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대한 성경적 의미
정기덕
시편38:5절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상처의 의미는 채찍자국, 검고 푸른 자국, 멍든 상처를 의미한다.
상처는 단순히 피부에 남은 어떤 자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그 상처가 생길 때에 있었던 심각한 고통을 보여주는 증거로써의 상처를 말한다.
채찍자국이 검고 푸르게 평생 남아있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 상처는 오랜 세월을 남아 그것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픔과 북받쳐 오르는 감정이 고스란히 마음속에서부터 되살라 나도록 만든다.
시편 기자는 그 상처에서 “악취”가 난다고 했다.
‘악취’란 도덕적으로 무례하다, 증오하다. 악하게 행동하다. 미움 받다, 미워하게 하다, 몹시 싫어 하다.는 의미로 심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표현 했지만 상처로 인한 고통을 못 이겨 상대방과 자신을 증오하며 악하게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하지만 미움을 받게도 하고 미워하게도 만드는 이중 작용을 동시에 일으키므로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타인에게도 그 영향력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상처로 인해 자신과 가족, 가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시편 기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나의 우매함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매함’이란 스스로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상처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당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혹은 운명처럼 받아 들여서 그것을 견디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상처’는 그 의미처럼 아주 오래 전 생긴 채찍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자국을 볼 때마다 처음 피부에 채찍을 맞았을 때의 느낌과 소리, 고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 상처가 피부에 있는 흔적처럼 마음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음’(in heart)을 ‘정서, 의지와 지성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것에서나 그 ’중심‘으로 사용하고 있다.
상처는 항상 그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17:9-10절에서 사람의 마음을 부패했다고 말씀한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당신은 왜? 이유가 뚜렷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있나?
자신도 모르게 남편과 아내의 사소한 작은 말 한마디와 자녀의 작은 실수에도 관대해지지 못하는가?
어느 순간 무섭게 분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다시 회복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늘 자신이 미워지고 좌절하게 되지 않는가?
시편147편3절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상한 것을 아시고 그것을 치료해 주시는 의사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상심”은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상했다는 표현은 대단히 심각한 상태를 말씀한다.
"파열하다. 산산이 부서지다, 으스러뜨리다, 파괴하다, 는 의미로 지성, 정서, 의지의 중심이 산산히 부서지고 으스러 뜨러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
어떤 것에든 분노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은 이미 산산히 으스러 뜨러진 상태로 완전히 파괴되어 있어서 회복 불능 상태에 있다.
우리의 중심이 부서져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허물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함을 보시는 하나님은 견디지 못할 슬픔을 가지신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 하도다.”
(예레미야8:18절)하시며 괴로워 하신다.
하나님이 괴로워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깨지고 허물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한 마음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보시며 슬퍼하고 계신다.
그 슬픔의 정도를 예레미야 선지자는 8:21-22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 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 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 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 인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신다.
산산히 부서진 우리의 마음을 싸매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조각난 마음을 견고히 감싸듯 졸라매어 치료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조각나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치료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한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다."(출15:26) 하나님은 치료자 이다.
치료한다는 것은 “철저히 온전(perfect)하게 하다.”는 것으로 완벽한 상태로의 회복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 만이 우리를 완벽하게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
1.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개인적 상처들로 인한 영향력
가정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장소이다.
모든 마음속 상처들의 근원지는 가족과 이웃, 친지들, 그리고 어울려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다.
특히 가정(가족)에서의 상처는 대물림 되며 그 영향력은 심각한 결과들을 가져온다.
한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들은 어릴 적 부모 혹은 형제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삶을 받아들이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특이한 행동과 성격, 보통 이런 종류의 성격은 개성이 강하다고 한다.
대인 관계에 대한 어려움, 소외 된 감정들, 개인주의를 즐기는 사람들, 안과 밖의 행동방식이 전혀 반대인 사람들 등등 비정상적인 행동들에 관하여 우리는 너무나 관대하게 대하고 있다.
하지만 특이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성격들과 행동양식에는 저마다 그 원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원인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상처들로 인하여 영향력을 받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인격 적 결함들이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표현은 문제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자신도 다른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내가 상처 받았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은 모두를 부정하고, 자신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된다.
그 원인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원인이 있다.
상처는 죄의 내용을 항상 동반한다.
무시당한 경험, 거부당한 경험, 버려짐을 당한 경험 등등 그 종류와 내용을 열거하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예수님은 마음속에서 생각으로 상대방을 해치는 것도 죄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17:9)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상처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먼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게 되는 상처들이 있다.
요셉에게는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버지 야곱의 편중된 자녀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유독 요셉만을 극진히 사랑해 주었던 아버지 때문에 먼저 상처를 받은 것은 그의 형들이었다.
창세기37:3-5절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 하였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 하였더라
아버지 야곱의 잘못된 자녀 사랑의 결과는 큰 불행을 만드는 원인으로 가정을 파괴하고 말았다.
창세기37:18-20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 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 요셉은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유다와 르우벤의 말류로 요셉은 죽임을 면하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애굽에 도착한 요셉은 그곳에서 바로의 신하이며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지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는 자기 주인의 집에 살면서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그 주인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하시는 것을 보고 그를 기특하게 여기고 신임하여 자기 심복으로 삼고 가정의 모든 일과 자기 소유를 다 그에게 맡겼다.그 때부터 요셉을 위해 여호와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그의 집안 일이 잘 되고 재산이 날로 늘어 갔다.
그래서 주인은 그의 재산을 다 요셉에게 맡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형제들을 기근에서 구해주며(창45:15) 화해했다.
그렇지만 상처는 요셉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실제로 결행하려고까지 했지만 형들도 야곱의 가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은 피해자 들이었다.
요셉은 지나친 사랑을 받으므로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그 만큼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형들은 요셉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더 큰 아픔을 일찍부터 경험한 피해자들이다.
상처받은 형들은 그 원인제공자를 처리하면 깨끗이 해결 될 것으로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형들은 이미 애굽에서 요셉이 자신들을 충분히 용서해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젠가는 요셉이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애굽에서 살았다.
형들은 자신들이 누렸다고 생각한 가나안에서의 행복했던 삶에 비해 불안하게 살게 된 애굽에서의 삶이 훨씬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요셉 역시 형들을 충분하게 용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서해야할 자와 용서 받아야 할 자가 함께 살아가며 입장이 바뀐 환경에서 형들은 얼마나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까?
아마도 그들의 삶은 부족한 것이 없었겠지만 평안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 야곱이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앞에 놓고 있을 때 형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예민해 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가족의 슬픔을 당하는 환경 가운데서 그들은 자신들이 요셉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불안 해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모른 척 했지만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자신들에게 그 옛날 잘못에 대하여 죄를 물어 올 것이 두려웠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처와 더불어 잘못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중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대 가족을 이루었던 야곱의 가정이 얼마나 행복하지 못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애굽에 들어온 야곱의 대 가족이 오랫동안 풍요를 누리며 살았지만 그 대가족속에는 즐거움과 행복이 찾아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상처들은 가족의 유대관계와 친밀한 교류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아버지 야곱의 잘못된 자녀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오랜 세월을 형제들이 힘들어하며 그 값을 치루어 내야 했는지,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하여 사단의 강력한 영향력은 가족 구성원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오랜 세월을 끌어왔던 가족 구성원 간의 상처는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후에야 비로서 화해와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기덕
→사단법인 한국근로청소년 능력개발원기획실장 역임
→월간“그루터기”(라-5375호)-청소년잡지-편집인
→대한예수교장로회동소문교회 협동목회
→건강과생명(라-3763호)편집주간 역임
→현)소년자원보호위원회 총무,한국자비량선교회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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