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무 형의 산막을 찾는다. 가평군 마일리 OO번지. 내비를 찍고 가는데 현리 번화가를 지나 7㎞쯤 호젓한 산길을 달린다. 차창을 내리고 가을바람을 맞는다. 버스정류장에서 지방도로는 오른쪽으로 꺾이는데 그 길 말고 오붓한 숲길을 오른다.
정말 ‘갈 뻔’했다. 국수당 갈림길 지나 형네 산막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틀었어야 했는데 훨씬 가파른 왼쪽 길로 올라서다가 아뿔싸, 깨닫고 후진하다 이쯤이면 됐겠지 싶어 멈추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데 그만 차가 뒤로 밀렸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는데도 차가 순간적으로 뒤로 밀렸다. 내려서 보니 3m 정도만 더 끌려갔더라면 계곡에 처박힐 뻔했다. 손발이 떨려 그냥 차는 세워두고 걸어서 산막으로 갔다.
18일 오전 8시 26분쯤 벌어진 일이다. 아침 햇살을 뒤로 하고 버틴 산막은 한눈에 보기에도 듬직해 보였다. 평소 지구에 세들어 사는 인간들이 너무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 중량을 보태는 것을 마뜩찮게 여기던 난, 형이 최소한의 공간을 꾸민 것에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냈다.
조금 있으니 순진한 듯 보이면서 세상 이치는 다 통달한 것 같은, 딱 경기도민스러운 아저씨가 찾아왔다. 형이 마을 사람들에게 뭘 돌렸는데 그 문제를 논의하겠다며 찾아온 것이었다. 함께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범띠라니 달라무, 아톰 형과 동갑이었다. 자신이 꾸민(?) 공간이지만 참 탐날 정도로 좋다며 중간에 자신의 자랑을 섞었다.
봄에 찾았던 공간인데 두 군데 쌓여 있던 폐기물도 말끔히 치워졌고 맨 아래쪽에 깨와 고추, 그 다음 텃밭에 각종 작물, 세 번째 공간에 산막과 네 대의 승용차를 세워도 넉넉한 공간, 네 번째 공간에 또다른 작물들이 있다. 산행 지도를 참조하면 형의 산막 뒤쪽은 매봉인데 여인네 누워 있는 모습으로 다리를 쭉 뻗어 계곡이 흐른다고 했다. 지하수도 1급수라며 달라무 형이 참 운이 좋다고, 부러워하는 건지 시샘하는 건지 헷갈리게 했다. 건너편 봉우리와 능선 이름을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부드러운 능선이 어떤 사나운 성정도 누그러뜨릴 것 같다.
20분쯤 있으니 아톰과 뜬구름이 도착하고, 10분 뒤쯤 달라무 주인장과 산바람 형, 그린랜드 형님이 잇따라 등장한다. 그린랜드 형의 펠리세이드가 그야말로 바람처럼 오르막을 올라온다. 일행이 와! 탄성을 터뜨린다. 난 속으로, 차를 정말 바꿔야겠군, 생각하며 내 차를 고빗사위에서 건져내자고 아톰, 뜬구름을 졸라 함께 내려갔다.
차를 구해 올라오니 달라무 형과 그 아저씨는 벌써 얘기를 끝내 돌아가고 있었다. 얘기가 잘 됐다고 했다. 이제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톰 형은 달라무 형이 평소에 잘 간다는 매봉 우회 코스를 희망했다. 하지만 일행은 그냥 일반 탐방로를 이용하자고 했다. 걸어서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가 건너편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연인산을 오르는 코스는 꽤나 다양한데 가장 왼쪽의 마일리 탐방로를 이용해 정비가 조금 덜 된 계곡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 우정고개까지 간 다음 꾸준히 오르막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우정봉을 거쳐 연인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9시 40분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의 코스 선택은 호된 대가를 치렀다. 탐방로 들머리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10명의 산악 오토바이(BMX) 라이더들이 온 산을 헤집으며 올라가는 것이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모두들 도립공원인데 이렇게 BMX들이 탐방로를 훼손하게 놔두면 안되겠다고 의견을 냈다. 문제는 BMX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간들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굉음만 내는 함량 미달들이었다. 어디에선가 제대로 연습을 하고 경험을 쌓은 뒤에 이 정도 계곡에 나섰어야 했다. 서너 대 정도가 퍼지는 등 홍역을 앓고 난 뒤에 우정고개까지 올라왔다.
아브믈 형이 오후 2시쯤 산막에 동연이 데리고 온다고 해 달라무 형은 벤치와 평상 조립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찍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린랜드 형님도 형수 마중간다며 12시쯤 하산을 마쳐야 한다고 해 일행은 우정고개에서 매봉 쪽으로 내려가 산막에 이르는 코스를 택했다. 20m쯤 올라가다 수풀이 무성해 포기했다. 마침 라이더님들은 오른쪽 연인 능선을 택한다고 해 우리가 가려는 우정 능선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길 참 좋다. 오른쪽 잣나무 숲을 끼고 오른쪽으로 서서히 굽어지는 길이다. 산행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단점은 하늘이나 주변 조망이 잘 안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시간쯤 우정봉 아래 바위에 붙으니 운악산을 뒤로 북한산-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난 평소대로 연인산 정상까지 갈 요량으로 속도를 냈다. 그러다 보니 일행과 거리가 멀어졌고 그린랜드 형이 노송암 쯤에서 먼저 내려갔다며 넷만 올라와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났다.
다시 길을 나섰는데 아마도 우정봉 못 미쳐 넷은 돌아간 모양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아 결국 홀로 연인산 정상으로 향했다. 우정봉에 올라서자 사방을 파노라마처럼 즐길 수 있었다. 2㎞만 더 가면 정상인데 거기는 물론 더 길끗한 전망을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를 부풀렸다. 물론 간간이 철쭉 관목이 나타나지만 두 팔을 스치는 것이 조금 거슬리는 길을 계속 올랐다.
결국 12시 20분쯤 정상에 오르니 직진 방향에 명지산, 뒤쪽에 용문산이 버티고 선 게 한눈에 보인다. 해발 고도 1068m이니 웬만한 한북정맥의 산들은 모두 볼 수 있는 것 같다. 햇볕은 다사로울 정도였고, 바람도 솔솔 불어 모든 것이 좋았는데, 단 하나 약간 발달장애가 있어 보이는 한 가족이 너무 시끄럽게 군다. 정말 산악예절을 모르는 것 같은데 한 소리 할까 하다가 그냥 뒀다. 말해도 통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며칠 전 광장시장에서 산 모시송편에 배 반쪽, 삶은 계란을 먹는데 두 아들 녀석이 옆에서 계속 신경을 쓰이게 한다. 개도 밥 먹는데 안 건드리는데, 한마디 쏘아붙일까 하다 관뒀다. 잘했다. 한 소리한들 내 기분도 찜찜했을테니.
이 가족이 사라지고 난 뒤 나 혼자 남아 5분쯤 온 산을 나 혼자 즐겼다. 내려오는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낫을 들고 풀섶을 정리하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건넸는데 그 양반, 너무 힘이 드는지 예, 라고 짧게만 답한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군청 공무원인지, 정말 순수하게 산행객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 물어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덕분에 하산길이 한결 수월했다.
허겁지겁 내려와 계곡 초입에서 간단히 씻었다. 그랬는데도 산막을 가파르게 올라오니 숨이 가쁘고 땀이 흘렀다. 오후 2시 20분쯤이었던 것 같다. 아브믈 형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전동 드릴로 벤치를 조립하고 있었다. 동연이도 오랜만에 함께 와 있었다. 지하수로 간단히 머리를 적신 뒤 정신 차리고 산막에 들어가 샤워를 마쳤더니 산바람 형이 맥주를 들이켜라고 권한다. 석 잔쯤 마셨을까? 뜬구름이 “오늘 이따 귀가 안할 거냐”고 따진다. 아차 그렇지, 술을 마시면 안되는 거였구나 싶었다. 에이 아브믈 형이 있는데 뭐 어때, 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줏잔을 넘겼다. 달라무 형은 장작불 위에 돌판을 올려 소고기 갈빗살과 돼지 삼겹살을 구웠는데 맛이 참 좋았다. 아톰 형은 돼지 목살을 샀어야지, 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동연이는 이때만 해도 기분이 좋아라 했다. 아빠 술 마시면 안 된다고, 견제도 잊지 않았다.
피곤과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와 산막 다락에 올라가 한숨 때리고 일어나니 어스름이 찾아들고 있다. 백숙의 닭고기는 먹었다며 달라무 형이 엄나무와 부추를 가득 넣어 끓인 백숙을 한 그릇 따라준다. 광주 자형이 사위와 먹으라고 준 적하수오주를 차 트렁크에서 꺼내 뜬구름에게 한 잔만 먹으라고 건네고 본격적으로 2차를 시작했다. 아브믈 형은 또 땀을 흘린다. 두 번째 벤치를 산막 앞에 놓고 자리했다. 서산 능선은 붉게 물들어오는데 우리는 적하수오주를 넘겼다. 아브믈 형은 평상을 열심히 조립하는데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마셨다.
8시쯤 매봉 오른쪽 옆 숲에 보름달이 내걸렸다. 뜬구름에게 얘기했더니 산막에 불 켜놓은 것 아닐까요? 했는데 나중에 달이 능선 위에 올라오자 모두 탄성이 터졌다. 동연이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아브믈 형과 동연이, 뜬구름을 먼저 보내고 넷이 계속 떠들었다.
거의 30년 만에 처음 들은 누군가의 가슴 시린 얘기들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아무래도 우정 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다 귀담아 들었을 것이다. 난 11시 30분쯤 잠들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니 새벽 5시 반쯤 돼 있었다. 나와보니 치울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치울까 싶었는데, 달그닥 소리가 오히려 잠자리를 방해할까 싶어 조용히 차 시동을 걸었다.
달라무 형이 많은 신경을 써서 편안하고 행복한 산행과 하룻밤을 즐겼는데 인사도 하지 못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굉장히 미안했다. 형께 고마웠다는 인사를 뒤늦게 한다. r
첫댓글 추석연휴에 걸맞는 산행~~ 가을 공기, 햇살, 친구 .. 잘 읽었네, 재밌게..다음 달에 한번 더 걷세나
달무 행님! 연인산 산행도 좋았고,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350m 농막과 경치가 너무 멋있었습니다. 음식준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산행기 쓸려고 카페 열어보니 대장님이 벌써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네. 따로 또 같이 다녀서 그런지 산행과 뒤풀이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오질 않네. 뜬구름도 써라.
함께 못해 아쉽고 미안합니다. 노래방 마이크를 가져 갔어야 하는데...
맨 밑에서 7째줄 동현이를 동연이로 바로잡아주게
잠시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후배님들과 동기들과 말입니다. 처음이라 준비도 부족하고 저녁식사와 안주는 엉성했으나 보름달빛 아래에서 주고 받은 적하수오주 그리고 가득한 수다의 맛은 좋았습니다 저의 기억에 잘 저장해 두겠습니다. 총무님이 준비해 오신 술은 다음 모임을 위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족과 엉성함은 충분과 풍성함으로 바뀔거고요. 테이블과 탁자를 뚝딱 조립해내는 아브믈의 신기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글은 한 순간도 탄짓할 수 없게 만드는 과히 일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