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기념일이 10월 9일이기 때문인지 며느리는 이 날을 결코 잊지 않는다. 어느 해인가 나는 이 날을 잊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꽃다발을 가지고 오는 바람에 아내에게 핀잔을 받은 일이 있다. 그래서 어느 해인가 길을 가다가 꽃집 앞을 지나는데 문득 결혼기념일 생각이 나기에 작은 화분 하나를 사 들고 귀가했다. 이 정보가 친구부인에게 누설되어 “설치지 마라 버릇된다.”로 친구의 조롱을 받은바가 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마련이 많았다. 느닷없이 포천 이동 갈비 얘기를 하기에 이동으로 차를 몰까 생각했지만, 최근에 장거리 운전을 삼가 했기 때문에 아내도 탐탁지 않아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래서 언젠가의 회식에서 맛있게 먹었던 한우 갈비탕 집이 생각나기에 아내에게 넌지시 운을 떼었더니 즉시 동의 해 왔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조간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온 모양인데, 아마 우리 집에 오겠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내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나와의 점신 약속 때문에 거절하는 것 같았다. 우리 내외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우선 산책을 시작했다. 날은 맑고 화창한데, 짝 짖기 시절을 맞았는지 제법 큰 직바쿠리 한 쌍이 요란하게 아래위로 오르내리며 지저귄다. 배수지 공원에 들어서니 싱그러운 공기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내 역시 내 느낌과 같았는지? 배수지 공원의 공기가 우리 아파트 공기보다 더 맑고 깨끗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 내외는 나란히 산책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웃에 이렇게 좋은 공원이 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1km 남짓한 이 공원의 산책 코스 대부분이 무성한 나무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섞여 있어 동네 병원장들이 적극 권장하는 늙은이들의 산책 코스이다.
산책을 마친 우리는 5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낙원동 쪽 출구로 나와 낙원상가 쪽으로 가려는데 어느 음식점에 늙은이들이 북적거렸다. 웬일인가 하고 곁눈질해 보았더니 우거지 얼큰이 2,000윈 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나는 지금도 단돈 2,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무심코 파고다공원 뒷길에서 아주 긴 줄을 목도하게 되었다. 직감적으로 무료급식 줄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단돈 2000원 때문에 자존심을 구겨야하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식당에 들어서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붐비지 않아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주문을 하는데 아내는 육회를 먹고 싶어 할 것이라고 감지했다. 그러나 나는 방금 느꼈던 연민 때문에 나도 모르게 왕 갈비탕 두 개 하고 일방적으로 주문해 버렸다. 아내는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주위를 살피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곱게 차려입은 멋쟁이 할머니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서로 손짓하여 찾으며 호호 하하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어수선해졌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주문하는 지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슬금슬금 곁눈질을 했더니 그들 역시 그냥 갈비탕 아니면 우리와 같은 왕자가 붙은 갈비탕을 주문했다. 나는 이제까지 움츠렸던 어깨를 쭉 펴며 왕 갈비탕은 우리만 주문했나봐 했더니, 아내는 넌지시 다른 사람도 있다고 대꾸했다. 우리는 주문한 갈비탕이 참으로 맛이 있어서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런데 아내가 세워진 메뉴판을 유심히 살피더니 갈비찜이 맛있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연민 때문에 상대적으로 두툼하게 느껴진 지갑을 열어 포장 갈비찜 값과 함께 음식 값을 결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쓸데없는 감상 때문에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나 했지만 아내는 별 내색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는 갈비찜이 올랐다. 이 갈비찜 참 ‘맛있다’를 연발하며 상대적인 행복을 만끽했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이기선님!
가정적으로 잘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 훤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과우동호회에 가끔나오고 있습니다만, 거기서라도 뵙게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가끔 종로3가에 들려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는데 그런 곳이 있었군요
내외분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래만에 반갑습니다. 재미있게 잘지내시니 좋습니다. 그런데 늙은이의 용어는 좀 삭막한 느낌입니다. 요사이는 어르신 이라고도 하지만 "노인" 이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은 볼수록 살아있는 느낌이 듭니다. 뵙고 싶습니다.
아직도 주도권을 검어 쥐고 있으시나 봅니다. 그럼에도 사모님과 정다운 모습이 훤히 보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감정이 살아있는 수필 잘 읽었습니다. 노부부의 정이 묻어나는 제목이 없을런지요?
세상사는 이야기~, 멋진 글, 다정다감하여 정이 뜸뿍 새롬새롬 느껴집니다! 화면 글에서나마 넘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과천 지나는 길에 가끔이나마 얼굴좀 뵙시다. & 즐건 나날과 건강하시길......
근황이 궁금했는데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익어가는 부부의 정이 너무 잘 표현되어 실감이 납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요. 즐거운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기바랍니다.
이기선 선생님! 건강 안녕히 잘 지내시지요? 사랑과 마음으로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글 값으로 점심 한끼 같이 나누고 싶은데 한번 얼굴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늘 그렇게 행복한 날 지내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선생님! 글도 마음도 멋집니다. 근황을 알게되어 반갑습니다. 훌쩍 떠나시니 뵙고 싶습니다.
내외분 모드 건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