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죄가 없다
송혜진 기자
열 명 중 한 명 우울증이라는데 치료 꺼리게 하는 '단단한 편견'
문제는 폭력성과 반사회성 과녁은 그쪽으로 맞춰야 한다
“누군들 아프고 싶어서 아프겠니.”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일상을 견디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은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하다 가까이 지냈던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우울증을 겪는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나중엔 최근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까지 보인다. 다은은 그럼에도 자신이 우울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질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다은에게 선배 간호사(이정은)가 말한다. “아픈 건 네 잘못도 죄도 아니다”라고.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수는 100만명이 넘은 지 오래다. 2022년에 이미 100만744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실제 수는 훨씬 많다고 본다. 열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이란 말도 있다.
주변에 알리거나 치료하는 경우는 그러나 훨씬 적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은 11%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저다. 단단한 편견이 이유다. ‘우울증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나 걸리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이들을 위축시킨다.
지난달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살해한 직후, 가해자에게 우울증 병력이 있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휩쓸린 여론이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해당 교사가 우울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정황은 나중에 나왔다. 가해자가 사건 전부터 범행 도구를 여러 차례 검색했고 흉기를 미리 구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우울로 인한 충동 범죄가 아니라 계획 범죄였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목소리도 잇따랐다. “30여 년 동안 우울증 환자를 진료해 왔지만 다른 사람을 살인한 경우는 본 적 없다.”(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죄가 있을 뿐, 우울증은 죄가 없다.”(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우울보단 공격성, 폭력성, 반사회성을 봐야 한다.”(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과 폭력에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통계도 적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절도·폭력 같은 강력 범죄를 정신 질환자들이 저지르는 비율은 대략 0.5% 정도로 약물 중독자보다 훨씬 낮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팀이 3만여 명을 분석했을 때, 사람들이 폭력을 저지르는 주된 이유엔 보통 약물과 알코올 남용, 아동 학대 같은 불우한 환경이 있었다. 중증 장애나 정신 질환의 영향은 미미했다.
일각에선 앞으로 교사를 임용하거나 복직시킬 때 정신 건강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한다. 우울 병력이 있는 교사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녁이 우울증이 되면 실질적인 해결엔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사건의 본질은 가해자의 폭력·공격성, 사이코패스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관련 검사가 필요하다면 이쪽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울’을 겨냥할수록 우울증 환자들은 숨을 수밖에 없고, 그 몫은 우리 부담으로 돌아온다. 우울증 환자의 절반이 한창 일하는 20~30대다.
환부(患部)를 잘못 보는 실수는 여러 차례 있었다. 한때 범죄자의 집에 만화책이 있으면 “가해자가 만화를 많이 봐서 범죄를 저질렀다” 했고, 범죄자가 PC방에서 잡히면 “게임 중독이 원인”이라고 했다. 시행착오 끝에 이것이 옳은 분석이 아님을 이젠 다들 안다. 우울에 대한 접근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정신병동에도…’에서 힘겨워하는 다은에게 동료 의사 고윤(연우진)은 말한다. “(당신은) 비를 맞고 있을 뿐이에요. 같이 맞아줄게요.” 아프고 지친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던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