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상견례
홍석원
봄이 되면 삼라만상의 오묘한 힘에 의하여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개나리와 목련, 벚꽃을 비롯한 복숭아와 살구꽃, 진달래와 철쭉 등 수많은 꽃들이 어우러진 꽃의 향연과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 소리는 목가적 신비의 세계다.
봄은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의 계절이요 새롭게 시작하는 절기로서 젊은 청춘 남녀들은 기쁨과 설렘 속에 인생반려자를 찾고 맞이하는 인륜대사 최고인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필자는 남매를 두었으나 진로를 둘 다 모두 어려운 길을 가고 있어 결혼 적령기가 되었음에도 아직 자녀 결혼은 까마득한 일로 생각하고 주위에 결혼소식을 들으면 막연히 부러워하며 생활해 왔다.
직업 선택을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밀어주었기에 결혼 역시 서서히 알아서 하도록 그동안 친구들 자녀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면서도 혹여 부담될까봐 일체 금기시하며 일상을 지내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맏이인 딸로부터 결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한 마디로 부모로서 딸을 시집보낼 준비가 전혀 안 됐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지금까지 이성교제라고는 전혀 않고 자기가 정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앞만 보고 생활해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묵묵히 바라보며 간절히 기다리던 중이라 더욱 그렇다.
결혼 발표 후 얼마 되지 않아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 승낙 차 인사갔다오더니만 우리 집에도 오겠다고 하기에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됐으니 더 있다가 만난다고 버티다가 얼마 못가 바로 지고 말았다.
만나보니 괜찮다 싶고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어 가족들이 모여 술도 한 잔 하고 돌아갔는데 그 때부터 더 가속도가 붙어 예비 시댁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살 집도 구하고 살림살이 계획이며 아직 정하지 않은 날짜의 웨딩드레스까지 고르는 단계까지 올라 오매불망 기다리던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상견례 장소를 남자가 살고 있는 서울로 할까 아니면 필자가 사는 청주로 할까 정해야 하는데 상대측의 배려로 청주서 하기로 하였다.
예비사돈의 호의에 대한 답례로 상견례 후 바로 헤어지는 것보다는 청주의 명소이자 필자의 고향인 미원 미동산 수목원 탐방도 기념되고 추억이 될 것 같아 사전에 의향을 물으니 좋다고 하여 계획에 넣었다.
드디어 상견례날 시간에 맞추어 나가보니 멀리서 먼저 와 계시어 결례라 생각되어 미안해했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상견례 분위기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오랜 지기이자 천생연분인 듯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예비사위가 방문했을 때 막걸리 예찬을 하며 마신 정보를 토대로 필자가 좋아한다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명한 막걸리라며 내놓는데 첫 만남이고 반찬이 아닌 듯하여 다음에 하기로 하고 다른 술로 대체하여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도중 일사천리로 일 추진하기 좋아하는 딸아이가 중간 중간 틈을 타 화제를 꺼내며 결혼 진행과정 주요 의논사항 결정을 유도해 또 한 번 웃었고 예비 시부모께서는 그게 딸아이의 매력이라니 마냥 즐겁다.
일차 상견례 자리를 양가 모두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장소인 미원 미동산 수목원으로 가는데 일행들 표정이 밝고 행복이 넘쳤다.
미원은 필자가 어릴 적 자란 곳으로 부모님 생각과 삶의 흔적을 되새기며 곳곳에 옛 이야깃거리를 찾아 안내하느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조차 잊고 말았다.
통상 양쪽 집안이 결혼을 전제조건으로 긴장하며 서로 탐색하는 어색하고 딱딱한 자리는 이미 상견례 제 1장소에서 사라졌고 복장은 아니었지만 따스한 봄날 함께 산책 나온 다정한 이웃의 상춘객처럼 보였다.
수목원 목적지를 중간쯤 갔을 때 또 딸아이가 말하기를 예비 시부모님이 원거리 이동으로 피곤하시고 비도 올 듯하니 오늘은 여기서 되돌아가는게 어떻겠냐고 중재 역할을 하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최종 목적지는 옛날 우리 농토가 있었던 자리고 지금도 그때의 쉼터인 감나무 두 그루가 남아 있어 거기까지 가야 이야깃거리가 더 많이 있기에 필자는 아쉬움과 실망이 컸지만 오늘은 명색이 딸의 결혼 상견례인지라 당초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더니만 빗줄기가 금세 굵어지고 모두들 바로 그칠 비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각자 너도나도 체면 불구하고 시발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오늘의 주제대로 별난 상견례의 진수를 보는 듯 했다.
원점에 와서, 이미 맞은 비인지라 비가 오든 말든 필자가 내심 예정한 코스인 선친께서 다니셨던 추억의 식당을 찾아 두부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가뭄에 단비가 내리니 더 없이 좋은 인연’이라고 서로 박자를 맞추니 기쁨이 배가된 행복한 만남이었다.
사실 사돈지간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각자 애지중지 낳고 기른 아들, 딸을 그 많은 사람 중에 택하여 부부의 연을 맺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하는 사이이니 이보다 더 귀한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모든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지만 결혼의 인연이란 전지전능한 신께서 점지해주시고 타고난 것이지 억지로 맞출 수 없고 우연은 더더욱 아님을 새롭게 실감했다.
오늘의 행복한 만남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양가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런 별난 상견례도 있음을 소개해 본다.
첫댓글 사돈과의 재미있는 만남이 추억이네요.
그렇게 만난 인연이 더 없이 소중하겠습니다.
막걸리도 자주하는 만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돈은 멀리한다고 했는데 서로 하기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더니만 빗줄기가 금세 굵어지고...
모두들 바로 그칠 비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각자 너도나도 체면 불구하고 시발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아이고 이런! 별난 상견례였군요. 감상 잘했습니다선생님.
사돈지간에 어려워하는것보다 자주 만나면 더좋을듯 하더군요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