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자각이 핵심 - 자각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 법륜 스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입니다.
이론으로는 ‘일상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늘 살아오던 대로 살기 쉽죠. 결국 습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습관을 불교에서는 카르마(Karma)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그 반복된 패턴이 바로 나의 삶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조금만 관찰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저 사람은 화를 잘 내네.’, ‘저 사람은 먹는 걸 좋아하네.’,
‘저 사람은 욕심이 많네.’ 이런 것들이 다 습관이에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데이터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 쌓이면, 그 사람을 예측하고
심지어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조종당하며 사는 존재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정말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각하고 알아차리면서 내 인생의 주인 되기
그런데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나를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에
전환이 일어납니다. 화가 일어나는 순간 ‘아, 내가 화가 나고 있네.’ 하고 알아차리면,
그 화에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반응은 하지만 휘둘리지는 않는 상태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굴리는 존재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끌려가지 않을 때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세상을 굴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무지를 깨기 위해서 ‘깨달음의 장’에도 참여하고,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서 나누기하는 ‘나눔의 장’에도 가는 겁니다.
또 때로는 혼자서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오롯이 알아차림만 유지하는 연습인 ‘명상 수련’도 합니다.
이런 연습을 통해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맛, 감촉,
그리고 생각이라는 이 모든 감각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집니다.
실제로 그런 변화를 경험하는 분들이 있어요.
즉문즉설을 듣기만 했는데도 삶이 훨씬 가벼워졌다든가,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 관계나 주변 환경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덜 휘둘리게 되었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계기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수련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를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깨닫기도 합니다.
남들보다 가난하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인도를 다녀온 뒤,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으며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이것이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 이 ‘자각’이 핵심이에요.
수행은 결국 자각입니다. 스님이 뭐라고 하든, 남이 뭐라고 하든
그건 부차적인 문제예요. ‘내가 욕심이 많구나.’, ‘고집이 세구나.’ 하고
스스로 알아차릴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카르마란 무엇일까요?
바로 자각하지 않는 상태, 앎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화를 내고는 대개 세 가지로 변명합니다.
첫째,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라고 합니다.
둘째, ‘습관적으로 그랬다.’라고 합니다.
셋째, ‘무의식적으로 그랬다.’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결국 같은 말이에요.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 반응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동 반응이죠.
바깥 환경에 의해 조종당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자동 반응을 알아차림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반복하면
우리의 뇌에는 그것을 자동화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같은 반응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그다음부터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반응하게 돼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동화 될 때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 익숙할수록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죠.
대신에 알아차림이 없어서 습관대로 반응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을 불교에서 카르마라고 합니다.
몇 번 반복된 반응이 자동화되어, 외부 자극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하는 상태입니다.
효율은 높아지지만, 그 순간 나는 주인이 아니에요.
나는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조종할 수 있어요. 돈을 좋아하면 돈으로,
지위를 좋아하면 지위로, 칭찬을 좋아하면 칭찬으로 움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를 보면, 칭찬에 잘 반응하는 성향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래서 각국 정상들이 ‘당신이 최고다.’ 하고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외교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들이 연구되고 활용됩니다.
반대로 압박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어요.
사람은 위협을 받으면 불안해지는데, 바로 이 불안을 이용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100원짜리 물건을 갑자기 ‘10원에 팔아라.’ 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버팁니다.
하지만 계속 압박을 받다 보면 ‘그럼 20원이라도….’ 하면서 타협하게 됩니다.
무역 협상에서 높은 관세를 먼저 제시했다가 조금 낮춰주는 방식도 비슷한 원리이죠.
원래 없던 것이었는데도, 사람은 ‘그래도 줄어들었다.’라고 느끼며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이 역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식이에요. 이런 일도 몇 번 겪다 보면 눈치 채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을 더 정교하게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수행은 나를 보호하는 힘을 기르는 것
사실 이런 방식은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여자를 좋아하면 미인계를 쓰고, 돈을 좋아하면 뇌물을 쓰는 식으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이런 다양한 자극과 경계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것,
이게 바로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무조건 하지 마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을 하든 내가 알아차리고 선택하면 됩니다.
독이 든 음식이라도 그 사실을 알고 선택했다면 그것은 내 책임입니다.
그러나 좋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선택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나를 보호하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내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중생은 도둑과 함께 살면 도둑질을 배우고,
욕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욕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행자(修行者)는 같이 살아도 물들지 않습니다.
욕하는 사람 곁에 있어도 욕하지 않고,
도둑과 같이 있어도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오히려 주변 사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욕하던 사람이 욕을 줄이고, 함부로 살던 사람이 스스로 절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이런 삶을 위해 정토회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종교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기도하든, 어떤 의식을 하든 그
것은 각자의 선택이에요.
다만 정토회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기도하면 서울대에 합격한다.’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건 안 돼요. 정토회는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수행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수행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행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뜻은 아니에요.
현실 속에서는 종교적 요소도 일부 있고, 철학적 요소도 함께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입니다.
정토회는 그 중심을 수행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수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 명상홀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불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극락에 가는 것도 아니고,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 공간을 통해 함께 공부하고, 나누기하면서 조금 더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누군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해보세요.’라고 말합니다.
봉사를 하든 보시를 하든, 그것을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의 표현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바로 그런 마음 위에서 운영됩니다.
누군가는 보시로, 누군가는 봉사로, 그렇게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것도 많은 분의 정성과 참여 덕분입니다.
출처 : 법륜 스님 정토회 스님의 하루
출처 : 지리산 천년 3암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