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give a chance if they wanna fault, 'Cause there's nothing
left to crack, I wanna make a ride we're gonna run to forth connect the dots
disconnect the line, Let's shine like Scorpio in the sky, Yeah come on rock.
저 별빛의 Reflection, 지평선 향해 사라질때에 잘게 부숴진 유리 같은 날카로운 빛으로
눈이 부시게 어둠을 비추며 Like shining stars, 꿈의 파편들을 깊이 새기며.
Let's leave it all behind So freak that dead line let go.]
늦은 밤, 강력계 형사 팀 내에서 유난히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한 자리가 있었다.
공기의 흐름조차 시간을 멈춘 듯이 마우스가 클릭되는 소리만 사무실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나는 긴 머리를 짜증스럽게 묶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응시했다. 그 조용한 자리는 바로 내 자리였다.
하필 재수없게 내가 걸려서…. 손만 까딱이고서 귀찮은 티는 다 내자,
보다못한 강연후 선배가 내 어깨를 잡아오며 말한다.
"민수연, 이번 건 잘 되면 회식 한 번 하자?"
"내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지금 회식이 문제에요?"
"어허, 어린 후배가 겁먹었구나?"
그러면서 지 혼자 큭큭거리는데 선배만 아니면 본체로 머리를 마구 내리쳐주고 싶었다.
야, 강연후. 넌 나보다 먼저 강력반 들어온 걸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라, 응?
속으로만 온갖 욕을 다 내 뱉은 후 정작 행동은 그저 자판을 신경직적으로 한 번
두드려주는걸로 끝났다. 이제 다 후배인 죄지, 후배인 죄. 나는 겨우 진정하고 나서
모니터를 주시하며 '달칵' 소리와 함께 나타난 프로필을 읽어나갔다.
"이름 사하, 본명은 밝혀진바 없음, 나이 역시. 수 십명의 유명인사들을 단독으로 총살할
정도의 능력 소유. 쳇, 사람 죽이는것도 능력이야?"
그러자 연후 선배가 진지하게 내 말을 정정해준다. '살인이 능력이란게 아니라,
그 정확한 과녁 맞추기가 능력인거다'라고. 나는 어거지로 '알았어요, 알았어.'라
대답한 뒤 옆에 보이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훑어내려갔다.
그런데... 어째서 제대로 찍힌 사진은 하나도 없는거야?
정말 내 말이 거짓말인게 아니라 내 손에 들린 사진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흐리거나
종이가 일그러지거나 또는... 아예 검게 그을린것이 다 였다.
잠시 멈춰버린 나를 연후 선배가 알아차린건지 나머지 팀원들을 해산시키다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 사진작가 죽었어, 기사거리 좀 얻으려고 사하 녀석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총알 한 방에 이승 하직 한거지."
나는 그의 말에서 의문점을 느끼고 빠르게 되물었다.
"그런데 사진은 어떻게 구했어요? 사진작가가 죽었다면 당연히…."
왜 그런지 모르게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 말끝을 흐리자 선배 역시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괸 채 대답했다.
"사하 녀석, 천재야. 우리 같으면 당연하게 필름부터 무력으로 제거하는데 녀석은
간단히 필름을 햇빛에 그을려 사진작가 옆에 내려놓았어.
증거 인멸 과정에서 나타날 실수에 대비한거지. 물론 녀석이 실수 따위 할 리 없지만."
"이상한 수법을 쓰네요. 꼭 자신을 잡아달라는것 처럼 태연하게 필름이나 태우고 있었다니.
그것도 시체 옆에서."
"오, 민수연 말 그럴 듯 한데? 잡아달라라... 사하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경찰 수 백 명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 녀석에게는. 우리 후배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어?
잘못걸렸다간 내 잘생긴 얼굴도 더 못보고 '켁-'하니 말이야."
"아예 저주를 퍼부으시죠, 그것도 대량 살상용으로."
기분이 팍 사해 빈정거리자 선배는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농담이야, 농담'이라는
싱거운 말을 하며 내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두드린 그는 이만 집에 가서 쉬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끝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나는 쉽사리 사하의 사진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걸리는게 있었다. 필름을 태우는 킬러(killer)라…. 총 들고 수 백,
어쩌면 수 천 명을 살해한 그가 쭈그리고 앉아 필름을 꺼내는 모습이 한 번이라도
본 것 마냥 머릿속에서 윤곽으로 남는다. 희미한 잔상이라고 해야하나.
"에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냐."
사실 사하를 잡는 이 번 일은 내 관할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사하처럼 악명높은 살인마를
나 같은 햇병아리 여형사에게 쉽사리 맡겨줄 리 없지 않는가. 다 죽어버렸다.
정말 한 명도 남지않고 사하에게 다 죽임 당해버렸다. 이 일을 맡는 사람마다 전부.
그러니 연후 선배도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허나 본인만큼 긴장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답답한 가슴을 몇 번 두드리고
외투 하나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가 많이 차다. 몸을 잔뜩 움츠리며
문을 세게 여는 순간 '퍽'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넘어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하는 그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어째... 저 문 유리 강판 유린데.
"괘, 괜찮아요?"
"으악- 머리에 피나, 피나!"
조심스레 다가가는 내 손을 뿌리치며 일어선 소년이 이내 자신의 이마를 마구 문지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더 놀랐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미안한 마음에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내밀자 소년은 멀뚱히 그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야, 뭐가 불만이야? 눈빛으로 묻는 나에게 그 녀석이 말했다.
"손수건은 없어요? 보통 다른 누나들은 손수건 주던데... 이건 그냥 세수하고 쓰는 거잖아요."
피나는데 손수건만 들이대라는 법 있냐, 대충 아무걸로 닦아내면 그만이지.
어이가 없어 녀석이 하는짓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녀석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내 손에 든 수건을 거의 빼앗듯이 가져가서는 이마를 슥- 닦아낸다. 그리고 웃음.
"어쨌든 고마워요, 누나. 덕분에 살았어요."
"아니, 뭐... 아, 그런데 왜 여기 있었어요?"
정작 궁금했던건 왜 이 소년이 여기 있었냐는 것이다. 그것도 이 늦은 밤에.
이제 막 새내기 대학생이 된 녀석 같은데 친구들과 몰려다닐 이 시간에, 도대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야? 나는 대답할 말을 찾는 것 마냥 동그란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는 소년을 의심스럽게 주시했다. 그리고 잠깐의 기다림 후,
그 녀석이 대답해왔다.
"갈데가, 없어서요…."
갈데가... 없다고? 대충 짐작한 바로 이 소년이 가출 청소년인 것 같아 집 주소를
물었더니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쉰 나는
녀석을 내 단칸방에 데려가야만 했다. 젠장, 안 그래도 내 일 때문에 복잡해 죽겠는데
애나 주워오고 잘 하는 짓이다, 민수연. 단단히 작정 한 것인지 녀석은 버스를 타기
전까지 조용히 있다가, 버스 자리에 앉아서도 한참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누나, 이름이 뭐에요?"
"나? 민수연. 너는?"
"와, 이름 예쁘네요. 민수연 누나."
이봐, 예쁘고 뭐고... 네 이름은 뭐냐니까. 궁금한 내 속과 다르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은 채 밝게 웃던 녀석이 곧 창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몇 시 일까요."
"12시 다 되어가. 왜? 집에 가고 싶구나?"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아... 누나, 나 누나 집에서 딱 이틀만 있다갈게요. 그래도 되죠?"
순간 안 된다고 잘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너무
애절하고 슬퍼보여서, 내가 안 된다 해버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슬픈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네 이름 알려주면."
"... 서유안, 응. 서유안이에요."
서유안, 네 이름이 더 이쁘네. 그렇게 혼자 말을 삼킨 나는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않고
집 안에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전등을 켜자 순식간에 밝아온다. 이불을 대충 펴고
녀석의 자리를 정해준 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엎어져 버렀다. 그래, 자자.
자고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한참 무의식적으로 자고 있을 무렵, 유안이의 목소리가 언뜻
들렸다. '잘자요, 누나.'라고.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뜨자, 이미 해는 중천에.
유안이 녀석은 이미 깼는지 자리에 없었고 나는 '이 자식, 일어났으면 깨워주지'라고 녀석을
욕하며 서둘러 강력계 사무실로 내달렸다. 으악, 또 강연후 잔소리 듣게 생겼잖아!
"헥, 헥- 죄송합니다, 늦었죠? 으하핫."
겨우 12시가 되기 전 사무실에 도착해 빼꼼히 문을 열어 어색하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역시나 돌아오는건... 연후 선배의 싸늘한 시선, 이 아니라... 에?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점심 먹으러 갔나? 하며 허탈하게 내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모니터에 선배가 붙여놓은 포스트잇 한 장.
'사하가 나타났다는 정보 때문에 긴급 출동한다, 이거 보는 즉시 밀린 자료 정리해놓고
얌전히 기다리도록. -연후'
라니. 괜히 힘들게 뛰어왔잖아, 진작 연락 좀 해주면 얼마나 좋아. 휴대폰은 구경하려고
가지고 다니냐, 강연후. 그나저나 사하... 한 동안 잠잠하다가 왜 또 불쑥 튀어나오는 거야?
사람 무섭게…. 투털거림도 잠시, 한 10분 정도 쉬고난 후 자료 정리인지 노동인지
할 심산으로 느릿느릿 일어서는데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 연후 선배? 잘못된 정보였어요?"
당연히 연후 선배인 것으로 생각하고 문고리를 당기려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뭐야'하고 액정을 켜는데 방금 도착한 문자가 유난히도 눈에 띈다.
'민수연, 우리 사무실 쪽에 사하 있어, 조심해. 금방 갈게.'
제길.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자켓 안 주머니에서 소총을 꺼내 양 손에 꽉 잡았다.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선배, 빨리와요. 나 진짜 무서워.
가벼운 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생각 끝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소리나게
쾅 열었다. 동시에 총구를 들이민 곳에 얼굴의 반을 검은색 복면으로 가리고 차가운 시선을
한 '그'가 보였다. 사하. 지금 내 앞에... 사하가 서 있다. 그 역시 나에게 총을 겨눈 채.
어쩐지 그의 눈동자가 낯익다. 그러나 그런 잡념을 서둘러 지우고 겨우 한 마디 소리쳤다.
"총 버려."
"…"
"총 버려, 쏠지도 모르니까!"
괜한 두려움에 이를 악물고 거의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사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뭔가 말할 듯 복면을 달싹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의 입가를 잠깐 노려 본 나는 다시 한 번 총을 바로 잡고 한 걸음 그 앞으로 다가섰다.
어쩐 일인지 그는 물러서지도, 총을 쏘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할 뿐.
그 때 그가 마침내 입 안에 담겨있던 말을 꺼냈다.
"이제 하루."
그 말을 끝으로 아무런 방어도 취하지 않고서 뒤돌아 서버렸다. 총을 쏴야한다.
그런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참이나 멍하게 굳어있던 나는 그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나서야 총사위를 당겼다. 총알은 그의 뺨 부근을 살짝 스쳐 기둥에
큰 구멍을 남기고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멈칫거린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하다
이내 완전히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하... 결국 놓쳤어. 그것도 바로 코 앞에서.
이런게 무슨 대한민국 형사야, 이런게 어떻게 국민들을 지켜-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내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더불어 나를 지탱하던 정신도 아득해진다.
어디선가 연후 선배의 외침이 들렸다. 선배, 정말 미안, 미안해요.
'이렇게 약해서 어떡할래요, 나 더 힘든 일 당신한테 줄텐데... 이렇게 약하면 어떡해요.'
환청과 같은 울림. 듣기 기분 좋은 중얼거림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 안으로 스며드는
밝은 빛에 눈동자를 몇 번 깜빡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 인가?
익숙한 풍경에 다행스러운 한숨을 내쉬는데 내 옆에서 그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유안이 있었다. 울었는지, 나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모르게 녀석의 눈동자가 흐릿하다.
"누나, 괜찮아요...?"
"응. 아... 지금 몇 일이야?"
이틀만 있다 간다던 녀석의 말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며 묻자 녀석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느리게 대답했다.
"하루... 남았어요, 정말 하루. 아니, 이제 열 시간 정도…."
"그렇구나, 벌써."
입 안이 씁쓸하다. 이틀이란게 이렇게 짧은 거였구나. 유안이의 얼굴을 주시해 녀석의
표정을 살피는데, 녀석의 왼쪽 뺨에 뭔가에 긁힌 자국이 생겨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자국을 살짝 쓰다듬으며 물었다.
"다쳤어?"
"... 아뇨, 그냥…."
"…"
'탁-' 녀석이 내 손을 잡아 내리며 조금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뭐지, 왜 네 눈동자가 그렇게도
흔들린거야. 설마, 서유안... 너.
"누나, 오늘 바빠요? 나 마지막으로 누나랑 가고싶은 곳 있는데."
마지막... 그래, 마지막이니까. 네 눈빛이 말한 거 다 잊고, 마지막으로 너를 믿어볼게.
서유안, 너를 믿고 오늘 하루 네가 하고싶은 거 다 해줄게. 대신... 실망시키지마, 그럼 안 돼.
아찔한 정신을 겨우 추스르고 녀석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생 때 이후로 가본 적 없는
놀이동산에 들어섰다. 생긴 것 부터 이런거 좋아할것 같은 녀석이었지만 설마하니
사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데서 소리질러야겠니, 유안아.
어이없다는 내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이러저리 나를 끌고 다니던 녀석은 마지막이라며
바이킹 쪽에 다가섰다.
"이제 이거만 타고 가요, 재밌었죠?"
"그래, 참~ 재미있었어. 나이 스물 다섯에 회전목마 같은 것도 타보고."
"정말요? 누나 보기보다 늙었네. 으앗, 우리 차례다. 얼른 와요."
늙다니! 내 나이가 어때서…. 속으로 생각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녀석이
내 손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혀버렸다. 하여튼 자기 말만 한다니까, 서유안. 그냥 '픽'
웃고마는데 기계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게 얼마만이지. 조금 흥분되는 기분으로
옆에 앉아있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내 눈길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고 '씨익'
미소짓는다. 그 때 진행 안내원의 익살스러운 멘트와 함께 기계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아래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나는 두 눈을 꾹 감았다.
창피하게 이게 뭐야, 정작 유안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의외네. 그런 생각을 하며 실눈을 살짝 뜨자 녀석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그 시선에
슬픔이 묻어난다는 점이 달랐지만. 나와 녀석의 눈이 마주친 1초동안 녀석은 짧게 중얼거렸다.
"안녕."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반대쪽을 응시한다. 나는 눈을 가리던 손을
힘없이 내리고 녀석을 뚫어져라 보며 수없이 마음으로 외쳤다. 서유안, 나... 너에게서
'그'를 봤어. 유안아, 너 정말... 아니니? 너 정말 서유안이니? 그러는 사이 바이킹이 정지했고
나는 얼떨결에 사람들에게 밀려 녀석과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출구에서 한참 녀석을
기다려도 녀석의 유달리 까만 머리통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녀석의 '안녕'하는 인사가
쉴 새 없이 맴돌았다. 기나긴 잡념이 겨우 마무리 될 무렵, 옆구리 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서둘러 폴더를 열자 발신자표시제한으로 문자가 와있었다.
'누나, 나 그 동안 즐거웠어요. 이제 다시 못 볼지도 모르니까 마지막 힌트주고 갈게요.
나, 슬픈 사람이에요. SH'
슬픈 사람…. SH... 무슨 의미야? 온갖 지식을 동원해서 알아내보려 했지만 끝내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한숨을 토해내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데 다시 진동이 울린다.
조심스레 열어보는 내 손의 떨림이 심장까지 전해져온다. 불안해... 그런 내 불안감은
적중했다. 연후 선배의 문자였다. 지금 사하가... 몇 명일지도 모르는 경찰과 대적중이라는,
이 놀이동산에서. 내가 있는 이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여느 때와 다르게 귓가에서 크게 울어댄다. 얼마 안 가서 소란스러운
한 장소에 다다렀다. 바로 앞에 보이는 연후 선배의 뒷 모습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이미 시민들을 대피 시켰는지 온통 경찰들 뿐이다. 나도 총을 꺼내들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러나 연후 선배 옆에 서서 사하를 발견했을 때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다. 정말이었구나. 그래, SH.
"서유안."
하-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맑은 웃음을 내보였다. 믿었는데,
마지막까지 믿었는데... SH, 사하. 이제야 알아차렸다. 너 아니잖아, 서유안.
너... 사하 같은 거 아니잖아. 연후 선배가 뭐라고 중얼거렸으나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방금 확인한 잔인한 현실에 부딪쳐 정신을 못차린 내게 다른 소리가 들어올리 없었다.
그 때 사하가, 서유안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두 눈을 나에게 고정시킨 채.
"누나, 나 어때보여요? 바보같죠. 내 마지막 일이 뭐였는줄 알아요? 누나 옆에 있는
그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만 끝내면 나 누나 옆에서 웃을 수 있었는데, 잡혀버렸어. 바보처럼."
"…"
연후 선배... 였다고….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누나 언제부터 알고있었게요? 모르죠? 내가 열일곱살 때 였으니까, 벌써 삼년이네.
우와, 시간 정말 빠르다- 누나 처음 본게 내가 처음 이 일 했을 때, 그 날 비오는데 누나가
피에 절은 나한테 우산주고 갔잖아. 흰색에 강아지 그려진거. 기억나요? 그거 아직도
내 방에 있어, 헤헤."
"유안아…."
"나 이제 총 맞을꺼야. 그리고 훨훨 날아서 가야지... 조금 아프겠지만 그런 것 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내 부름은 애초부터 안 들린것 처럼 자신의 소총을 관자놀이에 조준한 그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또르르 굴러내렸다. 말리고 싶었지만 몸 전체가 마비된 것 마냥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유안아, 서유안... 제발, 안돼. 그러지마- 그의 행동에 주위의 경찰들이 한층 더 소란스러워 진다.
연후 선배는 말없이 나를 지탱하고만 있다. 유안이 다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총알이 머리에 박히는거, 하나도 안 무서운데... 당신이 나를 잊을까 무서워."
"안 잊어, 안 잊으니까... 제발 그만 둬라. 사하, 아니... 서유안아. 제발."
급기야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너무 나약해서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 조차 힘겨웠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가로저어버린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도, 난 항상 그 자리에…. 세상이 뒤집혀 모든 존재가 사라진다해도
난 항상 당신 뒤에서 당신의 아픔, 슬픔, 괴로움 다, 전부 막아설게요. 내가 세상의 모든 비난
전부 받을게요. 그러니 여기서 뒤돌아서 가버려. 더는 듣지도 보지도 말고 가버려. 내 사라짐이
너무 놀라운 거라서 누나는 울지도 모르니까, 너무 바보같은 당신은 힘들어 할거니까.
내 끝이 전부라도 생각 할테니까…. 하지만 이건 잠시 스쳐가는 과정이야, 절대 난…."
"서유안, 유안아-"
내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왼손 검지를 자신의 입가에 가져가 '쉿'하고 눈을
찡긋거린다. 내 말이 또 끊어지고 이내 유안이 말을 끝맺었다.
"죽지 않아."
그리고 짧은 총 울림.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 흐려진 시야 사이로 녀석이 허물어지는 광경이
들어왔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녀석의 붉은 피. 동시에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응, 그래. 기억해... 그 날 비가 엄청 많이 왔던 날이었어. 넌 그 날도 지금처럼 붉은 것을
뒤집어 쓴 채 우리 집 앞에 비를 맞으며 주저앉아 있었지.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들고있던
우산을 줘버렸어. 그런데 있지, 유안아. 나 지금은 우산이 없다... 너에게 줄 우산이,
하얀색 강아지 우산이... 이제 없어. 그리고 우산을 받고 그 때처럼 고맙다고 말 할 너도 없잖아.
너도 이제는... 내 앞에 없잖아. 빗 줄기가 점점 거세어져 내 마음을 할퀴며 눈가를 적셔온다.
첫댓글 아아...슬퍼여...ㅠㅠ 외전 있겠져???
VandArl : 으음... ; 아직 생각해본적은 없어요 ㅠ; 아하하.. 조금이나마 스러지셨다는것에 저는 너무 감사드려요 ♡ 좋은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