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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상과선 - 김지견, 민족사, 2002 신라 화엄학의 계보와 사상 I. 서론 -신라 불교에서 화엄은 매우 넓고 깊게 영향& 당과 일본에도 영향. -신라 승려 중 화엄과 관계 없는 분은 거의 없음. 따라서 특별히 어느 계통이 주류라 할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원효를 주류로 보지만 필자(지견)는 의상계가 주류로 봄. 다만 원효는 삼장(三藏)에 능통한 이로 유독 화엄에만 능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 생각. -의상계는 선문구산에도 깊은 관계가 있었으며, 균여의 전기를 쓴 혁연정(赫連挺)은, 인도의 화엄은 용수, 신라 화엄은 의상, 고려 화엄은 균여로 화엄 계보를 논하고 있으며, 균여 자신이 의상의 저술 '법계도기'에 대한 주석을 하고 있다. p13 -조선 불교는 법난의 불교였으나 설잠 김 시습도 의상의 '법계도기'에 대한 주석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려 균여의 주석이 교리적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조선의 김 시습은 선적인 주석을 하고 있어 두 저술 사이에 흐르는 사유성에서 경전관과 어록관의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p13-14 -특히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현재에도 한국 불교의 의식이 집행될 때 회향게에 앞서 의상의 법성게가 주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화엄계뿐만 아니라 전체 한국불교의 실천 의식 속에 의상의 저술이 다라니처럼 주송되고 있다는 것은 의상의 사상이 얼마나 깊고 넓게 전승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신라시대의 해동화엄의 특색이 화엄학을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데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수성이 중국과 일본의 화엄과 서로 다른 점이요, 중국 화엄의 제2조이고 의상의 스승인 지엄이 높이 평가한 바요, 한국불교가 긴 역사를 통해서 실천해 온 전통이기도 하다. p14 -신라 화엄은 1.일본에 전해져 일본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러나 일본 초기 '화엄전적전래사'에는 신라에서 전해진 것을 당에서 직접 전해진 것처럼 기록된 오류가 있었는데 이런 오류가 균여의 저술에 의해 정정되어짐. p14 2.일본의 명혜(明惠)는 '화엄연기'를 저술하여 많은 여성들을 교화시켰는데 그 때 교재로 사용. 그런데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의상과 선묘의 설화가 중심이 됨.p14 II.화엄경과 그 수용 -화엄경의 근본적인 특징은 사사무애와 법계연기사상에 기인한 것이다.즉 궁극의 진리 입장에서 살펴보면 일체사상이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성립되었으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살도의 실천을 설하고 있다. 보살도의 실천에는 자리와 이타의 두 길이 있다고 하나, 보살도에 있어서는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 자리이기 때문에 자리즉이타인 것이다p16-mo.여기서도 필자의 화엄 오류가 보임. 김지견박사의 이 말대로, 화엄의 특징을 법계연기로만 보고 보현행원을 보지 못하는 오류가 여기서도 알 수 있음. [삼국과 화엄] 1.고구려 승랑-기록적으로 삼국 중 화엄관계에 가장 먼저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승으로 중국 신삼론종의 종조로 활약한 '승랑'인데, 승랑은 화엄에도 조예가 깊었음. 불타발다라가 60 화엄을 번역한 (서기418년) 약 40년 뒤의 기록(法度傳)에 승랑이 화엄에 조예가 깊다는 기록이 있음.p18 2.신라 자장-선덕여왕 때 사람. 자신이 출생한 곳을 개조해서 '원녕사(元寧寺)'라 칭하고 그 사원의 낙성 때 화엄만게(華嚴萬揭)를 강의하여 화엄교의를 천명. 특히 53 지식수(知識樹)를 심어 화엄만게를 강했는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선재가 53선지식을 방문하는 동안 인간의 박지범부(縛,묶을 박,地)이면서도 능히 불과를 성취해서 일만팔천 대중의 대표자로서 미륵누락에 들어 자신의 삼생인과와 제불의 삼세인과를 동시에 노득(노략질 로, 사로잡을 로, 擄(로)했다는 인연의 예를 시사한 것.p19 이로 보면 신라인의 사유 심층에 깊이 화엄사상이 침투햇다는 것을 알 수 있음. 1)최치원 저, 불국사의 '아미타불찬병서(아우를 병, 幷(병), 병합=倂合)'를 보면 '동해동산유가사, 화엄불국위사호(東海東山有佳寺, 華嚴佛國爲寺好)'라 했고, 신라 문화의 결정이라 할 불국사의 석굴암 등은 화엄 사상을 지상에다 구현하려고 했던 것. 또 불국사 주지는 창간 이후 거의 화엄학계, 특히 의상계 제자들이 역임. 2)가섭의 연좌석과 금강산과 화엄경의 관계(유점사의 53불) -신라인은 비록 불교가 외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신라 본래의 종교라 생각한 경향이 있는데, 신라가 과거불의 연고지라며 주장한 가섭의 연좌석이나 금강산과 화엄경의 관계도 그런 시례 a.전설에 의하면 서기 4년인 신라 남해왕 때 금강산 유점사의 53 불이 인도에서 직접 전래 되었다는 설화. 이는 중국 한평제 원시 4 년에 불교가 전해지기보다 65년이 빠르고 불전이 한역되기 전이므로 아마도 가섭연좌석적인 설화로 추정). b.그러나 금강산을 화엄도량으로 본 것은 사실. 신라인은 한국 제일의 영산인 금강산을 법기보살이 거주하는 '금강산'으로 명명하고 그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칭함.-최고봉을 비로봉이라 칭한 것은 의상의 십대 제자 중 한 명인 표훈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신라인들은 화엄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1.초기화엄의 전도 방법은 53 지식수를 심고 화엄의 게송을 전하며, 2.한국 제일의 영산을 화엄사상에 입각해서 명명하고 신앙-이것은 지상에 불국토 장엄, 즉 화엄사상을 지상에 구현하려는 신앙의 발로로 생각됨. p20 -김지견박사의 해인삼매 해석p21 1.해인삼매는 다른 삼매와 달리 세계가 삼매가 드는 것. (mo즉 다른 삼매는 개인이 드는데 비해) 해인삼매는 '바다'가 든다, 이 때 바다는 세계를 의미하고, 따라서 해인삼매는 세계 자체의 삼매이다. 2.더 깊이 파고 들면, 세계의 삼매란 세계가 적정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세계가 자기 자신을 열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mo 견해와 정확히 일치! 그러니까 동의 삼매!)-->세계 자체가 그 스스로 개현해 가는 모습, 그것이 해인삼매의 기본성격이다!!! -->이 문제는 중국화엄이나 일본화엄에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으나 해동화엄에서는 이로정연(理路正然)하게 다루고 있음을 본다. 즉 균여의 '십순장원통기'와 체원의 '법계도기총수록'에서 볼 수 있다. 이중 오중해인설(五重海印說)에서는 그야말로 화엄적 세계관의 근본구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 소식이 균여전의 저자 혁연정에 이어지고 고려 지눌의 '원돈성불론'에서 약여하게 논구되고 잇음을 보게 된다. p21 III.신라화엄학의 계보 1.원효계 -원효의 교판사상은 신라에서보다 해외에 더 넓게 전해져 화엄의 권의가들은 거의 다 원효의 저술을 인용하고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본국인 신라에서는 부분적 인용은 있었으나 원효 저술 그 자체에 대해서 연구한 자가 없었던 것 같다(지견)P22. 원효의저술이 가장 넓게 인용된 부분은 '사교판(四교판)'으로, 중국에선 법장, 이통현, 혜원, 징관/일본에서는 동대사의 수령(壽靈)이 인용. 혜원은 약각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점에 대해 징관은 無失이라 함. -사교판론은 심천에 따라 삼승에 통교(通敎), 일승에 분만(分滿)으로 구분하여, 화엄원교는 일승만교에 구경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乘에는 일승,삼승으로, 교에는 별교/통교/분교/만교로 한 판석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화엄사상의 초점을 거양한 것으로 보인다. -원효계의 화엄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원효를 화엄종조로 칭한 것은 후세의 화엄학자들이 유명한 원료를 자종에 짐짓 종조로 모시려는 뜻에서 의식적으로 꾸며댄 일이 아닌가 싶다. 자료로서 현재 전해진 것은 조선시대의 '예참문'에 화엄종조로 칭한 일이다. p24, (지견 견해-김지견박사는 의상을 주류로 봄) 2.의상계 -화엄학에 있어 해경, 행경의 시불이 있는데, 희상은 행경의 시불은 논하나 해경의 시불은 논하지 않는다. 그는 해경시불보다는 행경의 시불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이것만 보더라도 의상이 얼마나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으며, 지엄이 '의지(義持)라고 호를 준 이유가 없지 않다. ...법장이 행경의 시불보다 해경의 시불은 중시하는 것과는 그 착안점을 전혀 다르게 하고 있다. 같은 행경의 시불이라 하지만 정각불 등의 시불보다는 무착불 등의 이른바 견불의 시불을 무겁게 본 것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p27-28 *'법계도총수록'에 실린 시불에 대한 설명-진정,지통에게 견불에 대한 설명 중에서. 1.무착불-세간에 안주하기에 열반의 착을 떠나고, 정각을 이루었기에 생사의 착을 떠나 삼종세간이 원명자재한 것을 무착불이라 한다. 2.원불-140원, 1 회향원, 초지의 원, 성기의 원 등을 이르고, 이 불은 무주신(無住身)이므로 어느 한 물건도 불신 아님이 없기에 일체 법계에 주변한 것. 3.업보불-위에는 묘각으로부터 밑에는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사(佛事)이기에 혹 사람이 이같은 이치를 믿고 공경(신경)한다면 이를 업보불이라 함. 4.지불(持佛)-삼라제불은 무진이라 하겟지만, 만일 해인으로 인정한다면, 즉 유일한 해인정(海印定)의 법으로 중중무진해서 세계가 불을 지하고 불로서 세계를 持하기 때문에 지불이라 함. 5.열반불-생사와 열반이 본래 평등하다고 증견하는 것을 이름. 6.법계불-일진법계, 松의 법계, 栗(율)의 법계, 내지 시방삼제의 허공법계 등이 총시불신이라 보는 것. 7.심불-심식(心息)이면 즉불, 심기(心起)하면 비불이라 한다. 심식하면 법계가 원명하고 심기하면 법계가 차별되기 때문에 심이 안주하면 법계의 제법이 우리들 오척신중에 체현되므로 심불이라 한다. 8.삼매불이란 해인삼매의 법이 주착함이 없음을 말한다. 9.성불(性佛)은 법성을 말하는 것으로, 법성에는 삼세제를 다한 대성(大性)과 일법 중에 일체를 나투는, 소성(小性)의 이성(二性)이 잇다 한다. 10.여의불-대용왕의 보주는 일체중생의 의식을 성숙하게 함과 같이 불은도 이와 같음을 말한다. *설잠의 주석서-이 주석서는 선과 화엄을 잘 융합시킨 명작으로, 조선시기의 선과 화엄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 특히 설잠은 화엄경은 비로자나불을 보현보살이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의상의 법계도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p27 -일본화엄도 의상계임. 일본에 화엄을 전한 심상은 의상계. IV.의상의 신앙와 사상 1)'엄정융회'의 신앙 -의상의 신앙은 핵심적이고 종합적, 실천적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관음신앙과 미타신앙이 본원적인 곳에 소급해 가면 같기 때문에 본론에서는 미타신앙만 다룸. 우선 의상과 미타 사상을 다루려면 부석사 창건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부석사는 문무왕16년(676)에 의상이 창건한 최초의 신라 화엄도량. 그런데 본전이 무량수전이며 주불이 비로자나불이 아닌 아미타불. (CF.해인사는 본전=대적광전, 주불=비로자나불). 김지견박사는 이에 오랫동안 의문을 품고 연구했는데, 김박사 개인 의견으로는 틀림없이 정토왕생의 구품정토신앙을 신라의 봉황산에 이식하여 화엄근본도량인 부석사를 개창했다고 생각하며, 관무량수경이 부석사 설계도의 원형으로 생각. P37 *신라의 정토왕생신앙 1.정토왕생신앙은 한국 불교의 각 시대를 통해 깊이 신앙되어 왔으나 종파로서는 성립하지 못함. 그러나 신라 불교는 정토왕생을 신앙 못지 않게 학문적으로도 깊이 연구되었으니, 무량수경에 대한 원효, 경흥의 주석은 중국의 혜원, 현장과 함께 무량수경의 사소(四疏)라 해도 지나치지 않음. P37 2.의상 때 신라에는 이미 관무량수경이 유포됨. 3.의상은 문무왕 1년에 입당하여 11년에 귀국하는데, 당년에 낙산사 관음굴이 개창되고 원효는 의상의 불사에 동참. 관무량수경의 관법이 원효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상과 교류가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광덕과 엄장의 고사에 16 관법이 나오고, 원효가 쟁관법(錚쇳소리, 징(쟁), 쟁쟁=쇠가 울리는 소리)의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원효가 한 쟁관이란, 쌍권(雙卷)과 음이 통하는데, 즉 무량수경이 2 권이 있다는 데서 일명 쌍권경이라고도 하고 동경 16 관 중에 제6 보루관(寶樓)으로써 정토의보(依報) 전체를 관해 마침을 이름한다. 정토 16 관경을 정관이라고 하는데서 쟁관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P38 상기와 같이 관무량수경에 의해 당시 16 관법이 유행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4.의상은 벌써 정토신앙을 하고 있었음. 의상의 신앙에는 정토왕생이 크게 영향을 줌.의상의 신앙은 엄정융화적이었다고 보임.P41 5.화엄경과 왕생신앙과의 연관성p41- 1)일본 학자들의 견해 -화엄부 28 부 233권에 화엄과 미타의 연관성. (아미타불의 연구, 시흡경휘(矢吸慶輝) -관무량수경과 화엄경의 연관성을 논함, 즉 관무량수경의 '득백법명문주환희지(得百法明門住歡喜地)'는 화엄십지품의 원거라는 말(불교경전성립사, 망월신형(望月信亨). 2)김지견박사의 견해 -60 화엄에서 선재가 처음 만난 공덕운비구는 61 종의 염불삼매를 설명. 이처럼 하엄경에 염불삼매의 내용이 수처에 함입되어 있다...중략.. 특히 균여의 '십종원왕가'의 내용도 엄정융화적이다. 그리고 균여가 의상화엄의 계승자라는 점에서 특히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리고 40 화엄은 미타회향으로 끝맺는다...중략.. 화엄경 중에서 가장 새로운 역에 미타정토신앙이 증입되어 화엄의 이상세계인 화장세계에 증입토록 한데 크게 의의를 느끼게 한다(40화엄은 원전이 전하므로 오히려 화엄경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정토계 경전과 화엄계 경전을 비교하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의상이 정토신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부석사의 유구(遺構)는 관무량수경의 구품신앙에서 왓다는 것을 인정하면 종래에 모순이 아닌가 여겼던 사실을 해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부언해 둘 것은 중국화엄의 제 4조였던 징관의 견해이다. 즉 징관의 '화엄경행원품소제10권'에 의하면, 40 화엄의 왕생극락의 주석이 매우 흥미롭다. 화장세계에 나지 않고 극락 세계에 나려는 이유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생(不生)화장이생(而生)극락 약유사의(略有四義), 일유연고(一有緣故), 이慾使중생귀빙청일고(歸憑,의지할 빙, 증거할 빙=증빙,빙의,淸一)고(故), 삼불리화장고, 사즉본사(本師)고... 즉본사고라고 하는 이유는 아미타불이 즉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이다. 의상의 그 화엄 사상 가운에 관무량수경의 정토왕생신앙을 증입하여 부석사 가람 설계를 했다는 것은 실천면을 얼마나 중시했던가를 알 수가 있겠고, 미타왕생신앙과 이상적인 화엄사상을 연결시켜 누구고 실천 옮길 수 있게 함은 탁견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의상의 신앙과 사상은 삼본화엄경이 완성한 경전성립사적 배경이 의상의 화엄사사의 탁월한 안목과 그 실천에 있어 신앙의 바름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p42-43 왜냐하면 대화엄경을 설하는데 비로자나불을 대신해서 주역을 맡은 보현보살은 비로자나불을 찬탄하고 연화장세계를 찬미하지마는 최후에는 비로자나불과 함께 선재동자의 앞에 현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권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리고 대화엄경의 막이 내린다. p43-mo.이것은 행원품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임. 2).화엄일승법계도의 사상 -법성게는 7 언 30 구 210 자의 구게를 54 각의 인도(印圖)로써 제작. 이 인도는 지엄의 73 인(印)의 사상을 받아서 그 근본인을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근본인이란 해인삼매의 현현을 천명하는 법문이라 할 것이다. p44 이런 뜻에서 법계도가 '법성도'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또한 '해인도'라고도 불려졌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대화엄경의 전체 사상을 해인삼매에다 집약시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해인도는 그 삼매의 증험의 경지를 인도로써 교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해인삼매에 들면 기세간,중생세간, 지정각세간의 모든 것이 남감없이 대선정 그것으로 되어지고 마는 것이며 의상은 이와 같은 삼매의 경지를 현현시키기 위해 법계도를 제작하였던 것이며 이 법계도는 그 당시에 각증(覺證)의 인가로써 지엄이 의상에게 수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받는 면에서는 자내증으로써 소중하였을 것이다. 화엄전통이 많이 남겨져 있는 해인사에는 삼보물로써 화엄경, 무공주(無孔珠), 해인도가 전해 내려왔다 한다. 合詩는 법성게라 하며 한국불교에서는 일체의 의식이 회향되기 직전에 이 법성게를 주송한다. 이 인도는 일승원교의 대선정을 뜻하는 것이므로 해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겠으나 의상은 인도의 내용을 돈증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수문(數門)으로 분단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명도 교판이라든가 주석에다 초점을 두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무명무상(無名無相)의 진원(眞源)에 직입시키기 위한 배려였다. p45 -법계도는 비로자나불의 대선정, 말하자면 해인삼매의 관도(觀道)적인 면을 도시한 것. p49 해동사문 원효 소묘 -원효가 활약하던 시기는 중국에 구역시대가 지나고 현장을 중심으로 신역불교시대를 맞이하는, 교학의 정립기. 그러나 원효와 같은 독창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함.p60 -원효의 '이장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현장 신역의 유가삼승의 단혹설과, 구역인 기신론 중심의 단혹설을 종합적으로 연구 완성한 점이다. 이는 현장과는 다른 차원의 안목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효는, 인간을 규정하는 파도스와 로고스로서, 번뇌와 所智의 이장은 동시에 인간의 한계 상황으로서 불교의 근본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원효는 현장을 전후한 신, 구 불교를 종합하는 화쟁적 차원에서 불교사상 가장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다. 고집멸도를 말하는 불교가 인생의 근본 문제를 고로 보고 그것을 추구하는 모습은 원효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의 하나이다. p60 III. 무애의 의미 -원효의 무애사상은 화엄사상이 그 행위의 기초가 되고 있다. 원효에 있어, 1. '불연지대연은'은 사사무애, 2.무리지지리(無理之至理)'는 이사무애 3.화쟁은 무애, 사사무애의 행위 쪽에 '동사섭'이 요약된다. 그러기 때문에 화엄사상은 화쟁의 이론 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장이나 징관에 비해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행위로써 동사섭 없이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원효에 있어 사섭법의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사섭 중에 이행섭, 동사섭 쪽에 더 비중. p63 -흔히 화엄경은 지관적인 면이 없다느니 약하다느니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장자와 비슷하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물론 격의불교시대부터 중국적 모태를 통해 한역경전이 탄생했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장자적 방법이 없지 않을뿐더러, 원효 자신의 '진역화엄경소서'도 장자적 표현과 유사한 용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원효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의 배경이 화엄경에 있고, 화엄사상에는 지관 이상인 실천이 요청된다. 무유피염 즉 보현행원을 실행하는데 싫증을 내지 않는다. 화엄경 가운데 사섭법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동사섭이 없는 무애란, 하화중생이 없는 상구보리에 다를 것이 없다. p63-64 -부처님은 생사 出離를 설하시었는데, 해동사문 원효는 생사, 시비, 갈등 속에 뛰어들어 노래하고 춤추며 무애소식을 전하고, 동사섭으로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신라 민중과 함께 화쟁무드를 조성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화쟁의 물결은 신라에 국한되지 않고 멀리 인도, 중국, 일본에까지 메아리쳤음을 알 수 있다. p65 의상전 재고 -'부석존자'라는 칭호는 부석사에서 유래.p95 [의상의 귀국 이유는?] -의상은 지엄의 수제자. 지엄이 67 세로 淸淨寺에서 입적 시(668년), 의상은 입적 18 일 전 와병 중의 지엄에게서 普法의 수지궤칙(受持軌則)이라는 마지막 유산을 물러받음.하지만 그 당시 어디에도 의상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측근 인물로 혜효(慧曉)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김박사는 이를 의상의 다른 이름으로 봄. -혜효는 지엄 입적에 앞서 그거의 거처인 반야대가 무너지는 꿈을 꾸고 지엄의 입적을 예감했다 함. -의상의 법성게가 완성되엇을 때 지엄이 '눈물을 머금고 감격했다'는 것은, 화엄일종의 宗要임을 뜻. 중관이든 유식이든 그 종요를 게송으로 압축하는 것은 인도불교 이래의 전통적 양식. 십지론의 세친에세 유식40송의 종요가 있고 그것이 미륵-무착-세치느이 3대의 결실이라면, 의상의 '일승법계도합시일인'은 두순-지엄-의상으로 이어지는 3대의 결실인 셈이다. 따라서 의상의 법성게 30 구는 화엄일종의 종요힘을 표방하는 화엄30송이고 사사로운 작품이라 볼 수 없다. 의상이 스스로 이것을 '원교의 종요'라고 보른 것은 이 때문이다(일승법계도합시일인 依화엄경 及십지론 表원교종요). p85 -지엄이 의상으로 하여금 화엄30송을 만들게 하고 이를 해설하게 한 것은 그를 一宗의 시상적 지주로서의 후계자로 지정한 것을 의미. p85 -지엄의 입적 후 3년 뒤 의상은 신라로. 그 이유를 김 지견박사는 지엄 제자들 간의 암투에서 의상파가 몰락한 것에 둠. 마치 현장 문하의 西明寺 원측(613-696)이 뛰어난 자질 때문에 慈恩계로부터 배척되듯. 당시 유학승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 당인들은 심한 문화적 위기 의식에 사로잡혔을 것. p92 -법장은 지엄 입적 3 년 뒤 느닷없이 지엄이 머물던 지엄의 三寺가 아닌 신찰 대원사에서 뒤늦은 출가를 하고 그의 출가를 위해 박진, 도성 등이 왕실에 연판장을 올리고 측천무후의 왕실의 배경으로 출가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지엄은 엄격한 출가주의를 유지한 사람으로, 생전에 법장에게 출가 권유한 흔적 없음. 지엄의 사후 舊寺는 至相, 雲華, 청선 등의 의상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박진과 도성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그들보다 학식이 뛰어난 법장을 영입하여 구심점으로 삼은 것. -법장은 평생 측천무후 등의 왕실을 떠나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고, 이것이 화엄을 제왕의 철학으로 세속화시킨 계기가 됨 & 동시에 의상계의 도태와 출가주의, 수도중심주의로서의 하엄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 따라서 법장의 출가는 단순한 출가가 아니라 제3조의 조위를 찬탈하기 위한 절차였을 것. 최치원이 법장의 출가를 가리켜 비상히 파격적이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김박사는 생각. p91 -신돈은 화엄승 의상의 법위고p94 -의상계 화엄 특징은 한 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의상의 경우 화엄은 연기적 차원의 사유를 초월한, 성기로서의 진리를 엄정융회의 실천 신앙을 통해 체험하는 실천 철학이었다는 점만은 지적해 두어도 좋을 것이다. 법장과 달리 해경의 시불보다 행경의 시불, 그 중에서도 특히 무착불 등 이른바 견불의 시불을 중시한 것이라든가, 엄정융회의 신앙 고백으로서의 백화도량발원문을 저술하고, 부석사에 아미타여래를 봉안한 것 같은 것은 의상화엄의 이런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p95 -지눌은 해동화엄의 종문선승과 궤를 달리하는 선가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신에 있어서만은 해동화엄의 계승자였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p276 -간다뷰하의 십만송이 천축에서 부흥한 것은 횽수의 활약 때문이고, 신라에서 창시된 것은 의상의 활약 때문이며, 여조에 선양된 것은 균여의 활약 때문이다.-균여전(혁연정)p116 -설잠이 어디에선가 법계도와 총수록을 찾아냄과 동시에 의상에게 상자의 본위를 돌려준 것은 의상화엄의 복권을 위한 최초의 조명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곧 장야의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설잠으로부터 273년을 다시 내여와 당대 화엄이 종장이었던 연담 유일(1720-1799)은 '법성게과 주론변'에서 이렇게 말한다.p139 신라 의상 백화도량발원문 체원약해의 보주현토 p141 -의상의 신앙은 '엄정융회신앙', 즉 화엄과 정토왕생신앙.p141 -부석사의 가람 배치도의 원형은, 관무량수경의 삼배(三輩(무리, 동아리배)사상에 있다. p143 -관무량수경의 '득백법명문주 환희지'는 십지품에서 온 것(일본학자)p142 -60화엄의 경우 문수보살은 선재동자를 남방의 순방길에 떠나게 하는데, 그 첫 번째 선지식이 공덕운비구이고, 염불삼매공덕을 상세히 설해줌으로써 선재는 문법환희한다. -40,80 화엄에서도 염불삼매의 내용이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백화도량발원문의 내용은 관음신앙. 관음신앙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p143 1.보문품은 현세이익적이고 미래성이 없음. 2.반야심경은 행심반야바라밀다를 중시 3.관음경은 일심칭명을 강조. 사문 도선상 소묘p156 -도선은 선승. 도선의 법손 지문(志文)이 말했듯 도선은 운수행각을 마치고 백계산 옥룡사에 주석한 뒤로 '宴(즐길 연)坐忘言삼심오년'이란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선승의 참면목을 볼 수 있다.p156 -도선은 신라 국운이 쇠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흥벅왕 원연(826)에 전남 영암에서 출생. 어머니 강씨의 꿈에 어떤 사람이 맑은 구슬 한 개를 주며 삼키게 했는데 그 후 임신함. 성장하면서 보통 아이들과 매우 다른 데가 있었음. 15세에 출가아혀 월유산 화엄사에서 화엄대경을 익혔는데, 학도 백천 사람이 놀라 탄식하여 신동이라 부름.p157 -도선은 화엄경을 학어농문(學語弄文)이 아닌, 그 궁극의 이치를 얻는 피나는 정진.그는 화엄경의 연기론적 측면(철학적 측면)에 만족 않음. 그의 사유는 필연적인 것이요 그 결과는 성기적인 오입문에 도달. -그는 동리산 혜철 문하에 귀의. 혜철은 도선이 법기임을 앎. 그 때 거량하는 법문이 '무설지설무법지법'의 법문. 이는 육조->마조->지장(智藏)을 통해 혜철로 이어지는 해동선의 새로운 고동. 혜철의 인가 받음. 23세에 오도하고 15년 간 37 세 때 백계산 옥룡사에 주석하여 입적할 때까지 35 년 간 상주도량.p158 -혜철은 부석사에서 화엄을 연구한 다음, 육조의 남종선이 임제->서당 지장에게 전수된 후 서당을 통해 혜철에게 전승. -도선의 사문상을 보려면 해동화엄의 특색과 임제선의 성격을 살펴봐야. 중국 화엄이 의상에게 이어졌을 때 그것은 해인삼매의 실천에 의하여 법계의 비로가 그대로 현현하는 진면목의 성기였고 그래서 실천의 종교였던 것. p159 -현수와 징관의 경우, 같은 성기라는 용어를 써도 이미 그것은 하나의 체계화된 철학이었을 뿐. 그러나 의상의 성기는 종교적 경험& 법계의 부처가 현현하기 위하여는 그만큼 종교적 실천이 요청되는 세계. 그리고 의상이 백화도량발원문에서 보인 신앙이야말로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불의 현현에 대한 기원이며 실천이었던 것. 정토문과 祖道는 표면상 길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성기로서의 불의 현현을 하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음.p159 -의상은 해동화엄의 초조로서 그 후 교학적 연구가 성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해인삼매를 전제로 한 실천적 성격이 농후한 특색이 있음.& 의상의 법계관이 지닌 성기사상은 필연적으로 선에 수용됨. 설잠의 사산비 등, 초기의 선사에 나타난 부석사와 구산선문의 직접 또는 간접인 관련은, 혜철과 도선의 경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임제선에서 서당에 이르는 선맥을 보고 구체적으로 다루어 서당을 통해 혜철로, 거기서 다시 도선에게 이어지는 측면이 구명되면 도선의 사문상을 보다 밝게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p159 균여전 재고p160- -김 박사는 신라 말의 화엄의 두 파, 즉 부석사 중심의 북악, 화엄사 중심의 남악을 기존의 해석처럼 의상계열의 화엄으로 보지 않고 북악은 의상계열, 남악은 원효계열고 봄. 그렇기 때문에 두 파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지경까지 간 것으로 생각. -김 박사는 신라 말기 불교의 대표로 화엄과 구산선문을 드는데, 구산선문의 선사들 역시 거의 대부분이 부석사 출신의 화엄승들임. -고려 초 불교를 국교로 하고 비록 신라의 화엄과 선을 받아들였지만 이것은 신라 유민들의 흡수에 중점을 둔 것으로, 태조 이후 광종에 이를 때까지 화엄과 선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라 불교며 새로운 고려 불교는 아님. 고려 왕실은 신라 불교를 몰아내고 새로운 고려불교의 지주를 찾기 위해 고심. -비록 광종이 균여를 밀어줬지만 균여가 보현십종원왕가 등을 통해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되자 이를 경계하여 정수의 모함을 핑계로 균여를 제거한 것도 그 때문. 이후 약 140 년 뒤 의천이 나타나서 기존의 화엄-선 중심의 신라불교를 몰아내고 천태종을 고려불교의 지주로 세움. 즉, 의천의 천태는 신라불교를 몰아내기 위한 대체 수단이었던 셈. 의천이 균여를 매우 비판한 것도 이 때문, 의천에 의해 의상계 화엄승들은 이후 전멸. -의천은 중국에 유학해서 당대의 고승들에게 화엄 등을 배웠고 하나 중국 체류 기간이 고작 14 개월. 따라서 이는 과장된 것이고, 고려에서 신라불교를 몰아내기 위해 중국 고승들의 명성을 이용한 것으로 김박사는 생각. 의천의 중국 체류는 사실은 돈많은 왕자의 행각에 지나지 않앗을 것. -광종 때는 고려 왕권이 전란과 왕위계승전을 거쳐 비로소 강화되기 시작한 시기. 승과를 설치하고 구시대와 밀착되어 있던 운효계가 아닌, 재야적 성격이 농후한 의상의 실천적 화엄을 계승한 균여로 한 것도 이같은 종교 정책의 산물. p178 -김박사는 균여를 모함한 정수를 원효 계열의 화엄승으로 생각. -균여의 입적 모습이 없는 것을 김박사는 고문 끝에 사망했기 때문으로 생각. 혁연정이 일본에 간다는 것으로 균여의 마지막 모습을 장식한 것도, 그 당시 서슬퍼런 권력 앞에 사실대로 기술이 어려워서... -그러나 의천 입적 후 한 세기가 못되어 정중부의 난(1170)을 시발로 무신정권 시대가 열리고 다시 원종(1259)대에 이르러 왕권복귀가 되는 약 90 년간, 그간 집요하게 추구되던 왕권중심의 종교정책은 이완되고 방임의 시대가 됨. 또 무신들에 의한 강력한 새로운 문화욕구는 최자, 이인로, 이규보 등 수많은 문인 탄생을 초래. -이 시대를 배경으로 구체제에서 벗어나 최초로 신불교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지눌(1158-1210). 지눌이 최씨 정권의 외호를 받아 개창한 조계산 수선사(1194)는, 의천의 체제불교에 의하여 축출되었던 선종의 부활을 의미. 지눌은 구산의 내력으로 보면 굴山(산)파( (우뚝솟을 굴) 후예로 분류되나, 사실은 굴산파를 부흥시키거나 구사느이 전통을 부활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신종파를 개척한 인물. p184 -지눌은 직접 굴산파의 종승을 표방하지는 않았으나 남송의 대혜종고(1089-1163)를 종지적으로 지지하였거니와, 다만 생에 화엄과 선의 일치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는 역시 신라 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p185 -그러나 지눌보다 48 년 뒤에 태어난 일연은 지눌의 신불교 운동에 가담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가지산파를 비롯한 구산선문의 부흥을 생애 목표로. -균여의 교학은 일부가 간신히 보존되고 있었음. 그것을 균여의 법손인 화엄승 천기(天其,~1278)에 의해 균여교학이 부활됨. p186 지눌에서의 선과 화엄의 상의 -원래 불교 사상들은 그 어느 것이든 대선정을 모태로 하여 성립되고 비판되면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p218 1.화엄의 경우, 초조 두순이나 2 조 지엄 모두 뛰어난 禪者이었음은 사전에 나타난 그들의 생애 자체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선종이 독립한 후 화엄의 종장으로 최초로 선종과 관련을 맺은 사람은 4 조 청량 징관이다. 그는 우두의 선을 받아들여 뒤에 하택종의 무명선사(722-793)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하며, 그 뒤를 이은 규봉종밀은 아예 선교일치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화엄쪽에서 뿐만 아니라, 선가 쪽에서도 일찍부터 화엄사상을 선에 수용하였음은 초기 선사에 있어 이미 분명한 것이다.선의 제3 조승찬(?-606)은 신심명에서 '일즉이체일체즉일 단능여시 하려우필'이라 하여 법계 소식을 말한 것은 그 일례라 할 것이다. p218 3.종밀 사후 화엄종은 차츰 그 세력을 잃어갔지만 그런 표면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화엄사상은 주로 선사들에 의하야 선의 골수를 이루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실천적으로 더욱 심화되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화엄과 선의 유착은 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화엄법계의 소식과 견성의 선 체험이 근원적으로 서로를 요구하는 상의 관계가 드러나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p218-219 -원래 화엄의 五周 육상 십현문 사법계는, 불경계를 중생의 지평에서 향외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고, 그와 같은 지평들을 유출하는 포괄자로서의 법계(법성) 그것의 현현 자체가 아니다. 법계 자체, 바꾸어 말하면 향외적인 불경계에서만 성기의 세계는 참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p219 -성기의 차원에 있어사는 이미 부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며 이승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며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며, 법성도 아니고 비법성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고 수행을 통한 증분도 아니다. p219...차별적 현상이면서 통일적 원리이며, 본질이면서 평상이며 속이면서 진이며 인이면서 과이며, 主이면서 伴이며 凡이면서 聖이며, 正의면서 依의이며, 多이면서 一이다. 마치 제망의 구슬들이 중중으로 현현함과 같고, 향수해가 처처에 함용됨과 같거니와 神通이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러할 뿐이다. (華嚴釋題에 나오는 말을 김지견박사가 번역한 것)p220 [화엄논절요 3권] -지눌이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40권'을 분석하고 섭요하며 3권으로 만든 것. -지눌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40권 내용이 常規(상규), 즉 종래의 화엄교학의 이론을 무시하고 실천이 강조되어 있는 점을 중시하여 그 방대한 책의 요긴한 점만을 3 권으로 간추려 운수납자들이 수선의 여가에 강독하게 했었다. p211 -지눌이 화엄경의 悟入門과 선종의 즉심즉불이 일치하는가 다른가를 확인하려 강백이나 선사를 찾았으나 해결을 보지 못하고 하가산(下柯,도끼자루 가)에서 3년간 대장경을 열람하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 해결. p214 -오입문과 즉심즉불이라는 불조의 뜻을 관념이 아닌 실존으로 (지눌이) 터득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華嚴李論'은 재가거사의 찬술인데도 그 실천적 안목을 중시했었고, 법장, 징관의 교학에서 '生佛互融論(생불호융론)'은 설성증리(說性證理)라면 지눌 자신은 '관행오입적'이라고 원돈성불론에서 설파하고 있음을 본다. p215 -지눌의 화엄관을 살펴보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선재가 화엄말회의 입법계품에서 박지범부의 구도소년이었으나, 능히 불과를 성취하여 일만팔천 대중의 대표로서 미륵누각에 證入하여 자신의 삼세인과와 제불의 삼세인과를 동시에 철견함을 들어 원돈성불론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음이다. p215 -청량은 80 화엄을 연구. -지눌에 있어 중생가 부처가 호융한다는 의의는 요컨대 관심입도하는 자로 하여금 항시 자기의 신어의의 경계상이 모두가 여래의 신어의 경계 중에서 생기는 것이며 어느 편이든 체성이랄 것이 없어, 본래 무이한 것임을 확신하게 함에 있었던 것으로서 당초부터 各體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원돈성불론) p221 -그래서 지눌은 부처와 중생이 본래 '근본보광명지의 性海'로부터 나온 환영일뿐이요, 중생과 부처가 상과 용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더라도 이 또한 다 같은 근본보광명지의 상과 용일 뿐으로서의 본래일체이면서 기용에 중중함이 있을 뿐이라고 하고, 이와 같은 이통현의 입장이야 말로 성기의 門에 해당한다고 한다(원돈성불론) . -그리고 이 통현을 제외한 다른 교가의 경우는, 중생과 부처의 體가 다른 것을 전제로 하고, 다만 의리를 展轉(전전)시켜 논하고 또 논함으로써, 중생과 부처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서의 연기문에 속한다고 단정한 다음, 연기문의 성불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비판한다(원돈성불론),p221-222 "다른 교가들이 설명하는 성불의 뜻은, 먼저 비로의 법계를 깨달은 뒤에 보현의 행해를 닦는다고 함에 있다(선오비로법계 후수보현행해). 비로법계를 밝힌다는 것인즉 연기문 중에 사사무애를 벌여놓고 이르되, '먼저 모름지기 사사무애의 想을 일으켜 관할. 만약 상을 일으키지 못하면 불과의 걸림없는 圓德(원덕)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말이다. 어찌 불과원덕이 망상으로 인하여 나타날 수 있겠는가. 만약 망상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는 無常법인 것이라, 경에서 이르지 않았던가. '만약 불경계를 알고자 할진대 마땅히 그 意를 허공과 같이 맑게 할지니, 망상과 諸趣(제취)를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여금 어디에나 걸림이 없게 하라'고."(원돈성불론) -지눌은 '화엄논절요서(序)'에서, 돈오란 마음이 밝아 智가 깨끗한즉 터럭과 국토가 용융(容融)함이 결코 外境(외경)이 아닌 성기의 돈오인 것이라고 강조. -성기문에 있어서 견불이나 견성은 결코 불경계를 對象(대상)화 하거나 대상화된 부처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견불은 향외적인 연기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그러한 연기가 침묵하는 곳에 열려진 빛의 장이며, 그 곳에서 형상없는 자심의 여의주를 끄집어내는 것이므로 선지식 또한 自家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p222 -육조도 이 문제를 설파한 일이 있다. 즉 '선지식이여, 중생무변서원도'라 했다. 혜능이 능히 선지식을 제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각자 자신에 있어 자성이 자도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한즉 부처가 바로 중생이요, 일념에 깨달은즉 중생이 바로 부처이다.그러므로 일체 만법이 다 자기 자심 중에 있는 것이니, 어찌 자심을 좇아 진여본성이 頓賢(돈현)하지 않겠는가. 自悟의 경우도 바깥으로 선지식을 빌릴 것이 없는 것이다. 만약 바깥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하기를 바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인, 자심 속에 선지식을 알면 바로 해탈할 수 있다(돈황본 단경)며 성기로서의 자성자도를 역설함.p222 -따라서 지눌은, '먼저 자심일용무명분별지종(自心日用無明分別智種)으로써 바로 제불의 부동지를 삼은 연후에, 性에 의해 禪을 닦는다(원돈성불론)'라 하고, 범부로서 십신에 들기 힘든 것은, 모두가 스스로 범부임을 인정하되 자기의 마음이 부동지불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 자탄(화엄논절요). p223 -지눌에 있어 화엄의 성기법계와 돈오의 선체험은, 근원적으로 相依(상의)의 관계였음을 알게 된다. 즉 "법계는 선을 통해서만 조명하는 것이요, 선은 법계를 통해서만 내용을 가진다"라고 사유된다. 결국 화엄의 법계가 성기인 것이나, 선을 통한 체험의 장을 찾는 것은 철두철미 자기일착에 귀착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p223 -중국 화엄이 두순과 지엄을 거쳐 의상에게 이어졌을 때, 그것은 해인삼매의 실천에 의하여 법계의 비로가 그대로 현현하는 진면목의 성기였고, 그래서 실천적 종교였던 것이다. 의상의 교학은, 따라서 그 후 현수 법장과 청량징관에 의하여 이론화되고 천착된 바와 같이 의리를 전전시켜 법계와 불경계를 도출한 추상적 세계가 아니었다. 현수와 징관의 경우 같은 성기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이미 그것은 하나의 체계화된 철학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의상의 경우, 성기는 종교적 체험이었으므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구체적인 세계였으며, 법계의 佛이 현현하기 위하여서는 그만큼 종교적 실천이 요청되는 세계였다. 그리고 의상이 백화도량발원문에서 보인 신앙이야말로 위와 같은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불의 현현에 대한 기원이며 실천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토문과 祖道는 표면 상 길을 달리 하는 것이지만, 성기로서의 불의 현현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의상은 해동 화엄의 초초로서 그 후 교학적 연구가 성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해인삼매를 전제로 한 실천적 성격이 농후한 특색을 갖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상의 법계관이 가진 성기사상은 필연적으로 선에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치원의 사산비(四山碑) 등 한국 초기의 선사에 나타난 부석사와 소위 구산선문과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은 결코 우연한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이요, 고려 시대 지눌이 의상을 信受하면서 의상에 미흡(未洽, 젖을 흡, 두루, 윤책할 흡, 흡족)하였던 선과의 합일점을 이통현의 실천화엄에서 구한 것 또한 해동화엄의 원류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과 화엄의 관계를 어떤 때는 적대 관계로 혹은 우열 관계로 어떤 공식처럼 다루는 습성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선과 화엄은 상의상자(相依相資)의 관계이다. 이 점을 밝혀준 선지식이 다름 아닌 보조국사 지눌이다.p224 -지눌은 선에서 출발하여 의상의 화엄을 그 근저에서 이해&이통현의 실천적 화엄교학을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선교 일치에 성공함. p231 설잠의 화엄과 선의 세계 -두순, 지엄 모두 뛰어난 선자였음은 사전에 나타난 그들 생애 자체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선이 종파로서 독립한 후, 화엄 종장으로서 최초로 선종과 관련을 맺은 사람은 4조 징관. 그는 우두의 선을 받아들여 뒤에 하택종의 無名선사(722-793)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하며, 그 뒤를 이은 규몽종밀은 아예 선교일치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p226-227 -선가에서도 일찍부터 화엄사상을 선에 수용하였음은 초본의 선사에 있어 이미 분명한 사실로 되어 있다. p227 -설잠은 40 대 이후의 원숙기에, 선가의 입장에서 화엄에 관하여 '화엄경석제'와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라는 두 개의 저작을 남김. 1.'석제'는 설잠이 80 화엄을 경제목인 대방광불화엄경이 7 자를 중심으로 하여 평창한 것. 천태지의의 '법화현의'가 법화경의 경제를 가지고 천태사상을 압축한 것이 그렇고, 원효가 수많은 대승경전에 관하여 경제를 중심으로 序(서)나 종요를 저술한 것이 그렇듯, 경제는 교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이를 가짐. 설잠의 석제는 선가로서의 화엄관을 정면에서 등장한 것. p227 2.대화엄일승...은 의상의 법성게를 평창한 것. -설잠의 화엄과 선은, 결코 전 시대와 단절되어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의상과 지눌을 연결한 사상사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 의상에서 비롯한 해동화엄의 원류가 지눌을 거쳐 설잠에게 와서 선에 용융됨.p231 -설잠이 말한 80화엄 대의p231 '화엄은 세존께서 7처의 9회에서 말씀한 것을 그 내용을 한 경이다. 제 2회에서는 여래의 依報(의보)와 正報(정보)를 설하고, 제2회에서는 십신을 설하고, 제3회에서는 십주, 제4회에서는 십행, 제5회에서는 십회향, 제6회에서는 십지, 제7회에서는 등각묘각을 설하였다. 나머지 제8, 제9회는 보혜보살이 구름이 뭉게뭉게 일 듯 이백의 물음을 던지고 보현보살이 병속의 물을 쏟아내듯 이천의 응수를 한 것으로서, 무릇 일법을 설함에 곧 일체법이 그 속에 있으므로 이를 일러 원융법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포(行布)는 복숭아꽃 오얏꽃 같아서 꽃이 먼저고 열매가 나중이지만, 원융은 연꽃과 같아서 꽃과 열매가 동시이다. 원융에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원인이 결과의 바다를 갖춤이요, 하sk는 결과가 원인의 근원에 사무침이다. 원인이 결과의 바다를 갖춘다 함은 십신을 들 때에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묘각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요, 결과가 원인의 근원에 사무친다함은 등각을 들 때에 십지, 십회향, 십행, 힙주, 십신이 또한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행포의 경우에는 교상에 차별이 있지만 원융의 경우에는 性(성)가 相(상)이 걸림이 없다고 한다. 상이 바로 성에 즉한 상이기에 행포가 원융에 장애가 디지 아니하고 성이 바로 상에 측한 것이기에 원융이 행포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일이 무량으로 되는 것이기에 행포가 원융에 장애되지 않고, 무량이 일이 되는 것이기에 원융이 행포에 장애되지 않는 것이다. 무량이 일이 된 이상 융동하여 隱隱(은은)하고, 일이 무량이 되는 이상 淺入(천입)이 重重(중중)하니, 이와 같이 9 회의 경이 함께 하여 80권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80 권의 경을 사분하니 이를 일러 신해행증이라 한다. 최초의 11 권은 중생을 위하야 개발한 신문이요, 그 다음의 41권은 중생을 위하여 개발한 해문이요, 또 그 다음의 7 권은 중생을 위하여 개발한 행문이요, 또 그 다음의 21권은 중생을 위하여 개발한 증문이다. 일부대경이 신해행증의 사분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 그 사분이 해명한 의의는 오주육상, 십현문, 사법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 신으로 말미암아 해하고, 해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으로 말미암아 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경의 본말대지(大旨)이다.(석제)p232 -원래 화엄은 존재세계의 실상인 화엄법계에 관한 소식. 화엄경에 의하면, 존재세계는 현상의 측면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서 성립하지만, 실은 '그저 그러한 것'으로 현현할 뿐이고 거기에는 이것을 발생시킨 것도 없고 만든 것도 없고 만든 자도 없으며 아는 자도 이룬 자도 없이 그저 세계가 성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여래출현품=불자 여시등무량인연 乃(내)성삼천대천세계, 법성如是(여시) 무유생자(生者) 무유작자 무유知자 무유성(成)자. 然(연)彼(피)세계 而(이)得(득)성취 여랴출현 역부여시).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실증주의적 세계관에 의하면, 현실적인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지각되는 것만을 의미한다. p233 존재는 다만 인식주관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며, 이 때의 인식은 인과적 파악과 동일하므로 어떤 것은 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무엇에 의하여,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여 있는가를 아는 것에 한정된다. 이런 태도를 야스퍼스는 발생적 인식이라 부르거니와,앞서 본 바와 같이 존재세계니는 발생시킨 자도 없고 만든 자가 있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아는 자도 이룬 자도 없이 본래적으로p233 '그저 그렇게' 있다고 함은 곧 존재세계가 시간과 공간은 이 규정을 통하여 인과적으로 파악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할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인식주관에 의하여 대상화되고 인과적 범주에 속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그 자체로서의 존재 세계를 화엄에서는 법계, 또는 법성이라 부른다.p234 설잠에 의하면 법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 기관이 접하고 있는 삼라만상으로서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성이란 우리의 인식기관이 끊임없이 수용하고 있지만 대상화하여 분석할 수 없는 본래성이다. 대상화되어 인식되는 것과 그것의 본래성은 원래가 원융한 일체를 이루면서 그 자체로서 현현한 것(圖序)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로서의 존재 세계의 모습이 현상의 배후로 숨어버린 것은 의식주관의 단초인 일념의 발생 순간과 일치한다. p234=mo.즉, 보이는 세계(법)와 보이지 않는 세계(성)! '일념이 일어나 그와 나를 구별할 때 취사가 생기고 취사의 염이 있게 되자 곧 십법계를 이루어 무차별의 세계 중에서 갑자기 차별적인 현상으로서의 존재세계가 성립하는 것(도서)'이라 한다. 따라서 존재 세계 그 자체는 우리들의 실증주의적인 접근에 대하여는 그 본래성을 드러내지 않는다.p234 설잠이 '화장세계는 본래 아무런 개념적 규정도 포함하지 아니하며, 그와 같은 세계의 인격화로서의 비로자나불 또한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도서)'고 함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p234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세존이 7처9회에서 돈기(頓機)의 사람을 위해 화엄경을 설한 것조차 벌써 오류를 범한 것(도서)'이니, 하나로서의 존재 세계에 관한한, 그것은 개념화할 수 없는 것으로서, 처음부터 언어적 접근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234-235 그러나 한편으로 위와 같은 존재 세계의 무제약성과, 비로자나의 침묵이 실은 그 본래성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존재세계의 생명과 무생물 일체가 남김없이 진리의 표상에 참여하여 현현하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국토가 설하고 티끌이 설하며 부처가 설하며 부처가 설하며 보살이 설하며 삼세일시(一時)가 설한다(도서)'고 하거니와, '생물과 무생물 일체가 설하며 동시에 생물과 무생물의 일체가 듣는다(연경별찬)'고 함이 그것이다. p235 도서=夫대화엄화장세계자, 이허공위체, 이법계위용, 以邊一切爲佛, 이연기법체위중회(以緣起法體爲衆會), 설원만수다라교(說圓滿修多羅敎) 소위(所謂) 찰설(刹說) 진설 불설 보살설 삼세일시설 시야(是也). 연경별찬(蓮經別讚)=정여무정 개설묘법 역능청법(情與無情 皆說妙法 亦能聽法) 바꾸어 말하면 槪念(개념)규정을 떠난 본래성의 차원에서는 하루 종일 침묵하더라도 실은 침묵이 아니기에 유마의 일묵이 오히려 우레와 같다고 하는 것이며, 개념과 형상의 실증적 차원에서 석가가 비록 화엄의 세계에 관하여 이러쿵 저러쿵 설하였다 하더라도 그 본래성에 관한 한 조금도 설하여진 것이 없는 것이기에 보광전의 십대 제자들조차 귀 있으되 귀먹은 것 같았다고 하는 것(도서)이다. 도서=종일묵이미상묵(終日默而未嘗(맛볼,시험할 상)默), 종일설이미상說, 비야성리 기성여뢰 보광전전 유이여농(毘耶城裏 其聖如雷 普光殿前 有耳如聾) p237 -규정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명제화하고자 하는 한, 그것은 자동성을 표명하는 A=A의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236 그렇다면 화엄경이 존재세계에 관하여 천명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화엄은 존재 세계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일정한 내포에 의하여 이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접근이야말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무규정적인 존재세계를 시간,공간 속에서 인과적 범주에 의하여 대상화함으로써 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은 우선 소극적으로 시간, 공간 규정의 초월을 말함으로써 무제약적인 본래성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설잠이 화엄의 대의를 제창하면서 맨처음에 '티끌처럼 많은 국토들이 자타 간에 터럭 끝만큼의 거리가 없고, 역사적 시간이 시종 지금 이 자리의 일념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신화경경론, 이통현)'는 말을 인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P236 신화엄경론=무변찰경 자타불격어호단, 십세고금 시종불이어당념(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바를, 곧을 단), 十世古今 始終不移於當念).p236 이는 결국 시간을 통하여 시간적인 무제약성을, 공간을 통하여 공간적인 무제약성을 표현한 것이지만 이를 실증적 차원에서의 물음이며 대답으로 이해하는 한 그것은 자가 당착을 범한 것으로 보이게 마련이다.p237 -원래 화엄의 오주,육상, 십현문, 사법계는 불경계를 중생의 지평에서 향회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고, 그와 같은 지평들을 유출하는 포괄자로서의 법계(법성) 그것의 현현 자체가 아니다. 법계 자체를 바꾸어 말하면 향외적인 불경계에서만 성기의 세계는 참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p237-238 -지눌이 지적하듯 의상의 법계도 자체가 이미 해인정 속에 현현한 자내증의 세계를 표상한 것으로, 의성이 법성게에서 법성이란 원융하여 개념과 형상을 떠나 주객의 대립이 끊어진 세계라고 한 것 또한 자성이 본래 심적하여 개념과 형상을 떠난 자리를 규정함으로써 사사무애의 근원을 나타낸 것이지, 그로부터 유출되는 사사무애를 '표상'한 것은 아니었다.(원돈성불론).p238 그래서 섬잘은 법성게는 '법성원융무이상..증지소지비여경'의 첫 4 구로써 이미 할 말을 다 마친 것이요, 그 다음 '진성심심극미묘'의 제 5구부터는 有情(유정)의 지평에서 證入(증입)을 문제 삼은 緣起分이며 교분(敎分)이라고 본 것이다(圖註).p238 '성기의 차원에 있어서는 이미 부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며 이승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며 존제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며 법성도 아니고 비법성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고 수행을 통한 증분도 아니다(도주)'. 법성이라고 하든 법계라 하든 어차피 그것은 존재적이 아닌, 존재론적인 명칭이거니와 조금이라도 그것에 내포를 부여하여 실체화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성기의 세계가 아닌 연기의 차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p238 따라서 법계는 이른바 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일 뿐으로서, 연기의 지평, 다시 말하여 논리적 구조와 시간적 연기의 측면에서 그 현현이 포착될 수 없는 것이다. 설잠에게 있어 理(이)라는 것이, 개념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이었 것과 마찬가지로, 本智(본지) 또한 수증(修證)과 무관한 것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p238-239 mo=별교일승/돈교의 근거! "차별적 현상이면서 통일적 원리이며, 본질이면서 형상이며, 속이면서 진이며 인이면서 과이며 主(주)이면서 伴(반)이며 凡(범)이면서 聖(성)이며 正(정)이면서 依(의)의며 多(다)이면서 一(일)이다. 마치 제망의 구슬들이 중중으로 현현함과 같고, 향수해가 처처에 함용함과 같거니와 신통이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라 본래 그저 그러할 뿐이다(석제)"-정말 기가 막힌 말!!!p239 이와 같이 단적으로 그저 그러할 뿐인 '법성여시(如是)'의 장을 벗어날 순간, 천태의 六卽(육즉)이든 총수록의 재상입몽(在床入夢)의 비유이든 그것은 원돈교에서 본 개념상의 부처에 지나지 않는다(도주). 그와 같이 연기적 차원의 불경계가 해불적 입장이라면, 법성여시의 불경계는 이를 성기적인 의미에서 견불 또는 견성의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견불, 견성의 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설잠은 서슴없이 일체중생의 신심본체라고 말한다.=mo/ 즉,중생계가 바로 화엄 & 수능엄삼매! "법계라는 것은 다름아닌 일체중생의 신심본체이다. 본래부터 신령스럽게 밝아 막힌 데가 없으며, 광대하여 텅비고 고요한 것 이것이 유일한 眞境(진경)이다. 상모(相貌,얼굴모)가 없되 대천세계를 벌려놓고 邊際(변제)가 없되 만유를 함용한다. 심목(心目)의 사이에 뚜렷하지만 相(상)을 취할 수 없고, 색진(色塵)의 안에서 빛을 발하되 理(이)를 헤아릴 수 없다. 진리를 꿰뚫는 혜안과 망녕을 여읜 명지(明智)가 아니고서는 능히 자심(自心)의 이와 같은 영통을 보지 못한다-석제 p239 법계의 장이 위와 같이 중생의 신심본체인 이상, 견불의 장은 다름 아닌 자기 일착으로서의 일념이다. "곧장 비로자나와 보현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무변의 개토와 대지의 중생으로 하여금 끝머리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투신할래야 들어갈 수 없고,힘을 써봐야 이를 수 없고 발을 붙일래야 붙일 수 없는 곳, 일정한 體(체)가 없는 데다가 또한 일정한 名(명)조차 없어 어느 때는 일진법계가 부르고 어느 때는 대광명전이라 부르고 어는 때는 법보리장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妙莊嚴城(묘장엄성)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육상의(六相義)라 부르고 어느 때는 십현문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一心三觀(일심삼관)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직지단전(直指單傳)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고가전지(古家田地)라 부르고 어느 때는 향상뢰관(向上牢(우리,감옥 뢰)關)이라 부르고 혹은 금강권(金剛圈)이라고 하며 혹은 천산?(鐵酸?)이라고 하며 혹은 암호자(暗號子)라고 하며 혹은 본래인(本來人)이라 아여 이에 棒(봉)을 삼고 喝(꾸짖을 갈)로 바뀌는 것에 이르기까지 놓아보내고 거두어 들이는 천차만별의 것이 바닥까지 뒤집어 엎어서 시작된 곳을 좇아 갈파하면 원래가 다만 일개의 자기인 것이다. 이 자기가 하늘에 있어서는 하늘과 같고, 땅에 있어서는 땅과 같고 사람에 있어서는 사람과 같고 物(물)에 있어서는 물과 같은 것이니, 자기의 분상에 있어서 혹은 本具(본구)를 설하고 혹은 本空(본공)을 설하며 혹은 오아 비를 설하고 혹은 수와 증을설하여 이러니 저러니 부질없는 문구를 끌어다 댄 것이다.-석제 p240 결국 설잠에게 있어 존재세계는 인간존재의 문제에 귀착되는 것었으며 존재세계를 분해한 망상의 일념은 동시에 성기의 장으로서의 구성의 일념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지눌이 말가리를 자심으로 반조하여 그 연원을 얻으면 현금의 일념인 성정묘심(性淨妙心)을 수염(隨染)의 본각이라 하여도 옳고 성정본각이라 하여도 옳고 무장애법계라 해도 옳고 부동지불이라 해도 올흐며 노사나불이라 해도 옳다고 한 것도 이것을 가리킨 말이다.-원돈성불론,p240 일념이 가진 금자(今玆(이 this,자)의 구조에 바로 법계가 현현하는 장으로서의 비밀이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 땅으로 인하여 일어선다고 한 것(수심결)이다. p241 -법계 또는 법성의 장이 바로 중생의 신심본체요 자기일착(自己一着)이라고 하는 확신은 성기, 즉 불경계에서 오는 것이고 연기 차원의 궁리에 의하여 도되는 것이 아니다.p242 -원래 지눌에 있어 중생과 부처과 호융(互融)한다는 의의는, 요컨대 관심입도하는 자로 하여금 항시 자기의 신어의의 경계상이 모두 여래의 신어의 경계 중에 생기는 것이며 어느 편이든 體性(체성)이랄 것이 없어 本來(본래)無二(무이)한 것임을 확신하게 함에 있었던 것으로, 다초부터 각체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원돈성불론)p242 그래서 지눌은 부처와 중생이 본래 근본보광명지의 性海(성해)로부터 나온 환영일 뿐이요, 중생과 부처가 상과 용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더라도 이 또한 다 같은 근본보광명지의 상과 용일뿐 본래일체이면서 起用(기용)에 중중함이 있을 뿐이라고 하고 이와 같은 이 통현의 입장이야말로 성기의 문에 해당한다(원돈성불론)고 한다.p243 -지눌이 그러했던 것처럼 설잠 또한 부처와 중생의 각체임을 처음부터 부정하여, "작은 티끌과 시방세계가 자성이랄 것이나 체상이랄 것이 없기 때문에 일체 고금의 삼세제불이 처음 발심하여 보현의 원을 세우면서부터 미래의 궁극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이 순간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 혹은 기침 한 번, 손가락 퉁기는 것 한번에서 눈썹을 찡긋하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순간순간이 제불의 방편 아닌 것이 없다(도주).p244 고 한 것이요, "眞性(진성) 중에 理(리)를 드러냄이 설사 여러 가지가 있다손치러다로 그 자성을 추구하여 보면 전혀 그럴만한 것이 없는 것인즉, 부처와 중생이란 것이 다름 아닌 진성 중의 光影이니 부처를 가히 이룸도 없고 중생을 가히 제도할 것도 없이 그저 하나의 진성일 뿐이다(도주).p244 라고 한다. 이와 같이 불과 중생의 自同性에서는 그와 같은 불경계에서는 비로와 보현은 처음부터 하나이며 거기에 向內, 向外의 문제라든가 본각과 수증의 구별 문제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p244 -설잠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이와 같으나 그대가 단적으로 보고자 하면 또한 어려울 것이 없으니, 다만 갖가지 망상과 갖가지 집착과 갖가지 장애를 통째로 굴려서 곧장 意根(의근)의 바탕으로 하여금 청정하기 허공과 같게 하고 이마 위의 正眼(정안)을 활짝 열어 세간을 통조하면 어디를 가나 불경계 아님이 없는 것이다(석제).p245-246 따라서 설잠이 말한 것은 망상 집착과 장애를 화반철전(和盤綴(철할,꿰맬 철)轉(전)하는 돈오이었고, 마음을 가져다가 사사무애를 관하는 연기문의 돈오가 아니었다.(절요)p246 설잠의 돈오는 지눌이 말한 바, 다만 마음이 밝아 智(지)가 깨끗한즉 터럭과 국토가 용융함이, 결코 외경이 아닌 성기의 돈오인 것이다. 그아 같이 돈오를 통하여 비로소 생사가 바로 보현의 경계이며 열반이 바로 具縛(구박)의 윤회라고 하게 되는 것(도주=약논생사 즉시보현경계,약論(론)열반 즉시구박윤회)이기에 설잠은 또한 다음과 같이 불경계를 설파하고 있다. "'만약에 누가 불경계를 알고자 한다면'이라지만, 이는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는 것" "'마땅히 그 意(의)를 허공처럼 맑게 하라'지만, 그 누가 더럽힌 적 있는가" "'마음이 가는데 모두 걸림이 없도록 하라'지만, 가득히 눈앞에 다가선 청산이여"(석제) p246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기문에 있어서 견불이나 견성은 결코 불경계를 대상화하거나 대상화된 부처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견불은 향외적인 연기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기가 침묵하는 곳에 열려진 빛의 장이며, 그곳에서 형상없는 여의주를 끄집어내는 것이므로 선지식 또한 自家(자가)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p246 의상이 본제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 행자를 위하여 무연의 선교로 여의를 잡으라고 하였음에 대해 설잠이 '진여성기의 무연으로써 家中(가중)의 형상없는 여의를 꺼내는 것이 선교'라 한 것이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기에 설잠은,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참된 선지식은 자라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음을. 도는 자기에게서 구하는 것이요 남을 좇아 찾을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선지식을 볼 수 있다면 저 53 인의 선지식은 하나같이 路傍(노방)의 사람일 뿐(석제)p247" 이라고 하고, "외변의 선지식을 보았거든 이제 자가의 선지식에 참취하라. 아득히 멀고 먼 저 백여성(百餘城)의 길. 그 누구가 남을 뒤좇아 가리요. 다리가 문을 넘기 전에 상견하여 버리니, 到家(도가)에 본시 노정을 거친 것 없네 解(해)가 다하고 見(견)이 없어져 功(공)은 이미 마쳐진 것. 다시 무슨 현묘가 있어 논량할 게 있는가(석제)) 라 한다.p247 -지금 온 세간인이 모두 자기일착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까닭에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행하지 못한다. 비록 일종의 인들이 자기를 믿어 선에 참하고 도를 배운다고는 하나, 용심이 간절하지 못하여 능히 용맹정진하지 못하는 것이다.(석제)p248 -지눌이 그렇듯이 설잠에게 있어 화엄의 성기법계아 돈오의 선체험은 근운적으로 상의의 관계이었다. p249 IV. 의상에사 비롯된 해동화엄의 전통과 특색을 논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 수 없다. 중국 화엄이 두순과 지엄을 거쳐 의상에게 이어졌을 때, 그것은 해인삼매의 실천에 의하여 법계의 비로가 그대로 현현하는 진면목의 성기였고 그래서 실천적 종교였던 것이다. 의사으이 교학은 따라서 그 후 현수법장과 칭량징관에 의하여 이론화되고 천찬된 바와 같이 의리를 전전시켜 법계와 불경계를 도출한 추상적 세계가 아니었다. 현수와 징관의 경우, 같은 성기라는용어를 쓰더라도 이미 그것은 하나의 체계화된 철학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의상의 경우 성기는 종교적 경험이었으므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구체적인 세계였으며 법계의 불이 현현하기 위하여 그만큼 종교적 실천이 요청되는 세계였다. 그리고 의상이 그이 백화도량발원문에 보인 신앙이야말로 우와 같은 종교적 형험으로서의 불의 현현에 대한 기원이며 실천이었던 거이다. 물론 정토문과 祖道(조도)는 표면상 길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성기로서의 불의 현현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의상은 해동화엄의 초조로서 그 후 교학적 연구가 성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해인삼매를 전제로 한 실천적 성격이 농후한 특색을 갖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상의 법계관이 가진 성기사상은 필연적으로 선에 수용되지 않을 수 없다. 최지원의 사산비 등 초기의 선가에 나타난 부석사과 구산선문과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은 결코 우연한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이요 고려 대의 지눌이 의상을 신후사면서 의상에 있어 미흡하였던 선가의 합일점을 이통현의 길천화엄에서 구한 것, 또한 해동화엄의 원류가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설잠은 위와 같은 해동화엄의 흐름이 고스란히 저수된 하나의 심연이라 할 것이다. 해동화엄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에 그치지만 설잠을 통해 그 일반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유산이 선가에서 산상(散聖)으로 치는 지눌과 설잠에 의하여 오히려 전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불교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결론 전문)p250-251 경허당 산고 -깨닫기 이전의 고행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차피 목적적 행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뒤의 고행, 그것을 고행이라고 부르지 않고 흔히 입전수수니 이류중생이니 하는 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만 이야말로 순수한 의미의 고행인 것입니다.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경허의 표현을 빌리면, 용이 환골함에 그 비늘을 바꾸지 않고, 범부가 改心(개심)함에 그 얼굴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깨닫기 전의 고해는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세계이겠지만, 다름 아닌 그 고의 바다로 돌아가 함께 헤엄치다다 익사함을 본분으로 삼는 것, 이것이 고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고인은 무엇보다도 부조의 位만큼 위태로운 것이 다시없다고 했습니다. 남의 길이 아닌 나의 길, 그것을 가는 것이 고행입니다. 설사 부처가 간 길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버리고 육사외도가 떨어진 곳을 향하여 함께 떨어짐으로써 비로소 정명?(正命?)이 가능한 곳, 그래서 이류중에 스스로 떨어짐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한 가닥의 출신지로(出身之路)-거기에 모든 우상이 침묵하는 말없는 기쁨의 세계가 있습니다.p256 -당시 (한암의) 상원사 선방에서는 방선의 여가에 이통현 장자의 신화엄경론이 제창되고, 선과 화엄이 상의상자되는 소식이 물이 흐르듯 고려 수선사의 종풍이 거양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수강하던 스님들 중에 뒷날 조계종단에 없어서는 안 될 고암, 탄옹, 보문, 탄허, 석호 등을 배출한 것입니다. ...본래청정이란 어떤 가치 판단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깨끗하고 더러움이란 인간들이 부여한 가치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청소를 해서 청정한 것이라면 그것은 점교입니다. 그런 식으로 부질없이 부여한 청정이란 청정이 아니라 오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추하게 보거니 깨끗한 것으로 갈구하는 것은 돈교가 될 수 없습니다. 유식의 미세습까지 없어져야 견성한다는 말은 돈황본 단경의 염념상속이라는 종지와는 정반대되는 말입니다. 청정이 무엇인가 있는 것을 씻어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청정이 아닙니다. 몰가치적인 것이 청정입니다. 몰가치가 불사선, 불사악입니다. 가감되지 않는 자리, 있는 그대로의 자리가 다름 아닌 원래 구원되어 있는 자리입니다.p265 경허=1846년생.p259 *돈황본단경->흥성사본이 본래무일물인 반면, 돈황은 '불성상청정'임. ->846-860년 사이에 간행되엇을 것.p300 선문헌 연구-육조단경을 중심으로 -진의 도안(312-385)이 創唱(창창)했다는 식전주원(食前呪願) 시불명호=청정법신비로자나불,,,p303 -단경을 경이라 한 것은, 그만큼 혜능의 말이 불설에 이를만 하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經法(경법)'으로 법문으서러의 의미를 경으로 번역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음.-by 김지견 新 東醫論 ********************************************* 東洋思想에서 본 새로운 삶과 의술의 패러다임 사실 어떤 점에서는 육체적 질병이 원만하지 못한 마음의 물질적인 반영이라는 점에서 정신적 수양이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의식의 집중이 초능력적인 힘이나 물질적인 창조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마음의 중요성을 증명하여 주는 다른 예일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함경에서 生老病死라는 눈에 보이는 현상학적인 물질 법칙을 설하신 후에 차원을 높여 방등경에서 마음을 다룬 일체유심조를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이 마음도 假임을 밝히는 空 思想을 설하시며, 다시 도약하여 일불승 大道의 法華로 인도하는 것이다. 즉 神性을 가진 육신의 체로서 이 세상을 淨土로 살아가는 것이다. 일체유심조의 차원에서 보거나, 심신상관의 의학적 관점에서 보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기독교의 차원에서 보거나 어찌되었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이야기이다. (***다음 4단락에서는 장교수가 오행에 의한 성격/인체의 장기 분류를 가지고 성격과 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행분류를 말씀드리면 木-仁-肝/눈/신경과 분비 火-禮-心腸/小腸 土-信-胃腸/脾 金-義-폐장/대장 水-知-신장/방광/생식과 비뇨 예를 들자면 사주에 木이 약한 사람은 마음에 목에 해당하는 인자함이 부족하고 또 목에 해당하는 장기인 간이 부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마음이 부드럽지 못한 사람은 추진력이 있는 木氣가 부족한 것이며 이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뻗어 나가야 하는 모든 근육도 말랑말랑 하여야 할 간도 다 같이 경직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간의 기능이 작던 사람은 인정이 더욱 없게 되고 간의 기능이 큰 사람의 경우에도 단단하고 길게 경직된 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파고드는 모진 성격이 되는 것이다. 이 결과를 현대 의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A형이나 C형 간염 또는 간경화라 할 수 있다. 신의가 없어 약속을 거품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행의 믿음을 나타내는 土氣가 무너진 것에 정확하게 비례하여서 생각도 현실적이지 못하고 소변의 거품도 치솟는 당뇨라는 병의 원인이 되어 혈중 점성이 높아져서 사지말단이 썩는 것이다. 세상사에 대하여 기다림과 지혜의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뼈에 깊게 저장된 골수도 빠져나가고 이와 관련된 시력장애나 청각의 상실 또는 뼈를 삭히는 고통이 뒤따라 인내를 배우게 한다. 또한 폭발적인 심장의 조급함을 남용한 사람은 혀가 꼬이고 심장이 벌렁거려서 더 이상 남과 조급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용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의 섭리는 일호의 착오도 없이 가장 적절한 시간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잘못된 삶을 교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착각하거나 두려워하지는 말자. 우리의 행위에 대한 벌을 주는 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벌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매우 정확하게 우리의 선택과 자연의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인 것이다.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누군가가 우리를 벌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자신이 과연 누구였는지 모르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상실에 따른 결과는 두려움과 불안 초조로 나타나며 현대 의학에서는 이를 후천성면역 결핍증이라는 "현대의 흑사병"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면역력의 결핍은 생명력의 상실이며 이는 정확하게 동양의학의 이론에서 음양오행을 순환시키는 相火라는 기운의 부족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신과학 이론에서 사용되는 오르곤 에너지이며, 성령이며, 불성이며, 태초에 존재하는 무극의 一氣일 수도 있다. 정신상태가 물질적인 육체에 영향을 주는 다른 예로서, 근시는 젊을 때 사고방식 자체가 근시안적이거나 시야나 눈과 책과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가깝게 하는 물질적인 이유에서 발생한다. 나이가 들어 가까운 현실문제가 버거워 피하고 비교적 먼 곳을 보는 시야를 가지기는 하나 유연성이 결여되는 경우에는 눈은 원시로 나타난다. 또한 혼란스런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눈 역시 일그러진 난시가 된다. 그러므로 육신의 병은 그 결과가 물질화하는 창조의 법칙에 따라 그것이 형성되는 시간상의 차이는 있으나 마음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몸의 병은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마음을 바로잡는 일 하나로 歸一한다. 지금이 인류의 영성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시대이기는 하나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잡아 육신의 병을 고칠 만한 근기가 아직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바로잡아 병을 고칠 만한 그릇이라면 고쳐야 할 만한 병도 생기지 않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오장육부에 질병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이를 바로잡아야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 보다 수월하여지며, 이런 과정을 통하여 동양학뿐만 아니라 다른 大法에 대한 믿음도 생기게 되는 것이며, 인체 자체가 소우주이기에 수행의 차원에서도 물질적인 치병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 물질적인 방법의 예는 앞에서 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동양의학의 음식, 침, 뜸, 약, 지압 등의 방법이 정신적인 방법의 차선책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기초한 체질분류와 진맥, 그리고 기미론이라는 몇 가지 간단한 법칙이 근간을 이룬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인 치료의 방법이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미론은 음식을 음양오행으로 분류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서 병을 고치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장교수가 주장하는 건강법입니다. 향후 소개 예정입니다) 그리고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간이 나쁜 사람은 산미(酸味)의 음식이 입에 맞는데 이 경우 신맛의 음식 어떤 것이라도 먹게 되면 간의 병은 고쳐진다. 그러나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의 지난 몇백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 서양과학은 질병을 오장육부의 불균형으로 해석하는 패러다임 대신에 분석학적인 첨단장비를 사용하여 모든 질병에는 각 질병에 해당하는 세균이 있고 부족한 호르몬과 미네랄이 있음을 발견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에 의한 치병을 과학적인 개가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간이 병이 나면 간의 병의 종류에 따라 A, B, C 등의 간염에 해당하는 바이러스가 발생하게 된다. A형과 C형의 간염은 간의 기능이 정상이하로 저하된 상황에서 생기는 균이며 B형은 반대로 간의 기능이 정상 이상으로 커졌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인 상황이든 어떤 경우에도 세균은 존재한다.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세균은 음양오행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병을 유발시키는 주된 원인이 아닌 것이다. 서양의학은 이러한 간염 바이러스를 제거함으로써 병을 고치려고 한다. 간염 바이러스는 물질적인 증거이기에 이를 제거함으로써 병을 고친다는 믿음은 더욱 신뢰를 더하여 가고 있다. 결국 자기가 설정한 범위 내에서의 정교한 이론 전개와 물질적인 증거만을 믿고자 하는 과학이라는 종교에 대한 맹신의 강도를 더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자연현상에 대하여 몇%를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을 여유 있게 산정한다 하여도 30%라면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하여서도 긍정적인 자세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현대 의학적인 접근방법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떠한 병에도 그러한 상황에 해당하는 세균과 부족한 호르몬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만의 원인에 있어서도 체내에 저장된 지방이 트리글리세라이드라는 새로운 에너지 형태로 전환되는 데 필요한 중요한 효소를 발견하고 이를 조절함으로써 비만을 조절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는 음양오행이론에서 제시하는 인체의 음양을 조절함으로써 비만을 조절하는 방법에 비하면 매우 분석학적인 시각임을 알 수 있다. 가장 쉽게 제시할 수 있는 다른 예는 날씨가 추울 때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몸이 차가워지면 온도가 낮아진 환경에 적합한 세균이 신체에 생겨나며 이에 따른 생성열이 자생반작용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세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에 비례하여 막대한 생성 엔탈피(열량)에 해당하는 고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서양의학은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여 개발한 항생제에 의한 세균의 제거나 호르몬의 공급을 시도한다. 이것은 일시적으로나마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하게 병을 호전시킨다. 현대의학은 그래서 심장병에도 세균을 발견하여 심장발작도 세균에 의하여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동서양의 자연사상은 하나의 현상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어느 것이 보다 일반적이고 상위 이론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아닐 경우에 항상 파생되는 문제는 부작용의 발생이다. 국부적인 법칙은 상위의 법칙을 어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의 기능의 정상화를 위하여 다른 쪽에 이상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좁은 시야와 짧은 안목에서 보았기에 증상을 병으로 잘못 파악하고 그 증상만을 제거함으로써 병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쪽 물길 막자고 저쪽 제방을 무너뜨리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마음이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만큼 이러한 미봉책에 대해 묵시적인 동조를 하고 있으며 이는 몸에 대한 자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무위자연의 도를 거스르는 경우에 그에 따른 응징은 참혹하리만큼 가혹한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현대의학의 처방은 만병의 원인이 오장육부의 음양 허실 한열이라는 황제내경에 나타난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경에는 이를 무시할 경우에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간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벌이라는 것이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스피린에 의하여 위장의 동맥이 구멍나고, 마이신에 의하여 폐와 대장이 문드러지고, 감미료에 의하여 신장과 방광이 딱딱하게 굳고, 냉성을 가진 양약에 의하여 기혈이 머리로 올라가지 못하여 치매가 심하여진다. 신경을 끊는 진통제에 의하여 생명력이 같이 절단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어떤 시대의 어떤 사회나 개인을 막론하고 스스로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표적인 예로 회자되는 것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히틀러의 교훈이다. 이것이 선악의 양 극단적인 차원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의 교훈과 함께 인류가 받아들여야 할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히틀러의 경우도 그의 생각이 옳다는 게르만 민족의 절대적인 지지와 주변국가들의 묵시적인 동조 하에 몇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항상 우리 인류는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여 오고 있으나 그 결과는 수많은 오류로 점철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병에 어떠한 균이 존재한다는 것은 몸의 상황에 대한 결과이지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우리는 서양의학의 실패에서 명백하게 목격하고 있다. 서양 의학은 암, 당뇨, 관절염 등의 만성병에서 치명적으로 취약하며 항생제에 의한 세균과의 전쟁에서도 절망을 느낀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탈출구로서 그들은 유전공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공학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유전자 자체만 하다라도 유전자가 어떤 유전 특성을 일대일로 결정짓는 인자가 아니고 주변의 유전자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 경우 하나의 유전자를 바꿈으로써 유전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강력히 제시되고 있다. 그뿐인가. 유전자의 구성이 이중나선의 2가닥이 아니고 3가닥이나 4가닥을 가진 사람도 있고 최대 12가닥을 가진 어린아이가 보고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회는 20세기를 현대의학의 암흑기로 규정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러한 언급이 없다 하여도 현대의학은 학문으로서는 가치는 높게 인정할 수는 있어도 병을 고치는 의술로는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대의학의 이러한 잘못에서 스스로가 빠져나오는 데 의외로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가 스스로가 만든 병을 자해에 해당하는 파괴적인 방법으로라도 하루빨리 고쳐보겠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왔든지 아니면 과학이라는 종교의 도그마에서 젖어 있든지 이제 우리는 이러한 차원에서 깨어나 도약하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세균에 의한 병의 발생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상태에 의하여 강력하게 영향을 받기에 어떠한 부정적인 상황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되면 그러한 생각은 전염병처럼 퍼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취약한 사람들이나 신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공명을 일으키고 그에 해당하는 물질적인 세균을 발생시켜 그에 전염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세균의 발생과 감염에서 단순한 물질적인 차원의 기전이 배제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세균은 항생제로서 제거할 수는 있으나 치유되지 않은 오장육부의 불균형이 제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병을 발생시킬 여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증요법은 효과가 빠른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더욱 서양 의학적인 방법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서양 의학적인 방법은 근원적인 방법이 아니며 더 일반적인 자연의 원리와 상치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누차 강조하였지만 음양오행의 이론은 만병의 원인을 오장육부의 음양 허실 한열에 기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간단하지 않은가? 그렇다. 본 칼럼에서 누누이 강조하지만 간단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법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엽적인 세부법칙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치병에서나 댐을 막고 교각을 세우는 데서나 이러한 지엽적인 경험법칙이 훨씬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엽적인 법칙들은 그 상황을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검증되지 않은 경험론이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데 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경험론은 반드시 상위법칙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특히 자기들의 학문의 기본법칙을 잘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공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특정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공기저항법칙이나 베루누이 정리가 상위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이나 뉴턴 역학의 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어떤 설계나 장치에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항상 자기들이 사용하던 설계 공식을 떠나서 위에서 언급한 기본 법칙에서 다시 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비단 치병이나 공학설계만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며 우리의 삶이나 종교적인 믿음차원으로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심각하고, 그리고 그것이 기존의 사고체계 하에서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삶의 가치와 종교나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도그마 같은 사회의 규범이나 삶의 가치 그리고 종교의 교리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가? 기존의 사고의 패러다임을 가지고는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나 안락사와 같은 첨예한 사회문제에 대하여서는 해결책이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주어지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영성이 높아져서 한 단계 성숙하여야 한다. 너와 내가 있으나 너와 내가 하나라는 신성한 이분법과, 두려움도 부족함도 없으며 나아가서는 죽음도 없다는 인식으로 깨어나야 한다. 죽음이란 단지 우리가 밖에 놀러 나왔다가 어린아이가 집으로 시차를 두고 돌아가는 것 같다고. 그리고 집에서 원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놀러 나올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놀이터에서 우리의 역할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황제도 할 수 있고 미녀도 거지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과... 수많은 놀이에서 맡은 신분 자체보다는 그 역할이 얼마나 우리에게 창조적이고 흥미로운가가 중요하고, 거기다가 어제의 놀이는 원하지 않으면 오늘의 놀이로 지속되지도 않는다는 것과 남과 똑같은 놀이는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 또한 중요한 놀이의 혜택중의 하나는 우리가 놀이에서 필요로 모든 것은 원하기만 하면 항상 집에서 이를 공급하여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을 벗어날 경우에 영혼은 자기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 시간의 지체함이 없이 즉시 창조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아서 육신을 가지고 이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면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시간상의 지연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단지 여기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하여서는 단순히 그것을 원하여서는 그것을 얻을 수 없고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져 마음의 상태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선각자들과 일반인이 원하는 방식이 틀린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의 상태가 불만인 사람은 안테나가 특정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듯이 자기 주변에 불만스러운 사람과 상황을 불러들여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를 모르고 있고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여러분들은 우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 그것은 눈을 가리고 하는 술래잡기의 게임 같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시작하는 인생 게임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이라는 열역학 제1법칙은 투입된 에너지 이상의 에너지가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도 비기는 것이 최선이기에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시스템의 무질서한 상태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증가하기 때문에 엔트로피 증가를 나타내는 열역학 제2법칙은 비길 수도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비관적인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우리의 인생에서의 득도(得道)나 성불의 게임은 절대로 질 수가 없는 게임이다. 누구든지 시간의 차이는 있으나 언제든지 성공하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요) 그러나 여러분은 현재의 삶이 불합리하거나 불만상태이고 그리고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이 많다면 여러분들은 자기가 처한 인생게임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
첫댓글 김지관교수님의 화엄학 논문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이미 오래된 것이라 구해 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제가 2002년 판을 어렵게 양천도서관인가에서 발견하고 정리한 것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파일을 소실한 것으로 알았는데 오늘 우연히 다시 발견했네요.
또 잃어버릴까봐 게시판에 올립니다.
후반부는 아마 제가 한방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같이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대책없이 읽어나가다 웬걸...내용이 매우 방대하고 길어 중간에 멈췄습니다. 한번 읽을 때 끝까지읽어야 할 것 같아 차후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귀한 자료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