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주부
'코주부'는 '코가 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인데도 상호나 상표 등에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단어인 것 같다. 외모에 대한
별칭이 호감을 주는 단어가 거의 없는데, 이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코주부'와 같은 뜻인 '코보'나, 코가 긴 서양 사람을 일컫는
'코쟁이'와 비교하여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 현상은 1960년대에 유명하였던, 김용환 화백의 '코주부 삼국지'란 만화의 인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아마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일 것이다.
'코주부'는 '코'와
'주부'로 분석된다. 그러나 '주부'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코주부'란 단어는 아주 최근에 생긴 단어이어서 용례가 적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1920), 문세영 선생의 『조선말사전』(1938), 조선어학회의 『큰사전』(1957),
이희승 선생의 『국어대사전』(1961)에서조차 보이지 않다가 신기철신영철의 『새우리말 큰사전』(1975)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에도 '코보' 항목을 참조하라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북한의 『조선말사전』에는 아예 '코주부'가 올라 있지
않다.
그런데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1999)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어사전에 '코주부'의 '주부'를 옛날에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벼슬인 '주부'(主簿)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코주부'는 코가 큰 사람을 말하지만, 그렇게 큰 코는 '주먹코'도 쓰이었지만, '주부코'도 쓰이었다. '주부코'는 18세기에 '쥬부코'로 등장한다.
쥬부코(糟鼻子) (방언유석<1778년>) 쥬부코(糟鼻) (한청문감<18세기>) 쥬부코(酒皻) (광재물보<19세기>)
그런데
이 '쥬부코'는 오늘날 말하는 '큰 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사증(鼻齄症, 코의 혈관이 확장되어 붉어지고 두툴두툴하게
되면서 혹처럼 커지는 병)으로 부어 오르고 붉은 점이 생긴 코를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쥬부'는 '주부'(主簿)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이 '쥬부'는 그 이전 형태가 '쥬복'이었다. 그래서 '쥬부코'의 이전 형태는 '쥬복고'이었다.
쥬복고 차(齇), 쥬복 포(皰) (훈몽자회<1527년>) 쥬복코(糟鼻子), 쥬복코(齇鼻子) (역어유해<1690년>)
이것은
'쥬복 + 고ㅎ'로 분석된다. '고ㅎ'가 유기음화되어 '코'가 되어서 '쥬복고'가 '쥬복코'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서 '쥬복'이 '쥬부'가 되었으며, '쥬부코'가 '코주부'로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쥬복'이 '쥬부'로 된 이유는 'ㄱ'이
탈락하고 다시 'ㅗ'가 'ㅜ'로 되었다고 하는 설명만으로는 음운론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사증'의 주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앞의 예문 중에 『광재물보』에는 '쥬부코'에 대응되는 한자를 '주사'(酒齄)라고 적어서 그
병의 주원인을 '술'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사증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을 술 특히 주독(酒毒)과 연관시키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독과 연관될까? 그것은 '쥬부'이었을 것이다. '쥬부'는 오늘날에는 없어진 단어이지만,
흔히 사용되었던 단어인데, '술 파는 사람'을 말한다. 중국어 '주보'(酒保)를 우리말로 '쥬보' 또는 '쥬부'라고 하였다.
상목등
좌의 안자 쥬보를 블러 술을 수이 가져오나든 먹고 (삼국지<18세기>) 삼인이 이에 쥬루의 나아가 좌를 희여
안즈 안흐로조 일개 쥬뵈(술 쟝) 나으거 (傍邊走過一個酒保) (第一奇諺<19세기>) 복 문을 밀치고
드러오니 한 쥬뷔 부억의셔 술 더이거날(一個湯保在灶下燙酒) (션진일사<18세기>)
그래서 '쥬복코'는
'술파는 사람'인 '쥬부'(또는 '쥬보')에 유추되어 '쥬부코'로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19세기에는 이미 '비사병에 걸린
코'인 '쥬복코'나 '술파는 사람의 코'인 '쥬부코'는 '쥬부코'로 합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쥬부코'가
단모음화하여 '주부코'가 된 것이다. 그런데 '주부코'는 '코'를 지칭한다. 그런 코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코'를 앞으로 오게 하여 '코주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단어가 곧 '코주부'인데, 그 조어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16세기에 이미 '쥬복고ㅎ'가 등장하는데, '고ㅎ'가 유기음화하여 17세기에는
'쥬복코'가 나타나고 이것이 19세기에 술파는 장사인 '쥬부'와 연관되어 '쥬부코'로 합일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모음화된
'주부코'는 다시 '코'가 아닌 사람을 표시하기 위하여 '주부'와 '코'의 위치를 바꾸어 '코주부'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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