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의 이유
지역 방송사 PD 17년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로 큰 관심을 받았다.
경남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을 도운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는 결국 선한 마음과 이타적 행동이 세상을 구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에게 확인시켜 줬다.
사람들에겐 이런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상식이 배신당하는 시대일지언정 우리마저 각박해질 필요는 없다는 다독임 같은 것 말이다.
취재 초반, 내가 가장 집중한 부분은 '김장하 선생은 왜 자신이 번 돈을 남을 위해 썼을까?'였다. 부잣집 아들도 종교인도 아니었지만, 그는 스무 살 언저리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다. 40대가 됐을 땐 100억 원대 학교를 지어 재단 이사장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음에도 국가에 헌납했으며,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학생들과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왜 그랬을까? 누구라도 궁금해할 부분이었다.
사실 김장하 선생은 이미 그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나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다만 평범한 사람인 내가 이해하기엔 그 이유가 너무 크고 아름다워서 계속 다른 이유, 내 수준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 댄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선생이 남을 도운 이유를 궁금해한 게 아니라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될 이유를, 변명거리를 찾아 헤맨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취재 방향을 수정했다. 김장하 선생이 '왜' 그랬는지보다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도움이 세상을 '얼마나 바꿨는지를 알아보는 데 집중했다.
<어른 김장하>는
김장하 선생이 평생에 걸쳐 뿌린 씨앗과 거름의 결실을 찾아다닌 기록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선생을 만난 사람은 마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 줬다. 김장하 선생의 세상 농사, 사람 농사는 대풍이었고,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김장하들이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내가 배운 것은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만드는 강인함이다. 매일 아침 진주교로 남강을 건너는 선생의 구부정하지만 흔들림 없는 뒷모습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일렁인다. 60년 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들을 마음으로 돌보는 것은 잠깐 불타오르는 영웅심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선생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을 힘껏 살아온 세상의 수많은 어른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어른 김장하>를 통해 우리 안의 영웅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김현지 님 | MBC경남 PD, <어른 김장하> 감독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과 마음을 다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ㅡ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