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비 윤 씨 ' 이야기
사람들이 기억해내는
전생 가운데는
가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과거 삶에서 유명 인사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유명인들도
남들처럼 환생의 법칙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 중 하나가
전생퇴행 치료를 받게 된다면
그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과거에
유명했던 그 사람의 삶을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랄 만한 인물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보고는
전생퇴행의 역사가 수십 년 된
미국에서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내 환자 중에는 상당히 흥미
로운 사실을 기억해낸 사람이 있다.
최면 감수성이 비교적 강한
이 환자는 30대 초반의 여성인데.
우울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처음의 전생퇴행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을 보았다.
맨 처음에 본 것은 흰 신발과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주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이
었으며, 머리를 길게 한쪽으로 묶어
어깨 위로 드리우고 있다고 했다.
다음 장면은 궁중으로
생각되는 곳의 정원이었다.
주위가 깜깜한 밤이었다.
손에는 옥으로 된 쌍가락지를
끼고 있었다. 장면이 겹치면서 기둥이
많은 주랑(柱廊)이 어렴풋이 보였고,
경복궁 같은 곳이었다고 했다.
자기가 서 있는 건물 앞에는
나무가 있고 그 건물의 그림자가
뚜렷이 보였다고 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화가 난 젊은 임금의
붉은 얼굴과, 그 옆에 붉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심술궂은 여인을 보았다.
임금의 얼굴은 지금 자기를 몹시
힘들게 하고 있는 직장 상사였다.
자신은 뭔가를 열심히 임금에게 호소
했지만 임금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의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자신의 신분은 고귀하나, 모함에
몰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면은 낮이었고 검은
소반에 얹힌 약사발을 보았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참한 규수
로서의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낮빛은
무척 희고, 이목구비의 선이 가늘고,
얼굴이 아주 예쁘다고 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약을 먹고
죽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생애에서의 배움은,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억들을 되살린 후 환자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고 또렸하다고 했고.
입고 있던 옷의 결이 생생히
느껴지고. 정교한 수(繡)의 형태도
자세히 보였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한약 달이는 냄새를 맡거나
한약을 담은 사발을 보면
'저걸 먹으면 죽는다' 는
생각과 함께 소반에 올려진
사약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시내에 있는 고궁에 가거나
그 담 옆을 지나갈 때면
강한 기시감을 느껴왔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나 보다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또 어릴 때부터 화가 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항상 심한 구토 증세가 나타났고,
먹은 것이 없는데도 배가 뒤틀리는
증세를 자주 경험해 왔다고 했다.
이 현상은 특히
그 직장상사를 만나야 할 때나
그와의 불화에 대해 골뜰히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했다.
사약을 받고
죽은 고귀한 여인이란 말에.
내 머릿속에는 조선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의 중전이었고 연산군의
모후인 페비 윤씨가 떠올랐다.
이 환자는 그런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누구일 것이라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정말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었느냐?" 고 물었다.
자기는 그런 장면들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으니
신기하긴 하지만 아마 환상이나
상상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돌아갔다.
일주일 후 다시 진료실을 찾은
환자는 왠지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다가 최면에 응했다.
이번에 본 것은 화려한
궁중 예복을 입고 임금과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주위에 궁중 나인들이 보이고
이번에는 푸른 옷을 입은,
지난번에 봤던 여인을 또 보았다.
자신의 손을 보니
큰 금가락지를 끼고 있었고,
발에는 화려한 신을 신고 있었다.
여러 개의 장면이 지나가면서
대신들이 엎드려 있는 모습도 보았다.
임금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뭔가를 열심히 얘기했지만
임금은 반신반의하는 태도였고,
임금의 그런 태도는
분명 모함 때문이었다.
궁정의 뜰과 계단에서 놀고 있는 서너
살의 통통한 아들의 모습도 보았다.
복건을 쓰고 아이들이 첫돌 때
입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자기 모습과,
색깔을 알 수 없는 짙은 빛깔의
옷을 입은 관현들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로부터 사약을 받았는데.
그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는
돌이 깔려 있는 바닥이었다.
처음에는 사약을 거부하다가
결국 체념하고는 북녁을
향해 절을 하고 앉아 사약을 마셨다.
절을 할 때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 끝이 보였다고 했다.
죽기 전의 마음은.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과 아들을 간절히
보고 싶다는 처참한 심정이었다.
짙푸르고 커다란 잎이 달린
나무들도 보았다. 죽음의 장면은
첫날 보았던 것과 똑같았고,
죽어서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시대를 물으니 조선이라고 했고,
연도를 물었을 때 숫자
1, 4, 8, 2가 눈앞에 보인다고 했다.
죽은 후의 모습은 뚜렷하진 않지만
피를 많이 흘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깨어난 환자는 상당히 놀라는
모습이었다. 지난번에는
환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심각한 얼굴로
"그건 모함이었어요.."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국사 대백과사전' 을 뒤져
페비 윤씨와 성종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폐비 윤씨가 사망한
연도는 서기 1482년이었고,
음력 8월이었다.
죽기 직전에 짙푸르고 잎이
큰 나무들을 보았다는 것은 늦여름인
음력 8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궁중 뜰에서
놀던 어린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 환자가 전생에서
실제로 페비 윤씨였다면
그 아들은 연산군이 되는데. 그가
지금의 남편이 틀림없다고 했다.
직장에서 자기를무척 힘들게
하는 변덕스런 상사가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 임금이고
현재 삶에서 동생처럼 따르는 친한
남자 후배는 친정 동생이라고 했다.
죽은 연도와 계절은 확인이
되었는데, 죽기 전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이 보였다는 얘기와
자신이 사약을 받은
장소의 바닥에 돌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는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은
폐비가 친정에서
사약을 받았다는 것뿐인데.
그 친정이 어딘지는 몰랐다.
그냥 막연히 생각하기는
어딘가 먼 시골이려니 여겼다.
그러나 이리저리 알아보니
윤씨의 친정은 먼 곳이 아니라
'연화방' 바로 지금의
종묘 옆 연지동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궁궐과는 지척의 거리이고
그 시절에는 높은 건물도 없었으니.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이
보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환자는 페비 윤씨의
이야기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
TV 연속극에서도
가끔 다룬 주제이지만
그는 원래 연속극이나
텔레비전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다음 면담 시간에 내가 윤씨의
얘기를 언급하자 그는 그것을
사실로 쉽게 받아들였다.
나아가 사실 여부보다
"그것은 완전한 모함이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그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이제는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웬지는 모르지만
이 두 번의 전생퇴행 이후로
약을 먹어도 잘 듣지않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해
지금은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나는 이 환자를 거듭 그 생애로 퇴행
시켜 더 많은 상세한 자료를 찾아
보고 싶은 욕심과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 환자는 그 괴로웠던
기억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최면 상태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억울함과 비통함을 반복적으로
호소했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탄식과
아들에 대한 미련을
피를 토하듯 토해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도저히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잊으려 하고,
그것이 정말 전생에서의
자신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는
내 말을 듣기 싫어했다.
지난 연말에 EBS에서
<역사 속으로의 여행> 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안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그 환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
최면 속에서 자신이 밤에 서 있던 장소
가 바로 왕비의 처소로 소개된 창덕궁
'대조전' 앞인 것 같다는 애기였다.
TV에 나온 장신구들도 똑같고,
다만 자신이 입었던 옷은
색이 좀 더 짙었다고 했다.
몇 개의 생애를 더 찾아냈지만
모두 평범한 것이었고,
더욱 이 환자는 더 이상의
전생퇴행은 원하지 않는다며
''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폐비 윤씨의
생애로 돌아가보겠다." 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종진 환자와 최면 작업중
나는 지혜의 목소리들이 이 문제에
관해 해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마음 한구석에
연산군과 페비 윤씨에 대한 궁금증을
접어둔 채 최면을 인도하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뭔가에 대한 가르침
끝에 갑자기 "당신이 아는 연산군은
그렇게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왜곡된 정보, 왜곡된
이미지들이 그 연산 왕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지만...
그가 쿠데타만 막을 수 있었다면 아주
훌륭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하는 말을 했다.
원종진 환자는 내가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한 말에 깜짝 놀랐고,
한편으로는 반가워 곧바로 질문을 했다.
"그 환자는 정말 페비 윤씨었습니까?"
대답은 즉시 "그렇습니다'' 였다.
"그럼 그 남편은 연산군입니까?"
역시 대답은 "그렇습니다'' 였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이 애기를
발표할 생각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환자가 나를
통해 그 기억들을 되살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 모자의 억울함을
알리고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닐까?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개인적
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믿게 되었다.
언젠가 그 환자가그 삶으로의
전생퇴행에 다시 동의하게 된다면
새로운 사실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카페 게시글
맑은 자유게시판
' 폐비 윤 씨' 이야기
고구마감자
추천 0
조회 178
25.10.03 09:1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