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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이 받을 소득
레 7:28-38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9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물 중에서 그의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되
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32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33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35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37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38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 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
레 7:28 [화목제물 중 제사장의 몫]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러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이르셨다 `나 여호와나 이웃과 평화로이 지내게 해달라는 뜻으로 화목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특별히 떼어 바쳐야 한다.
레 7:29-38 / (28절과 같음) 30)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특별하게 떼어서 여호와께 불살라 바쳐야 할 부분은 그 제물의 가슴 부위와 기름 덩어리이다. 그것을 여호와 앞에 가져와 여호와께 특별히 바친다는 뜻으로 흔들어 바쳐라. 31) 그러면 제사장은 기름 덩어리는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바치고 가슴 부위는 제사장인 아론과 그 후손들의 몫으로 돌려라. 32) 이 제물 가운데에서 오른쪽 뒷다리는 쳐들어 바친 다음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33) 이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 가문인 아론의 후손 가운데에서도 그 제사를 맡아서 제물의 피와 기름 덩어리를 여호와께 바쳤던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34) 나는 화목제물 가운데에서 특별히 바친다는 뜻으로 흔들어 바친 가슴 부위와 쳐들어 바친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인 아론과 그 후손들의 몫으로 주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이른 사항을 영원한 규정으로 삼아 대대로 꼭 지켜야 한다.' 35) [내용 마무리] 이상이 여호와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일을 맡기신 날부터 여호와께 불살라 바치는 제물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주신 몫이다. 36)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아론과 그 후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날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대로 지킬 규정으로 명령하셨다. 제사장들은 이 규정에 따라 몫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37) 이상은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이나 속죄제물이나 면죄제물이나 임직식 제물이나 화목제물을 바칠 때마다 꼭 지켜야 하는 규정이다. 38)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 광야에 있을 때 이렇게 예물을 드려야 한다고 명령하시던 날에 그 자세한 사항을 모세에게 일일이 이르셨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1; 4:1; 5:14; 6:1, 19; 7:22)라는 문구로 시작하고(28), 곧이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1:2; 4:2; 7:23)는 문구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이 2가지 표현은 레위기에서 모든 백성에게 선포해야 할 내용이 있을 때 등장합니다. 이 표현들은 여기서 다룰 내용이 모든 백성이 한마음으로 준수해야 할 내용임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화목제를 드린 뒤,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다룹니다. 제사장들은 세상일에서 제외되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 사역을 하도록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들이 생계를 염려하지 않고 중보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배려해야 했습니다.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28-36) 화목제를 드릴 때 요제로 드려진 희생제물의 가슴과 거제로 드려진 희생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영원히 제사장들의 몫이었습니다. 이 계명은 제사장이 되어 섬기는 첫날부터 영원히 시행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제사와 관련된 일만을 하는 제사장이 생계 걱정 없이 자기가 맡은 거룩한 직무에만 전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독자가 아니라 공동체적 존재이고, 성결과 거룩함은 개인의 도덕적인 삶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행동입니다.(참고 눅 10:7; 고전 9:13, 14; 히 8:6)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였더라(37-38)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레 1:1-7:36) 5가지 제사와 제사장 위임식이 한 줄로 요약됩니다. 레위기에 언급되지 않은 '제사장 위임식'이 여기에 들어가 있는데, 임직식은 출애굽기(29:19-31)에서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구약에 언급된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표현합니다. 모든 제사는 죄의 처리를 다룹니다. 제사의 목표는 죄로부터의 완전한 회복과 치유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 관계가 깨졌을 때 이를 회복하거나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인간의 속죄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영원한 피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구약의 제사가 상징하는 모든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제사의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명령은 지금을 사는 내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적용: 당신과 우리 교회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이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보호하고 있습니까? 내 곁을 스쳐간 주의 종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마음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에서 화평이란 사전적으로 '마음의 평안함' 혹은 '평안', '평강'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의 핏 값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 우리 가정, 우리 교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평안을 끼치는 자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 세워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설 교 >
화목제 규례와 제사
레 7:28-38 / 장석환 목사
오늘 본문은 화목제의 규례와 제사제도에 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1. 화목제 규례
화목제는 막힌 담을 푸는 제사입니다. 환경에서의 막힌 담, 사람과의 막힌 담,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뚫렸을 때 감사하며 드리기도 하고 또는 막힌 담이 뚫기를 서원하며 드리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여러 목적을 가지고 드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으로 화목제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뚤리는 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화목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제사자가 음식을 먹는데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모든 것을 태웠습니다. 소제, 속죄제,속건제는 제사장만 음식을 먹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유일하게 제사자가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함께 먹는 정도를 넘어 제사자가 그것을 주도적으로 먹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먹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을 초청하여 함께 먹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집안에 잔치가 있을 때 교회 식구들에게 떡을 나누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음식을 먹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의식이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화목제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비록 그 음식을 제사자가 주도적으로 먹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안에서의 화목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들과 화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화목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화목이 되어야 합니다.
2. 제사의 의미
오늘 본문 37-38절은 모든 제사에 대한 마지막 정리입니다. 1장 2절부터 시작된 제사제도가 7장 38절에서 마칩니다.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3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제도를 주셨습니다. 제사는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관계가 없었지만 제사드림으로 이제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제사는 무엇일까요? 예배가 가장 유사합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 앞에 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제사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도 규례가 있습니다. 그 규례는 무엇보다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규례란 제사와 관련된 하나하나의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으로서 합당한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규칙이 없는 자유로운 예배는 자유롭기 보다는 방임의 예배가 됩니다.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끈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제사드릴 때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영원에 잇대어지는 순간이 됩니다. 제사의 시간은 영원에 들어가는 출입문이 되었습니다. 제사의 규례가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제사는 5가지 종류밖에 되지 않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5가지 종류의 제사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배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찬양이 어렵고, 말씀이 어렵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관심 부족일 것입니다. 예배가 지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중에 임하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일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인심쓰는 자세로 예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고 감격함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하고 있습니까? 그 예배는 우리를 옳아매는 줄이 아니라 우리를 하늘에 들어올리는 생명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배에 힘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사를 명령하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예배를 명령하십니다.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예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야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화목제를 통해 다시금 '평화'를 회복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번제부터 시작된 모든 제사에 대해 감사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를 드릴 수 있어 감사한 것이고,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소제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속죄제를 드릴 수 있다는 것, 다른 이에게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는 보상하며 속건제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 속에 이러한 5가지 종류의 제사 성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레 7:28-38
레위기 1장부터 6장 7절까지 말씀은 다섯 가지 제사의 일반적인 내용들이고 제사 드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떠한 규칙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면 6장 8절부터 7장 38절까지는
그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은 어떠한 규칙과 규례에 따라서 어떻게 제사를 집례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레위기 통해서 밝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제사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예배의 다섯 가지 요소와 맞고 일맥 상통되어지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헌금과 성도의 교제로 그것으로 짝을 지어서 비교해 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덧붙여서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린다면, 제사의 모습이 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모습은 하나님께 제사한다는 것입니다.
- 오늘 화목제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화목제는 7장 11절부터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7장에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격하여서 드려지는
화목 제사가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감사의 표현으로 감사제로
드려졌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린다는 헌신의 표현으로서의
헌신을 서원하는 서원제로 제사를 드렸고 또 하나는 순수하게 하나님과 교제하겠다는 자발적인
마음 가운데 자원하여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즉 화목제 안에 의미에 따라서 감사제와 서원제와
자원제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번제는 완전히 불태워 올려 드리는 것이고 다른 제사는 제물 가운데 일부를
취하여서 불태워 올려 드리고 그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 드리는 것이라면 화목제 제물은
하나님께 일부를 태워 드리고 제사장에게 몫을 드리는데 그 몫은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를
떼어내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리고자 했던 사람에게 돌려서 제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단순히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만 아니라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린다는 의미가 화목제의 뜻 가운데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화목제 제물은 제사장뿐 아니라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백성이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백성이 함께 누리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화목제
중 감사제 경우에는 주로 곡식이 소제로써 많이 드려진 것 같은데 당일에 다 먹어야 한다고 했고
서원제나 자원제 같은 경우에는 이틀에 걸쳐서 그것을 다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정해진
규칙으로 만약 그것을 다 먹지 못하면 그 제사는 무효가 됩니다. 하나님은 무효가 되는 규칙을 왜
두셨는가 하면 실질적으로 제물이 오래 두면 상할 것으로 상하기 전에 빨리 먹으라는 그런 의미가
있겠지만,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소의 무게가 7~800kg 정도 될 것이고 뼈를 빼내고 피와
지방인 기름을 빼내고 내장을 빼내고 나면 남은 살코기만 3~400kg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하는데 혼자서 먹지는 못할 것이고 여기에 전제된 것은 화목제물은 제사를
지내는 그만 홀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모든 자와 함께 나누고 취하여 함께 먹을 때만
그 제사가 온전히 드려질 수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 하게 됩니다. 따라서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은 제사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모든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목제의 의미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함께 나누고 이웃과 막힌 담을 허물고 함께
화평하게 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영역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회복이 열림과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 공동체로 모아 주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구속의 은혜는 단순히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막힌
것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사이가 막혀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되고 동시에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놓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땅 가운데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인 새로운 천국이 전개되는 땅이 될 수 있도록 완전히 회복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구속 가운데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화목제의 제물 가운데 요제의 제물로 가슴 살을 드렸고 거제의 제물로 오른쪽 뒷다리를 드렸는데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제물로 드리고 제사장이 가졌다라고 합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 먼저 태워
드린 것은 내장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그 중심을 받으시겠다 라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장과 함께 기름과 피였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자의 중심을 받으셨고 힘의 원동력이
되는 기름을 취하셨고 생명의 근원인 피를 취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준 것은
가슴 살과 오른쪽 뒷다리를 드린 이유가 성경에는 없는데 많은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들의 의견은
그것이 제일 맛있다고 하여 주었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에는 구체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완전한
제사의 모형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제사의 모습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남기려는 것은 바로 영원한 산 제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제사는 단 한번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완성한 제물이
되시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고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자가 우리라는 사실도 기억할 수 있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크고 놀라운 은혜
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강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물 되신다고 반복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죄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이 성막이었고 제사의 모습이었고 그것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는 완전한 성막이자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진 제사장으로
있는 거룩한 백성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드려지는
산 제사, 참된 예배가 우리 가운데 있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더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레위기의 모든 제사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예배
하는 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 가운데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레위기 7:28 -38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제물의 기름과 가슴 부위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계 덩어리’나 액체로 된 ‘oil’을 뜻하는 기름이 아니라, 여호와께 드리는 가장 좋은 부위를 말합니다. 이 부위는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가슴 부위를 헌신된 아론과 그의 자손들 즉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슴 부위를 먹는 자가 제사장이라고 해서, 오늘날 이 본문이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적용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에 헌신 된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 드리는 일에 헌신 된 제사장들에게 가장 좋은 고기의 부위를 그들의 몫으로 주셨듯이, 오늘날에도 주의 일에 헌신 된 자들에게 주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것을 소유하기 원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 자기 재능과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며,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바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 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만도 축복이고 기쁨인데, 그 결과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을 그의 삶에 부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레 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자손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만일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자손으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았다면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감사했을 것이며, 하나님을 삶의 공급자로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의 공급자 되심을 나타내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비록 백성들이 제사를 위해 번제단에 바치는 제물 중에서 소득을 취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는 것임을 강조하므로 그들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더욱 더 충성 되고 헌신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비록 손님이 내 고간 돈이고, 직장에서 나오는 월급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의 소득을 책임지는 존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공무원은 국가가 내 소득을 책임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회사나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지만, 우리 삶의 유일한 공급자는 국가도 아니고, 회사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본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늘에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명령 아래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나 회사에 충성하는 것보다 더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계를 보장해 주시니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삶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 일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먼저 선택하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별로 없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 할 제목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신 은혜, 이 값진 십자가의 은혜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의 생계를 돌보셨듯이, 오늘날에도 주님은 친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 입니까?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 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을 먹이기 위해 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 줍니다. 또한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자, 곰, 늑대와 다투는 그늘과 보호막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 되어 주시고 우리의 목자 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감사하고, 충성으로 섬겨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그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 있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감사와 평안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공급자 되심을 기억하시며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레위기 7:22-38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우리는 앞서 감사함으로 드릴 때의 화목제 규례, 화목 제사 후의 공동 식사에 관한 규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청중이 제사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바뀝니다. 본문의 규례들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지켜야 하는 규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3장 16-17절 말씀입니다.
(레 3:16-17)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본문은 이 규정에 대하여 추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희생 제물로 드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짐승의 살과 섞여 있는 기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장을 감싸고 있는 기릉을 의미합니다. 즉 갈비살과 섞인 기름은 먹을 수 있지만, 콩팥, 간 등 내장을 감싸고 있는 기름은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태웠던 제물의 기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기름은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습니다. 제단 위에 올려진 기름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바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이 자연적 원인으로 죽는다면 더 이상 제물로 바쳐질 수 없었는데, 이는 오직 흠 없는 짐승만이 하나님께 드리기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사한 짐승의 기름은 먹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용도로는 무엇이든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등불을 밝히는 것, 윤을 내는 것, 집안의 다른 목적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일 사람이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짐승의 기름은 최상의 것을 뜻하며, 그 최상의 것은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최상의 것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6-27)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는 절대로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새나 짐승의 몸에서 피를 빼내지 않고 고기를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기를 먹을 때는 피를 다 제거한 후에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나 짐승의 피 섭취 금지는 어떠한 형식이든 모두 금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피를 먹는 것은 물론이며 피를 넣어 만든 일체의 음식이 금지됩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순댓국과 선짓국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한 도살할 때 피를 제대로 빼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것은 고기를 피 째 먹는 일, 즉 피가 섞인 고기를 먹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유대 문헌의 가축 도살법에 의하면, 도살자는 짐승의 목의 동맥을 정확히 찔러 도살한 뒤 거꾸로 매달아 놓거나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비스듬히 눕혀 놓아 몸통의 피를 철저히 제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노아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내리신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9장 3-4절 말씀입니다.
(창 9: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육식을 허용하시면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피를 먹는 것을 이렇게 강력하게 규제하실까요?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새번역, 레 17:11) 생물의 생명이 바로 그 피 속에 있기 때문이다. 피는 너희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치라고, 너희에게 준 것이다. 피가 바로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죄를 속하는 것이다.
새나 짐승의 피를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피가 곧 그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인간이 새나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때도 새나 짐승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도 선짓국이나 순댓국을 먹으면 안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음식에 대한 규정은 더 이상 항구적이지 않습니다. 먹는 것은 외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민족과 국가의 식문화를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7:14-23). 바울 또한 이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인은 원칙적으로 모든 음식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롬 14:15; 고전 10:25-26).
(28-30A)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물 중에서 그의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되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하나님은 화목제를 드리는 자가 자기 손으로 제단에서 태워질 짐승의 부위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 의하여 강제로 가져오도록 강요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자가 제단으로 가져가는 짐승의 부위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는 제물의 가장 소중한 부위를 스스로 제단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는 강제성을 완전히 배제해야 하며,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드리는 가장 좋은 제물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더 이상 짐승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지만, 근본 원리는 동일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새번역, 고전 9: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는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고,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은 주님의 권위 아래 두겠다는 신앙고백으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30B-34)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화목제의 희생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두 부위입니다. 하나는 제물의 가슴이고, 다른 하나는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가슴 부위는 하나님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아 제사장에게 돌리고, 오른쪽 뒷다리 부위는 거제를 삼아 제사장의 소득으로 돌리도록 규정합니다. 제물의 가슴은 일반 제사장들의 몫인 반면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를 드린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여기서 요제와 거제는 제물을 드리는 의식과 관계된 용어로 제사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유대교 주석에 따르면, 요제는 제물을 좌우로 흔드는 의식을 가리키고, 거제는 제물을 위로 올리는 의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현대의 신학자들은 요제와 거제 모두 제물을 위로 올려서 드리는 의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위로 올리는 것은 소유권 이전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이 행동으로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우리도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이 원래부터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5-36)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레위기 6-7장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화제물 중에서 제사장에게 돌릴 몫은 그들이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물에 대한 제사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생계를 돌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에게 적용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3-14절 말씀입니다.
(고전 9:13-1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사역자들의 생계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는 사역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교우를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마땅히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37-38)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 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
레위기 1-7장 전체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과 제사장 모두와 관련된 이스라엘 제사 제도의 적합한 시행 지침 및 절차를 계시하신 레위기의 첫 번째 주요 부분에 대한 맺음말입니다. 이것은 저자, 출판사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의 마지막 장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누가 지금까지 말씀하셨고, 누가 이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사를 나열하는 일에 있어서 레위기 6-7장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중간에 위임제를 삽입합니다. 이 규례들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되풀이함으로써 레위기의 시작 부분(레 1:1)과 더불어 수미쌍관을 형성합니다.
본문은 희생 제물의 기름과 피에 대한 규정과 희생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에 대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더 이상의 희생 제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취해야 할 바른 태도와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수천 년 전에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사용하십시다. 모든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십시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사용하게 하옵소서. 또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