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188. 갈단의 꿈은 어떻게 사라지나?
▶ 티베트 접촉 차단 위한 청의 2차 원정
[사진 = 갈단]
준가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몽골 고원에서도 제대로 머물 곳을 찾지 못한 갈단은 알타이산맥 동쪽에 고립돼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몽골의 중부와 동부에는 청나라의 도움을 받은 할하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더욱이 갈단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강희제와 준가르의 체왕 랍탄이 서로 손을 잡고 갈단을 압박하고 있었다.
갈단이 알타이산과 항가이산 사이의 지역에서 방랑하는 동안 강희제는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다시 2차 원정에 나섰다.
특히 갈단이 티베트와 연관이 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티베트로 망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 것을 차단하려 했다.
▶ 여유 있는 강희제 2차 원정
[사진 = 고비사막 낙타 행렬]
1,696년 10월에 북경을 떠난 강희제의 2차 원정은 몽골 고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북경을 떠난 강희제의 군대는 거용관(居庸關)과 장가구(張家口)를 지난 뒤 고비사막 남쪽을 따라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원정길은 내몽골을 거쳐 실크로드 쪽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필자가 칭기스칸 원정로를 찾아 실크로드를 향해 갔던
방향과 비슷한 길이었다.
[사진 = 강희제 남순도]
1차 원정과 다르게 강희제는 가는 곳마다 이미 청나라 지배 아래로 들어온 몽골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겨울이 되면서 얼어붙은 황하를 건넌 강희제는 오르도스 지역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2차 원정은 이미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여유 있게 지나면서 갈단의 남하를 방지하는 정도의 역할이어서
말이 원정이지 유람 성격이 짙은 시찰이나 마찬가지였다.
▶ 절망적 상태에 놓인 갈단
강희제가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갈단의 사정은 비참했다.
겨울을 맞아 혹독한 추위 속에 식량마저 거의 바닥이 나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병사들 가운데는 청나라 군에 투항하는 자 등 도망자가 늘어났다.
여기에 기아와 추위로 사망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했다.
내부적인 통제력은 이미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사진 = 고비사막]
일부 병력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남하했지만 청나라 군대에게 격파되는 결과만 가져오면서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갈단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티베트와 접촉해 살길을 모색하려고 했다.
갈단이 머물고 있는데서 고비사막만 넘으면 하미였고 그 곳에서 청해를 거쳐 티베트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거치게 되는 지역은 자신의 딸이 시집간 호쇼트부 지역이고 티베트는 스승인 달라이 라마 5세가 있는 곳이어서
여기에 기대를 걸었다.
▶ 무위로 끝난 티베트 접촉
12월 들어 갈단은 티베트로 가는 160명의 사절단을 구성해 달라이 라마와 섭정에게 보냈다.
물론 여러 가지 딱한 사정을 설명한 편지도 함께 지참 시켰다.
하지만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청나라 병사들에게 붙잡혀 사절단은 억류되고 편지는 압수됐다.
설령 사절단이 청군에게 붙잡히지 않고 티베트까지 갔다 하더라도 갈단의 사정이 나아질 것은 사실상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아무 곳에도 갈단을 도와줄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준가르는 말할 것도 없고 청해의 호쇼트부도 이미 청나라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티베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 끝나 가는 갈단의 운명
스승인 달라이 라마 5세는 이미 16년 전에 죽었지만 단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티베트의 모든 권력은 섭정인 상게 갸쵸가 쥐고 있었다.
상게 갸쵸는 달라이 라마 5세가 죽은 후 이 사실을 감추고 선정(禪定)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선전했다.
선정이란 성불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수행을 말한다.
[사진 = 아르항가이 테하르 바위]
그리고 달라이 라마 이름만 빌린 채 모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1,694년 이미 준가르의 체왕 랍탄에게 홍타이지 칭호와 옥새, 의상과 함께 철 도장을 주조해서 건네주며
그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달라이 라마의 이름으로 내려준 칭호지만 사실은 상게 갸쵸가 내린 결정이었다.
상게 갸쵸는 청과 갈단의 대결에서 갈단의 편에 서왔지만 더 이상 갈단에게 희망을 걸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갈단은 호교 칸인 활불로서 티베트 불교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갖고 몽골 정벌에 나섰지만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티베트가 그를 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당시는 사방에 둘러싼 세력 모두가 갈단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만큼 갈단의 운명도 사실상 끝나가고 있었다.
▶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갈단
두 번째 원정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갔던 강희제는 한 달 남짓 뒤 세 번째 원정에 나섰다.
이번에는 갈단의 진영을 직접 공격해 그와의 대결을 끝내려 했다.
강희제는 만리장성을 따라 옛 서하제국의 수도 영하까지 이동한 뒤 그 곳에서 갈단에 대한 토벌을 준비했다.
[사진 = 은천(영하회족자치구)]
종 모드에서 갈단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겼던 휘양구의 부대는 내몽골에서 갈단의 진영으로 접근해가고
또 다른 청군은 하미에서 고비사막을 넘어 갈단의 진영을 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희제의 그러한 작전도 별 의미가 없게 됐다.
초원을 헤매던 갈단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 53살에 접은 통합의 꿈
[사진 = 40대 강희제]
갈단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과정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발병해 저녁에 죽었다는 것이 갈단의 부하들이 전한 죽음의 내용이었다.
갈단의 심복이었던 부장 단지라는 사자를 보내 청나라 진영에 갈단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영하를 떠나 북경으로 돌아가던 강희제가 포두에 도착했을 때 갈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때 죽은 갈단의 나이는 53살, 강희제는 그보다 열 살 적은 43살이었다.
▶ 자살 여부에 대한 논란
[사진 = 강희제, 對갈단 승전비 (몽골국립박물관)]
갈단이 어떻게 죽었을까? 강희제는 갈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갈단의 절망적인 상황을 감안해 보면 그런 추정을 할만도 하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갈단은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갈단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갈단은 고승 웬사 투르크의 전생으로 태어난 활불이다.
비록 환속을 했다고는 하지만 활불로 살아온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다.
강희제가 갈단이 자살했다고 여기고 있고 청나라의 사료들이 그가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기록해 놓은 것은
강희제와 청나라를 고생시킨 갈단에 대한 미움 때문에 그를 활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 갈단의 죽음에 대한 강희제의 감회
여하튼 2년 이상 갈단을 제거하는 데 매달려온 강희제로서는 그가 죽은 데 대한 감회가 당연히 특별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큰일을 끝냈다.
2년 동안 세 차례나 직접 원정에 나서면서 바람에 쓸리고 비에 젖은 사막을 건넜다.
황량하고 사람도 없는 벌판에서 하루걸러 식사를 했다.
사람들은 그 것을 고생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피하려 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끊임없는 이동과 고난이 이 같은 위업을 이끌어 냈다.
갈단이 아니었으면 나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지신명이 나를 보호해 이런 위업을 갖다 주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또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강희제가 원정 중 갈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북경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 바람 속에 날아간 버린 갈단
세 번째 원정을 마친 강희제는 북경으로 돌아갔다.
죽은 갈단의 시체는 곧바로 화장돼 유골만 남았다.
갈단의 심복이었던 단지라는 갈단의 유골을 소지한 채 갈단의 딸을 데리고 도주 길에 올랐다가
체왕 랍탄의 준가르군의 습격을 받아 유골과 갈단의 딸을 빼앗겼다.
강희제는 갈단의 유골과 딸을 인도해줄 것을 준가르에 요구했다.
[사진 = 보이르호의 석양]
그리고 1,698년 가을이 돼서야 갈단의 유골만 인도 받을 수 있었다.
북경으로 보내진 갈단의 유골은 빻아져 가루로 변했다.
강희제는 북경 성 밖의 연병장에다 병사들을 도열시킨 뒤 갈단의 유골 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몽골 고원까지 통합해 몽골제국을 재건 해보려했던 갈단의 꿈은 이처럼 허공 속에 날려가 버렸다.
갈단이 이루려 했던 제국도 미완의 형태로 바람 속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