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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문성뢰(聚蚊成雷)
모기가 떼지어 나는 소리가 뇌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소인배가 사실을 왜곡하여 열심히 남을 욕함을 이르는 말이다.
聚 : 모을 취(耳/8)
蚊 : 모기 문(虫/4)
成 : 이룰 성(戈/3)
雷 : 우레 뢰(雨/5)
모기가 모이면 우레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작은 모기도 많이 모이면 소리가 우레처럼 들리는 것 같이, 간악한 무리들이 모여 하찮은 일을 과장하여 떠들어대면 작은 일도 대단한 일이 되는 간신배들의 참소(讒訴)가 횡행(橫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듣는 속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무슨 일이나 그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은 물건도 많이 모으면 나중 크게 이룰 수 있다는 성어는 많고 또 긍정적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진적위산(塵積爲山), 진합태산(塵合泰山) 말고도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거나(水滴石穿 수적석천) 연못을 이루기도 한다(水積成淵 수적성연)고 했다.
잘 알려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부위침회(磨斧爲針)도 있다. 반면 무섭거나 부정적인 것도 있다. 깃털이 쌓여 배를 가라앉히는 적우침주(積羽沈舟)와 같이 모기소리가 많이 모이면(聚蚊) 우레가 된다(成雷)는 이 성어는 소인배가 사실을 왜곡하여 열심히 남을 욕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에 버금가는 후한(後漢) 초기 역사가 반고(班固)의 대작 한서(漢書)에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전한(前漢)의 6대 경제(景帝)의 아들들이 봉해진 임지에서 올라오자 왕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때 중산왕(中山王) 승(勝)이 음악소리를 듣고서는 눈물을 흘리기에 황제가 의아해서 연유를 물었다. 중산왕은 자기를 참소하는 말에 답답해하며 해명한다.
衆喣漂山 聚蚊成雷 朋黨執虎 十夫橈椎.
중후표산 취문성뢰 붕당집호 십부요추.
뭇 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가고, 모깃소리가 모여 우레가 되며, 패거리를 지으니 범을 때려잡고, 열 사내가 작당하면 쇠공이를 휘게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험담에 문왕(文王)이 구금된 바 있고 공자(孔子)도 진채(陳蔡)에서 곤욕을 치렀다며 다시 강조한다.
衆口鑠金 積毀銷骨 叢輕折軸 羽翮飛肉.
중구삭금 적훼소골 총경절축 우핵비육.
뭇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고, 헐뜯는 말이 쌓이면 뼈도 삭으며, 가벼운 것이라도 수레 축대를 무너뜨리고, 새의 깃털이 무거운 몸을 날게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의 아들과 후손을 기록한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에 실려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시쳇말로 ‘~카더라’통신은 사람들의 귀를 쉽게 파고든다. 사람들의 호기심이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 그것도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에 더 흥미를 갖게 마련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파리가 꼬이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말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떠도는 이야기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며, 모깃소리처럼 작은 소리에 내 소리를 얹어서 큰 우렛소리가 되도록 보태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처음에는 작고 힘없는 모깃소리였을지라도 하나 둘씩 모여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시작은 미미하였을지라도 큰 강물을 이루어 도도하게 흐르는 것처럼 때로는 모깃소리가 바른 소리가 되어 세상에 경종을 울릴 때도 있다.
지금은 내 곁에서 울리는 이 모깃소리가 바른 소리인지 그른 소리인지를 분간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정보들이 넘쳐 흘러서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손쉽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것을 안다고 저절로 옳은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또 그 사실들에 과연 내 생각들을 보태야 하는 것인지를 분간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일 것이다. 작은 모깃소리를 듣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냥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에 함부로 모깃소리를 내어 주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도 그쳐야겠다.
취문성뢰(聚蚊成雷)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을 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위 벼슬아치의 두 형제가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누구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 곁에서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연유를 물었다. “네, 어머니. 그 사람의 선대에 과부가 있었다고 해서 바깥 말이 많습니다”라고 아들이 답했다.
이에 어머니는 “규방일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 바람은 소리만 있지 형체는 없다. 어찌 형상 없는 일로 남을 논하느냐? 하물며 너희도 과부의 자식이 아니냐? 과부의 자식이 과부를 논한단 말이냐?”
형제는 그만 무참해져서 의론을 거두었다. 박지원은 이 고사를 취문성뢰(聚蚊成雷)로 소개하고 있다. 풍문에 현혹되어 판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뜬말, 근거없는 비방이 사람 잡는 세상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니 찾아도 자취가 없고, 살펴도 형체가 없다. 턱도 없는 얘기가 한 번 두 번 듣다 보면 정말 그런가 싶다. 세 번 들으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틀림없는 사실로 굳어진다.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衆 漂山, 聚蚊成雷.
중 표산, 취문성뢰.
뭇 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 가고, 모기 소리가 모여 우레가 된다.
朋黨執虎, 十夫橈椎.
붕당집호, 십부요추.
패거리를 지으니 범을 때려잡고, 열 사내가 작당하자 쇠공이가 휜다.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한 대목이다. 중산정왕이 자신을 참소하는 말에 대해 천자 앞에 해명하며 한 얘기다.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동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한 청년이 마을 사람들에게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를 중상모략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후회감이 들어 청년은 랍비에게 용서를 구했고, 사죄를 위해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노라고 빌었다.
랍비는 청년에게 “새의 깃털로 속을 넣은 베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베개를 잘라서 깃털을 바람에 날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청년은 시킨 대로 한 다음 랍비에게 찾아와 “이제 제 죄가 용서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랍비는 말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네, 가서 깃털을 모두 주워 오게나.”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바람에 다 날려 가버렸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끼쳐진 피해를 회복시킨다는 것이 날아 가버린 새 깃털을 모으는 것만큼 어려운 것인 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근거 없는 비방은 사람을 잡는다. 바람처럼 왔다가 비처럼 사라지니 찾아도 자취가 없고, 살펴도 형체가 없다. 한번 두 번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 싶다. 세 번 들으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난다. 그러나 비방을 당한 사람은 오래 고통을 받는다. 참회하는 도둑은 훔친 돈을 되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살인자는 진심으로 후회한다 하더라도 죽은 자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막말이란 대화의 토대가 일방화된 사회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화의 토대이고, 계획사회에서는 계획이 대화의 토대다. 남성 중심사회에서는 남성이 대화의 토대고, 도시 중심사회에서는 도시가 대화의 토대다.
대화의 토대를 일방적으로 만든 사회에서 강자나 약자 모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막말을 마구 해대는 것이다. 대화의 토대를 빼앗은 자들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소통방식과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언어폭력도 습관성이 있으며 점차 강도가 세지는 특성이 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언어폭력이 큰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세 사람의 입이 있지도 않은 범을 만들어 낸다. 적우침주(積羽沈舟)라. 가벼운 새털도 쌓으면 그 무게에 배가 그만 가라앉는다.
오죽했으면 임제(林悌)가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며, 모기 떼 소리가 우레 같고, 쌓인 비방이 뼈를 다 녹인다(積毁銷骨)고 말했겠는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조금씩 젖어드는 헐뜯음과 살에 와 닿는 참소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야 현명하다 할 만하다.”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명야이의.
건강한 사회에는 뜬 비방이 발을 못 붙인다. 나쁜 놈들이 남을 삿된 길로 내몰면서 저만 바르다고 떠든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패에 목숨을 건 판이라 후세의 시비나 세상의 평가쯤은 안중에 없다. 당장에 이기면 된다는 수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런데 그 전술이 번번이 들어가 맞으니, 여기에 무슨 현명함과 원대함이 있겠는가?
뭇 입은 쇠도 녹인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온통 중병을 앓았다. 사고의 원인, 구조와 수색, 당국의 대처 등에 대해 조작, 음모론에서 부터 각종 유언비어와 악성 댓글이 난무했었다. 그리고 이전의 광우병 사태와, 천안함 폭침사건 때도 일부 언론매체,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온갖 유언비어와 악성댓글이 판을 쳐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거기다 때만 되면 나타나는 얼치기 전문가와 이를 부추기는 일부 언론매체가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두 번 울리는가 하면 구조를 방해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런 사회의 악성종양이 번성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여년 전에도 이런 모함과 유언비어가 생사람을 잡고 나라를 어지럽히자 이를 경계하는 말들 또한 꾸준히 생겨났다.
뭇 사람의 말은 단단한 쇠도 녹인다는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모함이나 유언비어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일컫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비극적인 시인 굴원(屈原)이 남긴 말이기도 하다. 왕족에 대부(大夫)인 그도 두 번의 모함으로 두 번이나 쫓겨나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증삼이 살인을 했다는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말도 있다. 증삼이 살인을 했다는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되풀이 하면 참말이 된다는 뜻이다. 증삼의 어머니가 베를 짜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해도 그 어머니는 그럴 리 없다면서 태연히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다른 사람이 찾아와 또 말해도 믿지 않다가 세 번째 사람이 같은 말을 하자 그 어머니는 베틀의 북을 내던지고 달아났다고 한다.
증삼(曾參)이 누구던가? 공자(孔子)의 수제자요, 유학의 도통을 이은 대학자에다가 중국 사람들이 높이 받드는 24명의 효자 가운데 한 사람인 증자(曾子)가 아니던가.
그런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어머니지만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살인했다고 하는데 어찌 믿지 않고 버틸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었지만 세 사람이 잘못 전한 유언비어 때문에 자애로운 그 어머니마저 아들을 살인자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한(前漢) 시대 제후인 중산정왕(中山靖王)은 자신을 참소하는 말에 대해 천자 앞에 나아가 뭇 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 간다는 중후표산(衆喣漂山)이라는 말로 해명하고 있다. 사람이 부는 입김에, 그 숨결에 산이 떠내려 가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다.
모함이나 유언비어를 경계하는 말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고려(高麗) 중기(中期) 내시낭중(內侍郎中)으로 임금의 사랑을 받던 정서(鄭敍)는 모함을 받아 동래로 귀양가면서 ‘헐뜯는 이가 누구 입니까? 잘못도 허물도 결코 없습니다’라고 자신의 결백을 정과정(鄭瓜亭)이라는 노래에 담아 호소하고 있다.
황진이 무덤에 술 한잔 쳤다가 파직당한 조선 제일의 한량 백호(白湖)) 임제(林悌)도 그의 사직소에서 모기 소리도 모이면 우레 소리가 된다는 취문성뢰(聚蚊成雷)라는 말로 모함의 적폐를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모함과 유언비어는 쇠를 녹이고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산을 떠다니게 하고 우레 소리도 만들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나다.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없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언론매체와 인터넷, SNS 등을 통해 거짓이 진실로, 허위가 사실로, 악이 선으로 둔갑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인명구조와 수색작업에 도움을 준다던 다이빙벨 사건이 그렇다. 한 얼치기 전문가의 과학적 근거도 없는 허황된 주장에 일부 언론이 맞장구치고, 인터넷 매체가 증폭시키는 바람에 쓸모없는 다이빙벨이 만능으로 포장돼 구조를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실종자 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며칠만에 허구임이 증명됐지만 이런 유언비어와 잘못된 주장은 광속(光速)으로 퍼져나가 신뢰를 받기도 하는데, 이를 해명하거나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우보(牛步)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기 십상이다.
병풍(兵風)사건과 1억짜리 성형 파문으로 대통령과 서울시장 선거결과가 뒤집어진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잖은가?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이들 모함이나 유언비어에라도 매달리고 싶겠지만 언론과 정부당국은 이에 휘둘리지 말고 의연히 대처해야 한다.
국민들도 몸에 해로운 음식이 더 당기듯, 먹음직스럽고 화려한 독버섯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건전한 상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칭 잠수부라는 한 젊은 여인의 과격하고 악의에 찬 방송인터뷰에 다른 매체와 시청자들이 더는 귀 기울여서는 안된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맡은 바 직분을 다해야 한다. 공자도 일찍이 갈파하셨다. 정치의 요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말이다. 정치 뿐만이 아니다. 직장, 학교, 가정 등 모든 분야에서 자기 할 일을 다 한다면 천하태평에 만사가 형통이다.
세월호는 가라앉고 아까운 생명은 잃었지만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이 우리 국민 모두가 침몰할 수는 없다. 이제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슬픔과 아픔, 원통함일랑 물살이 센 저 맹골수도(孟骨水道)에 떠내려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의 국격(國格)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聚(모을 취)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取(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聚(취)는 ①모으다, 모이다 ②거두어 들이다 ③갖추어지다 ④저축하다, 쌓다 ⑤함께 하다 ⑥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⑦마을, 동네 ⑧저축(貯蓄) ⑨줌(한 주먹으로 쥘 만한 분량) ⑩함께, 다같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을 모(募), 모일 총(叢), 둥글 단(團), 모일 준(寯), 모을 촬(撮), 모일 주(湊), 모일 회(會), 社모일 사(社), 모을 췌(萃), 모을 수(蒐), 모을 축(蓄), 모을 찬(纂), 모을 종(綜), 모을 집(緝), 모을 집(輯), 모을 집(集),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흩을 산(散)이다. 용례로는 모여서 합침 또는 한데 모아 합침을 취합(聚合), 모여들거나 모아들임을 취집(聚集), 군사들을 불러 모아 점명함을 취점(聚點), 굶주리는 백성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구제함을 취제(聚濟), 한 가족의 뫼를 한 군데 산에 몰아서 장사하는 일을 취골(聚骨), 군사나 인부들을 불러서 모음을 취군(聚軍), 사람들의)모임과 흩어짐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취산(聚散), 머리를 맞대고 가까이 모여 앉음을 취수(聚首), 장가를 듦이나 아내를 얻음을 취실(聚室), 몰려드는 구름을 취운(聚雲), 두 가지 이상의 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결정형을 취형(聚形), 쌓여서 모임이나 쌓아 모음을 적취(積聚), 어떤 것을 구하여 일정한 곳에 모음을 구취(鳩聚), 한 집안 식구나 친한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한데 모임을 단취(團聚), 널리 구하여 모음을 모취(募聚), 군사를 징발하여 모음을 징취(徵聚), 군사를 훈련시키고 모아 들임을 훈취(訓聚), 생산하여 자재를 모아 저축함을 생취(生聚), 거두어 모음을 수취(收聚), 성곽을 완성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거주하게 하던 일을 완취(完聚), 친구와 헤어진 지가 어느덧 십 년이나 지나감을 취산십춘(聚散十春), 모기가 떼지어 나는 소리가 뇌성을 이룬다는 취문성뢰(聚蚊成雷), 정신을 가다듬어 한군데에 모음을 취정회신(聚情會神) 등에 쓰인다.
▶️ 蚊(모기 문)은 형성문자로 蟁(문)은 고자(古字), 蚉(문)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文(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蚊(문)은 모기를 뜻한다. 용례로는 모기과를 문과(蚊科), 모기떼를 문성(蚊城), 모기떼를 문진(蚊陣), 모기떼를 문군(蚊群), 모기장을 문장(蚊帳), 모기를 문예(蚊蚋), 모기와 파리를 문승(蚊蠅), 모기와 등에의 수고라는 뜻으로 활동이 극히 미약함을 문망지로(蚊蝄之勞), 얽은 구멍이 깊어서 얼굴에 앉은 모기를 손으로 쳐도 맞아 죽지 않는다는 문불사(蚊不死),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아침에는 파리 저녁에는 모기가 떼를 이룬다는 조승모문(朝蠅暮蚊), 모기가 떼지어 나는 소리가 뇌성을 이룬다는 취문성뢰(聚蚊成雷) 등에 쓰인다.
▶️ 成(이룰 성)은 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창 과(戈; 창, 무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 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 성)은 나중에 변한 모양이며, 十(십; 모이다), 午(오; 다지다), 甲(갑; 덮다)이라 썼다. 戊(무)는 무기, 도구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도구를 써서 사물을 만들다, 완성되다, 이루어지다의 뜻으로 되었다. 그래서 成(성)은 (1)황금의 순도를 나타내는 말. 십성(十成)이 순금(純金)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이루다 ②이루어지다 ③갖추어지다, 정리되다, 구비되다 ④살찌다, 비대해지다 ⑤우거지다, 무성해지다 ⑥익다, 성숙하다 ⑦일어나다, 흥기하다 ⑧다스리다, 평정하다 ⑨나아가다, 진보하다 ⑩가지런하다 ⑪고르게 하다, 균평하게 하다 ⑫끝나다 ⑬정하여지다 ⑭기대하다 ⑮완성하다 ⑯어른이 되다, 성인이 되다 ⑰크다 ⑱층계지다 ⑲화해하다 ⑳정성(精誠) ㉑재판(裁判), 심판(審判) ㉒권형(權衡), 균형(均衡) ㉓총계(總計), 셈한 계산(計算) ㉔북두칠성(北斗七星)이 술의 방위를 가리키는 날 ㉕길제(吉祭; 죽은 지 27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 ㉖사방 10리의 땅 ㉗층 ㉘참으로 ㉙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통할 통(通), 통달할 달(達)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패할 패(敗), 질 부(負)가 있다. 용례로는 일이 이루어짐을 성사(成事), 뜻한 것의 목적을 이룸을 성공(成功), 어떤 단체를 이루는 사람을 성원(成員), 목적대로 일을 이룸을 성취(成就), 사업이나 일을 한 결과로 얻은 실적을 성적(成績), 초목의 열매가 충분히 여묾을 성숙(成熟),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 또는 성숙해짐을 성장(成長), 일의 이루어진 결과를 성과(成果), 화합물을 조성하는 각 원소를 성분(成分), 성년이 됨 또는 성년이 된 사람을 성인(成人), 엮어서 만드는 일을 편성(編成), 만들어 이룸을 작성(作成), 뜻한 바 목적한 바를 이룸을 달성(達成), 어떠한 꼴을 이룸 또는 어떠한 꼴로 이루어짐을 형성(形成),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을 양성(養成), 어떤 사물을 완전히 이룸을 완성(完成), 어떤 종류나 무리의 사람을 가르쳐서 기르는 것을 육성(育成), 단체를 조직하여 이룸을 결성(結成), 도와서 이루게 함을 조성(助成),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성공자퇴(成功者退),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는 순간을 성패지기(成敗之機),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주어 더욱 빛나게 해 준다는 성인지미(成人之美) 등에 쓰인다.
▶️ 雷(우레 뢰/뇌)는 형성문자로 壨(뢰/뇌)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비 우(雨; 비, 비가 오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천둥 소리가 거듭된다는 뜻을 가진 田(전)으로 이루어졌다. 우렛소리가 전(轉)하여 우레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雷(우레 뢰/뇌)는 ①우레(=천둥), 천둥(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 현상) ②큰소리의 형용 ③사나운 모양의 비유 ④위엄 있는 모양 ⑤빠른 모양 ⑥성 위에서 굴리는 돌(무기) ⑦북을 치다 ⑧돌을 내리 굴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레 진(震), 벼락 벽(霹), 벼락 력(靂)이다. 용례로는 천둥 소리를 뇌성(雷聲), 천둥소리가 나며 내리는 비를 뇌우(雷雨), 연꽃으로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를 뇌지(雷芝), 우레를 맡고 있다는 귀신을 뇌신(雷神),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듦을 뇌동(雷動), 우레를 맡고 있다는 신을 뇌사(雷師), 옳고 그름의 분별도 없이 남을 따름을 뇌동(雷同), 벼락이 떨어짐이나 떨어지는 벼락을 낙뢰(落雷), 창자에 들어 있는 가스나 액체가 이동하는 때에 꾸르륵 창자를 울리는 소리를 복뢰(腹雷), 몹시 맹렬한 우레를 신뢰(迅雷), 격심한 천둥을 경뢰(驚雷), 많은 우레의 뜻으로 우렁찬 소리를 만뢰(萬雷), 세찬 천둥과 격심한 벼락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노뢰(怒雷), 한랭 전선이 지날 때 생기는 천둥을 한뢰(寒雷), 우레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헤어진다는 뇌봉전별(雷逢電別), 뇌의와 진중의 굳음이라는 뜻으로 대단히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을 뇌진교칠(雷陳膠漆), 우렛소리와 같이 큰 이름이라는 뇌성대명(雷聲大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