의 출사(出仕)
유비는 융중까지 몸소 찾아가서 공명을 두 번씩이나 못 만나고 돌아왔지만, 그후에도 공명에 대한 생각은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빛이 들 무렵까지, 융중에 사람을 보내어 그의 귀가를 수시로 알아 보았으나, 공명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유비는 하도 답답한 마음이 앞서 언제쯤이나 공명을 만날 수가 있겠는지, 이번에는 유비 스스로가 거북점을 쳐보았다.
그리하여 점쾌를 뽑아보니, 대길
(大吉)이 나왔다.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곧 융중으로 공명을 찾아가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는 관우조차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형님이 몸소 두 번씩 찾아간 것만 해도 지나친 예의라고 하겠는데, 세번씩 찾아가는 것은 더욱 지나친 일이오.
공명이 형님을 만나기를 회피하는 것은 필시 허명(虛名)만 높고 자신이 없기 때문일게요. 그런 사정을 모르고 또다시 찾아간다면 남들도 웃을 겁니다."
"둘째도 알다시피 서서 선생이 얼마나 지혜로운 분이었던가 ? 우리가 도원결의 한 때로부터 지혜로운 군사(軍師)가 없었기 때문에 매번 싸우면 패한 것이었네.
그런데 와룡 선생은 서서 선생보다 몇 갑절 지혜로운 현인이라 하니, 그런 분을 만나는데 세 번쯤 찾아가는 것이 뭐가 대단스럽다는 말인가 ?"
관우는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장비는 어디까지나 불평이었다.
"그건 형님이 잘못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오. 그까짓 시골 촌놈이 무슨 대현이란 말이오.
이번에는 형님이 가실 게 아니라, 사람을 보내 불러옵시다. 만약 그래도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결박을 지워 끌고오겠소."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정색을 하며 나무랐다.
"셋째는 주 문왕(周 文王)이 태공망(太公望)을 찾아갈 때의 일도 못 들었나 ? 태공망은 문왕이 찾아왔는데도 낚시만 하고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문왕은 해가 저물어 낚시가 끝나기를 기다려 결국은 태공망의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가 ?
이번에는 둘째하고 다녀올 것이니 셋째는 따라오지 말게나..."
그러자 장비가 웃으며 말한다.
"에구, 형님두...두 분이 가시는데 내가 어찌 빠지겠수 ! 나도 응당 따라가야 하겠소."
"자네가 기어이 따라 간다면 함께 가기는 하겠지만, 만에 일 이라도 실례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네."
"예, 알았수다 !"
세 사람은 다시 신야를 떠나 융중으로 향하였다.
와룡의 초당이 가깝자 , 유비는 말을 멈추며 말했다.
"여기서 와룡강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여기서 말을 내려서 걸어가세."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에이, 형님두. 아직도 좀 더 가야 하는데 왜 여기서부터 걸어간단 말이오 ?"
그러자 유비는 말에서 내리며,
"이렇게나마 성의를 보여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자 장비가 유비를 따라 말에서 내리며, "아이 참, 형님 ! 정말 미련도 하시오. 아니, 공명이 보기를 한답니까, 알길 한답니까 ? 아직도 좀 더 가야 하는데. 왜 여기서부터 걸어간단 말이오 ?"
"이게 다 현인을 모시기 위한 나의 마음일쎄."
유비가 이렇게 말을 하고 말고삐를 쥐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관우는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아니하고 말고삐를 쥐고 유비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이렇게 세 사람이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침 공명의 아우 제갈균이 어디를 가는지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서오십시오. 장군께서 또 수고스럽게 오시는군요."
유비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선생께서 돌아오셨는지요 ?"
"마침 어제 석양에 돌아오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 그러면 만나 뵐 수 있겠습니다."
"지금 계시니 가셔서 만나보시죠."
제갈균은 그 한마디를 하고 제 갈길을 표현히 가버린다.
제갈균을 보내고, 유비가 반가운 소리를 한다.
"이제야 선생을 만날 수가 있게 되었네그려."
"헤헤헤 ! 나도 만나보고 싶었소. 이렇게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니..도대체 공명이 어떤 사람인지 나도 궁금하오. 눈이나 코가 몇 개인지 말이오."
하고, 장비가 빈정대는 소리를 한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유비가,
"아냐, 공명선생은 나 혼자 가서 만날 것이야. 아우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유비는 이렇게 말을 하고, 총총히 길을 앞서 가는 것이 아닌가 ?
"알겠습니다 형님."
관우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장비는,
"집안은 답답하니까 밖에 있는게 낫지 !"
하고, 대꾸하였다.
잠시후, 세 사람은 공명의 초당앞에 이르자 유비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홀로 조용한 걸음으로 문앞으로 다가갔다.
안에서는 미소년이 나와 유비를 맞는다.
"유장군, 선생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 선생께 신야의 유비가 뵙기를 청한다고 말씀드려 주게."
"선생께서는 어제 밤 늦게 오셔서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어, 그러시다면 깨우지 마시게. 선생께서 일어나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지."
유비가 그렇게 대답하자 소년은,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선생께 꾸중을 듣습니다. 장군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시죠."
하고, 안으로 안내한다. 유비는 소년을 따라 공명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따사로운 봄빛이 넘쳐 흐르는 초당 대청을 올려다보니 공명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유비는 섬돌 아래 두 손을 읍하고 서서 공명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공명은 잠이 든 채 언제까지나 깨어나지 않았다. 중천에 솟아 있던 해가 어느덧 서천에 기울기 시작하였으나 유비는 여전히 두 손을 읍하고 서서 공명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다 지친 장비가 안을 한번 살펴 보고, 관우에게 한 마디 한다.
"형님, 보이슈 ? 우리 형님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얌전히 서계시는게요, 예 ?"
"보아하니 공명이 아직 안 일어났구나."
관우도 적잖이 섭섭한 소리로 대꾸하였다.
"우리 형님이 정성을 다해 만나러 왔는데, 저 놈은 어찌 저리 무례하다오 ? 이 놈의 집 확 불질러 버리면 제가 안 일어나고 배길까 , 흥 ! "
장비가 이렇게 내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관우가,
"셋째, 사고치지 말고 그냥 앉아있게. 공연히 큰형님에게 야단맞지 말고.."
"흠 , 알았소, 헹 !"
장비는 관우의 만류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불만이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장비는 그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본 관우가,
"또, 뭘하려고 ?"
하고, 장비가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그러자 장비는,
"헤헤헤... 볼 일을 보려구요."
하고 속마음을 감추고 <퉁>친다.
"멀리가지 말게."
관우가 한 마디 해둔다.
"알았소. 알았어요..."
장비가 자리를 뜨고, 잠시후 공명이 자고 있는 침상 마주 보이는 곳, 헛간인 듯 한 초가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공명이 잠 깨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비가 화들짝 놀랐다. 놀라기는 함께 있던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잠을 자고 있는 공명의 침대 곁으로 달려들며,
"선생님 !"
하고, 불렀다. 그러자 유비가 소년을 제지하며,
"깨우지 말게. 선생은 정말 기인이시군. 밖에 불이 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주무시다니..."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초당에 연기가 가득하자 관우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유비의 곁에 서서 공명이 태연하게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때, 공명이 잠을 깨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잠자리에서 시 한 수를 읊는 것이었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우는고 (大夢誰先覺 : 대몽수선각)
평생은 나 스스로가 아노라. (平生我自知 ;평생아자지)
초당에 봄 잠은 충분하데 (草堂春睡足 : 초당춘수족)
창밖에 해는 길기도 하구나. (窓外日遲遲 : 창외일지지)
공명은 이렇게 소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흠흠 !> 하고 연기에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늘 들고 다니는 화로선을 들어 방안을 몇번 휘젓고 나서, 문득 유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유비가 두 손을 올려 예를 표하며,"신야의 유비가 와룡 선생을 뵈옵니다."
하고,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공명이,
"부끄럽습니다. 두 번이나 다녀가셨다는 데 뵙지를 못하고, 오늘 오실 때에는 영접도 못 하였으니, 용서를 해 주십시오."
하고, 마주 예를 표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헌데, 불은 어쩌다 난 것인지 모르겠군요."
하고, 한 마디 한다.
그 순간 밖에서 뛰어 들어온 장비의 고함 소리가 터져나온다.
"야 ! 제갈양, 잘 들어 !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인데 몇 번을 헛걸음하게 만들어, 엉 ?
넌 싸돌아 다니느라고 집을 비우고, 이제야 겨우 왔는가 싶었는데 돼지 모양 잠만 자, 엉 ? 덕분에 우리 형님께서 세 식경이나 기다리셨다. 참는 것도 한이 있지, 내가 참다 못해 불을 지른거야, 네놈 깨우려고 !"
하고, 삿대질 까지 하면서 소리쳤다.
"무엄하다 !"
유비가 장비를 꾸짖었다. 그리고 이어서 장비에게 손짓을 하며,
"어서 무릎꿇고 사죄드려 ! 그렇게나 당부했건만 이게 뭔가 ! 어서 !"
하고, 화가 동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공명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쪽이 장익덕이신가요 ? 과연, 충성스럽소. 진작 무너질 초가였는데 불까지 내어 태워주셨으니, 장군께 감사드리겠소."
하고,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한편 머쓱하기도 했던 장비는,
"헤헤 ! 듣던 대로 말은 청상유수로구먼 ! "
하고, 대답하였다.
공명이 시선을 돌려, 관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분께서는 천자가 하사한 관직을 마다하고, 오관참장(五關斬將 : 관우가 유비를 만나기 위해 다섯개의 관문에서 여섯 명의 장수를 베고 탈출한 사건)을 하셨다는 관운장 이시군요. 곁에 있는데도 영웅의 기개가 느껴집니다그려."
하고, 말을 하면서 관우에게 손수 예를 표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
"어.. 어 ! ..."
관우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공명을 향하여 마주 예를 표한다. 그러면서 점잖은 어조로,
"과찬이시오."
하고, 답례를 하였다.
이어서 공명이 소년에게 말한다.
"차를 준비하도록 하여라."
"예"
주객이 예의를 다하고 나자, 소년이 차를 날라온다.
공명이 차를 권하며 말한다.
"지난 겨울에 두고 가신 글을 보고, 장군께서 우민우국(憂民憂國)하시는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저의 생이 워낙 어리고 재주가 없어, 장군께서 찾아와 주신 뜻에 보답할 능력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사마휘(司馬徽) 선생과 서원직(徐元直) 선생의 말씀이 어찌 헛된 말씀이겠습니까, 선생은 미천한 이 사람을 버리지 마시고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 분들은 학식이 높은 선비이지만, 저는 한낱 농부에 불과합니다. 장군은 옥(玉)을 버리시고 돌(石)을 구하지 마십시오."
"선생은 세상을 건질 기재를 품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산중에서 무료한 세월을 보내시려 하십니까. 천하 창생을 생각하셔서 이 우둔한 유비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자 공명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묻는다.
"장군은 오늘날 천하 대세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유비가 잔잔한 어조로 조근하게 말한다.
"공명 선생, 황건적 난의 혼란 속에 동탁이 황위를 조롱하고, 도처에서 간적들이 득세하여 천하가 혼란해지며 도리가 무너지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전, 황실의 후예로서 매일 새벽마다, 황실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집니다."
"장군이 큰 뜻을 품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있는 거지요. 장군의 향후 계획은 어떠신지요 ?"
"천자의 명을 받들어 쓰러진 천하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구하고자 하나, 아쉽게 전 덕과 재주가 부족해
거병 이후, 패전만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번번히 거처를 잃고 떠돌아 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심지어 자결을 할 까 생각하기도 하였으니, 부끄러워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얻고자 이렇게 선생을 찾아온 것입니다."
유비의 지난 날의 회고는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여도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공명이 현실을 꿰뚫어 보는 소리를 한다.
"동탁 사후, 혼란한 천하에 조조는 원소의 세력에 못미쳐도 원소를 멸하고 패업을 이루었으니 그 비결이 뭘까요 ?
첫째는 시기, 둘째는 지략이죠, 지금 조조는 백만 군사에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며, 천하 병권을 거뭐 쥐고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대적하면 안 될 상대입니다.
또한, 손씨는 강동에서 대를 이어 오랜 세월동안 국난을 극복하며 군사력을 키웠으니 그들과 동맹을 맺으셔야지요. 적대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형양 9군은 사통팔달로 백성들은 부유하나, 유표는 나약한 성격이라 버틸 힘이 없으니, 조만간 주인이 바뀔 겁니다. 이는 하늘이 장군께 내리는 근거지입니다. 설마 형양을 마다하지 않으시겠죠 ?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공명은 이렇게 말해 놓고 나서 유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유비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원하지만, 그럴 순 없지요.
유경승은 제 황형(皇兄)인데 제가 어찌 형양을 빼앗겠습니까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공명이 담담한 어조로 단언하듯 말한다.
"천상을 관찰 해 보니, 유표의 병이 위중해, 형주는 곧 주인 없는 성이 될 겁니다. 설마 이곳이 조조의 손에 넘어가기를 바라십니까 ?
장군께서 형주를 얻고, 이어서 중원이 아닌 서쪽으로 나가 익주를 취하면 바로 서천입니다. 서천은 난공불낙의 요새이며 기름진 땅에 산물도 풍족하니 군사를 양성하기에 최적의 근거지입니다.
과거 고조 유방은 서천에서 거병해 천하를 통일 하고 황제가 되었지요. 장군이 서천과 형양을 얻는다면 천하의 반을 점령한 셈이 되는 것이니 남쪽에 소수민족을 아우르고 강동의 손씨와 결맹해 안으로 군위를 다스린 후, 천하가 변화될 때,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허창을 치고 조조를 멸하십시오.
장군께서 이렇게 하신다면 10 년 이내에 대업을 이루게 되실 것이며, 20 년 후에는 천하가 안정되어 한나라를 부흥시킨 장군의 이름이 천고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유비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다. 그러면서도 공명의 선견지명에 의문을 표시하였다.
"이십년 후에는 선생의 말씀대로 천하가 안정될까요 ?"
공명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웃어 보이며 유비에게 물었다.
"제가 그동안 어디를 다녀 온 줄 아십니까 ?"
"모릅니다. 어디를 다녀오셨는지요 ?"
그러자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실 가운데 넓은 곳으로 간다.
유비가 공명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공명은 잠시후 내실 중앙에 넓은 보자기를 하나 펼쳐 보이는 데 그것은 한장의 커다란 지도였다.
유비가 놀란 눈으로 지도와 공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공명이 유비에게 말한다.
"서천입니다. 잘 보십시오. 서천의 54 개 주의 지도입니다. 지금부터 형주에 주시하고 서천에 뜻을 두십시오. 천하를 품으실 계획을 세우셔야 합니다."
유비가 서천 땅의 세밀한 지도를 내려다 보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공명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올려 공명에 대한 극상의 예를 보이며,
"공명 선생, 부디 세상으로 나와, 저 유비에게 도움을 주십시요.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유비의 두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생, 선생이 나서면 백성들이 살 수 있습니다. 이 유비가 간청드리겠습니다. 선생, 부디 제 청을 받아주십시요."
유비는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공명에게 그대로 애원의 절을 해보이고 그의 대답이 없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아니하고 공명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야말로 정성을 다하여 애원하는 모습이었다.
공명은 유비의 말과 예를 보면서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리하여 선듯 거부도 응낙도 못 하고 서성대며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공, 부족하지만 전심을 다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유비의 앞에 같은 자세로 절을 하여 승낙의 표시를 해 보였다.
유비가 고개를 들고 공명의 두 팔을 잡아 손수 일으키며 말한다.
"하 ! .. 선생, 너무도 고맙습니다. 이제야 이 유비가 천하의 대세를 논 할 수있는 스승을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비는 다시 한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공명의 두 손을 꼭 잡았다.
※ 삼국지(三國志)제165편 ※
공명의 지략
공명은 유비와 함께 와룡장을 떠나 신야로 향하였다.
유비는 신야로 돌아온 뒤, 공명을 스승의 예로써 대하였다. 먹는 것도 한 탁자에서 같이 먹었고, 잠자리도 한 방안에서 같이 하면서 항상 천하의 대세를 논하였다.
어느날 공명이 유비에게 말한다.
"조조가 기주에다 땅을 파서 큰 호수를 만들고 그곳에서 수군(水軍)
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강동으로 진출하려는 야심입니다.
곧 사람을 보내어 그곳의 정세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비는 공명의 말을 듣고 서둘러 강동으로 첩자를 밀파(密派)하였다.
유비가 한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공명에게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는 동안에 조조는 기주에서 호시
탐탐 형주를 목표에 두고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었고, 손책에게 대권을 물려받은 강동의 손권은 산업을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한편, 어진 선비들을 널리 모아 들이는 등, 날이 갈수록 오(吳)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손책은 장소(張昭), 장굉(張紘), 주유(周瑜),노숙(魯肅)등 기존의 현신(賢臣)은 물론이고 엄준(嚴峻), 설종(薛綜), 정병, 주환, 육적, 장온, 오찬 등등의 많은 현인(賢人)과 인재들을 조정에 끌어들였고, 무장(武將)으로는 여몽(呂蒙), 감택, 육손, 서성, 반장,능통, 정봉(丁奉) 등을 발탁 함으로써 오나라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조는 원소를 쳐 이겼을 때에 천자의 명을 핑게로 손책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대권을 승계한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어 손권의 어린 아들을 허도로 올려보내 벼슬을 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었다.
말인 즉 벼슬을 내리겠다는 것이지만, 손권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여 그의 어린 아들을 인질(人質)로 잡아 두려는 속셈이었다.
손권은 조조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말씀은 황공무비하오나, 일가친척과 상의하여 후일 대답하겠습니다.>
하고, 좋은 말로 답장을 해두었다.
그런 뒤에도 조조는 손권에게 아들을 허도로 올려보내라고 가끔 재촉하였다. 그러니 손권이 마냥 조조의 요구를 미루기만 하는 것은 곤란하였다.
그것은 조조가 천자를 모시고 있는 터라 그의 말은 절대권 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손권은 어느날, 어머니인 태부인(太夫人)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너에게는 지혜로운 인재들이 많으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손권은 어머니의 의견을 쫒아 하루는 문무 백관을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물었다.
장소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한다.
"조조가 우리에게 인질을 요구하는 것은 제후(諸侯)를 견제하는 상투 수법입니다.
그러므로 인질을 보내면 조조에게 굴복하는 뜻이 되고, 만약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적대(敵對) 하는 뜻이 되는 까닭에 조조는 이를 핑게로 군사를 일으켜 강동으로 쳐들어 올 것 입니다.
이 문제는 이처럼 중대한 만큼 우리는 다같이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 말을 듣자, 주유는 손권을 보고 정색을 하며 말한다.
"주공께서 부형의 업을 계승하여 육군(六郡)을 통합한 지 이미 오래요. 우리의 군사는 이미 정예화 되어 있고 군량도 풍부한데, 이제 무엇이 두려워 조조에게 인질을 보내어 굴복한단 말씀입니까 ? 나는 인질을 보내는데 절대 반대올시다.
그러나 선수를 써가면서 태도를 표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묵살해 버리고 당분간 조조의 태도를 관망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함께 자리한 문무백관들은 주유의 말을 옳게 여겼다. 그리하여 손권은 가타 부타 대답을 하지 않으니, 조조는 그 소리를 듣고 매우 괘심하게 여기며 그때부터는 강동을 도모할 방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조조는 <형주를 먼저 취할 것이냐 ? 아니면 강동의 손권을 먼저 칠 것이냐 ?> 하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지략을 저울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형주를 먼저 치되, 형주의 길목을 막고 있는 유비가 점령하고 있는 신야에 대한 공격을 10만의 군사를 주어 하후돈을 대장으로 이전을 부장으로 삼아 공격을 명하였다.
한편, 신야에서 수 십리 떨어진 융중
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삼고초려로 공명을 초빙해 온 유비는 그를 깍듯이 사부(師傅)의 예로 대하였다.
그즈음 이런 일도 있었다.
관우와 장비는 이날도 해가 중천에 이르자 몸소 청룡 언월도와 장팔
사모를 들고, 신야성 넓디 넓은 내전 앞에서 무술 겨루기를 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웃 ! "
"챠 ! "
"쉬익 ~챙 ! "
"창 ! ~ 탕 ! "
관우와 장비는 서로의 무기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아니하는 싸움 연습을 하면서 신바람을 내고 있었다.
관우의 언월도가 허공을 가르며 장비의 머리위로 떨어지면 장비는 장팔사모로 간단히 막아 내었다.
장비의 장팔사모가 관우를 향해 날카롭게 베어 들어오면 관우의 청룡 언월도는 넓은 칼날로 튕겨내었다.
두 사람의 싸움 연습은 마치 두 마리 학이 어울려 춤을 추듯이 너풀 거리며 온 마당을 쓸고 다녔고, 그들이 휘두르며 부딪치는 창소리와 뽀얗게 이는 먼지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안의 침을 마르게 하고 가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싸움 연습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들 옆으로 유비와 공명이 손을 잡고 나타났다.
두 사람은 어깨를 마주하며 걸어 들어 왔는데, 유비의 얼굴에는 만족한 함박 웃음이 가득하였다.
"이렇게 공명 선생께 매일 같이 가르침을 받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신바람이 나는군요.
들어 가시죠."
유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관우와 장비, 두 사람에게는 눈길 한번도 주지 아니하고 내실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 순간 싸움 연습을 멈추고, 그들 앞에 나타난 유비와 공명을 보고있던 장비가 두 사람이 내실로 들어가 버리자,
"엉 ? 형님, 들었소 ?
공명이 물이고 큰형님이 물고기면 우린 대체 뭡니까 ?"
하고, 퉁명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관우는 탐탁하지 않은 소리로 대꾸한다.
"큰형님께서 공명을 데리고 온 후, 스승처럼 대하고 있어, 함께 식사하고 잠도 같이 자면서 매일 역사를 논하니..아무래도 우리 둘은 잊은 거 같구나."
"흥 ! 공명은 나보다 열 살 이나 어리지 않소 ? 그야말로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았는데, 큰형님의 스승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않소, 예 ? "
"공명은 온 몸에 입이 달려 있어, 말주변이 좋은 것 말고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데, 형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싸고 도는지..."
"흥 ! 그러면 기회를 보아 내가 손 좀 봐 줄 까요 ?"
"안돼, 지금은 우리가 지금은 쓸모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적들이 몰려오면 공명도 우리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을거야."
"헤헤헤 ! ... 그건 그렇지요 !"
두 사람은 연습을 멈추고 내실로 들어가 술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신세 한탄을 이어가며 서로 술잔을 부딪쳤다. 이때 모사 손건이 들어와 말한다.
"장군님들 ! 주공께서 부르십니다."
그러자 관우, 장비는 듣는둥 마는둥,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 술만 마시는 것이었다.
손건은 평소와 다른 두 사람의 대응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였다.
그때, 관우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른다던가 ?"
"하후돈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곧 신야로 쳐들어 온답니다."
"잘됐네."
장비가 조롱하는 어조로 대꾸한다. 그리고 관우를 한번 쳐다보고서 손건에게 말한다.
"드디어 적이 쳐들어 왔군 ! 큰형님께 전해드려, 공명이 해결할 거라고."
그러자 손건은 장비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소리를 듣고,
"장군님들 ! 적이 코앞에 닥쳐 온다는 데 왜 이러세요 ?"
하고, 평소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응대에 의문어린 소리를 하였다.
"가 보라니까."
관우의 대답도 이를 데 없이 무심하였다.
그러자 손건이 <으응 ?> 하는 의문의 소리를 내뱉고 다시 유비에게로 달려갔다.
"셋째야, 마시자."
관우는 장비에게 술잔을 내보이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잠시후, 손건의 보고를 받은 유비가 손수 두 사람을 황급히 찾아 왔다.
"아우들, 조조군이 번성까지 왔다는데 아직도 마시고 있나 ?
당장 결전을 준비하게."
유비는 두 아우를 힐난하듯이, 책망하 듯이 말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한다.
"큰형님, 조조군이 쳐들어 온다면,
나 한테 묘책이 하나 있소."
"묘책이 있다고 ?"
"있죠, 그럼요. 물어보질 않으니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게 뭔지 말해보게."
유비가 장비에게 재촉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장비가 헛웃음을 켜며,
"헤헷 !..물을 보내시오."
"물 ? ... 그게 무슨 뜻인가 ?"
"에잇, 형님은 물고기 이고, 공명은 물이잖소, 드디어 적이 쳐들어 왔으니 당장 물을 보내 그놈들을 모두 익사시켜 버리시오."
장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웃어젖혔다. 그러자 관우도 헛웃음을 켜는 데, 유비가 갑자기 앉아있는 장비의 귀를 잡아당긴다.
"에에엣 ! 형님.. 큰형님 ..."
장비가 앉은 자리에서 끌려 일어나며 엄살어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관우도 함께 일어나게 되었는데,
유비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지략은 공명을 믿고, 용기는 자네들을 믿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 어서 준비해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관우가 장비에게 말한다.
"셋째야, 그만하고 무기나 챙기자."
그리고 자신의 요도(腰刀:허리에 차는 칼)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이참, 내 팔자도 참 기구해...
적들이 몰려오니 이제야 우리 형제 생각이 나셨나봐 ..."
장비는 유비가 들으란 듯이, 궁시렁 거리며 푸념을 잔뜩 늘어 놓으면서, 관우의 뒤를 따라 무기를 챙기고 군사들을 준비하기 위해 유비 앞을 떠난다.
대청으로 돌아온 유비는 공명에게 말한다.
"운장과 익덕은 오만한 맹장들이오. 선생께서 그들을 누르려면 이번 싸움에서 위엄을 세워야 합니다."
"잘 압니다. 그러면 주공께서 패검과 병부를 열흘만 빌려주십시오. 그래야 두 분을 지휘할 수 있습니다."
"패검과 병부를요 ?"
"네."
패검과 병부란 절대권을 가진 수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을 지금 공명이 빌려달라고 하면, 신야성의 모든 생사여탈 권한은 유비에게서 공명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탁자위의 병부를 들어 공명에게 보인다.
"열흘이면 되겠소 ?"
"충분합니다."
"좋소. 선생, 명심하시오. 병부와 패검을 넘긴 이상, 나도 선생의 명에 따라야 하오."
"안심하십시오."
공명은 유비에게 예를 표해 보이며 안심시켰다.
잠시후, 군사 정비에 여념없는 관우와 장비에게 연락병이 뛰어들며 보고한다.
"관 장군, 장 장군 ! 대청에 모여 군사의 명을 받으랍니다."
그 소리를 듣고, <허헛 !>하고,
장비는 헛웃음을 켰다.
"공명이 정말로 우리를 지휘하려는가 보다."
관우가 조소를 머금고 한 마디 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한 마디 거든다.
"형님, 신경 끄시오. 내 맘대로 닥치는 대로 싸우면 될 걸 뭘 그러시오..."
"일단 군령은 태산 같은 것이다.
뭐라 하는지는 가서 들어나보자."
"갑시다."
두 사람을 비롯한 유비 휘하의 장수와 참모들이 유비와 공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대청에 속속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대오가 정렬되자 일동이 읍하며 아뢴다.
"주공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
유비가 좌중을 돌아 보며 입을 열어 냉철한 어조로 말한다.
"조조군이 쳐들어와 곧 결전이 벌어질 테니, 모두 군사의 군령을 따르라 ! 거역하면 군법으로 다스린다."
"네 !"
일동이 명을 접수하자 군사 공명이 입을 연다.
"조조군은 신야에서 구십 리쯤 떨어진 박망성(博望城) 왼편에 있는 험한 산인 예산(預山)을 지날 것이오.
그 산 오른쪽에 안림(安林)이란 숲이 있는데, 그 곳은 매복(埋伏)하기 좋은 곳이오.
이제 운장은 일천 군사를 거느리고 안림에 매복해 있으되, 조조의 군사들이 지나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그 뒤를 따르는 군량(軍糧)과 마초(馬草)를, 남쪽 하늘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습격하여 깡그리 불살라 버리시오.
아울러 그 불은 적의 퇴로도 막는 역활을 하게 될 거요. 그리고 익덕은 일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안림 뒷산 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역시 남쪽 하늘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즉시 박망성을 습격하여 적의 군량과 병기를 모두 불태워 버리시오.
그리고 관평(關平)과 유봉(劉封)은 각각 오백 명의 군사를 데리고 화약과 마른 건초를 가지고 박망파(搏望坡) 뒷산 양측에 매복해 있다가 적이 접근해 오거든 불을 놓아서 군호를 삼으라 !
미방은 번성에서 조운(趙雲)을 급히 불러 들여 선봉장으로 나가 적을 맞아 싸우되, 결코 이기려 하지 말고 쫒겨 들어오면서 적들을 깊숙히 끌어들이
라고 전하시오."
공명의 군령은 조목조목 명확 하였다. 아울러 명을 하달할 때 마다 각기 명을 수령하는 장수들은 대열 앞으로 한 발 씩 나와서 군사의 명을 공손히 접수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빼고 ...
(관우와 장비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자리에 선 채로 군령을 접수하
였다.)
"주공 !"
작전 지시가 끝난 군사 공명이 옆에 앉은 유비를 호명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총총한 걸음으로 장수와 참모들이 도열해 있는 단하로 내려와 공명에게 예를 표하며 명을 기다리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였다.
"네 !"
"주공은 3천 철기군으로 후방 지원을 맡아주십시오."
"명을 받듭니다 !"
유비는 두 손을 올려 공명에게 절을 하고 장수들 대열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관우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군사, 우리 모두 싸우러 나가면 군사는 뭘 할거요 ?" 하고,
방금 전해 들은 군사들의 배치 명령을 탐탁하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나요 ? 성을 지켜야지요."
공명은 침작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불만 가득한 소리를 내뱉는다.
"누군 목숨 걸고 싸우고 누군 성에서 차나 마신다고 ? 팔자 한번 좋네 !"
공명이 그 말을 듣고, 냉철한 어조로 대꾸한다.
"패검과 병부가 내게 있는 한 거역
하는 자는 참수요."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던 유비가 관우와 장비가 들으란 듯이,
"장막에서의 모의는 천리 밖 승패를 결정한다. 따라서 병부와 패검을 군사에게 넘긴 이상, 나 조차도 명을 어기면 참수된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공명이 그 순간 입을 연다.
"장수들은 명령대로 속히 시행하시오 !"
"네 !"
떨떠름한 얼굴로 대청을 나서는 관우가 장비를 보고 한 마디 한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고, 실패하면 그때 따지자."
"그럽시다."
🔊다음 제166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