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 김형규
고향은 생각해 무엇하리 / 일가 흩어지고 / 무너진 옛 집터에 / 낙엽지는 저녁 / 까막까막 울고 가는 / 고향은 생각해 무엇하리.
어슴푸레하게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 이 시구(詩句)가 20여 년 전 어느 사범 학교서 학생들에게 적어 준 시의 한 구절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 김동환(파인巴人)의 시가 아니던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시집(詩集)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여기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 것이다. 시집도 없어지고, 작자의 행방도 묘연한 시의 한 구절을, 흩어진 기억을 더듬어 적어 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제(日帝)의 발악이 극도에 달하여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내가 맡은 조선어 시간도 깎고 줄어들어 이제는 그 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이 깜박거리고 있을 때, 학교에 가는 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서는 심정이요, 시간에 들어가면 울분을 참기 어려웠던 그 때 일이다.
우리말, 우리 글자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어떻게 하면 빼앗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깨닫게 하고, 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가끔 그럴 듯한 옛 시조와 또 시도 적어 주고 가르쳐 준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시에서 폐허가 된 고향을 조국에 연결시키고, 흩어진 일가친척에서 민족의 슬픈 운명을 깨닫게 해 보려고 학생들에게 적어 주고 읽어 주었던 것이다. 직접 말은 못 해도 이런 뜻이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졌음인지,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일꾼이 나왔고, 또 지금도 만나면 고난의 옛 이야기에 꽃을 피우며 반가이 맞이해 주는 것을 보고, 나는 무슨 보람 있는 일을 한 듯이 마음 한 구석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 조국을 잃은 백성이 마음속에 숨은 슬픈 뜻을 붙여보던 고향의 시가, 조국을 찾은 오늘날 정말로 고향을 빼앗긴 사람의 슬픈 시로 바뀌어질 줄은 몰랐었다. 잃어버린 고향! 쪼개진 조국! 갈라진 겨레의 운명! 나는 이것을 내 글의 토막마다 너무나 많이 풍겨 왔기에, 이제는 쓰는 것을 삼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나 한 사람만이 가지는 슬픔과 감상이 아니라, 우리 온 겨레가 걸머진 운명이요, 슬픈 현실이기에 여기서 뚜렷이 제목을 붙여 글을 적어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자라고 커지는 몸을 길러주는 곳이 고향일 뿐 아니라, 우리들 마음과 느낌에 피와 살을 주어 부풀고 자라게 하는 것도 고향 산천인 것이다. 앞산의 진달래 꽃과 나무 그늘, 그리고 온갖 열매를 맺어 주는 고향 땅 흙냄새는 우리의 마음에 열매를 키워주고, 바위 틈새 맑은 흐름과 무한대(無限大)의 푸른 바다 물결은 우리에게 느낌을 물결쳐 쉬지 않고 흘러가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자란 내 고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더구나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던 바다 물결은 아직도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노산(鷺山)이 읊은 가고파가 생각난다. 꿈에도 못 잊은 고향 바다 파란 물결, 그리고 거기서 같이 놀던 옛 동무를 생각하는 심정을 나는 내 마음속에 나대로 도로 살리며 그 노래를 읊어 보는 것이다. 자라나던 고향 옛 마을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 그대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떠나지 않는 것이다.
성년(成年)이 된 후의 고향은 생활의 토대를 기초로 하고 생각하게 된다. 중학을 마친 뒤 상경하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가 4,5년을 한 집안을 거느리고 살림을 하게 되니, 내 생활의 근거도 고향에 두게 되었다. 이제는 빼앗긴 고향, 생활의 토대도 빼앗겼으나 그래도 고향의 아름다움과 맺어진 따뜻한 정은 사라질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적고 보니, 고향을 그리는 한낱 감상의 글이 되고 말았다. 유염(有髥 ; 구렛나룻이 있음) 남자로 더구나 50대에 들어선 사람이 엷은 감상의 글을 적는 것은 본의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듯 고향을 못 잊고 애타게 그리워함은 그곳에 남아 계신 오직 한 분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일 게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을 지키신다고 홀로 남아 계셨던 어머님은 아마도 이승에서 다시 뵈옵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전란(戰亂)의 시인 두보(杜甫)는 <무가별(無家別)>에서 이렇게 읊었다.
영통장병모(永痛長病母) 오년위구계(五年委溝谿)
생아부득력(生我不得力) 종신양산시(終身兩酸嘶)
그러나 나는 그가 도리어 부럽다. 5년 긴 세월 노모(老母)를 고생의 구렁에 남긴 채 병란(兵亂)에 쫓기던 몸이 이제 다시 만나 울음을 같이 하며 불효를 흐느끼는 그가 무한히 부러워진다. 많은 고난 속에 나를 낳으시고 기르고 또 가르쳐 주신 어머님을 이제 다시 영영 모시지 못하고 가야 할 불효의 인간은 두보를 부러워하며 이 글을 적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