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
苦盡甘來를 굳어진 표현이 아닌 순수한 문장으로 본다면 盡자는 우리말로 '다해, 다하고, 다하니까, 다하다, 다하면'등의 의미에 상당할 수 있어, 문맥에 따라 의미를 판단해야 한다. 이처럼 한문에는 국어처럼 어미활용이 거의 없어서, 이것은 상당히 모호함을 내포한다. '고진감래'처럼 많은 사자성어, 고사성어들이 글자 수를 맞추려다보니, 핵심이 되는 단어만 있고 내용 파악에 요긴할 수 있는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단어(function word)는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則자를 더해, '苦盡則甘來' 이처럼 표현한다면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則자와 같이 문장 중간에서 의미를 명료하게 해 주는 구실을 하는 한자는 '故, 雖, 又' 등이 있다. ○관과지인(觀過知仁) 잘못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진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
'관과지인'은 본래 논어에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에서 나온 말이다. '관과지인(觀過知仁)'은 문장 자체는 간단해서 '술어+목적어', '술어+목적어'(觀過知仁)로 명료하게 문법적인 분석이 쉽게 된다. 그러면 이 분석에 의해 해석하면 '잘못을 보고(보면) 인을 안다.'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상당히 모호한 해석이다. 만일 '관과지인'을 '觀人之過, 則知其仁否'로 했으면, 무슨 의미인지 아는 것이 수월지는데, 觀過知仁만 보고 仁자가 '어진지'의 의미인지를 알려면 논리적 사고(눈치)를 요하는 문맥 파악 능력이 있어야 하지, 단순한 문법적인 분석으로는 한계가 있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는 뜻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헤쳐나갈 길도 있음을 말한다.
a. 若日西出, 則吾釋汝也.(만일 해가 서쪽에서 뜨면 너를 놔줄 것이다.)
a 문장에서처럼 則(즉)자는 '~한다면(便(변))'의 의미를 갖는 가정의 기능을 한다. 則자 말고 則자의 자리에 위치하고 가정의 기능을 갖는 한자는 此, 是, 斯자 등이 있는데, 이런 한자 중에 앞에 나온 단어나 구문을 받는 대명사적인 기능을 하는 한자들이 많다는 것이 특이하다.
b. 知於人則先知人.(남에게 인정 받으려면 먼저 남을 알아주라.)
b 문장처럼 則자는 '~하려고 하면(欲~則)'의 의미를 문맥에 따라 갖기도 하니, 유념해야 한다.
○남녀지간(男女之間) 남자와 여자의 사이.
男女之間에서처럼 之자는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 사이에 주로 쓰인다. 그런데, 이 之자는 이외에도 다양한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어조사(허사) 노릇을 한다. 이러한 한자는 상당히 자주 쓰일 뿐만 아니라, 문장의 독해에 있어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한자이기에, 이 之자의 낱낱의 의미와 기능이나 용법을 자세히 아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한자(의미는 한 두개이고, 쓰이는 빈도가 적은 한자) 수천자, 수만자를 아는 것보다 더 낫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之자의 의미나 기능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a. 孔子自魯之齊.
b. 天壤之差.
b-1. 傾國之色.
c. 有農夫耕地而見黃金, 乃審左右而密拾之也.
c-1. 知之不如行之.
d. 富貴人之所欲.
d-1.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a 문장처럼 '가다'란 의미가 있고, b처럼 수식의 기능이 있고, c처럼 대명사적인 기능이 있고, d처럼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하는 기능이 있다.
또 之자처럼 중요한 한자는 爲(위), 所(소), 以(이), 於(어), 與(여), 非(비) 등이 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여기서 '益'자는 엄밀히 따지면 '-ㄹ수록'보다는 '더욱'의 의미가 되는데, 우리말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ㄹ수록 (더욱)'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多多益善'에서의 益자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한자는 愈, 彌, 加 등이 있다.
이외에 비례의 의미를 가진 한자가 쓰인 한자성어로는 老益壯(노익장). 富益富貧益貧(부익부빈익빈) 등이 있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위에서는 聞자를 '듣고'로 해석했는데, '들으면', '들으니', '들어서' 등으로 해석해도 그다지 의미상의 차이는 별로 없다. 이와 같이 문장 중간의 어미('~고')를 여러가지로 치환해도 서로 의미의 차이가 적다.
그러나 博學多識(박학다식)은 경우가 다르다.
우선 博學多識을 '배움이 넓고 아는 것이 많다'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널리 배우고 많이 안다'로 해석을 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學자가 '배우고'로 풀이됐는데, '배우면', '배우니' 등으로 해석하면 '배우고'로 해석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처럼 문장의 중간의 어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사소해 보이지만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울 때가 있다.
○미증유(未曾有) (어떤 것(그러한 것)이) 있은 적이 없다.
'未曾有'에서 曾자는 시점이 과거로 한정된다. 曾자보다는 '嘗(상)'자가 이런 용법으로 많이 쓰인다.
a. 吾嘗見龍.
b. 吾見龍也.
a는 '나는 용을 본 적이 있다.'로 확실히 시점을 파악할 수 있으나, b문장은 시점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어, 見자를 '봤다, 본다, 볼 것이다'등 중에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길이 없다. 우리말은 어미만으로도 시점을 알 수 있으니, "갔다(-ㅆ-), 간다(-ㄴ-), 가겠다(-겠-)"는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냄을 여러분도 다 알 것이다. 그러나 한문은 시점을 나타내는 문법적인 형태가 따로 거의 없어, 전후의 문맥이나 시점을 유추할 수 있는 한자(단어)로 시점을 파악해야 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본 것만 못하다.
'百聞不如一見'에서 '百聞'은 '백번 듣는다'가 '백번 듣는 것'으로 '一見'은 '한번 본다'가 '한번 보는 것'으로 해석이 자연스러운데, 의미는 비슷하나 형태는 달라진다. 그런데 한문의 형태는 변화가 없다. 이것은 어미의 활용이 거의 없다는 한문의 문법을 정확히는 몰라도, 문맥에 따라 해석을 할 줄아는 인간의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문법의 용어는 몰라도 문법의 실질을 알아보는 인간의 능력이기도 하다.
○불문가지(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안다.
'不問可知'는 다 알다시피 관용적으로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雖不問而可知)'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不問可知는 이 외에 구문적으로 다른 뜻을 가질 수 있다.
a. '묻지 않으면 알 수 있다(=不問則可知)'
b. '알 수 있는 것은 묻지 않는다.(=不問所可知)'
이러한 것은 한문에서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한자(허사)가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문장의 구문상, 의미상의 모호함을 초래하는데, 이것을 한문이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 구문이나 문장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다각적인 사고를 하게 하고, 다양한 가능한 해석중에서 문맥에 따라 적합한 의미를 고르게 하는 판단력을 기르게 한다고 좋게 볼 수도 있다.
○불원천리(不遠千里) 천리를 멀지 않게 여기다.
책 '맹자'의 첫머리에 '~不遠千里而來~'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걸 '천리가 멀지 않은데 오다'로 해석하면 천리길이 멀지 않으니 당연히 와야하는 것으로 되어 의미가 이상하고, '천리가 멀지 않다고 생각하고 오다'로 해석해야 먼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맙게도 왔구나 하는 의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문 그 자체내에서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이처럼 한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상태나 정도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해당하는 '遠'자처럼 품사를 거의 동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a. 石重乎土.(돌이 흙보다 무겁다.)
b. 君子重義, 小人重利.(군자는 의를 중하게 보고 소인은 이익을 중하게 본다.)
a 문장에서는 重자가 기본적인 의미인 '무겁다'라고 해석이 되나, b 문장에서는 重자를 그냥 '무겁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판단의 의미를 갖는 '중하게 보다('중시하다', '중하게 여기다', '중하게 생각하다'도 가능함)'로 해석이 되어야 의미 파악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이렇게 重자는 '무겁다'는 의미는 유지하면서 문맥에 따라 품사는 동사에 상당하는 것으로 몇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니, '무겁게 하다', '무겁게(중하게) 생각하다', '무겁다고 하다' 등이다.
○사기충천(士氣衝天)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士氣衝天'은 는 글자대로 해석하면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인데, 보이지 않는 '사기'가 하늘을 정말로 찌를 리는 만무하고, 그 만큼 사기가 대단함을 과장되고 감각적인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과장된 비유가 한문에 자주 쓰인다. 아마 이러한 것은 한문의 문법적인 기능이 미약하여 의미의 파악에 혼란이 있는 것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이러한 비유가 들어가는 한자성어로는 立錐之地(입추지지), 男兒一言重千金(남아일언중천금), 氣高萬丈(기고만장), 束手無策(속수무책), 傍若無人(방약무인), 雲集(운집), 霧散(무산), 蟻附(의부) 등이 있다. 그런데, 雲集(운집), 霧散(무산), 蟻附(의부), 蜂起(봉기) 등은 거의 한 단어처럼 쓰이니, 미리 알고 있어야 한문 해석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a. 希望霧散.
a문장에 쓰인 霧散이란 표현을 사전에 모른다면 '희망이 안개가 흩어졌다'라고 이상한 해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如자를 넣어 希望如霧散. 이렇게 표현했으면 '희망이 안개처럼 사라졌다(무산됐다)'로 맞게 해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霧散 같은 표현은 如자없이 쓰이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이비(似而非)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而자는 여기서는 '~나'로 해석이 되나, '~고, ~여, ~자, ~지만, ~되, ~는데' 등의 다양한 어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柔而不弱('부드러우나, 약하지 않다')
視虎而走.(호랑이를 보자마자 달아났다.)
視而不見, 聽而不聞.(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
富而夭, 貧而壽, 何愈乎.(부유하고 일찍 죽는 것하고, 가난하고 오래 사는 것하고 무엇이 나은가.) *. 여기서 富而夭 '부유하지만 일찍 죽는 것하고'로도 해석이 가능해서 순접과 역접의 의미를 다 가질 수 있다. 貧而壽도 마찬가지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 반드시 상을 주고, 반드시 벌을 준다.
信자를 보통 '믿다'로만 알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반드시(필히 하다)'의 의미로 쓰이니, 이렇게 한자는 한 글자가 의미가 다양하게 쓰인다. 必자는 '반드시'로만 해석하기 쉬운데, 여기서 必자가 '반드시(부사)'로도 해석이 가하나, '필히 하다(동사)'로도 가능해 한자가 문맥에 따라, 품사를 달리해야 의미 파악이 원활할 때가 있다. 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富者衣錦衣, 貧者衣布衣.(부자는 비단옷을 입고, 가난한 자는 베옷을 입는다.) 앞에 衣자는 '입다'라는 의미로 뒤의 衣자는 '옷'이라는 의미로 쓰여 같은 글자인데, 품사를 달리해 해석이 됨을 알 수 있다.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만 있고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것이 없음.
우리말식으로 하면 名有가 되어야 하는데, 有자가 名자 앞에 위치했고 無자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가 선뜻 안 가는 이런 어순 구조를 갖는 한자가 有, 無자 말고도 주로 존재(存在), 출현(出現) 등의 의미를 갖는 한자 發. 降. 出. 生. 現 등이 이러하다.
그런데 이것은 영어에서도 존재(存在), 출현(出現) 등의 의미를 갖는 단어가 쓰일 때는 'There is a computer on the desk.' 옆 문장과 같이 정상 어순과 다르게 도치되어 쓰이기도 하는 점은 묘하다.
그리고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갖고 있는 한자인 有자와 無자가 어울려 성어를 이루는데, 한자 성어 중에는 이런 식의 성어가 아주 많다. '有~無' 형태가 들어가는 성어만 해도 有備無患(유비무환), 有口無言(유구무언), 有錢無罪(유전무죄), 有耶無耶(유야무야) 등이 있다.
○자초지종(自初至終)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상황.
여기서 自자가 의미는 '~부터'로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이 되고, 위치는 마치 영어의 전치사처럼 初자 앞에 있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한자는 以, 於, 于, 乎 등이 있다.
○七顚八起(칠전팔기)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째에 일어난다는 의미로 속뜻은 여러 차례의 실패나 난관을 딛고, 끝내 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곱 번'의 '번'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이, 七자만 있는데, 七자가 자체로 '일곱 번'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이렇게 七자만 쓰면 '일곱 사람'인지 '일곱 번'인지 당연히 모호해질 수 있다. 그러나 모호함을 없애기 위해 七度顚八度起와 같이 하면, 어쩐지 길어서 지루해지고, 낭독의 묘미도 떨어진다. 이런 숫자가 들어가는 표현에서 그 수는 꼭 그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다른 상징을 갖기도 하니, 七顚八起에서 七은 꼭 일곱번이 아니고 적지 않은 횟수를 암시하고, 千과 萬은 많음을 의미하고 一은 적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구구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칠전팔기말고 앞뒤로 숫자가 들어가는 한자성어로는 百發百中(백발백중). 千辛萬苦(천신만고). 四當五落(사당오락). 非一非再(비일비재). 千載一遇(천재일우). 千慮一失(천려일실). 一當百(일당백) 등이 있다.
○泰然自若(태연자약) 편안히 평소의 자기 모습을 유지함.
泰然自若은 기계적인 직역을 한다면 '태연히 자기답다' 정도가 되겠는데, 태연자약이란 이 어구 자체가 우리말로 직역하거나 의역한 것보다 더 의미 파악도 쉽고 실생활에 자주 쓰인다. 적지 않은 한자성어가 이러하다. '泰然自若'는 이른 바 의태어나 의성어 뒤에 붙는 然, 若가 쓰였는데, 이것말고도 如, 焉 자 등이 있다. 이외 의성. 의태어가 들어가는 것으로는 茫然自失(망연자실). 浩然之氣(호연지기). 茫茫大海(망망대해). 孑孑單身(혈혈단신). 戰戰兢兢(전전긍긍).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