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의 이별
원제 : Never Say Goodbye
1956년 미국영화
감독 : 제리 호퍼
출연 : 록 허드슨, 코넬 보처스, 조지 샌더스
쉘리 파바레스, 레이 콜린스, 데이비드 잔센
헬렌 월리스
50년대 최고의 미남스타인 록 허드슨의 국내 개봉작 중에서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가 '애수의 이별' 입니다. 1956년, 즉 록 허드슨이 최고 전성기 시절 출연한 작품이며,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작품이 바로 전설의 '자이안트'를 비롯하여 '전송가' '바람에 쓴 편지(개봉제는 바람과 함께 지다)' 등 입니다. 그야말로 정말 잘 나갈때 출연한 영화인데 이상하게도 유독 '애수의 이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리 호퍼 감독의 영화인데 제리 호퍼는 그다지 많이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록 허드슨과는 이미 '하나의 희망(One Desire)' 이라는 영화를 같이 했고, 1년뒤에 '애수의 이별'을 다시 함께 작업했습니다. 록 허드슨은 50년대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작품에 여럿 출연했는데 '애수의 이별'도 제리 호퍼 감독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더글러스 서크가 같이 감독을 했다고 합니다. 제리 호퍼 감독은 우리나라에는 찰톤 헤스톤 주연의 '미즈리 대평원'과 '잉카 왕국의 비보' 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록 허드슨의 50년대 멜러드라마가 많이 그렇듯 이 작품도 굉장히 애틋한 영화입니다. 6.25 전쟁 이후 애틋한 영화에 많이 감동했던 한국인의 정서에 매우 잘 맞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1956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보기 드물게 그해 12월에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으니 당시로서는 꽤 빨리 수입된 편입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9살된 딸과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인 마이클 파커 박사(록 허드슨)는 의사인데 딸인 수지(쉘리 파바레스)는 그런 아버지를 무척 숭배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남편에게 깊이 의지하는 아내처럼. 수지가 엄마를 기억하며 라는 글이 새겨진 정원에 들어가고 그 모습을 애틋하면서도 약간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마이클의 모습을 통해서 뭔가 사연이 있는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장면만 보면 죽은 엄마를 기리는 소녀의 모습이니.
이렇게 초반부에 뭔가 부녀의 사연을 암시한 듯한 장면 후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차대전이 막 끝난 1945년, 마이클이 아내가 될 여인 리사(코넬 보처스)를 운명적으로 만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리사는 러시아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 겸 가수였고,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는 빅터(조지 샌더스)와 콤비가 되어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리사가 무대에서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지르게 되고 마침 그곳에 와 있던 군의관 마이클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인연을 계기로 마이클과 리사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비엔나에서 행복한 신혼을 즐기던 두 사람, 그들은 곧 예쁜 딸 수지를 얻습니다. 수지가 2살 되던 때, 리사와 빅터와의 관계에 필요 이상의 질투를 느끼던 마이클의 오해로 인하여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화의 내용은 일종의 1부와 2부처럼 두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영화 초반에 벌어지는 뜻밖의 사건은 일종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이후 1부형식의 이야기는 마이클과 리사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어 2부는 7년이 흐른 뒤 마이클과 수지 사이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된 리사가 미국에서 함께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법 재미있고 애틋한 통속 멜러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들 3인 가족의 사이에서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하는 감초 조연으로 빅터 역의 조지 샌더스가 굉장히 상남자 역할을 합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고 크게 기대를 안했던 작품으로 록 허드슨의 마이너급 작품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보았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고 애틋한 감동도 있습니다. 전후의 어렵던 시절 우리나라 관객들의 심금을 많이 울렸을 만한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직접적 주제는 아니지만 분단과 전쟁, 이산가족 등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내용도 등장하고요. 무엇보다 매끈하게 잘 생긴 록 허드슨이 주인공이다 보니 몰입도도 더 커지고. 록 허드슨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고 있어서 더 멋지고 잘생겨 보입니다. 록 허드슨에 비해서는 지명도가 너무 약한 여배우가 여주인공인데 생소한 코넬 보처스라는 배우의 자료를 잦아보았더니 꽤 일찍 은퇴하여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고, 더구나 러시아계 독일인이라서 실제 영화속 인물의 설정과 딱 일치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편 안되는 출연작의 상당수는 독일영화라서 더더욱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애수의 이별'외에 에롤 플린과 공연한 '추억의 이스탄불'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두드러진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치 잉그리드 버그만을 연상케 하는 고상한 외모는 9살된 딸을 가진 애틋한 사연의 여주인공을 연기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록 허드슨과 코넬 보처스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연기하지만 주연급 비중에 가까운 조연으로 등장한 조지 샌더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악역을 많이 연기했던 조지 샌더스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주 쿨하고 상남자 다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단짝 파트너인 리사를 마이클에게 빼앗기면서 본인의 생업에도 큰 영향을 받지만 개의치 않고 리사의 좋은 친구로 존재하고, 또한 마이클과 리사의 문제가 생겼을 때 알아서 빠져주거나 끼어들어야 할 때는 끼어들어서 해결해 주기도 하고, 늘 음지에서 묵묵히 리사를 위해서 희생해주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 막바지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레베카' '운명의 맨하탄' '인간 사냥'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에서 아주 얄미운 역할을 주로 했었는데 모처럼 상남자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7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외화 '도망자'를 통해서 너무도 유명한 데이비드 잔센이 록 허드슨의 비엔나 시절 동료 군의관으로 두 시퀸스에 단역 출연하는데 20대 초반의 보송한 모습입니다. 록 허드슨의 딸로 출연한 쉘리 파바레스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성인 배우로 오래활동한 경력을 가졌는데 TV배우로 대부분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역시 생소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개봉작 중 한 편인 '걸 해피'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어떤 사건 때문에 자녀와 헤어진 엄마의 슬프고 애틋한 내용,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좀 다른 변형물로 많이 파생된 통속극의 젼형인데, 60년대 엄천난 히트작 '미워도 다시 한 번'도 그러한 변형물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 외국 히트작 중에서 '마담 X' 같은 영화도 일종의 사촌관계 같은 영화라 할 수 있고. 비교적 근작으로 따진다면 소피 마르소 주연의 '파이어라이트'가 많이 유사한 내용은 아니지만 공통 분모가 있어서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애수의 이별'은 신파극은 아니고 통속 멜러물의 전형인데 그냥 평범한 로맨스 영화를 넘어서는 좀 색다른 스토리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록 허드슨의 멜러물 장르는 최소한 기본이상은 한다 라는 생각을 새삼 확인시킨 영화입니다. 1954년 작품 '마음의 등불' 이후에 록 허드슨은 통속 멜러물 장르에 가장 잘 맞는 배우라는 정체성을 일찌감치 찾으며 50년대를 화려하게 보냈고, 이후 중년이 되어가는 60년대에는 남성적인 영화들(서부극, 전쟁물)로 장르의 폭을 넓히며 비교적 오래 인기를 누린 배우입니다. 다른 꽃미남 배우들인 존 개빈, 트로이 도나휴 ,로버트 와그너 등에 비해서 배우의 수명이 길었던 것도 그런 처신 때문이었습니다. '애수의 이별'에서는 한순간의 질투로 인생이 바뀌어 버린 주인공 역할로 진짜 상남자역은 조지 샌더스에게 양보한 셈입니다.
유명스타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치고는 드물게 영상을 찾기 어려운 희귀작인데 현재 검색되는 영상은 다소 저화질(비디오 화질) 영상뿐입니다. 록 허드슨의 50년대 개봉작이 많이 출시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미출시되었습니다. 언젠가 좋은 영상으로 출시되었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에롤 플린 주연의 같은 제목의 1946년 작품이 있는데 제목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에롤 플린 작품은 국내에 출시가 되어 있지요.
ps2 : 실버 영화관에서 2,000원에 감상하였는데 주로 DVD출시 영화를 상영하는 이 극장에서 간혹 이렇게 미출시 희귀작을 상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상영은 솔직히 너무 자막이 엉망이었습니다. 번역도 번역기를 돌린 수준이었고(쓸데없는 주어가 많이 나와서 자막이 길어졌음. '여기 내려주세요' 이렇게 하면 되는 걸 '나를 여기에 내려주세요' 이런식으로. 자막이 열악하면 오타라도 적어야 하는데 군데군데 오타 투성이에 맞춤법,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제대로 검수를 한 번도 안한 자막이더군요. 아무리 2,000원 극장이라도 상영에 올리면 최소한의 검토는 했어야죠. 희귀 고전을 볼 기회를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다행히 영화가 무척 내용이 쉽고 어려운 대사도 거의 없어서 내용 이해에는 큰 불편이 없긴 했습니다.
[출처] 애수의 이별(Never Say Goodbye 56년) 애틋한 고전 통속 멜러물|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