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고 싶은 죄
지금부터 55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7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교무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다 마치고 친구들이 모두 교실로 들어갔다. 교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선생님 책상 위에 성적일람표가 있었다. 그 성적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성적을 고쳐보고 싶었다. 2학기 때 또 장학생에서 탈락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7자를 8자로 고쳤다. 7자를 8자로 고치는 것은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사선으로 그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른 나왔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당당히 3학년 2학기 장학생이 되었다. 아마도 고친 점수 덕분인 것 같았다. 당시엔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나로 말미암아 더 가난하고 어려운 친구가 장학생이 되지 못하고 떨어졌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엄습해 왔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나의 고통이었고 가시가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미국 ***대학교로 유학을 보내주는 특전이 있습니다.” 는 진학설명회를 듣고 귀가 솔깃해서 미션 스쿨인 **중학교에 갔다. 당시엔 국어와 수학(당시엔 산수) 두 과목만 시험을 봤다.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1년 장학생이 되었다. 그 다음해도 1년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2학년 2학기 때 학생회 부회장(중학교는 부회장, 고등학교에서는 회장)에 당선되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그리고 공부도 조금 소홀했다. 3학년 1학기 때 장학생에서 탈락했다. 가난한 가정형편을 잘 아는 나는 도저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중학교 교장을 지낸 채**친구와 근로 장학생으로 주선해 주셨기에 부모님께는 일체 입을 다물었다.
당시 나는 누구보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 신자였다. 아침저녁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학생이었다. 교회 중고등학생회 회장으로서 활동을 했고 헌신예배시간엔 설교도 하는 학생이었다.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는 생각에 기도를 할 때마다 그 죄가 떠올라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하였다. 부흥회가 있는 날에는 그 죄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용서 받고 싶은 죄라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기도를 드렸다. 한 번 저질러진 죄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씻을 수가 없다는 걸 느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이유를 그때야 알게 되었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도 하면서 내 죄 짐을 짊어진 예수님을 발견하였다. 나는 용서받았다는 마음으로 기뻐했다. 그 때부터 용서받은 죄 값을 갚아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교사가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가난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눈여겨보며 잘 보살폈다.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라고 하면서 제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첫 발령을 받아 담임한 반에 장**이란 학생이 있었다. 결손 가정의 어린이였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장**군은 공부도 잘 하고 착했다. 너무도 딱한 처지이기에 각지에 편지를 띄어 독지가를 찾았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대한**협회장***와 배우 ***가 학교까지 왔다. 그리고 돕기로 약속하고 실제로 송금까지 해 주셨다. 벽지학교 **학교에 근무할 때는 정**학생을 비롯해 4명에게 박봉을 털어 중학교 입학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가난한 제자를 만날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적극적으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방송이나 신문에 어려운 사람의 사정이 전해지면 선뜻 성금을 내놓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수학교를 지원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3년 동안 적극적으로 도운 것도 지은 죄가 없었다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정년을 하고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이웃에게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것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폐휴지를 줍고 다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갑을 얼른 열어 돕기도 한다. 어떠한 선행을 한들 내가 지은 죄 값은 다 갚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십분의 일이라도 내가 지은 죄를 용서 받고 싶은 심정이다. 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더 열심히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에 매진하리라.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가난해서 나 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