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구속사 강해
아브라함이 건설할 신령한 나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류에게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理性)을 주셨다. 인간은 이성의 활동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동반한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유와 책임을 주신 것은, 인간을 여느 피조물들과는 달리 대우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인간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교제의 대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록 피조물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것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한 이후 이 세상에 들어온 죄는 사람들의 이성을 지배하게 되었고, 이미 죄에 빠진 인류는 순수한 이성을 상실하고 악에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에 인류가 경영하는 것은 죄의 흔적만을 쌓게 된 것이다. 가인이 죄의 지배를 받아 아벨을 살인한 사건은 인류의 역사 시초에서부터 반신국적(反神國的)인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해주고 있다.
1.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 세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강포한 힘의 지배 원리를 추종하게 되었고, 노아 홍수 이후 새롭게 태어난 인류마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와 사랑의 통치를 거역하고 말았다. 새 인류는 힘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독자적인 세계를 건설해 나간 결과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의 인류 사회가 여러 종족 사회로 분리되었다. 이후 각각 종족을 중심으로 서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이로써 종족 단위의 국가 사회를 건설해 나가던 인류는 서로를 지배하기 위한 힘의 투쟁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편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자녀들을 상대하여 언약하신 것은 인류가 다시는 멸망당하지 않도록 인류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하였고 그 결과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만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따라서 각 국가 사회는 이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더 강력한 통치자를 세워야 했다. 또한 자신들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기 위해 소위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 이미 셈의 후예들마저도 심각할 정도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다(수 2:24-2-3 참조).
이미 아브라함 시대에 갈대아 우르를 중심으로 우상 숭배 위주의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사탄의 조직력이 그만큼 강하게 사람들을 통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아브라함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불편이나 문제가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지 않으면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더욱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회에서 남들과 같이 먹고산다는 것은 아브라함 역시 죄의 지배 아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숭배자로서 사탄의 비호를 받으며 살았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역시 간접적으로 사탄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비록 사탄의 세계일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강력하신 권능으로 살아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속한 사회가 이미 사탄적인 성격이 강하고 사탄의 비호 아래 먹고사는 방편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가 명확하게 객관적으로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아브라함 역시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사탄의 통치 아래 있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죄로부터 자유롭게 됨으로서 인간 본연의 이성을 행사하는 것이 인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는 나라에서 아브라함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이다.
2. 아브라함이 건설할 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사탄의 통치력으로 유지되는 일반 국가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다.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롭게 건설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건설할 나라는 죄의 지배 아래 건설된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나라이다. 죄로부터 구별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유지되고 다스려지는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는 궁극적으로 세상의 종말에 나타날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상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한편으로 사탄의 통치력이 위세를 떨쳐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점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는 선언은 사탄의 세계와는 현저히 다른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에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류와는 다른 신령한 민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생산될 것이라는 선포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신령한 새 민족을 생산하여 새로운 영적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구현되는 나라이고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며 이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게 될 것이다. 때문에 비록 그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사탄의 세계와 원수가 될 것이다. 이것은 여자의 후손들이 뱀의 후손들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신 창세기 3장 15절의 선언을 성취하는 것이고, 나아가 뱀의 후손들과 적대 관계인 여자의 후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죄의 세계의 괴수인 사탄을 타파할 약속의 씨가 태어날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마침내 약속의 씨로 오실 메시아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을 제거하심으로서 언약의 후손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주실 것을 신앙하게 되었다(요 8:56). 그리고 자신은 새 나라를 건설할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죄의 지배 아래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몸담고 있던 거대한 사탄의 조직체로부터 분리되어 신령한 새 민족을 생산하고 그들을 통해 전혀 다른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곳은 세겜이었다. 아브라함은 당시 무역로였던 왕의 대로(King's Road)를 따라 하란을 떠나 요단강 동편에 있는 고원의 길을 따라 남방으로 향하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중심부인 세겜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seed)에게 주리라 하신지라”(창 12:7). 가나안에 들어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제일 먼저 그 땅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겠다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언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밟고 있는 그 땅은 장차 신령한 나라의 영토가 될 것이고, 그때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신령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드러낼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나타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는 것은(창 12:7), 그 모든 사실을 아브라함이 수용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