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생존의 세상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억울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이다. 성숙할 대로 성숙해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박을 잠시 들여다본다. 주홍빛 큼직한 꽃이 피고 벌이 드나들며 호박이 열린다. 애호박이 자라면서 기름기가 잘잘 흐른다. 주부에게 반찬거리로 인기가 있다. 녹색 빛 애호박이 점점 자라 다 크면 햇볕을 발라먹고 점점 누렇게 익어가며 늙은 호박이라 부른다. 애호박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늠름하고 의젓하다. 안달하던 삶의 현장서 한 발짝 물러나 달관하며 초연해진다. 목숨 있는 것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다만 호박이 일 년 과정으로 시간이 압축되었다면 사람은 비교적 긴 과정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애호박을 보는 시각과 늙은 호박을 보는 시각은 같은 호박이라도 사뭇 다르다. 마찬가지로 삶도 어린아이와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는 여러 면에서 사뭇 다르며 거리감이 있다. 누구나 한번 태어났으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번은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작정 서러워할 일도 아니다. 애호박은 풋풋한 면면이 있는가 하면 늙은 호박은 누런 것이 넉넉하면서 듬직하고 꽉 차 보인다. 이처럼 어린이는 어린이 대로 배우면서 익히고 어른은 어른 대로 할 일이 있다. 모든 생물체에서 늙어감을 볼 수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도 그렇다. 새끼 때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 어미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다르다. 병아리와 어미 닭, 강아지와 어미 개, 송아지와 어미 소 등을 살펴보면 대뜸 다름을 알 수 있다. 새끼는 앙증맞고 귀엽다가도 어미가 되면 그런 모습이 사라지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늙으면 점점 하나씩 지우고 내려놓고 잊어버리며 어린아이가 되어간다고 한다. 반환점을 훌쩍 지나 원점으로 가는 것이다. 간혹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되돌아보면서 애매모호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탓할 수 없는 이미 타고난 운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