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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창세기 32:1 ~ 21】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말씀 나눔】
우리가 살다 보면, 무언가 풀리지 않는 것, 오래된 두려움, 아직 화해되지 못한 관계의 문제로 근심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산 너머 산이라고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앞을 막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힘들지만 기도하면서 묵묵히 견디죠?
야곱도 그랬습니다. 라반과의 갈등은 겨우 정리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형 에서와의 갈등을 해결해야입니다. 20년 전 형의 축복을 빼앗고 도망쳤던 그 야곱이, 이제 형을 만나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그 만남 앞에, 야곱은 지금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2장 1절에서 21절은, 그 두려운 밤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야곱의 전략이 아니라 야곱의 기도를 보길 원합니다.
두려움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보면,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라반이 돌아서자마자,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납니다.
'마하나임'은 두 군대, 두 진영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진과 하나님의 진이 함께 있다는 선포입니다.
라반의 압박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야곱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 격려를 받자마자, 에서에게 사자를 보냅니다(3절).
20년 묵은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야곱다운 결단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자들이 돌아와서 전하는 말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6절에,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사백 명이나 되는 군대를 에서가 끌고 온다고 합니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원어로 보면, 극도의 공포와 심리적 압박이 동시에 몰려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즉시 사람들을 두 떼로 나눕니다. 한 떼가 당하면 나머지 떼라도 피하게 하려는 계산입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방금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에서의 사백 명을 듣고 이렇게 무너집니다. 엘리사의 사환과 똑같습니다(왕하6:8-17).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에워쌌을 때, 사환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러나 산에는 이미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적군만 보이지만, 하나님의 군대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야곱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봤는데도, 에서의 사백 명이 더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이 야곱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기도합니다. 방금 전까지 두 패로 나누는 계산을 하던 사람이, 이제 무릎을 꿇습니다. 두려움이 그를 기도의 자리로 데려간 것입니다.
그 기도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세 번 부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여호와여.
그런데 9절에 중요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기도의 출발점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겁니다. 야곱이 여기 있는 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책임지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 기도의 첫 근거입니다.
이어지는 10절을 보면,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이 문장이 오늘 본문 전체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히브리어는 '카톤티'입니다. 문자적으로 '나는 너무 작습니다', '나는 하찮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자신은 이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지팡이 하나뿐이었던 내가, 이제 두 떼나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야곱은 20년 동안 라반 밑에서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지략을 써서 재산을 불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게 다 하나님이 주신 거라고. 내가 번 게 아니라, 내가 받은 거라고 말합니다.
두려움 앞에서야 비로소 이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모든 게 잘될 때는 내가 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이게 다 하나님이 하신 거였구나.’라는 것이 비로소 보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야곱은 마침내 직접적으로 구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건져내시옵소서는 히브리어로 '나찰'입니다. 빼앗아 오다, 구출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사자 입에서 양을 빼내던 그 단어입니다. 야곱은 지금 자신이 에서의 손에 잡혀 있는 양처럼 느낍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을 매달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말씀대로 이루어주소서'
이렇게 내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기도가 끝나자 말자 야곱은 다시 계산을 시작합니다. 14-15절을 보면,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총 오백오십 마리입니다. 어마어마한 예물입니다.
야곱의 계획은 치밀합니다. 또한 예물도 한꺼번에 보내지 않습니다.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어 차례로 나누어 보냅니다(16절). 파도처럼 밀려오는 짐승 떼를 에서가 받다 보면, 군대의 행렬이 흐트러지고 주변이 산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해서 에서의 분노를 녹이는 동시에, 사백 명의 대형도 흩어놓으려는 계산입니다.
이것은 전략적 화해입니다. 정확히는 화해보다 생존이라고 해야합니다.
야곱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20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형의 감정을 푼다'는 구절의 원문을 보면, 속죄 의식에 쓰이는 단어 '키페르'가 사용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그 단어를, 야곱이 지금 형과의 관계에 씁니다. 야곱은 벧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에서도 그것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위협이 그 약속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기도한 후에도 손을 움직입니다.
기도한 사람이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계산을 앞세우며 전략적으로 준비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저는 이게 야곱의 위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기도하고 나서도 두려웠던 겁니다. 믿음이 있으면서도 불안했던 겁니다.
우리가 딱 그렇지 않습니까. 기도하고 나서도 걱정합니다. 예배드리고 나서도 불안합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대비책을 세웁니다.
그리고 21절에는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라고 말합니다. 선물은 먼저 보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혼자 남았습니다. 모든 계산이 끝났습니다. 모든 전략이 소진됐습니다. 이제 야곱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십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내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야곱의 기도나 전략이 아니라 이렇게 연약한 야곱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순수함이 완벽해야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그 야곱을, 하나님은 끝까지 붙드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감동적인 장면이 어디입니까? 바로 처음 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만납니다.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야곱이 아직 에서 생각도, 기도 생각도 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0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먼저 찾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오십니다.
우리가 준비됐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며 길을 걷고 있을 때, 거기서 하나님이 만나 주십니다.
야곱의 기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완벽한 기도가 아닙니다. 두렵고 떨리는 기도입니다. 기도하고 나서도 또 계산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도 그 야곱처럼 무언가를 안고 여기 오셨을 겁니다.
눈앞에 사백 명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 있을 겁니다. 두려운 일이 앞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산에는 이미 불 말과 불 병거가 있었습니다(왕하6:17). 하나님의 군대는 야곱보다 먼저 거기 있었습니다.
야곱이 했던 그 기도를 지금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주께서 베푸신 모든 은총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지팡이 하나뿐이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건져내 주십시오.' 이 기도면 됩니다.
기도가 완벽해야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게 아닙니다.
두려움을 솔직하게 내려놓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작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마하나임의 하나님이십니다.
두 진영의 하나님.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 곁에 와 있는 하나님.
우리가 두려워 떨며 걷는 그 길에 하나님이 이미 먼저 와 계십니다. 야곱처럼 아직도 두려움에 자리에 있는 우리를 찾아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미 우리 주변에 배치된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함으로 오늘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1.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심한 결단과 실천 사항을 생활 속에서 적용한 결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2.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말씀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3. 어제 하루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일) 한 가지를 기록해 보세요.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적어 보세요.
4. 오늘 본문에서 발견한 문제와 어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나요?
5. 어제 사건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원하셨을까요?
6.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문 적기 & 실천 사항 적기
【추천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 할 때.
【은혜의 찬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 https://youtu.be/0wV67_U4I1A?si=jQqid_AnHpzSQ83o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8w0fkzOh7u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