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일상을 삶다
조이섭
새해가 되면 가슴이 뛴다. 이른바, 세모에 들었던 감상과 회한은 어디론가 물러나고 희망과 각오가 가득 찬다.
삶은 행복과 불행이 갈마들고, 희망과 절망이 한 데 섞여 춤을 춘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라 불평하고 한탄하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없듯이 오늘과 똑같은 내일은 있을 수 없다.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거나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일상이란 말로 퉁치고 지나칠 뿐이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 동안 세속의 때를 묻히는 과정이다. 삶의 끈에 매달린 하루하루를 한 장씩 떼어내다 보면 햇살보다 촘촘한 그물망을 만난다. 그물눈을 빠져나오려고 용을 쓰다 보면 진흙밭을 지나지 않아도, 흙탕물에 빠지지 않아도 세탁기 신세를 져야 하는 빨랫감이 된다. 걸친 옷이야 상의, 하의, 내의 할 것 없이 흐르는 물에 세탁하면 그만이다.
그게 성에 차지 않으면 세제를 풀어 삶아 빨듯이, 때를 묻히며 건너온 시간도 그러모아 덕지덕지한 삶의 얼룩을 깨끗이 삶아내고 싶다. 바지랑대 세운 빨랫줄에 널어 가벼워지고 싶다.
‘삶는다’라는 말은 농부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논밭의 흙을 써레로 썰고, 나래로 골라 노곤하게 하는 것을 두고 논밭을 삶는다고 한다. 마른 흙을 삶는 것은 건삶이, 물 논을 삶는 것을 무삶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든, 가을에 수확을 기대하면서 미리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농심은 무엇이든 공(空)으로 바라지 않는 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치에 따라 땅을 잘 삶은 후에 천명을 기다리는 농심은 우리네 삶의 자세를 올곧게 보여 주는 핵심이다.
삶는다는 말에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달래거나 꾀어서 자기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을 삶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구워삶는다고 하지 않던가. 논밭을 삶아 노곤하게 만드는 것처럼 갖은 감언이설로 상대방의 마음을 노곤하게 만든 다음 악의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노릇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욕망과 욕심에 불을 지피는 일이다.
생명의 처음은 들숨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들이마신 숨을 내뱉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인간의 삶은 거기에 더하여 의미 있는 일을 꾸려 나가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앞앞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가치관 또한 제각각인지라, 그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게 여간 지난한 게 아니라는 점이 다시 발목을 잡는다.
삶은 고결하고 경건하다. 그 장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밭을 삶아 고르고, 빨래를 삶듯이 마음을 세탁해야 한다. 농심으로 돌아가 진인사대천명 하는 자세를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다른 이를 구워삶아 제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은 내던지고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채워야 하리.
올해는 아무쪼록 마음과 일상을 느긋하게 한번 삶아 볼 일이다.
- 제주일보 2026년 4월 24일자. 금요에세이
첫댓글 지당한 말씀이지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습니다. 공감하는 글 지금이라도 새겨두겠습니다.
조이섭 선생님 "삶, 일상을 삶다" 글 잘 읽고 갑니다. 곰살스런 마음으로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글을 쓰셨습니다. ^♡^
마음과 일상을 느긋하게 삶아보고픈 오월입니다.
좋은 작품이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