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장 마리 스트로브가 11월20일, 스위스 롤의 자택에서 89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계의 비순응주의자, 철저한 순수주의자로 불렸던 이가 이 땅에서 사라졌다. 그의 영화는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단호함에 경외심을 가졌다. 평론가 필리프 아주리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모든 사람, 한 국가 전체, 여러 국가를 동시에 소외시키는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또한 영화감독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는 장뤽 고다르나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보다 훨씬 더 추앙받아야 하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 스트로브가 보여준 호전적인 태도를 기억하며, 평생을 무언가의 반대를 위해 바친 예술가 스트로브를 돌아본다.
1933년 1월, 프랑스 메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스트로브는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빠져들었고, 이후 낭시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향후 언어학의 구조주의적인 관점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다. 처음에 그는 그저 시네필의 일원으로 메스의 시네클럽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불로뉴 숲의 여인들>(1945)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1950년에 파리로 이주했고, 프랑수아 트뤼포 등 누벨바그 작가들과 교류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 시기에 스트로브는 로베르 브레송과 만난다. 그리고 브레송을 비롯한 몇몇 감독들의 작업에 스탭으로 참여한다. 그러던 시기에 그는 다니엘 위예와도 만난다. 단언컨대 위예를 빠트리고 스트로브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 만남에서 그녀가 사망한 2006년까지, 그들은 부부로서 함께 영화를 구상하고 연출했다.
1958년 알제리전쟁의 징집 통보를 받고 스트로브와 위예는 독일로 망명한다. 이후 독일에서 하인리히 뵐의 글에 영감을 얻은 첫 번째 단편 <마쇼르카-머프>(1962)를 함께 완성한다. 이 작품은 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에 초대되었고, 데뷔작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1968)를 찍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이 장편영화의 초고가 작성되었던 시기는 파리에서다. 당시 스트로브는 브레송에게 영화화를 부탁했다. 하지만 브레송은 스스로 영화를 감독해야 한다고 그를 격려했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영화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이 뉴 저먼 시네마 목록에 포함되면서, 그들의 본격적인 필모그래피가 시작되었다.
<너무 이른, 너무 늦은>
자기 반영적인 장치 연구자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는 하프시코드 연주자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연기하는 일종의 전기영화다. “인내와 폭력 사이의 변증법이 바흐 자신의 예술에 감추어져 있다”고 감독은 소개한다. 그의 언급처럼 영화는 시각적인 것과 음향적인 것의 틈새에서 나타나는 ‘말’과 ‘음악’의 행위를 끊임없이 대립시키며 진행된다. 레온하르트를 비롯한 음악가들이 직접 바흐를 연주하는데, 그들의 연주 위로 바흐의 두 번째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의 목소리가 덧입혀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가장 중요한 관람 포인트는 ‘사운드의 구성’이다. 화면은 시각적인 방식이 아니라 청각적인 요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분리해서 감상해야 한다. 청각적인 요소로부터 시작된 지층의 구조가 쌓이면서 숨겨진 함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화면은 극도로 간결하다. 약간의 움직임을 가진 롱테이크가 이어지는 사이에, 음악이 들려온다. 바흐와 바흐의 아들이 쓴 편지가 차례로 낭독되며 시간은 흐른다. 음악도 흐른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막달레나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문학적 ‘자유간접화법’의 담화가 완성된다. 이 사실을 관객이 인지할 즈음, 작은 변화가 생긴다. 음악가들이 아니라 외부의 풍경이 처음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평온한 바닷가의 모습, 곧이어 세명의 화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마치 소격 효과를 노린 듯 어색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본인의 의견을 스스로 소리내어 말한다. 그들은 바흐의 자질을 평가하고 있다. 곧이어 편지를 읽는 바흐의 모습이 보인다. 혹자들의 의견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편지를 적는다. 이때 막달레나가 문 옆에서 바흐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듣는다. 그 목소리의 발생 지점이 화면에 드러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물론 이 범주에는 관객도 포함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프시코드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성악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관객은 유추해야 한다. 편지를 읽는 아내의 모습이 흡사 눈앞의 성악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바흐가 쓴 글, 바흐가 만든 음악, 바흐가 낳은 아이(이것이 스트로브식 농담이다), 바흐야말로 진정한 소리의 아버지일 것이다.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에도 스토리텔링은 존재한다. 바흐의 삶이 곧 스토리가 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포함해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플롯의 연결 부위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스트로브가 유명한 기존의 텍스트에 기대어서 작품을 만들었던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그는 ‘다른 것’을 추구한다. 소위 시네마만의 요소를 엄격하게 추종한다. 그가 자기 반영적인 장치 연구자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한 상황을 프레임으로 옮겨가면, 논의는 더 풍성해질 것이다. 프레임의 경우, 피사체를 어느 부분에 둘 것인지가 우선의 화두이다. 고전영화의 문법은 중심화(centrement)를 선언했지만, 누벨바그 이후 이론가들은 외화면(hors-champ)의 존재가 경제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로브는 이 점을 끈질기게 활용한다. 그는 카메라의 관점을 급진적으로 편향시켜서, 인물의 신체를 프레임 바깥으로 몰아내 과도한 데드존을 형성한다. 한마디로 화면의 결함을 선호한다. 때문에 그는 시네필적 반문화의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사운드보다 더 극명하게, 프레임을 잡는 방식에서 우리는 그가 대중을 배척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요컨대 지식인의 로고스를 모아 지극히 에토스적인 것만 추종하는 것이 스트로브의 방식이다. 미장센 구성으로만 보면 크리스 마르케와 상당히 겹친다. 둘 다 자유간접담론의 시적 미장센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논점을 전달한다. 하지만 스트로브가 훨씬 더 노골적이다. 그는 더 강하게, 아름다움을 회피한다. 대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너무 이른, 너무 늦은>(1981)에서 프레임의 중심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중심이 되는 피사체도 없다. 이 영화는 프랑스와 이집트의 현재를 배경으로, 엥겔스와 마흐무드 후세인의 과거 텍스트를 들려주며 극이 진행된다.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카메라의 길고 거친 움직임을 따라, 과거에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청각적으로 듣는다. 그렇게 그 땅에 파묻힌 것의 가치를 조금씩 인지한다. 마르케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스트로브는 고전주의의 토포스를 채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채택한 모든 법칙을 철저히 뒤집는다.
<안티고네>
보이지 않는 시야의 축을 따라
배우 활용 방식에 있어서 스트로브는 브레송의 ‘모델’과 근접한 방식을 선보인다. 간혹 <모세와 아론>(1975)처럼 연극이나 오페라 톤의 영화들에서도, 배우의 얼굴은 뒷전에 놓인다. 그들은 카메라의 시선을 회피하고, 상대 배우와의 교류도 거부한다. 심지어 뒷모습만 드러내기도 한다. 전문배우이건 아니건, 스트로브는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연스럽게 문학의 텍스트를 읽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관객이 그저 배우가 지닌 도상으로서의 가치를 파악하길 바랄 뿐이다. 그들이 어떠한 내용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객 스스로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시야의 축을 따라야 한다. 배우들이 은폐하는 것의 순수성에 대해, 지극히 현재의 관점에서 추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장치의 측면에서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연극성’의 요소를 통합한다. 둘 다 사실적으로 어떤 사건을 재연하지만, 영화가 연극성을 끌어안는 이유는 주제 때문이 아니다. 형식이 연극적일 뿐, 이를 토대로 좀더 풍요로운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시네마의 목표다. 또다시, 이 부분에서 스트로브의 정치성을 말할 수 있다. 베냐민의 언급처럼 “의미와 관련된 모든 역사적 관계가 추상화되는” 예술의 연관성이 추론된다. 다만 스트로브의 경우, 영화매체에 자동적으로 통합되는 연극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자연스러움에 관한 편견을 깨는 데 있어 그는 과도하게 투쟁적이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대립을 배제하고, 자전적 차원의 내용을 이용하고, 발성 양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스트로브 영화의 양상이자 주제일 것이다. 막상 글을 적고 보니 스트로브의 영화가 현대의 에세이 다큐멘터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로브와 위예, 그들을 현대성의 발현이라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렇게 적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시네마라는 영토에서, 현대영화의 지층을 쌓는 데 그들은 크게 일조했다고. 우리는 지금도 그의 유산 위에 발 딛고 서 있다. 그가 지난 60년간 추종한 시네마라는 거대한 영토를 생각한다. 글 이지현(영화평론가) 2022-12-08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