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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사랑해!(고전13장, 막3:31-35)
"너만 사랑해!" "당신만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혹은 사랑받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들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우
리는 부모나 연인이나 친구로부터 이 말을 들을 수 있다. 또는 이 말을 상대방에게 할 수도 있다.
"너희만 사랑해" "당신들만 사랑해"
'너'라는 단수가 복수로 빠뀌는 수도 있다. 어느 무리를 향해 어느 개인이나 조직이 그런 말을 할 수 있
다.
그러나 '만'자가 들어가는 이런 사랑고백은 우리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고백엔 함정과 위험
성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랑을 받거나 줄 때, 사람들은 흔히 감정에 휩싸이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간과하거나 미처 간파하지 못한다.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건강한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
라 차가운 이성도 작동하기에 그 위험성을 간파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으로 인한 헛고생을 줄일 수 있다.
거짓 사랑에 속지 않게도 된다.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농부가 농사를 짓듯 땀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지
만, 헛고생이나 헛수고는 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만'자가 들어가는 사랑고백 속에 숨어 있는 위험성 2가지를 보겠다. 2가지를 보면서 자신을 성찰
하자. 성찰을 통해 건강한 사랑을 더욱 하는 게 목적이다.
건강한 사랑은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과정이다. 즉 처음과 끝이 있다. 처음 구원
(initial salvation)은 단순한 믿음으로 받지만, 나중 구원(final salvation)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
로 받는다. (갈5:6) 때문에 건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건강
한 사랑을 하며 사는 것은 구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영생은 지금 여기서부터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모시
고 타인을 내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
이제 그 위험성을 보자.
(1)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당신만 사랑해" "너만 사랑해"
이런 고백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흔히 상대방을 통제한다. 이 통제는 상대방을 수단화하려는 데서 비롯
된 것이다. 사람은 흔히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동기를 갖고 사랑에 임하는 수가
많다.그런데 그 동기를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자신은 순수한 사랑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렇
지 않은 경우가 흔한 것이다.상대방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는 병든 사랑을 할 때' 흔히 동원되는 방식이 '너
만 사랑해'다. 상대방을 수단화하려면 상대방을 통제하고 규제하고 억압해야하는데, 노골적으로 하기가 어
려울 때 흔히 '너만 사랑해'라는 우회적 방식을 사용한다.
건강한 사랑은 상대방을 결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오히려 목적으로 여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고전13:5)
이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말의 의미는 단지 예의가 바르거나 매너가 좋다는 정도가 아니다. 무례
히 행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알맹이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짓은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일이다. 배우자든
자식이든 부모든 친구든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만큼 무례한 짓도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마저 자신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다. 한국교회에 만연된 기복신앙은 하나님을 인간
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부자되고, 높아지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십자가 앞에서 비는 신앙생활은 기
복신앙이다. 먼저 사랑과 거룩의 지배를 받는 삶 즉 하나님나라를 자신속에 세우는 삶은 외면한채 ,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우선적으로 구하는 신앙생활(종교생활)은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이방인들)이 하는
짓이다(마6:32).
기복신자(목회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무례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현실도피적으로 내세
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지금 주어진 현실, 가정,일터,학교 생활에 깊이 믿음으로 뿌리를 내리지 않고,
내세나 바라보며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내세 천국에 쉽게 들어갈
궁리나 한다. 필요 없는 궁리나 하다가 예수 재림의 날짜나 계산하는 미혹에 빠진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일찍이 쐐기를 박는 말씀을 주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의 알 바 아니요"(행1:7). 정상적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서 주어진 현실에 충실한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
를 기다리는 뜨거운 마음이 클수록 가정, 직장,사회에서 타인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정상
이다. 그게 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인간이 알 바가 아닌 내용을 알려고 굳이 기를 쓰는
짓은 하나님께 심히 무례한 짓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목적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장미꽃과 국화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자. 그 때 건강
한 사랑은 상대방의 꽃을 긍정(인정)하고 기뻐하며(존경하며), 상대방이 꽃을 아름답게 피울 수 있도록 서
로 돕는다. 서로 도우며 상생한다. 그러나 병든 사랑은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상대방을 단지 이용하려
든다.내 꽃을 피우는 일에 일방적으로 협력하라거나 ,네 꽃은 없애고 내 꽃이나 잘 피도록 도우라는 등 억
지를 부린다. 그 억지를 감추기 위해 바로 '너만 사랑해'라는 위장전술을 쓰는 경우가 많다. 알게 모르게.
"너만 사랑해'라는 식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희생을 부각시키며 강조하는 수가 많다.'너만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희생하는지 알라는 말을 자주 한다.너만 사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안 만나고, 놀
러 다니지도 않고, 좋아하는 일도 포기했다는 등 자신의 희생(?)을 늘어놓는다.
"너만 사랑해'라는 말에 속지 말자. 그 말로 타인을 속이지도 말자.그 속에 담긴 위험성을 알고 건강한 사랑을
하자.
(2)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너만 사랑한다'는 식의 사랑엔 이기주의가 숨어있다. 개인이기주의 ,가족이기주의,집단이기주의다.
예를 들어 보자.
자신의 외아들이 끼어 있는 아이들 10명이 모인 자리에 그 엄마가 있다. 그는 늘 그 아들에게 '너만 사
랑해'라는 고백을 하는 엄마다.모성애가 지극하다 못해 '너만 사랑하는' 경지까지 도달한 것이다. 뛰어 노느
라 배가 고픈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 마침 생겼다. 빵 10개였다. 빵을 나누어주게 된 그 엄마는 자기 아들에
게 2개를 몰래 주고 나머지 8개를 9명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는 단순한 사례인지라 '너만 사랑한다'는 방식
의 사랑의 모순, 유치한 행태가 금방 보이지만 , 사람들의 실제 복잡한 생활 속에서는 이런 식의 사랑이 은
폐되는 수가 많다. 비일비재하지만. 은폐되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미화되는 수도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나치시대에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정권은 유대인 6백만을 죽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
로 무자비하게 죽였다. 나치는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런데 히틀러의 수족 노릇을 하며 살인기계 역할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아주 가정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고 한다. 자신의 가정에서는 인자한 아버지요 다정다감한 남편들이었다는 말이다. 낮에는 수백명의 사람
들, 여자나 어린이들이 포함된 사람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죽인 자가 귀가해서는 촛불을 켜놓고 ,부드러
운 음악을 들으며 가족의 생일파티를 연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분명' 너만 사랑해, 당신만 사랑해!'라는
달콤한 고백을 했던 것이다.
독일 국민 99% ,독일 교회(가톨릭,개신교) 대부분의 지지를 받은 히틀러 나치정권이 내세운 국정 지표는
'민족 사회주의'였다. 그 기치 아래 그는 입만 열면 늘 이런 고백을 했다.
"신성한 게르만 민족, 너만 사랑해!"
이런 고백에 독일 국민들은 '하이, 히틀러!'로 뜨겁게 화답했다.
'너만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에 취한 독일국민은 히틀러가 무슨 짓을 해도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결국 그
들은 야만적인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런 병든 사랑으로 굳게 뭉쳐 타민족,타국민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준 나라가 독일만이 아니었다. 일본, 이태리도 있었다. 이런 방식의 거짓 사랑으로 타국,타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나라나 집단이 지금도 세계 도처에 난무하고 있다.
인간은 '너만 사랑하는'만큼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기도 한다. 너만 사랑하려면 타인을 불행하게 하
고 심지어 죽여야 한다.'너만 사랑해'는 '우리끼리 사랑해'로 쉽게 바뀐다. 그리고 우리끼리 사랑해,는 집단
따돌림문화를 형성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너만 사랑해'라는 말씀을 절대 하시지 않는다. '너만 사랑한다'는 식의 사랑은 야훼 하
나님에게 없다.십자가 사랑속에는 '너만 사랑해'가 없다. 너만 사랑해,는 십자가 사랑과 상치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즉 하나님이 자신만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건 유아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유아기 어린이는 부모가 저만 사랑하는 줄로 안다. 옛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
았다. 그 결과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자고해지는 것이었다.진정한 선민의식은 단지 먼저 부름받은(믿
은) 자로서,감사하며 이웃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것인데 ,그들은 정반대로 높아져 타인을 멸시
하고 차별하며 배척하는 짓을 했다. 하나님은 만인류를 사랑하시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것뿐이었
다.
이런 병든 선민의식은 중세게 가톨릭교회에도 만연되었다. 결국 자기중심적인 그들은 중남미 대륙을 침략
해 그곳 원주민 수천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병든 선민의식은 개신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교
도를 비롯한 개신교도들은 북미대륙으로 들어가 그곳 원주민 수천만을 죽이고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했
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뱀처럼 똬리를 튼 생각은 '하나님은 나(우리)만 사랑해'"우리를 특별히 사랑해'
였다. 그 거짓 신앙으로 무장된 백인들은 유색인종과 흑인들을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았다.'우리만 사랑하
는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은 결과가 그런 짓까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행한 것이다.
'너만 사랑해,너희만 사랑해'식의 거짓 사랑은 지역이기주의도 낳는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런 지역지기주의
를 부추겨 표를 얻는다. 그런 정치인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그런 수준의 국민(시민)들이 있기 때문이
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건 착각이다. 햇빛이 만물에 고루 비치듯이
하나님은 만인을 고루 사랑하신다. 전혀 차별 없다. 사랑의 빛깔은 달라도 사랑의 본질은 똑같다. 사랑의 경
중이 없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무한한 사랑을 누구에게나 베푸실뿐이다.때문에 타인
을 위해 기도할 때 '특별히 사랑해 주시옵소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위선적인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예수님께 가족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 때 예
수께서 하신 말씀과 태도를 우리는 이 시간 똑바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사
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좀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면회를 신청했는데 예수님은 의
외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3:31-35)
분위기가 냉랭하고 서늘할 정도다.
이 기사에서 우리가 꼭 잡아야하는 가르침은 가족이기주의를 뛰어넘으신 모습이다. 다시 말해' 너만 사
랑해'식의 거짓 사랑을 극복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가족을 홀대한 분이 아니다. 가족을 내팽
개친 분은 더구나 아니다. 그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가정을 극진히 돌봤다. 요셉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소년 가장노릇도 했던 것 같다. 이 기사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이다.
예수님의 가족 사랑은 만인에게 열린 사랑이고, 만인에게 열린 그의 사랑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동
시에 품는 사랑이었다.'너만 사랑하는'식의 사랑에 익숙한 사람은 예수에게 걸림돌이 된다.그는 성령을 거
스른다.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 선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인 사랑에 취한 사람들이었다. 개인이기주의 ,가
족이기주의,집단이기주의,민족이기주의에 취한 사람은 예수와 상극이다. 반면 누구나 ,만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을 냉대하는 사람도 예수님과는 부딪힌다.
건강한 사랑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발휘되지 않는다.능력있는 사랑은 어떤 대상을 향해서라도 표현된다.비
록 대상에따라 사랑의 빛깔은 달라져도 사랑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표출된다. 특정인을 사랑하더라
그 사랑은 타인을 사랑하는 사랑과 본잘적으로 다르지 않다. 진정 특정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밖의
타인도 사랑한다. 그러나 병든 사랑, 허약한 사랑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표현된다.유치한(유아적인) 사랑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을 감싸고 돈다. 타인, 이방인은 배제되고 배척하고 차별한다. 나아가 너만을
사랑하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착취한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이나 집단에 매달려 안전을 보장받
거나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탐욕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
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자신의 허물을 깨닫는 것만 갖고는 구원의 은총을 맛보기 힘들다. 깨달음도 없이 짐승처럼 사는 것보다야
낫지만, 깨달음에 멈추는 것은 영성 향상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깨달은 허물을 주님께 토하며 자백하는 일
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의 은총이 오늘 나에게 현실화되려면(actualize) ,주
님의 약속을 믿고 자백하며 회개하는 일이 필요하다. 진정 성령 안에서 자백하면 그리스도의 긍휼을 받는
다. 그리고 사랑이신 성령이 더욱 임재하신다.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건강한 사랑으로 행하게 된다.
나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병든 사랑을 하는 나
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지만, 그 허물을 주님께 자백하는 일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었다. 이기적인 사랑에 절은 나의 허물을 지속적으로 자백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더욱 경험했다. 이
제는 이전보다 인간관계 맺기가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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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설교요지 /김달성목사 (평안교회)
* 알림 *
김달성목사 작은 북토크 모임(날짜 확정)
책: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김달성 지음. 도서출판 좋은땅)
장소: 카페 엘피스( 신촌 연세대 앞 창천교회 내)
시간:2015년 5월 19일(화요일) 저녁 7시 30-9시 30
참가자격;누구나 (제한 인원만 선착순으로 받습니다)
참가신청: 김달성목사의 블로그 ;십자가 이야기 를 둘러보시고 이메일로 신청하면 됩니다.
신청할 때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하면 좋습니다.
이메일: Kdalsung @hanmail.net
참가비: 찻값 3 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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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책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을 참가자에게 선물합니다.