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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들의 자택 사고팔기…누가?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상위 1%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고급 주택들이 경매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국제그룹을 시작으로 신동방, 쌍용, 한일, 범(汎) 현대가(家)까지 끝도 없다. 시장에 나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물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굴욕까지 맛보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일요서울]은 경매시장 일선 관계자들과 지금까지 나온 ‘재벌 회장님 댁’ 경매 매물에 대해 알아봤다.
국제·신동방·쌍용·한일·범현대가 등 줄 이어
일선 경매 업자 “재벌 프리미엄은 사라진 지 오래”
수년째 법원 경매시장에선 ‘최고’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심심치 않게 ‘최고가’, ‘최대평수’ 등의 말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재계 유명인 소유의 부동산이 경매 물건으로 전락해 일어난 현상이다.
또 이러한 현상이 재조명을 받은 것은 정몽선 성우그룹 회장 한남동 자택이 경매로 등장하면서부터다.
정몽선 회장은 범 현대 가 사람으로 현대시멘트 및 성우그룹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정몽선 회장의 한남동 자택이 법원 경매에 나와 화제가 된 것이다. 정몽선 회장이 소유한 자택은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2길 한남동의 토지 면적 763㎡, 건물 면적 535㎡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다.
해당 주택은 우리은행이 채권자로 토지와 건물에 채권최고액 100억 원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고, 우리은행이 청구액 46억5000여만 원으로 임의경매를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성우종합건설의 파이시티 사업이 중단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고, 정몽선 회장의 자택이 이 과정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일대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일가를 비롯한 범 현대가 소유 저택이 6~7곳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한 경매업자는 “그룹사 회장의 집이 나오면 해당 집안의 사람들이 ‘사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외 사례로는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일가의 서울 성북동 고급 주택,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옛 동아제약) 회장의 차남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의 한남동 자택 등이 경매에 나와 낙찰된 사례가 있다.
2012년에는 두산그룹의 일원이던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과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일가가 살던 서초구 방배동 빌라가 경매로 나오기도 했다. 모두 한때 재계를 아우르던 인물들이다.
시간을 거스르면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성북동 자택, 2008년에 나온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 2007년 김중원 전 한일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역삼동 단독주택 등이 있다.
부부가 둘다 유명인이라 주목을 받은 일도 있다. 지난해 여배우 정윤희 남편으로 유명한 조규영 중앙건설 회장 소유 아파트가 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해당 아파트는 희소성이 있어 투자 가치가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 6월 경매개시결정이 내려졌으며 조규영 회장은 이 아파트를 1988년 매입해 20년 넘게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등기부등본 상 조규영 회장의 주소지도 이곳이다.
반값 굴욕도 있어
건물 자체가 유명한 곳도 있다. 서초동 소재의 트라움하우스 3차는 이른바 ‘회장님 아파트’으로 불리던 초고가 아파트다. 그런데 이 트라움하우스 3차는 올해 첫 매각 기일로부터 3번의 유찰 끝에 42억100만 원에 낙찰돼 ‘반값 굴욕’을 맛봐야 했다.
해당 아파트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김근수 퍼스텍 회장, 김석규 한국몬테소리 회장, 강덕수 전 STX회장, 오상훈 대화제지 회장 등이 소유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만큼, 반값 소식이 더욱 특이하게 들렸다.
부동산태인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3계에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3차 아파트(5층, 전용면적 273.86㎡) 한 채가 감정가 64%인 42억100만 원에 낙찰됐다”고 전했다.
낙찰자는 부동산투자개발업체 지브이 파트너스로 알려졌다. 이날 응찰자는 총 8명이었으며, 이 8명 가운데 42억100만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쓴 응찰자는 39억7000만 원을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트라움하우스 3차는 지난 3월 감정가 65억2000만원에 첫 경매로 나왔고, 4월과 5월 연달아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3차례 유찰 끝에 최저입찰가격이 감정가의 절반 수준인 33억3824만 원까지 떨어졌었다.
이처럼 천하의 트라움하우스 3차가 3번이나 유찰된 이유는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고급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트라움 하우스3차 소유주는 윤강로(58) 전 KR선물 회장으로 밝혀졌다.
윤 전 회장은 종잣돈 8000만 원으로 코스피 지수선물에 투자해 2000년대 중반까지 1300억 원의 수익을 올린 입지전적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KR선물이 자본 잠식에 빠지면서 지난해 말 회사를 매각하고 회장직에서도 물러난 바 있다.
한편 한 경매 회사 관계자는 기업인들의 자택 경매와 관련해 특별할 것 없이 풀이하면 된다는 조언을 남겼다. 그는 “재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그들 역시 그냥 자금 상황이 안 좋아졌고, 돈을 확보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경매가가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회장님 프리미엄’이 있었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그러나 분양도, 매각도 아닌 ‘경매’ 시장에서 프리미엄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별한 필요성이 없다면 대체로 경매가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어차피 상위 1%들의 돈놀이인 만큼 자존심 상 높은 액수를 적어낼 가능성은 있다”면서 “여러 부문의 업황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인 관련 매물들이 꾸준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향후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