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으로 히트를 친 1년 전과 달리 별 특징이 없는 것으로 평가 받은 올해 세계 가전 쇼(CES)에서 압권은 단연 ‘선전(深圳) 군단’이라는 신조어다. 4100여 개 참가 기업 가운데 3분의 1이 중국 기업이었는데 그 중 절반은 선전서 온 기업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개혁개방의 전초기지였던 중국 선전은 요즘 IT기업들로 넘친다. 외국 기업 사이에서는 짝퉁을 만드는 ‘산자이(山寨)’기지로 더 잘 통한다. 이들 기업이 올해 CES에 대거 등장하자 세계 스마트산업의 ‘선전 시대’를 열었다며 언론에서 띄운 결과다.
새로운 기술보다는 기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에 머무른 CES는 중국기업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원천기술은 없지만 시장에서 통하는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앞세운 1300여개 중국기업들이 군 단급 출품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 차지가 된 CES를 두고 머지 않아 ‘광저우교역회’급으로 쇠락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선전 군단의 등장은 일단 세계 지능산업이 조정기에 접어들었음을 대변한다. 1년 전 사물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왁자지껄했던 분위기와는 다르다. 한마디로 기업들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술을 내놓고 각개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물론 ‘선전 군단’은 지능 산업의 기술 원천을 바꿀 능력은 없다. 기술은 여전히 선진 기업들의 몫 이고 하청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는 속설을 이야기하기는 다소 이른 감도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선전 군단’이라는 찬사에는 거품이 끼어 보인다. 선전군단의 운명은 여전히 외국기업 손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오랜 기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다 보니 앞으로 기술 표준화 영역 등 일부에서는 중국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선전 군단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일단 성장 동력은 두 가지다.
첫 째는 중국이 신세대들에게 인터넷 마인드를 심어주며 이른바 창신 산업을 장려하고 있는 데다 광활한 대륙 본토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하드웨어 설비를 앞세워 해외 기업들을 흡인하는 힘이다.
최근 인텔이나 IBM 등 IT 기업들이 생산 연구개발 기지로 선전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전 기업들은 원천기술을 실리콘 밸리에서 가져다가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사례를 보자. 젊은 프로그래머가 기상천외 한 아이디어를 낸 ‘환쥐스다이(欢聚时代)’는 이미 돈 방석에 앉았다. 온라인 게임과 소셜네트워크를 수익 기반으로 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환쥐스다이’의 영업모델은 흔한 광고가 아니다.
가입자가 노래나 토크쇼 춤 등 자신의 재능과 장기를 동영상으로 플랫폼에 올리면 다른 가입자가 인기투표를 하는 온라인 오디션 플랫폼에서는 가상 선물을 주고 받는 구조다. 예를 들어 네티즌이 진행자에게 가상 선물을 하면 이 중 60%를 ‘환쥐스다이’가 가져 간다.
가상 선물은 1.55 달러짜리 금반지에서 부터 1000 달러짜리 람보르기니 등 다양하다. 이렇게 가상 선물을 팔아 지난 9개월 동안 1600만 달러를 벌었다. 연간 수입은 5억8000만 달러다. 3년 전 나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30억 달러다. 리쉐링(李學凌)이란 사람이 창업한 이 회사에는 샤오미(小米)의 창업자 레이쥔(雷軍)도 지분 20.7%를 출자하고 있으며 샤오미와 여러 분야에서 협력 관계다. 영업기반은 소셜 네트워크에 등록한 10억명이다. YY오락이나 게임 YY교육 중계 방송 등 영역도 다양하다. 미혼남녀를 중계실로 초청해 잡담을 진행하는 등의 인기 프로그램에는 팔로워만 1억 2200만 명이나 된다. 2005년 광저우(广州)에서 만들어진 이후 주하이(珠海)와 베이징 상하이 등에 분사를 두고 있을 만큼 성장 속도도 빠르다. 3000명 직원 가운데 70%는 연구 개발 인원이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정신이 강한 기업은 ‘환쥐스다이’ 뿐만 아니다. 중국에는 이런 종류의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10년 전 부터 과학기술계에서 창업을 유도하는 정책에 따라 능력을 갖춘 과학기술인력들이 모험을 감행한 결과다.
그러나 아직은 실리콘 밸리를 모방하는 수준이다. 중국 프로그래머 수준으로는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잡스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엄격히 보면 ‘바이두’는 구글을 모방하고 있고 ‘텐센트’는 야후를 그리고 ‘징둥상청’은 아마존이 모델인 셈이다.
중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해법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일단 주입식 교육이 걸림돌이다. 창업을 하고 도전하려면 실수를 용인해주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중국 젊은이들은 기계화된 교육을 받는다. 죽도록 암기하는 교육으로 유명한 중국식 교육현장에서는 외우다가 하나라도 틀리면 바로 징벌을 받는다. 창의력과는 거리가 있는 구조다.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보니 졸업 후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만을 선호 한다. 도시인들도 빨리 안정적인 기반을 잡는 것이 목표다. 가진 것 부족한 농촌에서도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중국에서 안정은 시대 명제와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유한 가운데 ‘소 황제’ 로 대접 받고 자란 신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신세대들이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감에다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은 경제력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0년 4%에 불과했던 연 소득 9000달러에서 3만 4000달러 사이의 중산층 비중은 10여년 후인 2012년에는 3분의 2선을 넘어섰다.
고등 교육을 받은 인구는 같은 기간 7배나 증가했다. 지난해 대학 졸업생 수는 700만 명에 이른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중퇴하고 창업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들이 진출하는 분야는 주로 소프트웨어 분야나 해커 공간이다.
이런 젊은이들을 돕는 자금은 정부나 창업공사에서 나온다. 중국 창업공사에 들어온 자금은 작년 155억 달러였다. 미국의 2014년 창업기금 480억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대신 중국 정부에서도 650만 달러를 대주면서 기술 창업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경제가 20년 급속 성장 후에 직면한 저성장 국면을 해소하려고 인터넷서비스와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샤오미(小米)의 성공신화도 한 몫 거든다. 화웨이(华为)에 뒤지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삼성 애플 등 구미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통한다.
검색의 바이두나 전자상거래의 알리바바도 성공 맨토다. 1990년대 말 부터 중국은 웹 1.0서비스에 나선다. 주로 검색엔진이나 이메일 블로그 뉴스 일변도인 상황에서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를 들고 나온다. 이베이(eBay)도 중국서 전자상거래에 도전했지만 성공 못 거둔 분야에서 마윈은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영업망을 확대한다.
이어 등장한 중국판 SNS기업들이 대중을 하나로 묶어 주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중국 경제의 버팀 목 처럼 보인다. 지난 2013년 44%였던 중국 서비스 비중은 2020에 가면 50%를 웃돌 전망이다. 유망분야는 시장 전망이 좋으면서 공정 경쟁이 진행되는 분야다. 예를 들면 부동산 시장이나 중고차 거래 시장 등이다.
미국에서 3000개의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성공한 우버 택시도 중국에 진출했다. 왕싱(王兴) 중국 우버택시 대표는 베이징에 이어 서울도 공략 거점이라고 밝힌다.
이런 배경에는 과거 30년간 제조업을 이끈 선전의 경쟁력이 숨어 었다. 선전이 있어서 중국 젊은이들이 쉽게 창업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쩌부후둥렌허(泽普互动联合)’ 창업자 한정(韩铮) 대표는 올해 32살이다. 골프 야구 테니스 클럽을 아이폰 으로 연동해 연습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그는 5년 전 베이징에서 창업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소프트웨어베이징연구원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일하면서 개발한 기술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금은 엔젤 자금 150만 달러를 이용했다. 설계 분야가 중국서 가장 어렵기 때문에 고민했는데 다행히 해결할 수 있었다. 선전의 고급 공장을 통해 골프 연습용 스윙 감응기를 만든 다음 애플 중국 대표를 찾아갔다. 결국 애플의 후광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이미 30만개 이상 팔리는 대박상품을 만든다.
해커분야도 중국서 뜨는 분야다.
해커 창업공간인 상하이 신처젠(新车间)은 2010년 만들어졌다. 창업자 리다웨이(李大维)는 “마치 헬스클럽처럼 월 회비 받고 공간 임대하는 형식”이러고 밝힌다. 모델은 샤오미(小米)다. 짝퉁 애플 스마트폰 TDTS를 만들며 성공한 경험을 차용해 애플 워치와 기능이 비슷한 탁상용 완구를 개발했다. 마치 창업 4년 만에 회사 가치를 450억 달러로 키운 레이쥔의 신화를 재연하려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이제 중국 신세대 IT업계를 대변하는 ‘선전 군단’은 실리콘 밸리의 창업 정신을 앞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중국식 실용주의를 앞세워 시장에서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